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동 시--최치원
東詩(동시)
堯山堂外紀。備記乙支文德事。且載其與隋將詩曰。神策究天文。妙算窮地理。戰勝功旣高。知足願云止。其詞近古。
《요산당위기》에 을지문덕의 일을 갖추어 기록하였다. 또 그가 수나라 장수에게 준 시에 “신묘한 계책은 천문을 궁구하였고, 신묘한 계산은 지리를 다하였다. 싸워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라 그치기를 원하노라.”했는데 시의 말이 고시에 가깝다.
堯山堂外紀曰。高麗使過海有詩云。沙鳥浮還沒。山雲斷復連。時賈鳥詐爲梢人。聯下句曰。棹穿波底月。船壓水中天。麗使歎服云。所謂麗使未知何人。而俗傳崔致遠所作者恐誤。但非麗使。似是新羅時也。
《요산당외기》에 말하기를 고려의 사신이 바다를 건너다 지은 시가 있는데 “물새는 떠올랐다 다시 사라지고, 산 구름은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네.”하였다. 그때 가조(도)가 사공으로 변장하고 있었는데, 聯句(시의 댓구)를 지어 “노는 물결 아래 달을 뚫고, 배는 물속의 하늘을 누른다.”하니 고려의 사신이 탄복하였다. 이른바 ‘麗使’는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나 세상에서는 최치원이 지은 것이라 하나, 아마도 잘못일 것이다. 다만 고려의 사신이 아니라 이는 신라 때인 듯하다.
智異山。有一老髡。於山石窟中。得異書累帙。其中有崔致遠所書詩一帖十六首。今逸其半。求禮倅閔君大倫得之以贈余。見其筆跡。則眞致遠筆。而詩亦奇古。其爲致遠所作無疑。甚可珍也。
지리산에 한 늙은 스님이 있었다. 산의 석굴 안에서 이상한 글 여러 질을 얻었는데 그 안에 초치원이 글과 시 1첩 16수가 있었다. 지금 그 반을 잃어버렸다. 구례 쉬(졸)민군 대륜이 그것을 얻어 나에게 주었다. 그 필적을 보니 곧 참으로 최치원의 글씨로 시가 또한 기이하고 예스러우며 고아하여 최치원이 지었다 하는 것을 의심할 것이 없었다. 매우 보배로 여길만하다.
詩曰。
시에
東國花開洞。동국 화개동은
壺中別有天。항아리 속의 별천지
仙人推玉枕。선인이 옥 베개 밀어
身世欹千年。몸과 세상은 어느덧 천년.
萬壑雷聲起。모든 골짜기 우레 소리 일어
千峯雨色新。봉우리마다 비에 색이 새롭다.
山僧忘歲月。산중의 스님은 세월을 잊었는데
唯記葉間春。오직 나뭇잎 사이로만 봄을 기억할 뿐이다.
雨餘多竹色。비온 뒤 대나무 잎 더욱 푸르러
移坐白雲開。옮겨 앉으니 휜 구름이 걷히네.
寂寂因忘我。적막함은 나를 잊게 하고
松風枕上來。소나무 사이 바람은 베게머리로 불어온다.
春來花滿地。봄이 오니 꽃은 온 땅에 가득하고
秋去葉飛天。가을이 가니 나뭇잎이 하늘을 나른다.
至道離文字。도에 이르면 문자를 떠나는 법
元來在目前。원래 눈앞에 있던 것을
澗月初生處。산골 물 가 달이 처음 뜨는 곳
松風不動時。솔바람 일지 않을 때
子規聲入耳。소쩍새 우는 소리 귀에 들리니
幽興自應知。그윽한 흥취 스스로 일어났다.
擬說林泉興。산림 속 흥취 말로는 들었지만
何人識此機。누가 이를 알겠는가
無心見月色。무심히 달빛을 보고
默默坐忘歸。말없이 앉아 돌아갈 것을 잊었다.
密旨何勞舌。비밀한 가르침 어찌 혀를 수고롭게 하리오
江澄月影通。맑은 강물에 달그림자 비친다.
長風生萬壑。긴 바람 골짜기에서 일어나니
赤葉秋山空。붉은 단풍 가을 산을 비운다.
松上靑蘿結。소나무 위에는 푸른 댕댕이 얽히고
澗中流白月。산골 물에 밝은 달이 흐른다.
石泉吼一聲。바위틈의 샘은 요란한 소리내고
萬壑多飛雪。모든 골짜기에는 눈발이 날린다.
伽倻山石負庵巖石上。有刻詩曰。
가야산 석부암 바위 위에 시를 새긴 것이 있는데
新羅末裔愛丘山。신라 말 사람이 언덕과 산을 사랑하여
深鎖雲林不出寰。깊이 숲 속에 숨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三見仙桃花結子。세 번이나 선도가 꽃피고 열매 맺는 것 보았으니
笑他人老百年間。다른 사람이 백년 사이에 늙는 것이 우습다
傳者疑爲崔致遠之作。然詩格不近似矣。末裔蓋猶言末世也。
전하는 사람들은 최치원이 지은 것이라 의심하였다. 그러나 시의 격이 근사하지 않다. ‘末裔’는 ‘末世’라는 말과 같다.
(이수광, 《지봉류설》권13, 문장부6, 동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