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잎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동방에서 건너와 내 정원에 뿌리 내린
이 나뭇잎엔
비밀스런 의미가 담겨 있어
그 뜻을 아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오.
둘로 나누어진 이 잎은
본래 한 몸인가?
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
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에 답을 찾다
비로소 참뜻을 알게 되었으니
그대 내 노래에서 느끼지 않았는가.
내가 하나이며 또 둘인 것을.
괴테는 왜 그녀에게 은행잎을 보냈을까
200여 년 전인 1815년 가을날, 독일 시인 괴테(1749~1832)는 한 여인에게 사랑의 시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지에 노란 은행잎 두 장도 붙였다. 예순여섯 살 시인의 표정은 사춘기 소년 같았다. 얼마 뒤 그녀에게서 화답 시가 도착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안네 빌레머. 서른한 살의 유부녀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년 전인 1814년. 나이를 초월한 이들의 사랑은 은밀하면서도 위태롭게 진행됐다. 남의 눈을 피해야 했으므로 더 애틋했고, 가끔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하이델베르크 여행 중 그녀는 성 안의 낡은 담벼락에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은 나는 이곳에서 행복했노라’라는 글귀를 남기기도 했다.
괴테는 그녀에게 은행나무를 보여주었다. 은행나무 잎을 유심히 바라보며 ‘비밀스런 의미’를 설명했다.
“이 나무 잎은 특별해요. 아직 어린나무일 때는 부채꼴에 나 있는 절개선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난 뒤 가지를 보면 절개선이 있는 잎이 많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두 개의 잎인 것처럼 보이지요.”
모든 은행잎이 그렇지는 않다. 어린잎에는 깊은 절개부가 보이지만 거의 다 자란 잎에는 보이지 않기도 한다. 한 나무에 여러 변형된 잎이 날 수도 있다. 그때는 지금 같은 과학 지식이 부족했다. 은행나무가 18세기에 동방으로부터 전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시인의 관찰력은 특별했다. 둘로 갈라진 은행잎에서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의 합일을 발견했다. 암수 딴 그루의 은행나무가 수태하는 과정을 밑자락에 깔고, 거기에서 나온 은행잎을 ‘둘로 나누어진 한 몸’의 의미와 접목한 감수성도 뛰어나다.
은행잎은 사랑 외에도 많은 것을 상징한다. 독일 식물학자 마리안네 보이헤르트는 《식물의 상징적 의미》라는 책에서 은행나무와 은행잎의 특성을 설명하며 “은행나무는 희망, 다산, 우정, 순응을 상징한다”고 했다.
괴테는 이 같은 은행나무의 미덕에 달콤한 사랑의 밀어와 노란 잎 두 장을 붙여 연인에게 보냈던 것이다. ‘비로소 참뜻을 알게 되었으니/ 그대 내 노래에서 느끼지 않는가./ 내가 하나이며 또 둘인 것을.’
그러나 둘의 사랑은 완성되지 못했다. 괴테와의 짧은 만남과 이별 후 그녀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아! 그이를 다시 만날 희망이 없다면 고통으로 나는 스러지고 말리라.”
괴테는 몇 년 후 그녀와의 사랑을 노래한 시로 《서동시집(西東詩集)(1819)을 펴냈다.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에게 영감을 받은 이 시집에서 그는 하이템, 그녀는 줄라이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는 이 시집을 엮을 때 그녀가 쓴 시 세 편도 함께 넣었다. 둘이 만나면서부터 시 쓰는 것을 배운 그녀의 연시였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여백을 채우는 그만의 의식이었을까. 시집 갈피에 남몰래 은행잎을 끼워 두고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옛 추억에 잠기곤 하는 시인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