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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의 나날 원문보기 글쓴이: 람미
***간증: 1452. [역경의 열매] 정철 (1-15) 영어에 매달린 인생 여정, 하나님 뜻이 있었다
기독교는 합리적·이성적 선택… 영어 교재 7000여 교회서 사용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 펼쳐
정철영어성경학교(JEBS) 정철 이사장이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의 사무실 입구에서 JEBS를 소개하고 있다.
평생 영어를 가르치며 살아왔다. 이름 두 자로 명성도 얻었다. 내 이름만 보고 학생들이 몰려 왔고 이름만 듣고 영어 테이프를 샀다. 돈도 충분히 벌어봤다. 영어라면 한이 맺힌 한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일생을 살았으니 보람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20년 전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서 내 삶은 달라졌다. 한 길을 달려온 길에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영어선생 정철이 종교에 귀의했다’는 식으로 쉽게 넘겨짚지 말기 바란다. 한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는 데에는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 이유는 저마다 독특하며 귀하다. 나는 맹목적으로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 합리적 의심을 바탕으로 이성적인 질문을 던지며 답을 구했다. 그 결말은 하나님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평생 영어에 매달린 여정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독교인이 됐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 것도, 해외 오지에 선교를 떠난 것도 아니다. 하던 일을 여전히 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순서가 바뀌었다. 전에는 영어만 가르쳤다면 이제는 영어를 통해 하나님을 전한다. 그냥 영어선생이 아니라 영어성경 선생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다니던 교회에서 2007년 어린이들에게 영어로 성경을 가르친 게 계기가 돼 지금의 정철영어성경학교(JEBS)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JEBS에서 발간한 영어 교재를 전국 7000여 교회가 사용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 2년 전부터는 전국교회를 다니며 영어성경으로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요즘 교회를 다녀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생기 넘치는 교회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뭔가 으르렁거리는 신앙이 보여야 하는데 다들 맥이 풀렸다고나 할까.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은 공무원 같아 보일 때가 많다. 그래도 부흥하는 교회들은 특징이 있다.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열심히 찬양하고 말씀을 암송하며 그 메시지를 마음에 새긴다.
교회를 방문하면 믿음에 대해 말한다. 청중이 아이이든 어른이든 상관없다. 암송 구절 중 하나인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을 영어로 말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믿음의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He exists)과 그를 믿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이다. 분명한 믿음만 있으면 누구든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오늘의 세태는 악하다. 그래서 더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올해로 만 70세가 됐다. 지금 목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세계적 지도자 양성’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열심히 뛰는 인생을 살아보자.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 [역경의 열매] 정철 (1) 영어에 매달린 인생 여정, 하나님 뜻이 있었다
* [역경의 열매] 정철 (2) 교회 가니 "잃어버린 양"… 동물 취급 생각에 기분 나빠
* [역경의 열매] 정철 (3) 어릴 적부터 아픈 사람에게 손대면 신기하게 나아
* [역경의 열매] 정철 (4) 영어회화 안했으면 미아리고개 '정도령' 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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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1949년 강원도 춘천 출생. 경기중·고교 졸업. 1990년 정철어학원, 2010년 정철영어성경학교 설립. 현 정철연구소 대표, 정철영어성경학교 이사장. ‘대한민국 죽은 영어 살리기’ 등 100여권 저술.
***[역경의 열매] 정철 (2) 교회 가니 “잃어버린 양”… 동물 취급 생각에 기분 나빠
초등학생 때 춘천서 서울로 전학… 친할머니 일제 때 유명한 기독인
정철 이사장이 초등학생 때 부친 산소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앉아있다.
나는 1949년 2월 22일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1학기까지 춘천에 살았다. 아버지는 춘천사범학교 교사로 일하셨는데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그만두고 양복점을 하셨다. 춘천에서는 두 번째로 큰 양복점이었다.
학교에 입학하니 선생님들이 내게 반장을 시켰다. 4학년 때까지 줄곧 반장을 했는데 알고 보니 선생님들이 아버지의 제자들이었다. 체육 교사였던 부친은 손기정 선수와는 친구 사이로 마라톤 연습도 같이하셨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는지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곧잘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땐 체력장 시험에서 100m를 12초에 뛰었다.
양복점을 하시던 아버지는 당시 강원도체육회장도 맡고 있었다. 춘천에서 마라톤 경기가 있는 날엔 나를 선두 차에 태워주셨고 얼마쯤 가다가 내려주고 뛰게 하셨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때 서울 유학을 왔다. 아버지는 내가 경기중·고등학교와 서울 법대를 나와 법관이 되길 원하셨다.
서울에서는 가회동 이모 집에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던 이모의 자취방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근처 재동초등학교에 다녔다. 그해 가을 전국체전이 서울에 열렸다. 아버지는 강원도선수단을 이끌고 오셨다. 그런데 전국체전 개막식에 참석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전국체전 개막식 날 아침, 아버지는 내가 묵고 있던 이모 집에 들러 방을 한번 둘러보시고 안부를 물으셨다. 그리고는 저녁때 돌아오겠다며 가셨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쓰러지신 줄도 모르고 저녁까지 기다렸다. 언제 오시려나 싶어 골목 어귀에 쭈그려 앉아 한밤중까지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못했고 이튿날 사환이 찾아와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가자고 했다. 병원에 가니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의사는 아버지가 내장이 좋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머니는 1남 3녀를 키우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원망을 많이 하셨다. 운동선수라 해서 결혼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당시 46세로 한창 나이셨다.
나는 어릴 적 우리 집이 기독교 집안인 줄 모르고 자랐다. 어머니와 세 명의 누이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별다른 종교를 가진 적이 없었다. 고1 때인가 한번은 어머니를 따라 동네 교회 고등부에 몇 번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이 난생처음 보는 나를 지나치게 반기는 게 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빴다. 교회 사람들은 “잃어버린 양이 돌아왔다”고 하면서 나를 동물 취급했다. 노래만 불렀다 하면 예수님의 피가 어쩌니저쩌니하며 피 타령을 하는 것도 이상했다. 보는 것, 듣는 것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몇 번 가다 발길을 끊어버렸다.
나중에 어머니께 듣기로는 친할머니가 일제 강점기 때 유명한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최현숙 전도사라는 분으로, 당시 이름난 부흥사였던 김익두 목사와 함께 다니며 사역을 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1920년대엔 사회주의자들의 공격으로, 1940년대엔 일제의 탄압으로 고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어도 할머니 얘기일 뿐,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역경의 열매] 정철 (3) 어릴 적부터 아픈 사람에게 손대면 신기하게 나아
키 작은 열등감에 철학에 눈 돌려, 어머니가 원하던 의과대학 낙방…재수 핑계로 지리산 들어가 도 닦아
정철 이사장(앞줄 가운데)은 경기고 시절 학교 밴드부에서 활동하면서 트럼펫을 맡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작았다. 중학교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작은 키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자꾸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다 나중에는 열등감으로까지 발전됐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135㎝였고 2학년에 가니 150㎝였다. 그런데 그 후로는 잘 안 컸다. 1년에 1㎝ 정도 큰 것 같다. 키가 작아 반에서 출석번호 1번은 따놓고 살았다. 내 자리는 항상 교탁 앞자리였고 선생님들이 출석부를 휘두르면 항상 사정권에 들어왔다.
작은 키에서 시작한 열등감은 나를 철학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이 광대한 우주를 바라볼 때 그까짓 키 몇 센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음악에도 빠져서 한 달간 학교에 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철학 관련 책도 읽었다. 철학서 요약본들을 많이 봤다. 그러다 불교의 선을 시작했다. 불교 쪽 설법들이 마음에 들었던 탓이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생각해 요가 책도 읽었다. 현실 세계보다 공중에 뜬 얘기들이 더 끌렸던 것 같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 닦는 얘기들이었다.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많았다. 이렇게 나는 자꾸 이상한 철학세계로 빠져들었고, 참선 단전호흡 요가 등에 심취하며 본격적으로 도통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공부는 안 하고 이렇게 딴짓만 하고 있었으니 대학에 붙을 리도 없었다. 의과대학을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어머니가 의대를 가라고 해서 억지로 시험을 봤지만 별 흥미가 없었다. 어머니가 의대를 추천한 것은 내가 어릴 적부터 아픈 사람에게 손을 대면 신기하게 나았기 때문이다. 나도 신기했고 그 방면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무슨 배짱이 있어서 였는지 모르지만 대학에 떨어졌어도 크게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된 김에 산에 들어가 도나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집에서는 이미 천덕꾸러기로 살았다. 참선과 요가를 한답시고 보름씩 단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외아들이었던 내가 죽을까 봐 친척들까지 나를 말렸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지리산이었다. 집에는 절에 가서 대입 재수 공부를 하겠다 말하고 본격적인 입산수도를 시작한 것이다. 지리산은 도사들을 많이 배출한다고 해서 골랐다. 산속 암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전에 힘을 모으고 도를 닦았다. 암자에는 방 한 칸만 있었다. 밤이면 조금 무섭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주문을 외웠다.
자꾸 하다 보니 솜씨가 늘어서 내가 들어도 그럴듯하게 목탁까지 치면서 불경을 암송했다. 어느 날 내 독경소리를 들은 승려가 “목청이 좋다”며 절에 올라와 해보라고 시켰다. 녹음기가 없던 때였다. 그때부터 나는 사찰 행사 때마다 대웅전 옆방에서 독경을 하고 음식을 얻어 먹었다. 하지만 정작 도 닦는 공부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암자 주변엔 나처럼 수도한답시고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과 교제하면서 옛날 도사들이 공부하던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 고유 민속종교에 관한 여러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중흥시킬 수 있는 민족종교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역경의 열매] 정철 (4) 영어회화 안했으면 미아리고개 ‘정도령’ 될 뻔
우연히 친구 따라갔다 미국인 만나 며칠 만에 영어회화 책 통째로 외워…알아 듣지 못해 미군방송으로 공부
경기고 졸업앨범에 수록된 정철 이사장의 얼굴사진.
암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정기적인 식량 조달이다. 마침 떨어진 식량을 조달하러 서울에 왔다가 길에서 고교 동창생을 만났다. 친구가 영어회화 연습을 하러 미군 장교를 만나러 가는 길인데 함께 가 보겠냐고 했다. 구경이나 해 보자는 생각으로 따라갔다. 그때 친구를 따라가지 않고 그냥 산으로 향했더라면 지금쯤 미아리고개 밑에서 ‘정도령 철학관’ 같은 걸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난데없는 영어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존슨 대위라고 하는 노랑머리 미국인과 친구가 하는 대화를 듣게 됐다. 간단한 단어 몇 마디 외에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게다가 학창시절 나보다 영어를 못하던 녀석이 “너더러 미국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묻는 거야” “전공이 뭐냐고 하는데” 하며 통역까지 하는 걸 보면서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그래 두고 보자. 영어회화, 까짓것 일주일에 끝낸다’라고 다짐했다.
존슨 대위와 헤어진 뒤 서점으로 달려가 영어회화 책을 샀다. 며칠 동안 열심히 공부해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외웠다. 우리말을 보면 영어가 바로 튀어나올 정도로 외웠다. 웬만큼 자신이 붙자 친구에게 연락했다.
“야, 그 존슨 대위, 다시 한번 만나자”고 했더니 “열흘은 있어야 만난다”고 했다. 그사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각 회화 문구에 번호까지 붙여가며 외웠다. 그리고 딱 보름 만에 다시 존슨 대위를 만났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외웠던 회화 예문들을 쏟아냈다.
존슨 대위는 놀라워했다. 한마디도 못 하던 내가 어쩌고저쩌고 영어로 말을 하니 신기해하면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외웠던 말은 어떻게든 하겠는데 그가 하는 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차 싶었다. 말하는 것만 연습했지, 듣기 연습을 안 했다. 그의 말을 알아듣고 싶었다.
사람들은 미군방송(AFKN)을 들으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어서 라디오로 AFKN을 들었다. 1시간마다 5분 뉴스가 나왔고 6시와 10시에는 10분 뉴스를 방송했다. 뉴스를 듣기 시작했는데 ‘워싱턴’ ‘프레지던트’ 정도 단어 몇 마디 외에는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녹음기로 뉴스를 녹음해서 반복해 들으며 받아 적었다. 하지만 어떤 말은 100번을 들어도 안 들렸다.
나는 모르는 단어가 궁금해 영자신문을 찾았다. 해당 뉴스를 보면 단어가 나올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담은 기사 자체를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미군 태평양사령부가 발행하는 타블로이드판 신문인 ‘스타스 앤드 스트라이프스(stars and stripes)’를 구독하며 내용을 확인했다. 이런 식으로 1년 정도 지나자 AFKN 방송을 알아듣게 됐다. 할리우드 영화도 보러 다녔다. 역시 녹음기를 들고 가서 녹음을 해왔다. 종로 동대문 청량리 쪽에 미국영화 동시상영 극장이 있었다. 2개씩 3일간 상영하면 또 다른 영화로 바꿨다.
나는 매일 아침 극장으로 출근해 저녁까지 똑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봤다. 안 들리는 내용을 알기 위해 영화사까지 찾아가 대본을 구했다. 첫 대본은 영화 ‘애수(Waterloo Bridge)’였다. 비비언 리와 로버트 테일러가 주연한 전쟁 드라마였다. 못 알아들은 말을 대본으로 확인하니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눈물이 났다. 영화 대사 전체를 외웠다.
***[역경의 열매] 정철 (5) 나이 스물두 살에 ‘땜빵강사’로 학원가 입성
도사의 꿈 접고 영어 공부에 올인… 영자신문 읽으면서 번역도 연습, 새로운 학습법 고안해내며 공부
정철 이사장이 1978년 서울 망원동 자택 주변에서 아들 학영과 자전거를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일주일 정도면 끝날 줄 알고 시작한 영어 공부는 2년 이상 계속됐다. 지리산으로 돌아가 도를 계속 닦으려던 계획은 그렇게 미뤄졌다. 일주일만 영어회화를 공부해 친구에게서 받았던 수모를 되갚아주고 가려다가 발목이 잡힌 것이다. 나는 도사가 되려는 꿈을 잠시 접은 채 미친 듯이 영어 공부에 집중했다.
미군방송 라디오와 미국 영화로 듣기 연습을 하다가 영자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저 읽기만 한 게 아니라 몇 번 읽어본 뒤에는 보지 않고 기사를 써봤다. 영자신문의 기사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연습도 했다. 우리말 신문을 읽으며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새로운 영어공부 학습법까지 고안해내며 공부에 몰두했다.
미국 영화는 ‘애수’ 이후로도 몇 개의 영화 대본을 더 구해 통째로 암송했다. 서점에서 파는 게 아니어서 대본을 구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영화를 수입한 회사를 찾아가 담당자를 불러내 밥을 사거나 담배를 찔러주고 대본을 구했다. “영어공부를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읍소하면 대부분은 창고를 뒤져서 먼지가 쌓이고 누렇게 바랜 대본을 찾아다 줬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영어공부에 대한 욕구는 더 커졌다. 영어에 통달하는 원리가 있을 것 같아서 외국어학습에 관한 참고서적도 탐독했다. 열심히 하다보니 꽤 괜찮은 실력이 됐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영어공부 책으로 ‘영어정해’ ‘삼위일체’ 등이 유명했다. 나도 이 책들로 꽤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나중에 실제로 영어를 사용해보려고 하니 과거에 배웠던 잡다한 지식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40~50대가 된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성문기본영어’나 ‘성문종합영어’도 마찬가지다. 이 교재들의 특징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과거 입시 선생들이나 학원가에선 최고의 영어 교재로 성문영어 시리즈를 꼽았는데 그 이유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내용이 좋다기보다는 책이 어려워서 학생들이 혼자서 공부할 수 없고 학원에 와도 한 번 듣고는 잘 몰라서 몇 차례씩 재수강을 해야하니 학원 입장에서 좋은 책이라고 한 것이었다. 선생들이 영어 실력을 뽐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배운 영어 교재들은 영국이 식민지 주민들의 엉터리영어를 바로잡기 위해 만든 까다로운 문법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런 내용이 일본에 전해졌다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로 넘어온 것이다. 엄격한 규칙을 앞세운 영어의 육법전서 같은 책들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자동차 운전법을 가르치는 책에 자동차 부속에 관한 사항만 잔뜩 들어있는 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것들은 모두 접어두고 완전히 새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영어회화학원 원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갑자기 강사 자리가 비게 됐다며 한 달만 와서 강의를 해달라고 했다. 이른바 ‘땜빵 강사’였다.
나는 대학 졸업장도 없고 요즘으로 치면 무자격 강사였다. 하지만 당시는 영어를 조금만 해도 영어선생을 할 수 있던 때였다. 선뜻 해보겠다고 답했다. 내 나이 겨우 스물두 살이었다.
***[역경의 열매] 정철 (6) “재미없고 지루해요”… 5명 중 3명 반 옮겨
경험삼아 ‘노인과 바다’로 수업… 처음엔 교재가 재미없나 착각 강의법에 문제 있음 알고 고민
정철 이사장이 영어강사로 본격 활동하던 시절 서울의 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나는 땜빵 영어강사 제안을 받아들였다. 바쁜 일이 없었던 데다가 경험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초 독해’ 수업을 맡았는데, 교재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골랐다. 일주일 이상 밤을 새우며 나름 열심히 수업준비를 했다.
드디어 첫 시간. 교실에 들어가보니 아리따운 여대생 5명이 앉아 있었다. 학생들을 보자 내 가슴도 뛰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내가 선생인 줄 몰랐다. 청소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한 학생이 “선생님은 언제 오시느냐”고 물었다. “내가 선생이에요” 하자 학생들은 비슷한 연배의 나이 어린 선생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재빨리 응수했다.
“내가 겉보기보다는 나이가 많아요. 경력도 풍부하고요.” 허풍이었다.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 방식은 교재를 읽어가면서 문법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칠판에 예문도 잔뜩 써가면서 신나게 강의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그런데 사흘째부터 수강생 3명이 안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바쁜 일이 있나 보다 생각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앉아 있는 학생은 달랑 2명뿐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저… 혹시 나머지 세 학생은 무슨 일이 있나요.” “아, 그게요. 실은… 걔네들은 다른 반으로 옮겼어요.”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 왜요.” “그게요.… 강의가 재미없고 지루하대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왜 안 가고 계속 나와요?”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저… 우리까지 가면… 선생님이 너무 불쌍해질 것 같아서요. 그래서 우리 둘이 희생해서 남은 거예요. 그런데 기왕 말이 나왔으니 저희도 가면 안 될까요.”
깜짝 놀랐다. 나는 여기서 물러나면 정씨 가문의 자존심에 큰 오점을 남길 것 같았다. 그래서 정색하고 이렇게 말했다. “에이, 그렇게 재미가 없었으면 진작 말을 좀 해주지 그랬어요. 나는 재미있게 듣고 있는 줄 알았잖아요. 그러면 내가 이제부터 수업방법을 재미있게 바꿔 볼 테니까 일주일만 더 들어봐요. 그래도 재미없으면 내가 학원비를 환급해줄게요.”
일단 이렇게 큰소리를 쳐 놓고 학생들을 보냈다. 그런데 솔직히 고민됐다. ‘아니, 도대체 왜 내 강의가 재미가 없고 영양가도 없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재 때문인 것 같았다. ‘노인과 바다’는 솔직히 재미 없는 내용이었다. 줄거리를 간단히 얘기하면 그냥 한 노인이 배를 타고 계속 바다로 나갔다가 큰 고기를 잡아 돌아오던 중 상어를 만나 고기 살은 다 뜯기고 뼈만 남았다는 이야기였다. 중반까지는 정말 지루한 내용의 연속이었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왜 이렇게 재미없는 책을 택했을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있고 재미있고 짜릿한 러브 스토리도 많은데 왜 이걸 골랐을까 싶었다. 책장을 넘기며 다시 읽어봤다. 헤밍웨이의 문장은 참 좋았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나의 강의법이었다. 중·고교나 학원에 다닐 때 선생님들에게 배운 대로 가르친 것이다. 문장 하나를 써놓고 분석하면서 수식이 어쩌고저쩌고했으니 학생들이 실망한 것이다. 두 명의 학생도 비슷한 피드백을 줬다. 대학생이 돼 멋있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 왔는데, 고등학교 때 배운 식으로 영어를 대하니 싫다고 했다.
***[역경의 열매] 정철 (7) ‘땜빵 강사’ 6개월 만에 유명 강사… 수강생과 열애
학생 몰리자 학원서 “더 맡아달라”… 잉그리드 버그만과 닮은 아가씨 완전히 마음 빼앗겨 2년 뒤 결혼
정철 이사장이 1975년 서울 신문회관에서 부인 박경순씨와 결혼식을 치르고 있다.
학생들은 대학입시 공부 때 배운 것과 다른,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진짜 영어를 배우고 싶어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공부한 방법을 알려줘 볼까.’ 영어회화를 일주일 만에 끝낸다고 시작했던 공부, 지난 2년간 공부해온 내 방법을 한번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강의 방식은 중단했다. 나는 이 방법, 저 방법을 써가며 2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내가 영어를 공부한 얘기도 해주면서 공부의 노하우를 알려줬다. 우선 10분씩 강의한 뒤 반응을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확실히 반응이 있었다.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의 영어공부 스토리는 귀를 쫑긋하며 들었다. 나는 그 표정들을 확인하면서 더 열심히 가르쳤다.
우리 세 사람이 새로운 영어교수법 개발팀이 된 것 같은 형국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학생의 영어 머리가 열리기 시작했다. 귀가 열리고 입이 터지기 시작했다.
한 달만 하려고 했는데 그다음 달, 그다음 달로 이어졌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의실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떠났던 학생 세 명이 돌아온 것이다. 그 학생들을 보니 반가웠다. 이제야 뭔가 통하나 싶었다. 더 열심히 가르쳤다.
내 강의를 듣겠다는 학생들은 다달이 불어났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원장 선생님이 나를 붙들더니 “더 맡아 달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내가 공부한 방식으로 가르치는 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재미가 있었다. 만약 내가 영어 전공자였다면 아마 옛날 틀대로 계속 강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 혼자 공부하면서 터득한 방법으로 가르쳤다.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6개월 만에 일약 유명강사가 됐다. 땜빵 강사가 인기 강사가 된 것이다. 영어 선생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입산수도의 꿈은 점점 더 멀어져갔다. 하지만 훗날에 대비해 세속 세계에서도 훈련을 이어가자고 생각했다. 단전호흡과 참선 등은 빠뜨리지 않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참선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언젠가는 산에 들어가 도사가 되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운명을 바꾸는 한 사람을 만났다. 너무나 예쁜 아가씨였다. 내가 가르치는 반의 학생이었는데,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의 여주인공인 잉그리드 버그만과 닮았을 정도로 예뻤다. 그런 그녀가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강의를 듣다가 내가 좀 웃기는 소리라도 하면 천진한 얼굴로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하루는 수업 후에 그녀가 질문할 것이 있다며 찾아왔다. 나는 열심히 가르쳐 줬다.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가까워져 2년 뒤 결혼하게 됐다.
결혼하면서 입산수도의 꿈은 영영 접게 됐다. 입산은 못 했지만 생활 속에서라도 관심을 이어가기 위해 관련 공부 모임에 참여했다. 각종 산기도와 하늘 땅, 미륵불을 섬기는 제사도 열심히 지냈다.
***[역경의 열매] 정철 (8) ‘정철 카세트’로 대박… ‘엄청난 세금’으로 쪽박
‘교실 없는 학원’ 아이디어… 사무실 내고 회원제로 운영, 선불제로 미수금·재고 없어
정철 이사장(앞줄 가운데)이 1980년 서울 종각지하상가에 정철 카세트 매장인 ‘영어회화의 집’을 오픈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결혼과 함께 본격적인 학원 강사로 나섰다. 강의마다 인기가 많아서 개강 전에 모두 마감되곤 했다. 듣겠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자리가 없었다. 학생들은 당시 교탁 위에 녹음기를 잔뜩 올려놓곤 했다. “이게 뭐 하는 거냐”고 물으니 “선생님 강의를 녹음해 집에 가서 다시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어떤 학생은 그 녹음테이프를 미국에 있는 사촌형에게 보낸다고 했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교실 없는 학원을 해 보면 어떨까.’ 내 강의를 녹음해서 팔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바로 ‘정철 카세트’였다.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강의를 녹음해 카세트테이프로 제작해 팔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979년 12월 서울 종로2가에 조그만 사무실을 내고 신문에 3단 12㎝짜리 손바닥만 한 광고를 냈다. 제목은 이랬다. ‘유창한 영어회화는 무턱대고 연습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첫날 하루에 600통을 받았다. 온 가족이 총동원돼 전화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급하다며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
당장 종로 YMCA 건물에 큼직한 사무실을 냈다. 낱개 테이프를 팔아서는 일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회원 모집이었다. 회원제로 운영하면서 6개월에 5만원을 받았다. 6개월 치 회비를 입금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테이프와 소책자를 보냈다.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나중에 친구인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가 놀러 와서 “야, 너 갑자기 재벌 됐다. 너는 경영학적으로 귀재”라며 치켜세웠다. 당시는 물건을 먼저 주고 할부로 돈을 나중에 받는 시스템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돈부터 받아 놓고 물건은 나중에 보냈다. 완전히 거꾸로였다. 이렇게 하니 미수금도 발생하지 않았고 불필요한 재고도 없었다. 당시 종각지하상가가 문을 열었는데 거기에 매장까지 냈다. 나는 강의를 녹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83년 매출 목표액이 100억원이었으니 지금 돈 가치로 환산하면 엄청날 것이다. 테이프에 강의내용을 녹음해 회원제로 운영하는 시스템은 초유의 일이었다. 내 강의가 재미있어서 더 듣고 싶은데 테이프가 빨리 안 나온다고 항의 전화도 많이 왔다.
83년 6월이었다. 난데없이 회사에 국세청 사찰반이 들이닥쳐 모든 장부를 가져갔다. 며칠간 조사를 하는 듯하더니 엄청난 세금을 부과했다. 총 30억원이었다. 너무 큰 액수였다. 모든 자금을 다 동원해도 세금을 내기에는 턱도 없었다. 세금을 못 내자 압류가 들어왔고, 1년 남짓 버티다가 결국 부도가 났다. 84년이었다. 나중 얘기지만, 이 세금 건은 10년간 행정소송 끝에 93년 12월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이미 망해버린 뒤였다.
나는 왜 내가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이 지경이 되다니.’ 회의와 좌절감이 몰려왔다. 열심히 공들여 모시던 하늘과 땅, 일월성신, 미륵불 등도 무력한 허상으로 느껴졌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 반평생 이어졌던 민속종교와의 인연이 끊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할렐루야’다. 나는 다시 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시작했다.
***[역경의 열매] 정철 (9) 하나님과 ‘통화’하려 ‘기지국’ 나가기로 결심
정철 이사장이 큰 아들 학영씨를 안고 있다. 정 이사장은 나중에 학영씨와 종교토론을 하면서 기독교에 입문했다.
1990년 서울 강남에 다시 학원을 세웠다. 친지들이 앞다퉈 도와줬다. 역경을 통해 더욱 강해진 교수법으로 학원은 번창했다. 95년부터는 어린이 영어학원도 만들었다. 원하는 학원에 프로그램을 나눠주다 보니 전국에 300개 이상의 체인 학원이 생겼다.
92년에 중학교 1학년과 3학년 두 아들을 영국으로 유학 보냈다. 두 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 서양 색시는 데려오지 말 것. 둘째, 서양신을 믿지 말 것.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큰아들 학영이를 한국인 선배가 런던의 한인교회로 인도했다. 학영이는 첫번째 수련회에서 엄청난 성령 체험을 하고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됐다. 나는 이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터졌고 두 아들은 군에 가기 위해 집에 왔다. 학영이는 기독교 신앙에 깊이 빠진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영이가 계속 신체검사에 불합격했다. 그러다 1년 반 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갔다. 그동안 나는 매일 저녁 식사 후 학영이와 종교토론을 벌였다. 학영이는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를 역설했고 나는 “다 쓸데없는 짓”이라며 반박했다.
예를 들면 이랬다. 학영이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죄인이 됐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영생을 누리지 못하게 됐다”고 하면 나는 “야, 하나님도 참 쩨쩨하시지, 그까짓 과일 한두 개 따먹었다고 뭘 그렇게 큰 벌을 내리신다냐. 나 같으면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하고 부드럽게 야단치고 끝내겠다. 그리고 선악과라는 게 그렇게 나쁜 것이면 아예 처음부터 만들지를 말든가, 아니면 눈에 띄게 하지를 말든가, 하나님이 너무 짓궂은 건 아니냐” 하고 따졌다.
학영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몇 개를 먹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빠.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사탄의 유혹에 끌려갔다는 게 문제예요” 하며 설명했다.
이런 종교토론이 1년 가까이 지속됐고 나의 반대논리는 점차 옹색해져 갔다. 결국 나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치고 이제부터 성경책을 읽어 본다. 단, 교회에 가지는 않고 그냥 혼자 단전호흡을 하면서 공부해 보겠다.”
그러자 학영이가 말했다. “아빠, 휴대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기지국이 없으면 통화가 안 되는 것처럼, 기지국에 안 나가면 하나님과 통화가 안 돼요.” 결정타였다. “그래? 그러면 이번 주부터 기지국에 나가기로 한다.”
그렇게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라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솔직히 학원과 비슷했다. 강사가 강의하고 다 같이 합창했다. 나도 수업시간에 해당 문법이 나오는 팝송을 가르쳤으니 비슷하게 보였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2~3개월에 한 번씩 교회를 옮겨 다녔다. 열심히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신앙 서적들도 읽었다. 산 기도도 다녔다.
그렇게 2년쯤 지나니 그동안 나를 지배해 왔던 샤머니즘의 껍질이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가 사는 길은 오직 내 죄를 씻어 주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000년 말 한밤중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역경의 열매] 정철 (10)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주님은 나의 아버지!
주님 영접하고 세상이 달라져 마음 속에 진정한 평화와 기쁨… 기도 드리면 항상 응답과 조언
정철 이사장 부부가 2010년 성남 분당 지구촌교회 블레싱 집회 강사로 초청돼 이동원 목사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실로 오랜만에 평안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창밖의 나무가 살아 있는 게 보였다. 아침을 먹다가 나는 크게 깨우쳤다. 나의 온몸이 기적 덩어리라는 것을 말이다. 음식이 내 배 속에서 에너지로 바뀌는 것, 내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 내 눈에 보이는 사물들, 내 머릿속의 생각들이 모두 놀라웠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직접 만지고 계시다는 것이 느껴졌다. 둘러보니 온 세상에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확신의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고쳐 주셨다. 문제가 있어서 기도하면 다 해결해 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마음 한구석에 항상 웅크리고 있던 불안감과 공허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쁨과 확신이 넘쳤고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기도하면 신기하게도 지혜를 주시고 해결해 주셨다.
예수님과도 친해졌다. 과거에 내가 신봉하던 민속종교의 신은 엄청 높았다. 그들은 저 높은 곳에 군림하고 있었고 인간은 그 아래에 엎드려 비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돌봐주시는 분이었다. 심지어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 했다. 내가 감히 예수님과 친구가 되다니.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내용을 만날 때마다 감격했다.
내가 기도할 때 “아버지~” 하면 하나님은 항상 “왜~?” 하고 응답하신다. 그러면 이것저것 그날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리고 아버지가 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부탁할 것들을 말씀드린다. 그러면 내 기도를 들어 주시고 조언을 해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초신자였을때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대표로 기도를 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큭큭 거리며 웃었다. 내 기도가 마치 친아버지에게 말하듯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아버지,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식사는 하셨습니까” “안녕히 주무세요.” 사실 나에게는 ‘아버지’ 하면 하나님밖에 안 계신다. 친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불러본 적이 별로 없다.
주님을 영접하고 나의 영어 교수법도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4~5세밖에 안 되는 어린애들이 유창하게 영어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저런 어린애들이 그 어려운 영어를 저토록 쉽게 할 수 있을까.’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영어는 어린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는 것이었다. 그 후 그 쉬운 원리를 발견하려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가르쳐 달라고 매달렸다. 그러자 하나님이 하나씩 원리를 가르쳐 주셨다.
***[역경의 열매] 정철 (11) 영어성경 강의는 하나님이 맡기신 인생 소명
기독교 TV서 성경 교재로 방송… 내 인생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강의 준비하면서 성령 은혜 받아
정철 이사장이 2017년 극동방송 ‘정철의 성경말씀 영어로 통째암송’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2005년 CTS기독교TV에서 ‘명사 초청 특강’을 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일반 방송에서는 종교적 내용을 말하면 모두 편집됐는데 CTS에서는 마음 놓고 말할 수 있었다. 방송이 나간 뒤 반응도 좋았다. 방송사는 아예 정규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대한민국 죽은 영어 살리기’라는 제목으로 3년간 215회를 방송했다. 그때 주교재는 영어 성경이었다.
말씀으로 영어를 가르쳤다. 강의를 하면서 놀란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보통 때는 성경 내용을 말하면 들은 체도 않던 사람들이 영어로 성경을 말하니까 귀를 기울였다. 처음엔 답답하던 문장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말씀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됐다는 얘기들이 들려왔다. 방송이 나간 후 미국과 남미에서도 내 방송을 봤다며 반응이 왔다. 어떤 여성은 이메일을 보냈다. 15년간 남편에게 예수 믿으라고 했는데 꿈쩍도 안 하다가 내 방송을 보고 영접 기도를 하더라면서 놀랍고 감사하다는 편지였다.
가장 놀란 것은 나였다.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머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일이 바로 이거구나.’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월이 갑자기 한 줄로 연결되면서 조각들이 맞춰졌다.
사실 그전까지 나는 내 직업이 영어선생이라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영어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많았기 때문이다. 도사는 물론이고 한의사나 과학자가 됐어도 참 잘했을 텐데 난데없이 영어를 가르치느라 고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19살 때 느닷없이 영어에 미친 일, 갑자기 땜빵 강사로 영어선생을 시작한 일, 영어교수법을 개발한 일, 이상한 잡신들을 섬기다 한 방 맞아 제정신을 찾은 일 등등이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만약 ‘정철 카세트’가 부도나지 않고 승승장구했더라면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마귀 덩어리가 됐을 것이다. 가만히 따져보니 지난 40년이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훈련시키신 세월이었다. 혹독한 광야훈련을 거쳐 드디어 영어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키신 것이다. 내 인생의 소명을 발견했다.
영어성경 강의를 준비하면서 내가 더 은혜를 받았다. 하루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을 읽으며 강의 준비를 하는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라(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는 구절을 보면서 ‘그리스도 안에(in Christ)’가 무슨 뜻일까 하고 자료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러 버전의 영어성경과 주석책들을 펴 놓고 그 의미를 묵상하는데 갑자기 영어성경의 활자들이 마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글자들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는 ‘주님 안에’ 있다는 말의 의미가 영적으로 확실히 느껴졌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그런 체험은 그 후 몇 차례 더 경험했다.
그다음부터는 말씀을 보면 이해가 빨랐고 관련 성구도 금방 생각났다. 어떤 목사님에게 여쭤보니 성령의 은혜를 받은 거라고 했다. 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역경의 열매] 정철 (12) 영어성경 낭송법으로 아이들 입이 뻥 터져
말은 궁금한 순서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가는 것… 주님께 기도로 떼쓰다 깨달아
우리 연구소에서는 영어 교수법을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주의 해)로 나눈다. BC는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사용하던 방법이고 AD는 주님이 주신 방법이다. BC교수법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전 국민이 그 방법으로 영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알파벳을 익히고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배우고, 그 문법으로 문장을 분석해 독해하고 시험을 본다. 이런 식으로 10년을 공부하고도 정작 말 한마디 못한다. 마치 운전을 배우는 사람이 운전은 하지 않고 자동차 부품만 늘어놓고 연구하는 것 같다.
예수를 믿은 후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아버지, 영어가 뻥 터지는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미국에 가보니 어린애들도 영어를 잘합니다.” 나는 계속 졸랐고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처음에는 산골짜기에서 시냇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영어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다.”
묵상해 보니 영어 문장의 원리가 보였다. 영어 문장이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 그저 궁금한 순서로 흘러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I went’(나는 갔다)라고 하면 뭐가 궁금한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to a book store’(책방에)라고 하면, 뭐 하려고 책방에 갔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면 ‘to buy a book’(책을 한 권 사려고)이 연결되고 이번엔 무슨 책인지 궁금하다. ‘on economics’(경제에 관한) 하면, 왜 그 책을 사는지 궁금하다. ‘because I have a presentation next week’ (다음 주에 발표가 있거든) 등으로 궁금한 순서대로 흘러간다.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듯 영어 문장이 흐르는 것이다. 자질구레한 문법들은 여기에 다 녹아 있다.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영어 문장들은 이 원리로 몇 가지 영어 ‘덩어리’들이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들을 어떻게 학습해야 유창한 영어를 하게 될까.
나는 또 하나님께 떼를 썼다. 이번엔 산골짜기에 피어 있는 예쁜 꽃을 앞마당에 옮겨 심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꽃을 옮겨 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꽃의 성분을 낱낱이 분석해서 앞마당에 재조립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른바 BC 교습법이 말하는 ‘영어의 부속품을 잘 조립하면 영어가 된다’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이다. 꽃을 옮겨 심으려면 그저 삽으로 퍼서 옮겨 심고 잘 밟아주고 물을 주고 기다리면 된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키워 주신다.
이를 영어 학습에 대입하면 이렇다. 좋은 문장을 골라서 소리 내어 반복 낭송하는 것이다. 영어의 부속품을 조립하려 애쓰지 말고 좋은 문장들을 그저 즐겁게 반복 낭송하면 그 문장이 머릿속에 뿌리내리고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고 자라난다. 머리로 억지로 암기하는 게 아니다. 소리 내 낭송하다 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문법이나 어휘 등이 녹아서 내 것이 된다. 이것이 진짜 영어 실력이다.
실제로 이렇게 해 보면 그 효과는 놀랍다. 알파벳이나 문법을 모르는 아이들도 성경 이야기를 재미있게 낭송하다 보면 어느새 영어가 술술 열린다. 이 방법을 알고 어린이 영어성경학교를 시작했다.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역경의 열매] 정철 (13) 아이들 한목소리로 “God made the world”
어린이 영어 성경학교 열어… 아이들에게 복음 가르치니 스펀지처럼 모두 빨아들여
정철 이사장이 2008년 시작한 어린이 영어 성경학교에서 ‘누가 세상을 만드셨나(Who made the world)’ 강의를 하고 있다.
2008년 초 개척교회에 다니던 때였다. 교회 목사님께서 미국인 전도사와 함께 어린이 영어예배를 시작했다. 전단을 제작해 집집마다 배포했더니 아이들이 많이 왔다. 그런데 아이들 대부분이 미국인 전도사의 영어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교회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영어를 못 하는 아이들은 분리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우리말로 하는 교회학교로 보낼 수도 없었다. ‘영어로 진행하는 신나는 예배’ 라고 선전했는데 부모들이 항의할 게 뻔했다.
그래서 회의 끝에 나온 새로운 반 이름이 ‘정철 선생이 직접 가르치는 어린이 영어 성경학교’였다. 느닷없이 내가 떠맡은 것이다. 좀 황당했지만 ‘이것도 주님의 뜻이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교회학교를 참관했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전도사와 교사들은 구연동화처럼 설교하고 춤을 추며 노래를 했다.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주여,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런데 하나님은 중요한 사람들을 예비해 두셨다. 그중 한 분이 집회차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의 빌 존슨 목사님이었다.
그는 내 고민을 듣더니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아이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복음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르쳐라. 그러면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복음이라면 마침 내가 정리해 놓은 내용이 있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란 제목이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셔서 온갖 복을 다 주셨는데, 그들이 죄를 범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죄인인 채로 살다가 죽으면 지옥에 가게 되는데, 우리의 죄를 대신 갚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사흘 뒤 부활해 하나님 옆에 앉아 계신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가게 된다.”
이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서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알파벳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초등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환영했다. 이런 식이었다. 지구 그림을 보여주면서 “Who made the world?(누가 세상을 만들었어요)”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God made the world(하나님이 만드셨어요)” 하고 외쳤다. “Who made the sun?(누가 해를 만드셨어요)” “God made the sun(하나님이 해를 만드셨어요)” 식으로 가르쳤다.
이렇게 한 달 내내 영어로 외치고 나니 아이들도 자신이 생겼다. 엄마들에게도 소문이 퍼져 아이들이 일주일 내내 교회 가는 날만 기다린다고 했다. 점점 진도가 나가면서 주기도문, 영어찬양, 영어 영접기도 등을 가르쳤고 아이들은 변화됐다.
복음 내용을 마친 뒤에는 4복음서를 정리한 ‘예수님 이야기(Jesus Story)’를 만들어 2년을 더 가르쳤다. 그동안 아이들은 영어로 읽기 쓰기를 모두 터득했다. 문법을 배운 적이 없어도, 영어로 복음을 외쳤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AD 학습법’이 들어맞은 것이다.
그러자 사방에 소문이 나면서 다른 교회에서 참관을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나눠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2010년부터 교사훈련을 시작하며 프로그램을 공유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전국 7000여 교회가 사용하고 있다.
***[역경의 열매] 정철 (14) 성경학교에 유대인 쉐마교육법 벤치마킹
세계 인구 0.2%가 유대인, 모든 분야에서 최고 지위… 쉐마교육으로 아이 가르쳐
정철 이사장이 어린이들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세계적인 지도자로 키우자는 내용으로 강의하고 있다.
정철영어성경학교(JEBS)의 구호는 ‘우리 아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세계적인 지도자로 키우자’이다. 어떻게 하면 세계적 리더로 키워낼 수 있을까. 세계적인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는 민족을 살펴보자. 바로 유대인이다. 세계 인구의 0.2%밖에 안 되는 그들은 매년 노벨상 수상자의 30% 이상을 배출한다. 세계 금융의 80%를 장악하고 하버드대와 예일대 교수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를 달린다. 생각나는 유대인 이름을 꼽아보자. 록펠러,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에디슨, 로스차일드, 키신저,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 수없이 많다. 도대체 이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3500년간 지켜온 쉐마교육이다. 이는 신명기 6장 4~9절에 근거를 둔다. “이스라엘아 들으라(쉐마).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믿음).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성경암송),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하브루타 토론),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테필린 기도).”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자녀들이 3~5세일 때부터 모세오경 암송을 시키고 말씀 강론과 토론으로 성경을 가르친다. 하루 세 번씩 성구를 넣은 작은 상자인 테필린을 펴놓고 기도한다. 이 모든 행위들은 철저히 가정중심이다. 강력한 ‘홈스쿨’인 셈이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박해를 받으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도 굳건한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다.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 주신 인생 매뉴얼을 가정에서 통째로 암송하고 토론하고 기도하며 살아간다. 유대인들의 교육 자체가 이렇기에 세상에서도 잘 되는 것이다. 그들이 구약만 믿고 예수님을 부정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가 유대인에게 배울 것 중 하나는 말씀 암송이다. 암기가 아니라 암송이다. 혼동하면 안 된다. 암기는 머리로 억지로 외우는 것이다. 암기한 것은 반드시 까먹는다. 반면 암송은 소리 내어 반복해 읽어 머리에 새겨 넣는다. 암송으로 익힌 것은 좀처럼 까먹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13세가 돼 성인식을 치르기 전까지 모세오경을 통째로 암송한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그 내용을 완전히 숙지한다. 이렇게 머릿속에 새겨진 말씀이 일생을 지배한다. 이 과정을 통해 히브리어에도 능통해진다. 이 암송법은 여호수아 1장 8절에 분명히 나와 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읊조려서(암송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 유대인 학습법을 영어성경학교에 응용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교회학교는 성공적이었다. 내친김에 집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홈스쿨을 시작했다. 그림을 보면서 창세기부터 영어성경내용을 영어로 낭송한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니 아이들의 입에서 영어가 저절로 열렸고 믿음도 굳건해졌다. 가르치던 엄마 아빠도 영어가 터졌다. 그야말로 ‘성령충만! 영어능통!’이었다.
***[역경의 열매] 정철 (15·끝) 언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 축복·긍정의 말 해야
성경은 문장이 아름답고 문법이 정확하고 어휘력 풍부… 복음 낭송이 최고의 학습법
정철 이사장이 지난 7일 경북 경산 올리브교회에서 집회를 가진 뒤 성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고의 영어학습 방법은 입으로 낭송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복음을 낭송하는 게 가장 좋다. 평생 영어선생을 했지만 영어성경처럼 좋은 교재를 발견하지 못했다. 문장이 아름답고 문법 예문의 보고라고 할 정도로 문법이 정확하게 사용되고 어휘력이 풍부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면에 있다. 성경을 보자. 창세기 11장에 바벨탑 사건이 나온다. 하나님이 언어를 흩어놓아서 수많은 외국어가 생겼다. 그런데 이 외국어들이 수천 년이 지난 후에 저절로 뚫리는 사건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온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 오순절,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기도하는데 하늘에서 불의 혀 같은 성령이 제자들 위에 내려앉는다. 그러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외국어로 각자 복음을 외치기 시작했다.
놀라운 장면이다. 바벨탑에서 일부러 흩으신 언어를 갑자기 뚫어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각각의 언어가 사용되는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굉장한 일이다. 하나님 마음대로 흩어놓기도 하고 뚫어주기도 하신다.
이 내용으로 기도와 묵상을 하다 보니 ‘열어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나라 말로 복음을 외치다 보면 그 외국어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 얘기를 했더니 놀랍게도 수많은 간증이 들려왔다. 영어성경을 암송해 영어가 터졌다거나 중국어성경을 암송해 중국어를 하게 됐다거나 일본어 설교집을 암송해 일본어가 능통해졌다는 간증이 많았다. 그렇다. 영어로 복음을 외치면 영어가 터진다.
그러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언어라는 게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언어를 통해 하셨고,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바로 말씀이라고 했다. 이 놀라운 언어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놀라운 영적 능력이 있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해서 해야 한다. 항상 축복의 말을 하고 긍정적으로 말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대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말에는 권세가 있다.
성경을 영어로 가르치기 시작하자 영어가 터진 것은 물론이고 영적인 일도 일어났다. 사회성이 부족해 가족 외에는 의사소통이 힘들던 아이가 원어민 교사의 영어 수업 시간에 영어 못하는 아이를 위해 통역을 해주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 고생하던 아이의 증세가 호전됐다. 믿지 않던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떠나 살던 엄마에게 복음을 전해 다시 믿음의 가정이 됐다. 임대료 내기도 버겁던 미자립교회가 살아났다는 간증도 나왔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일이 바로 이것이구나!’ 비로소 내 인생의 본 게임이 시작됐다. 나는 지금 내게 복음을 전해준 큰 아들과 함께 정철영어성경학교를 섬기고 있다. 매일 원고를 쓰고 가르치며 영상 강의를 녹화하고 유튜브 강의도 만든다. 초청하는 교회에 가서 세미나도 하며 바쁘게 지낸다.
평생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었던 적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성경말씀을 영어로 암송하고 주님을 영접하며 교회마다 부흥하고 ‘성령충만! 영어능통!’ 할 때까지 발걸음을 쉬지 않을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