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는 아빠를 기다려
박해달
선착장에서 아빠를 만나기로 했어
커다란 체리 나무에
체리가 열리기 시작했거든
태양이 체리의 붉은 심장을 핥기 전
새들이 부리로 그 심장을 쪼기 전
체리를 아빠 입에 넣어 주어야 해
빨간 구슬 같은 체리
마법의 묘약 같은 체리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체리를 따 주머니에 넣었어
햇살처럼 반짝이는 체리
아빠의 웃음처럼 따뜻한 체리
체리의 붉은 심장이 입술에 닿아
마법이 풀리면 아빠는
고래 등을 타고 단숨에 바다를 건너올 거야
기다릴게, 아빠
신월리 선착장에서
* 신월리 선착장 : 전남 무안군 운남면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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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뭘, 뭘
백창우
미르 녀석
오늘 기분이 영 그런가 보다
모과나무 잎이 바람에 찰랑
흔들리기만 해도
뭔 이상한 거라도 본 것처럼
짖어 댄다
"야, 조용히 해"
창문을 열고 냅다 소리치니
더 짖어 댄다
그 소리가
"뭘, 뭘, 뭘?" 하는 것도 같고
"왜? 왜? 왜?"하는 것도 같다
그림자 때문에 그런가?
그러고 보니 모과나무 그림자가
오늘따라 쫌 무섭긴 하다
큰 거인이 팔을 번쩍 들고
갑자기 확 달려들 것 같다
에구 자식 겁은 많아 가지고
괜히 나까지 무섭게,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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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때 온 아이
유희윤
새야 새야
왜 왔니?
우리 집에 왜 왔니?
잠자러 왔니?
도와주세요. 말도 못 하고 대문 앞에 쓰러진 아이, 파르르 떨며 슬픈 눈 둘 곳조차 모르던 조막만 한 아이야. 조금만 참아. 괜찮을 거야. 곧 나을 거야, 소독약과 연고가 상처 깊은 네 등 어루만져주고, 기운 차려, 기운 좀 차려. 맑은 종지 물과 좁쌀과 삶은 계란 노른자가 밤새도록 네 곁에 있었잖니. 아침이야, 해 떴어, 눈 좀 떠 봐. 눈 좀 떠 보라니까.
새야 새야
왜 왔니?
우리 집에 왜 왔니?
잠자러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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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능선
장철문
우리 마을 앞산 능선의 나무들은
겨울 하늘을 떠메고 가지
개미 행렬같이 줄지어 떠메고 가지
가고 또 가도 맨날 그 자리지만
쉬지 않고 떠메고 가지
박달내과 선생님이 그러는데,
창자가 음식을 저렇게 나른다지?
융모로 떠받쳐 나른다지?
겨우내 가도 맨날 그 자리지만,
봄에 도착하기만 하면
모든 나무에서 연두가 쏟아져 나오지
다른 바람과 꽃을 안고 도착하지
우리 마을 앞뒷산 능선의 나무들은
겨울 하늘을 가지런히 떠메고 가지
첫댓글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동시 마중이 동달보다 시들이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른을 위한 시라는 느낌?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