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은행잎이 삼키고 은행잎은 나를 삼켰다.
김귀영
퇴근이 늦었다. 서둘러 서류정리를 하고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저녁 9시 30분이다
생활복지사 선생님이 결혼을 하고 몸이 많이 아파 나오지 않고 시니어 어르신들도 코로나 19로 당분간 나오지 않으시니 서류하랴 밥하랴 아이들 프로그램 챙기랴 얼이 나간 것 같아 하루의 일상들이 빼곡하게 지그재그로 놓여 표고버섯이 달라붙은 참나무 같다.
아침부터 오려던 비가 하루종일 오락가락 하더니 여름에 보던 비를 11월 허리를 지나 만나게 되었다. 분주한 하루 조금은 들뜬 기분이다. 비가 와서 그런가 보다. 비가 많이 오지도 않고 우산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하루를 질척대며 흐린 늦가을 하늘에 나를 들춘다. 가을이 지는 자리에 바람이 약한 듯 몸을 구부리고 보슬비도 아닌 이슬비가 아닌 비가 오전 내 맘을 뒤 흔들어 놓았으나 일에 치여 창을 통한 여유를 엿보지 못하고 밤이 되었다.
걸을까 말까 망성이다 앞치마에 있는 차 키를 만지작 거리며 문을 닫는다. 바람과 비와 은행잎이 나의 밤시간에 마중을 나와 버선발로 서있다. 눈이 마주쳤다. 비는 나를 유혹하고 가슴설렘에 은행잎이 하롱하롱 떨어지고 매달려 춤을 추니 집에 갈 수가 없다. 나는 문화의 거리 은행나무 거리로 좌회전을 한다. 미쳤다. 은행잎이 바람에 얼시구 절시구 비에 몸을 흐느적거리다 아스팔트 길 바닥에 뒹군다. 수북이 길 양옆에 은행잎 융단을 깔았다. 홀 딱 벗은 은행나무와 벗겨지기 시작한 은행나무가 한데 엉겨 나풀나풀 춤을 춘다.
은행잎은 비에 젖어 바닥에 찰싹 붙어 옴싹달싹 못한채 촉촉한 느낌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들었다. 셀카놀이를 한다. 남들이 미쳤다고 한다고 해도 어쩔수 없지만 아무도 없다. 코로나 19 때문인지 카페도 가게도 닫았다. 나처럼 미친여자 2명이 나타나 은행잎을 밟는다. 가다, 서성이다를 반복하며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노오란 은행잎에 푹 빠져 영혼을 팔았다.
잠시 거리를 기웃거리다 음악소리에 끌리어 카페안으로 들어가 분위기를 살핀다. 남자 하나는 커피를 마시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한 남자는 지금은 사라져 가는 녹음테이프를 정리하고 있다. 아마 둘은 음악을 좀 아는 사람인가? 한쪽켠에는 LP판이 꽂혔고 음악은 째즈가 흘러 나오는데 곡명은 알 수 없다. 문닫는 시간을 물었다. 사장님 12시란다. 얼씨구나 밖으로 나와 짙은 노오란 색을 온통 카메라에 담고 나를 구겨 넣었다. 한옥글방이 네온 사인에 휩사여 아름다운 처마와 기와를 뽐내고 있다. 가로등 불빛 색깔에 거리와 은행잎 색깔이 바뀌니 나도 문화의 거리의 움직이는 조형물이 되고 오롯이 혼자만의 방랑객이 되어 버렸다. 간간이 차만 지나가는데 혼자 노는 나에게 무순 말을 하던지 상관이 없다. 밤에 미쳐가는 것이 좋다.
아침 덕수궁 돌담길을 영상에서 보고 돌담길을 몸으로 느끼고 싶었는데 오늘밤 문화의 거리는 내것이 되었다. 켜켜이 쌓여가는 은행잎이 나의 시선을 앗아간다.
문을 여는 풍경소리에 어색한 여인이 남자들 틈에 끼여 노란색에 어울리는 오미자차를 시켰다. 그 옛날 비가 오면 비에 관한 음악을 들으며 청승을 떨었던 기억을 더듬거린다.
가끔 동숭로 찻집에 홀로 앉아 티슈에 끄적거리던 그날을 소리없이 주워 삼킨다. 은행잎 때문이다. 무엇이 그리 바빠 창문으로 비치는 가을도 보지 못하는가!
혼자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긁적거리는 오늘 같은 날은 몇 년만에 가지는 것인가?
바람앞에 떨고 있는 은행나무아래 볼펜대신 자판을 두드리는 그녀가 되어 보는 것 청승스럽다고 말을 해도 좋다. 밤이 익어 간다. 경쾌한 종류를 알수 없는 음악소리가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다. 그져 생각없이 턱을 고이고 감상에 젖는다. 비 때문이다. 음악 때문이다. 오미자의 색이 바래 은행잎이 되었다. 은행잎이 하얀 눈과 겹쳐 그곳에 서있다. 밤에 비치는 은행잎이 물을 따라 흐르다 걸렸다.
그때는 참 소녀같기도 하고 아가씨같기도 했는데 돈은 없어도 거리를 걷는 가치에 묻혀 헤죽거리다 성균관대 앞에서 커피를 시키고 떠들어 대던 아가씨들은 아이들 엄마가 되었다.
베이스키타소리에 드럼이 박자를 넣고 소리가 머물다 지는 소용돌이 속에 내가 묻힌다.
가기 싫은 이 앞에 서서 보내야 하는 은행잎 속을 거닐다
내속을 물속에 훤히 비치고 떠내려 간다.
오미자의 향기도 마스크안에 숨쉬다 벌떡거린다.
바람도 자자드는 밤인가! 비가 오기 위한 전주곡인가!
벤치에 앉아 우둑커니 노오란 국화꽃에 어깨를 기댄 은행잎은 비를 가린다.
집에도 가지 못하는 멍한 사람들속에 앉아 회상속에 자화상을 꺼낸다.
들켜버린 듯 홀린 듯 들어와 버린 카페 블루노트안에 옐로우 그림을 그린다.
바람아 불어라 은행잎아 떨어져라.
가랑비야 내리거라 유리창에 방울방울 머물다 또르륵 거리는 상념을 삼켜라
살랑살랑 엉덩이를 쉴룩거리는 밤의 거리
텅비어 아무도 없다.
가끔은 퇴근길 차를 마시러 들러야 겠다.
아직은 마지막 잎새가 되지 않기 위해
그 거리에서 서성거리다 짓밟힌 은행잎이어도 좋다.
기타줄을 타고 노는 광대여도 좋다.
커피안에 녹아 있는 얼음이어도 좋다.
슬금슬금 들어오는 고양이 걸음이어도 좋다.
내가 바람이 되어 은행잎을 떨어뜨린다 해도 좋다.
모두가 밤을 닫고 은행잎을 그리다가 너덜너덜 되어진다 해도 좋다.
한 번 오는 11월 가을에 바람이 불어 바람이 났다.
하늘에서 떨어져 한 번도 밟히지 않는 것
밤을 여행하는 내가 좋아서다.
은행잎 핑계대고 내가 쉬어 간다.
대롱대롱 걸어진 나뭇가지에 손을 내밀다 부끄러움과 마주한다.
바람에 나는 날지 못하고 스카프만 날아든다.
나는 오늘 노오랗게 물들어 비에 젖은 초상화를 바람에 널었다.
신맛,단맛,쓴맛,맵고 짠맛,오미자에 달여넣은 설탕이 되었다.
나를 태운 골목가로등 은행잎속에 쭈그리고 앉아
안경너머 세상을 기웃거리다 마스크를 벗는다.
겨울이 오는데 한 마리 파리는 찻잔을 욕심내고 한 마리 모기는 내 피를 욕심낸다.
재즈 피아노소리에 취하다 노트북을 닫고 빼빼마른 남자에게 음악을 묻고 메모지에 제목을 적어 달라 했다.
오놀밤 째즈에 빠져 은행잎 융단위를 걸어야 겠다.
밤의 거리에 비가 내린다.
첫댓글 "하루의 일상들이 빼곡하게 지그재그로 놓여 표고버섯이 달라붙은 참나무 같다."
"바람과 비와 은행잎이 나의 밤시간에 마중을 나와 버선발로 서있다. 눈이 마주쳤다. 비는 나를 유혹하고 가슴설렘에 은행잎이 하롱하롱 떨어지고 매달려 춤을 추니 집에 갈 수가 없다. "
어떻게 이런 글들이 나올 수 있을까? 같은 상황을 경험하여도, 울리는 소리가 다르다. 하나님 창조의 신비가 우리의 다양성에 있다. 그 다양성을 글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주어진 삶을 즐기는 삶의 흔적이 저에게도 새로운 발걸음을 걷도록 용기를 줍니다.
답글 감사합니다. 목사님께서도 만만치 않은 감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쁜 상황에도 뭔가를 위한 바지런함이 글 속에 묻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