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루니통신 9/190516]스쿼트(squat)를 아시겠지요?
어제는 무척 슬픈 날이었다. 호주에 유학 중인 아들내외가 3년 반만에 귀국하여 한 달이 넘게 우리집에 있다가 ‘귀국’했기 때문이다. 아들네는 둘 다 3년의 공부 끝에 간호사가 되어 이제 영주권을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아들은 우리 나이로 31살, 애교덩어리 며느리는 27살이다. ‘다 됐는데, 뭐가 그리 슬퍼서 육십이 넘은 놈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펑펑 울어대냐?’고 하면 사실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가슴이 너무 먹먹하여 줄줄줄 흐르는 눈물을 도저히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대체 자식이 뭔지...” 여러 번 중얼거렸다. 제법 담대한 아내도 운전을 하면서 울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새벽 5시 55분, 브리즈번공항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10시간만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걸까(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지지만)? 결코 감수성(感受性)이 풍부해서가 아니다. 두 애들이 각자 우리에게 남기고 간 편지 구절구절마다 그들의 진심(眞心)이 오롯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항상 나의 지론(持論)은 ‘언제든 어디서나 진심은 통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진심조차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이건 정말 너무 삭막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남기고 간 선물(膳物)과 진심 어린 부탁이 이 새벽, 또 나를 울린다.
먼저 아들의 얘기이다. 4월 12일, 28일만의 해외여행의 마중을 외국에 사는 아들네가 인천공항으로 나오는 일은 생각도 못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런데 아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몸무게가 무려 13kg나 빠진 데다가(여행 중 5kg가 빠졌고 최근 7~8kg 빠졌다), 여행 중 생긴 질환(요실금과 변비) 등으로 기력(氣力)이 완전히 엉망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음날부터 당장 근력(筋力)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며 나를 들들들 볶기 시작했다. 아들은 집요했다. 솔직히 하체 근육운동의 모든 것이라 할 ‘스쿼트(squat)’라는 단어도 처음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웅크린 자세’라 한다. 두 발을 벌린 채 똑바로 서서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엉덩이를 바닥에 닿을 정도로 시나브로 주저앉을 자세를 취했다 서서히 본디 자세로 돌아오는 운동이다. 허리가 C자가 되어야 한다. 처음엔 5회도 힘들었는데, 이제 20회는 거뜬히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팔굽혀 펴기를 그 횟수만큼 하라는 것이다. 흔히 아는 푸샵(push up)과는 조금 다른 자세다. 먼저 두 팔을 머리 앞에서 짚는 게 아니고 가슴께 아래에 짚고 허리를 일자(一字)로 만들어 굽혔다폈다를 반복하는데, 스쿼트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이 두 가지를 매일 20회 정도씩 하고, 주말에는 3배 내지 5배를 더 하라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엔 각각 60회를 했으니 장족(長足)의 발전을 한 셈이다.
게다가 아파트에서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무조건 걸어다니라는 것이다. 12층까지 한번도 걸어다닌 적이 없는데, 요즘에는 매일 서너 차례 걸어다닌다. 생각지 못한 일이다. 그동안 건강(健康) 관리를 새벽 배드민턴 서너 게임을 수년째 해오는 걸로 대신해 왔다. 혈압약 먹은 지 15년 전쯤, 당뇨약 1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큰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의 상태를 보니 그게 아니고 거의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던 듯하다. 악력(握力)도 형편없어져 페트병 뚜껑도 못딸 정도가 되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보는, 만나는 사람마다 ‘왜 그렇게 살이 빠졌냐?’는 말에 대인(對人) 기피증까지 생길 정도였으니.
아무튼 훈련(訓練)은 날마다 이어졌다. 혹독한 트레이너(trainer)를 만난 셈이다. 아부지 생각하고 하는데, 무조건 화를 내거나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어거지로 며칠 하다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니, 이제 작정하고 영어로 된 논문 등을 몽땅 인쇄해 오더니 형광펜으로 줄을 쳐가며 30여분간 강의를 한다. 이런 방증(傍證)자료에 약한 나를 공략한 것이다. 성인 몸무게의 절반을 차지하는 근육(筋肉)이 체온의 40%를 생산한다며, 하체(下體) 근력운동이 필요한 이유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근력이 떨어지고,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가속도가 붙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추면 안된다고 논문에 쓰여 있다. 구부정한 허리도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라며 감당이 안될 정도로 여러 증거를 들이대며 마구 몰아붙었다. 아내는 그런 아들이 못내 흐뭇한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2주 정도 억지로 했는데도 ‘효과(效果)’가 확실히 있는 것같다. 또한 아파트 계단 걷기도 걸을수록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하여, 아예 지하 2층부터 21층까지를 두 번 왕복하는 ‘무리’까지 하여 아내와 아들을 기쁘게 했다. 아니, 나와 내 건강을 위한 일인데, 가족까지 기쁘게 하니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니고 무엇인가? 편지에는 날마다 할 것을 약속(約束)해 달라는 것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자고 있을 아들에게 “Of course. I promise you. I’ll do my best, everyday. Don’t worry, be happy. I love you. fighting, my lovely son!’ 영어로 카톡문자를 보냈다.
아들의 또하나의 선물은 주차(parking) 연습. 면허를 2001년에 땄으니 18년이나 되었지만 주차를 당최 할 줄 모른다. 아니 배우려고 해본 적이 없었다. 애시당초 ‘운전(driving)’은 나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이유는 단 한가지, 오직 ‘그넘의 술’ 때문이다. 직장생활 37년 동안 거의 ‘노상술(everyday alchol)’이었으니, 운전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었던가. 지금도 아는 친구들이 내가 운전할 줄 안다면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 진짜 면허가 있냐’며 놀려댄다. 나하고 운전이 전혀 매치(match)가 안되는 모양이다. 하여튼, 고속도로 등의 주행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주차는 영 자신이 없어 매번 아내를 몹시 ‘귀찮게’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다. 고향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 계획인데, 자동차가 없으면 너무 불편할 것같아 사기(詐欺)를 당하면서 중고차를 샀다. 아들이 본격적으로 주차연습을 시키기 시작했다. 역시 엄청 친절하고 디테일하게. 명강사(名講師)가 따로 없었다. 사이드 미러(side mirror) 보는 법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매일 10여회씩 지하주차장에서 연습한 효과가 있었다. 심지어 휴대폰에 ‘주차게임’ 앱을 깔아놓고 연습을 강요했다. 다행히 아주 나쁜 머리는 아니었는지, 어지간하면 주차할 수 있게 되었다. 차와 차 사이가 빈 공간보다 차라리 주차하기 쉽다는 것도 알았다. 휴우- 얼마나 다행인가? 아버지 모시고 병원을 갔는데 주차를 하지 못해 끙끙대는 아들을 보면 노부(老父)는 또 얼마나 걱정을 해댈 것인가? 1주일여 배웠는데, 지금도 주차하는 중에 다른 차가 가까이 오면 당황(panic)하여 어쩔 줄 모른다. 남을 배려하는 버릇에 우왕좌왕, 이러다 딱 접촉사고 내기 알맞아 은근히 걱정이다. 이제 ‘친절한 선생님’인 나의 아들도 옆에 없지 않은가.
또 하나, 기막히게 큰 선물이 있다. 해외생활하면서 요리를 배운 것인데, 어지간한 쉐프(chef) 뺨치게 잘 한다. 그 솜씨 자랑도 하고, 엄마 일손도 돕겠다고 주방을 며칠 독차지한 작품이 까나보나라, 김치찌개, 제육볶음, 미역국 등인데, 솔직히 몇 가지는 아내보다 나았고 맛있었다. 같이 공부하는 주제에 ‘어린’ 아내가 살림까지 하는 게 안쓰러워 배우기 시작한 게 ‘프로’가 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역시 내 아들? 흐흐. 정말 잘 되고, 좋은 일이다.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기가 민망할 정도의 솜씨였다. 아, 나도 저렇게 요리를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향에서 혼자 살아도 아내의 걱정을 덜어줄텐데.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체 근력을 키우는 운동 등 건강관리 요령과 어디서든 자신있게 주차하라는 마인드와 스킬을 심어준 주차(駐車) 지도 그리고 ‘나도 하는데 아부지도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아들은 이제 갔다. 언제쯤 또 만나 이번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벌써부터 이렇게 보고 싶은데, 지금 또 생각하니 눈물이 그렁그렁. 앞을 가린다. 아이고, 이 주책! 애교덩어리 며느리 이야기는 다음에 풀어보자.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한 오월 어느날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