돼 지
옛날부터 사람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짐승이 돼지다.
집 家자만 봐도 알 수 있다. 집 면 아래 사람이 아닌 돼지시豕다.
집에 사람이 살아야 하는데 돼지가 사니 좀 헷갈린다. 돼지는 값싼 사료를 먹고 인간에게 양질의 영양소를 공급해 준다. 돼지의 몸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돼지 똥도 좋은 퇴비가 되어 땅을 살찌운다.
사람은 돼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지만 돼지에 대한 애증은 엇갈린다.
우리는 욕심 많은 사람을 돼지에
비유한다. 돼지는 욕심꾸러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아울러 우리는 돼지에 대한 기대와 애착도 유별나다. 특히 한국인과 중국인이 그렇다.
간밤에 돼지 꿈을 꾸면 길몽이라하여
기대에 부풀어 로또을 구입하기도 한다. 고삿날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도 돼지다. 우리는 돼지에 기대하는 것이 많고 많다.
열두가지 띠 동물 중에 가장 사랑받는 동물도 단연 돼지다.
돼지 해에 결혼 붐이 일어났던 일이 있었다. 이것만 봐도 우리가 돼지에대한 애착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옛날 농가에서는 돼지가 큰 수입원이었다. 집집마다 돼지를 키워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용돈도 해결 했다.
그 때는 한 우리에 돼지를 몇마리씩 키웠다.
돼지가 욕심꾸러기라는 것은
돼지죽을 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녀석들은 먼저 먹겠다고,더 많이 먹겠다고 서로 치고 받으며 한치의 양보도 없다.
욕심으로 말하면 사람이 돼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권력과 재력과
명예를 다 거머쥐고서도 그 돼지욕심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보고 있다.
인간의 돼지 욕심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다름 아닌 가정이다.
가정은 인성과 야성, 천국과 지옥이
수시로 교차되는 특별한 공간이다.
TV연속극은 가정의 내면을 잘 파 헤치고 있다. 한식구들끼리 시시콜콜한 문제로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는 모습은 이게 집이 맞는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한다.
家에 왜 돼지가 사는지 좀 알 것 같다.
지금은 애들을 하나 둘만 키운다. 식구가 적으니 욕심도 적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초등학생이
한 명 있었다. 어느날 그 어린이와 공원 정글짐 아래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 너 몇 학년이지?
*3학년이예요.
- 형제가 몇이니?
* 저는 혼자예요.
- 혼자는 외로우니 동생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 저는 동생을 원하지 않아요.
- 왜 그러게.
*왜는요. 동생이 있으면 내 몫의 절반을 동생에게 뺏긴단 말이에요.
그 어린이는 거침없이 자기의 생각을 피력했다. 아울러 할아버지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식으로 내게 짓궂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 어린이는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계산적으로 자랐다.
나는 속으로 요 쬐만한 것이 너무도 빨리 돼지를 닮아 가는구나 생각 했다.
돼지는 좁은 공간에서 산다. 그러나 돼지는 그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의 자유와 평화를 누리면서 산다. 우리가 사는 가정도 크지않은 공간이다. 그러나 가정보다 자유로운 곳은 없다.
속된 말로 방귀를 한 번 뀌어도 눈치 안보고 시원하게 뀔 수 있는 곳이 가정이다.
돼지는 꽁하지도 않고 뒤도 없다.
죽을 먹을 때 그렇게 치고 받는 것을 보면 돼지는 도저히 한 우리에서 살 것 같지 않다.그러나 일단 싸움이 끝나면 금세 친해 진다. 그리고
서로 기대어 체온을 나누면서 쿨쿨 코를 골며 잔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평화롭다.
우리의 가정도 돼지처럼 싸울 때가 많다. 그리고 돼지처럼 꽁하지도 않다. 남들과 그렇게 싸윘다면 벌써 윈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싸우면서도 같이
살 수 있는 곳이 가정이다.
때로는 우리의 가정이 돼지우리 같지만 그 돼지 우리보다 더 자유로운 곳이 어디 있겠는가.
집 家에 왜 돼지가 사는지 그 의미를 좀 알것 같다.
가정家庭의 가만 보면 가정은 돼지우리 같다. 그러나 정庭을 보면 그렇지 않다. 정庭은 집엄广
아래 궁정 또는 궁궐이 아닌가.
그렇다. 집이 궁궐보다 좋을 때도 많지 않은가
돼지는 오랜 세월을 인류와 공존하면서 우리의 식탁을 빛내 왔다.
사람들의 수많은 애증을 받으며 살아 왔던 돼지, 허구한 세월을 두고 쌓아 온
미운 정, 고운 정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아울러 돼지와의 정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왜냐면 돼지가 우리에게 장기까지 공급해 주는 대안동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와 돼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