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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 다 아는 이름 송혜희 그녀가 범죄에 의해 희생 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에 대한 25년간의 추적은 비록 미완의 비극으로 끝났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사진 네이버
1999년 2월 13일, 경기도 평택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17세의 송혜희(송탄여고3학년)가 실종되었다. 이 사건은 송혜희 양의 아버지 송길용 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송 씨는 딸이 실종된 이후 25년 동안 끊임없이 딸을 찾기 위해 싸워왔지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송혜희 양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관계자는 "송씨가 지난 월요일(26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그가 남긴 집념과 사랑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5년간 미제 실종은 2500건이다.
송길용 씨는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딸을 찾는 일이었다. 송혜희 양이 실종된 날, 송 씨는 딸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전국 곳곳에 걸어놓고 그녀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서울의 종로와 명동, 고속도로의 휴게소와 수도권의 대학가, 지방 교차로 등 사람들의 눈에 띄는 모든 장소에 현수막을 설치하며, 송 씨의 절실한 바람을 널리 알렸다.
송 씨의 사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의 집념은 매체를 통해 자주 보도되었다. 2004년 KBS의 '공개수사 실종'과 2011년 '채널뷰 사라진 가족'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송혜희 양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송혜희 양의 행방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25년의 세월에 깨어져버린 가정은 회복 할 수 없지만 그의 父情의 집념이 남긴 교훈을 클것이다. 부모와 혜교 어쩌면 이제 안식을 사진 한국경제
송길용 씨의 이야기는 단순한 실종 사건을 넘어, 한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과 집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남았다. 송 씨는 트럭을 몰며 호떡 장사를 하면서 얻은 모든 돈을 딸을 찾는 데 사용했다. 트럭에 딸의 사진을 붙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단지와 현수막을 배포하는 한편, 자신의 건강과 생업까지 희생하며 딸을 찾기 위해 매진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결국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만들었고, 건강도 크게 악화되었다.
송 씨의 아내는 딸을 찾지 못한 절망감에 우울증을 앓다 먼저 스스로 세상을 떠났고, 송 씨는 혼자서 딸을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했다. 송혜희 양의 집은 개발로 인해 이전되었고, 사건 발생 당시의 평택 지역도 큰 변화를 겪었다. 송 씨는 사건의 진전을 바라며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송길용 씨의 딸 송혜희 양은 현재 43세로 추정된다. 사건 발생 당시 송양은 평택의 작은 동네에서 실종되었고, 이후의 수사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찰은 사건 초기 단순 가출로 처리하였고, 후속 조치가 부족했던 점이 사건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 경찰의 수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송 씨는 그로 인해 경찰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송길용 씨의 노력은 단순히 개인의 희생을 넘어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그의 집념과 사랑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실종 사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송 씨의 이야기는 실종 사건의 장기화가 개인과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스터리한 내용으로 소개되었지만 그 팩트는 잘 알 수가 있다. 근방에 백골이 되어 나타난 40대 여인 사건 부터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사진 구글
https://www.youtube.com/watch?v=eI3Cj3SQA3A 8년전
2015년 5월 7일 조선일보가 송혜희 양의 아버지와 인터뷰를 했는데 시간이 흘러 70세가 되었지만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사용한 자동차를 폐차한 뒤 새로 산 차의 주행 거리가 20만 km에 달한다고 하며 4년 전 현수막을 교체하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고 하지만 기초생활수급 60만 원 중 40만 원을 현수막 및 전단지 제작에 쓰는 등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송길용 씨의 사망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그의 빈소는 평택 송탄제일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배웅하였다. 그의 끝없는 노력과 사랑은 송혜희 양을 찾기 위한 인내와 희망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집념의 父情이고, 비극의 최고봉이다. 그러나 이렇듯 끝장을 보는 무모한 노력이 한류의 부모가 가지는 집착이며 후대에 대한 희생이다.
이 송혜희 아버지의 노력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허망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엄청난 노력과 행동은 이미 송혜희라는 이름이 각인되어있고, 죽음도 아니고 실종은 끊임없이 인간을 희망고문 한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송길용 씨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모든 실종 사건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그들이 가진 희망을 상기시키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그의 집념과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도 큰 교훈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송 씨의 명복을 빌어야 할 것이다.
이제 누군가에 의해 다시 송혜교 찾기 현수막은 계속 걸려야 하며 특히 송씨종친회의 노력, 그리고 평택(도일동 하리)이라는 지역사회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일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건은 반드시 해결된다!‘는 교훈을 남겨 차후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이 사건과 그 부친의 죽음에 공분을 느끼는 것이 바로 한류의 진정성이다. 바로 그가 내딸이요, 그가 내아버지라는 의식이다. (글 권오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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