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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시인의 시「얼음의 죽음」
생명의 근원은 물이며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다. 물은 평시에 액체 상태로 존재하지만 기온에 따라 상태를 바꾸며, 기체인 수증기로도 고체인 얼음으로도 존재한다.
지금은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어 여름에 얼음을 사용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지만 필자가 어릴 적에는 여름철에 얼음을 보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내 고향 남한강 상류 금수산에는 여름철에 얼음이 나는 얼음골이 있었다. 가장 더운 중복 때가 되면 흙속에 얼음이 가장 많이 생기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차츰 없어진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얼음골을 올라가지만 그 근처에만 가면 공기가 서늘하고 땀이 싹 가신다. 얼음덩이를 캐내어 새끼줄로 묶어서 십 오리를 걸어 집에 까지 오면 얼음이 절반은 녹아 없어진다. 나머지 얼음을 녹여 설탕이 없어 사카린을 넣어 마시던 유년의 그 시원하고 달콤하던 맛은 지금껏 생생하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것은 사물이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물 입장에서 본 것이고 얼음입장에서 보면 소멸되는 것이다. 다만 생명이 있던 유기물의 순환이 근본이 바뀌어 지는 것임에 비해 무기물인 물의 순환은 근본은 그대로 남아있는 차이는 있다. 어쨌든 얼음이 녹는 현상을 ‘얼음의 죽음’ 으로 바라보는 마경덕 시인의 재미있는 시가 있다.
노점상 여자가 와르르 얼음포대를 쏟는다
갈치 고등어 상자에 수북한 얼음의 각이 날카롭다
아가미가 싱싱한 얼음들, 하지만 파장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사라지는 얼음의 몸, 한낮의 열기에 조금씩 각이 뭉툭해진다
질척해진 물의 눈동자들
길바닥으로 쏟아지는 땡볕에 고등어 눈동자도 함께 풀린다
얼음은 얼음끼리 뭉쳐야 사는 법
얼음공장에서 냉기로 꽁꽁 다진 물의 결심이 풀리는 시간,
한 몸으로 들러붙자는 약속마저 몽롱하다
서서히 조직이 와해되고 체념이 늘어난다
핏물처럼 고이는 물의 사체들
달려드는 파리 떼에 모기향이 향불처럼 타오르고
노점상은 파리채를 휘두른다
떨이로 남은 고등어, 갈치 곁에 누워버린
비리고 탁한 물
이곳에서 살아나간 얼음은 아직 없었다
노점상은 죽은 생선에 자꾸 죽은 물을 끼얹는다
-「얼음의 죽음」전문
시의 내용은 단순하고 독자와 소통이 잘 되도록 비교적 쉽게 쓰여 졌다. 고등어 갈치 등을 파는 노점상에서 생선을 싱싱하게 유지하기 위해 주인 여자는 얼음을 쏟아 붓는다. 얼음이 서서히 녹으면서 물이 생기고, 물은 생선 비린내를 풍기면서 탁해진다. 노점상 주인은 파리를 쫓기 위해 모기향을 피우고 파리채를 휘두르며 아직 찬기가 남아 있는 물을 다시 생선에 끼얹는다.
통상적으로 생선가게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장면이지만, 시인의 시선은 날카롭고 관찰력은 예리하다. ‘얼음의 아가미가 싱싱하고’ ‘물의 눈동자가 질퍽해진다’ ‘떨이로 남은 고등어, 갈치 곁에 누워버린 비리고 탁한 물’ 등과 같이 얼음의 상태 묘사를 생선에 비유하여 표현함으로서 생선과 얼음의 관계를 암시해준다. ‘얼음 공장에서 냉기로 꽁꽁 다진 물의 결심이 풀리고, 한 몸으로 들러붙자는 약속마저 몽롱해진다’처럼 얼음이 녹는 현상을 견고하던 어떤 조직이 서서히 와해되는 것에 비유한 것 또한 시의 묘미를 돋운다.
시의 백미는 ‘이곳에서 살아나간 얼음은 아직 없었다’ 이다. 이 시에서 얼음은 두 번의 죽음을 맞는다. ‘핏물처럼 고이는 물의 시체들’에서 보듯이 첫째 죽음은 얼음이 물이 되는 ‘얼음의 죽음’이고, 그 다음 죽음은 물이 생선에서 울어 나온 비리고 탁한 성분이 섞이면서 죽어가는 ‘물의 죽음’이다.
‘노점상은 죽은 생선에 자꾸 죽은 물을 끼얹는다’ 로 시는 끝맺는다. 시인은 ‘생선’과 ‘얼음’의 상태를 통해서 노점상 주인의 고단하고 녹녹하지 않은 생활상을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 마치 화가 고흐가 그림 ‘농부의 구두’를 통해 ‘농부의 고단한 삶’을 은유로 드러내듯이.
어쩌면 우리들의 삶 자체가 ‘죽은 생선에 자꾸 죽은 물을 끼얹는 것’ 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썩어 없어질 부 명예 권력 같은 것(죽은 생선)을 얻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우를 범(죽은 물을 끼얹는)하기도 한다. 요즘 치러지는 선거판을 보면서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라는 성서의 말씀(요한 6.27)을 생각나게 한다.
마경덕 시인은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신발론』『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이 있다. 이 시는 『사물의 입』(2016. 7월)에 실린 시다.
(이 규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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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인은 보통사람과는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관찰하며 그 속에 인간의 삶을 투영시키는 사유가 예리하고 날카로워야 좋은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물론 비유적 언어인 은유나 상징은 말할 것도 없고 풍자 해학 등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언어로 독자의 가슴을 울리거나 시원하게 뚫어주어야 한다. 상상력으로 언어의 집을 짓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