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yyathāpi, ambaṭṭha, pabbatasaṅkhepe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88.“암밧타여, 예를 들어, 산꼭대기에 맑고 고요하고 청정한 호수가 있는데,
“암밧타여, 예를 들면 깊은 산에 호수가 있어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데
Tattha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 passeyya sippisambukampi sakkharakathalampi macchagumbampi carantampi tiṭṭhantampi.
그곳에 눈 있는 자가 언덕에 서서 조개류나 모래와 자갈이나 물고기의 무리가 움직이거나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시력이 좋은 사람이 둑에 서서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 멈춰있거나 움직이는 고기 떼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Tassa evamassa – ‘ayaṃ kho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 ‘이 호수는 맑고 고요하고 청정하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 ‘이 호수는 참 맑고 고요하고 깨끗하구나.
Tatrime sippisambukāpi sakkharakathalāpi macchagumbāpi carantipi tiṭṭhantipī’ti.
이곳에 조개류나 모래와 자갈이나 물고기의 무리가 움직이거나 서있다.’라고..
여기에 이런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이 있고 고기 떼는 멈춰있거나 움직이는구나.’라고.
Evameva kho, ambaṭṭh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암밧타여, 이 와같이 수행승은 마음心이 삼매에 들어得定, 청정해지고 고결해지고, 티끌없이 오염을 여의어, 유연해지고 유능해지고, 확립되고 흔들림 없게 되어, 마음을 번뇌의 부숨에 대한 궁극의 앎으로 마음을 지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암밧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心이 삼매에 들고得定,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번뇌의 부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번뇌의 부숨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Tassa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ati,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을 때, 그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존재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무명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합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해탈하면 ‘해탈했다.’라는 궁극의 앎이 일어나면, 그는 ‘태어남은 부수여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압니다.
해탈에서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습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idampissa hoti vijjāya.
이것이 또 다른, 수행승의 명지입니다.
이것이 역시 그의 영지이다.
Ayaṃ kho sā, ambaṭṭha, vijjā.
암밧타여, 이것이 명지입니다.”
암밧타여, 이것이 바로 그 영지이다.
‘‘Ayaṃ vuccati, ambaṭṭha, bhikkhu ‘vijjāsampanno’ itipi, ‘caraṇasampanno’ itipi, ‘vijjācaraṇasampanno’ itipi. Imāya ca ambaṭṭha vijjāsampadāya caraṇasampadāya ca aññā vijjāsampadā ca caraṇasampadā ca uttaritarā vā paṇītatarā vā natthi.
‘‘Ayaṃ vuccati, ambaṭṭha, bhikkhu ‘vijjāsampanno’ itipi, ‘caraṇasampanno’ itipi, ‘vijjācaraṇasampanno’ itipi.
암밧타여, 이 수행승을 두고 ‘명지를 성취한 자’라고도, ‘덕행을 성취한 자’라고도, ‘명지와 덕행을 성취한 자’라고도 부릅니다.
암밧타여, 이를 일러 비구는 ‘영지를 구족했다’고 하며, ‘실천을 구족했다’고 하며, ‘영지와 실처을 구족했다’고 한다.[명행족明行足]
Imāya ca ambaṭṭha vijjāsampadāya caraṇasampadāya ca aññā vijjāsampadā ca caraṇasampadā ca uttaritarā vā paṇītatarā vā natthi.
암밧타여, 이러한 명지의 성취와 덕행의 성취와는 다른 보다 뛰어나고 보다 탁월한 명지의 성취와 덕행의 성취는 없습니다.
암밧타여, 이러한 영지와 실천을 구족함 이외에 또 다른 더 높고 더 수승한 영지의 구족과 실천의 구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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