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2권
제24조 사자師子 비구比丘
그는 중인도 사람으로서 종성은 바라문이었다.
법을 얻고서 사방을 유행遊行하다가 계빈국罽賓國에 이르렀다.
그때 파리가波利迦라는 자가 본래 선관禪觀을 익혔기 때문에
선정禪定의 무리,
지견知見의 무리,
형상에 집착하는[執相] 무리,
형상을 버리는[捨相] 무리,
말을 하지 않는[不語] 무리 등 다섯 무리가 있었다.
존자가 그들을 꾸짖어서 교화하자
네 무리는 모두 묵묵히 마음으로부터 복종하였으나,
오직 선정의 스승인 달마달達磨達이라는 사람만이
네 무리가 질책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분개해서 달려왔다.
존자가 물었다.
“그대는 선정을 익히면서 어찌하여 여기에 왔는가?
이미 여기까지 왔다면 어찌하여 禪定을 익힌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달마달이 대답했다.
“제가 비록 여기까지 왔으나 마음은 어지럽지 않습니다.
선정은 사람을 따라 익히는 것이니, 어찌 처소處所가 있겠습니까?”
“그대가 이미 왔으므로 그 익힘도 또한 왔을 것이며,
이미 처소가 없다면 어찌 사람이 익히는 데 있다고 하겠는가?”
“선정이 사람을 익히기 때문이지, 사람이 선정을 익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비록 여기에 왔으나, 그 선정을 항상 익히고 있습니다.”
존자가 말했다.
“사람이 선정을 익히는 것이 아니고 선정이 사람을 익히기 때문이라면,
스스로 왔을 때에는 그 선정을 누가 익히는가?”
“맑고 밝은 구슬이 안팎에 티가 없듯이,
선정을 통달하면 반드시 그와 같을 것입니다.”
“선정을 통달하면 한결같이 밝은 구슬과 같으리라.
하지만 지금 그대를 보건대 그와 같은 구슬의 무리는 아니다.”
“그 구슬이 밝게 사무치면 안팎이 다 정定인 것처럼,
제 마음의 어지럽지 않음도 그와 같이 맑습니다.”
“이 구슬은 안팎이 없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능히 정定하다고 말하는가?
더러운 것들이 요동치 않을 뿐이니, 이 정定은 청정하지 않다.”
달마달은 존자의 깨우침을 받고서 심지心地가 환하게 밝아졌다.
존자는 다섯 무리를 거두어 그 명성이 가깝고 먼 곳에 퍼졌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제자를 구하게 되었는데,
어느 장자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존자에게 물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사다斯多인데,
태어날 때부터 왼손을 쥐고 있습니다.
이제 장성했건만 끝내 펴질 않고 있으니,
바라옵건대 존자께서 전생의 인연을 보여 주십시오.”
존자가 그를보자 즉시손으로 어루만지면서말했다.
“내 구슬을 돌려다오.”동자가 갑자기 손을펴고 구슬을 받들어 올리니,
대중이 모두 깜짝 놀랐다.
존자가 말했다.
“내가 전생에 스님이었을 때 바사婆舍라는 동자가 있었다.
당시 내가서해 용왕의 재齋에 갔다가 구슬 보시를 받아서 그에게 맡겼었는데,
이제 내 구슬을 돌려주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은가?”
장자가 드디어 그 아들을 놓아주어 출가케 하니,
존자가 곧 구족계를 주고는 전생의 인연에 따라서 바사사다婆舍斯多라고 이름을 지었다.
존자는 이어서 그에게 분부하였다.
“나의 스승이 비밀히 예언하신 바가 있으니,
오래지 않아서 재난을겪으리라.
이제 그대에게 여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하나니,
그대는 잘 보호하여서 미래의 유정들을 두루 구제하라.”
이어서 게송을 말했다.
올바로 지견知見을 설할 때에 지견은 모두가 마음이다.
당장의 마음이 곧 지견이요 지견은 곧 지금이다.
正說知見時 知見俱是心 當心卽知見 知見卽于今
존자가 게송을 말한 뒤에 승가리(僧伽梨:袈裟)를 사다에게 비밀히 전해 주고는,
다른 나라에 가서 기연機緣에 따라 교화를 베풀라고 하였다.
사다는 분부를 받고서 곧바로 남천축南天竺으로 갔다.
그러나 존자는 ‘환난을 구차하게 면하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는
홀로 계빈국에 머물렀다. 당시 그 나라에는 두 외도가 있었는데,
하나는 마목다摩目多이고,
또 하나는 도락차都落遮로서 온갖 요술[幻法]을 배워 가지고 함께 혼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리하여 거짓으로 스님의 형상을 꾸미고는 왕궁으로 잠입하면서 말했다.
“성공하지 못하면 죄를 스님에게로 돌리자.”
요망한 짓을 스스로 조작하고 나니,
재앙이 잇달아 일어나 일을 완전히 그르치게 되었다.
그러자 왕은 과연 성을 내었다.
“내가 본래 마음으로부터 삼보에 귀의했는데,
어쩌면 이다지도 한결같이 나를 해치려고 하는가?”
그리고 그는 곧 가람伽藍을 파괴하고 불자佛子들을 모두 죽이라는명을 내렸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은 손수 칼을 들고 존자의 처소로 가서 따졌다.
“스님은 5온蘊이 공함을 깨달았소?”
존자가 대답했다.
“이미 5온의 공함을 깨달았습니다.”
“생사를 여의었소?”
“이미 생사를 여의었습니다.”
“이미 생사를 여의었다면 나에게 머리를 줄 수 있겠군.”
“몸도 내 것이 아니거늘 어찌 머리를 아끼겠습니까?”
왕이 즉시 칼을 휘둘러서 존자의 머리를 끊으니,
흰 젖[白乳]이 몇 척이나 치솟았고,
왕의 오른팔도 땅에 떨어졌다가7일 만에 죽었다.
태자 광수光首가 탄식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재앙을 부르셨단 말인가?”
이때 어떤 상백산象白山 선인이 인과에 깊이 밝아서 즉시 광수에게
전생의 인연을 자세히 설명해 줌으로써 그가 지녔던 의심의 그물을 풀게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성주집聖冑集․보림전寶林傳에 기재되어 있다.]
그리하여 사자존자의 시체를 거두어 탑을 세우게 하였으니,
이때가 위魏의 제왕齊王 20년 기묘년己卯年이었다.
[고귀향공高貴鄕公 6년으로 써야 한다.
제齊나라 왕인 방芳은 왕에 오른 지 모두 15년 만에 폐위되었다.
정종기에서는 “보림전에는 기묘己卯라고 잘못 기재되어 있으니,
제왕齊王 방芳은 정묘년丁卯年이다. 그러면 이것은 곧 8년이 된다”라고 하였다.]
사자 존자가 바사사다에게 심법心法을 부촉할 때 옷을 신표信標로 하여 정통 후계자로 삼았고,
이외에 방계로 나온 달마달 이하 4세에 이르는 22인의 조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