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과잉현상은 빈곤을 더욱 촉발시킨다. 생리적 자연 출산을 통제하여서라도 빈곤을 퇴치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인권존중의 가치 상실이라는 이유로 국민의 행복권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 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출산을 억제하거나 독신자의 증가로 인한 인구 감소문제로 홍역을 치루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은 시류의 이이러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폭발적인 인구증가 현상이 일어났고 영유아의 사망률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것은 경제성장과 사회 안정을 도모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우리나라도 1960년 부터 산아제한을 목적으로 한 가족계획이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아들 딸 구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라는 표어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의 세대는 주로 산아제한 기간동안에 출산을 했다. 대부분이 아들, 딸 구분 없이 둘만 낳고 출산을 중지했다. 그러나 나는 산아제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 자녀를 두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미개인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대꾸할 방도가 없었다. 시대가 변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1960년대의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녀 숫자와 성별에 대한 메달의 색깔이 바뀌기 시작했다. 산아제한 초기에는 1남 1녀가 금메달이었지만 산업화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2남 1녀를 금메달이라고 했다.
메달의 가치는 색깔로 구분된다. 금메달과 은메달의 높이의 차이는 한 계단에 불과하지만, 가치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바르셀로나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와 보스톤 마라톤의 월계수 왕관의 주인공이었던 이봉주의 이름 석 자는 평생토록 기억하게 된다. 몬주익 언덕에 조각되어, 있는 황영조 뛰는 모습은 국가의 자긍심을 높여 주는 표상이기도 하다.
아들이 태어난 지 2년 후에 딸이 태어났다. 1남 1녀,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더 이상의 출산은 중지되어야 했었다. 그런데 2년 후에 예기치 않은 아이 하나가 엄마의 뱃속에서 놀고 있다. 기쁨보다 당황스러웠다. 몇 날 며칠을 말설였다. 받을까 말까. 지워버릴까. 문득 살아생전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이던, 간에 문전박대를, 하지 말거라. 그러면 오는 복도 달아난다, 하셨다. 거지들이 우리 집 사랑채를 뻔질나게 들락거린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이미 대문을 열고 엄마의 몸속으로 들어와 있는 셋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명의 잉태는 하늘이 내리는 축복이다. 숭고하고 거룩하신 음덕을 내 어찌 배반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때는 2남 1녀가 금메달이었다. 이왕이면 아들을 원했다. 하늘이 내게 고추 하나 안겨 주시기를 염원하며 동산같이 부풀어 오르는 아내의 배를 지성으로 쓰다듬는다. 제발 금메달로 태어나 달라고,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출산의 조짐이 보여 병원으로 갔다. 금메달이냐 은메달이냐 귀로에 선 가슴이 쿵쾅거린다. 조마조마한 시간이 흐르고 수술실 문이 열린다. 아내였다. “딸이라예.” “수고했소” 그 말 한마디 던지고는 신생아실로 갔다. 간호사가 아이를 보여 주는데 고추가 안 보인다. 이 일을 어찌한담.
196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가족의 문화기 대가족에서 소가족으로 빠르게 변해갔다. 부계 중심적이고 종가 중심적 문중의 규범이 서서히 허물어지면서 남아 선호 사상도 수그러들었다. 딸만 가진 가정도 늘어간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문중의 대손(代孫)이 끊어지는 현상을 상상이나 했을까. 씨받이나 양자라는 말이 숨어 버린 지가 오래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금메달의 의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갔다. 근대 사회에서는 1남 2녀가 금메달이라고 한다. 법적 근거도 없고 보상도 따르지 않는 사회통념이다. 대체적으로 아들보다 딸과의 교감이 더 섬세하고 살갑기 때문이 아닐까.
이왕이면 아들이기를 원했는데 딸이 되어 실망을 안겨주었던 그 아이가 가정을 일구어 내 곁에 산다. 교단에서 아이들 교육에 진이 빠질 텐데도 수시로 문안 인사를 한다. 틈만 나면 손자 손녀를 데리고 와 웃음꽃을 안겨 준다. 좋은 곳을 찾아 여행을 인도해 주고 이따금 스파게티나 카레같은 특별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나의 서툰 컴퓨터 선생이기도 한 막내가 그렇게 살가울 수가 없다. 축복은커녕 웃음마저 가져가 버렸던 아이가 곱게 자라 이렇게 영예로운 금메달을 안겨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늘이 점지해 주신 보물을 복에 겨워 지워 버렸다면 그 후회를 어찌 감당할 수 있었으랴.
“자녀를 어떻게 두었소.”라고 물어 오면 1남 2녀라고 말한다. 금메달이네요. 시대의 흐름은 내 편이었다. 며칠 전 막내딸의 생일날, 나는 금일봉 봉투에 이렇게 썼다. ‘네가 딸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맙다. 사랑한다 막내야.’라고…….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