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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21》 2018 봄호 五讀悟讀 21
절기節氣에 담긴 사유
정희경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 하는 속담이 입춘인 오늘 하루종일 떠돈다. 봄이 시작하려다 얼어 죽을 것만 같은 차가운 날씨다. 지구 온난화, 엘니뇨현상 등으로 인해 세계가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24절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아직도 농사를 짓는 가정의 한 벽면에는 커다란 숫자에 절기가 적힌 달력이 붙어 있다. 그리고 아직도 농부들은 절기를 짚어가며 농사를 짓는다. 중국의 주나라 때 고안된 24절기는 태양의 황경黃經에 맞추어 1년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해서 계절을 구분한 것이다. 24절기는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에 각각 여섯 개 씩 자리잡고 있으며, 각각의 절기는 앞뒤 절기와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지며 1년을 이룬다. 현대인들은 계절이 오고가는 것을 24절기를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며 살아간다. 현대인들의 계절은 바깥온도뿐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현실 온도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시인에게서의 절기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핸드폰 창을 통해 그리고 뉴스 앵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절기를 시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느낄까? 그 해답을 5편의 작품을 통해 알아본다.
입춘 날 ‘立春大吉’ 대문짝에 대문짝만 하다
허기진 붓 대신 일필일획 빗자루 들어
아버진 제주바당을 통째로 끌고 갔다 -이애자 「입춘 날」 전문, 『하늘도 모슬포에선 한눈을 팔더라』 (2016년, 도서출판 달샘)
입춘은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가정에서는 대문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글귀 즉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인다. 제주도에서는 입춘날에 ‘입춘굿’이라는 큰굿을 했다고 한다. 화자는 ‘立春大吉’이라는 ‘대문짝만 한’ 입춘첩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글씨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허기진 붓’이 아니라 ‘빗자루 들어’ 삶의 현장으로 뛰어 든 아버지를 만난다. 봄을 시작하는 날 한 획 한 획 힘 있는 ‘立春大吉’에는 꿈틀거리는 삶의 현장이 담겨 있다. 그것도 ‘제주바당’을 ‘통째로’ ‘끌고’가는 아버지의 힘 찬 봄이 있다. 추운 겨울을 끝내고 희망찬 봄을 맞이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시작을 허기지고 나약한 가는 ‘붓’ 대신에 ‘빗자루’를 선택한 시인은 ‘제주바당’ ‘통째’라는 이미지로 그 폭을 넓고 깊게 연결하여 봄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을 ‘立春大吉’이라는 단어로 집약시킨다. 시인에게 있어서의 봄은 감상으로가 아니라 생활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입춘날 떠올리는 아버지의 봄은 과거형이다. 봄을 ‘제주바당’으로 끌고 간 아버지, 매년 그런 아버지를 그리는 시인의 봄에는 그래서 아픔이 배어있다. 굵고 힘찬 글씨만큼의 아픔이 배어있다. 그리고 그 아픔은 개인적인 서정의 공간을 넘어 ‘제주’라는 ‘바다’라는 지역적 특성의 아픔으로까지 확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꿈속에도 캄캄해서 으슬으슬 추운 봄 매달렸던 가지를 놓아버린 낙과처럼 그을음, 먼 시간 밖으로 까치발을 서는 날
사과나무 두 그루를 심으며 생각한다 우리 서로 곁에 있다 믿었던 뿌리들을 구름의 흩어져 사라진, 발이 떠난 발자국을
태양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타든 영혼 울음은 잔고 없는 통장처럼 텅 비어 길 끝에 단비 마중 가는 맨발의 흰 꽃잎들 -선안영 「곡우穀雨」 전문, 『유심』 (2014년 5월호)
곡우는 백곡〔穀〕을 봄비〔雨〕가 기름지게 한다 하여 붙여진 말이다. 봄비가 내려 여러 가지 작물에 싹이 트고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기이므로 사람들은 수액을 받기도 한다. 모든 걸 다 비워낸 화자는 ‘길 끝에 단비 마중 가는’ ‘흰 꽃잎’이다. 이별의 아픔도, 기다림도 승화시켜 또 다른 만남과 결실을 위해 ‘단비’를 ‘마중가는’ 길이다. 꽃 피고 열매 맺고 또 더러는 떨어지기도 하고 결실을 맺기까지의 치열한 삶 다음에 오는 긴 기다림과 인고의 시간을 화자는 더듬고 있다. ‘까치발’ ‘발이 떠난 발자국’ ‘맨발’은 화자와 대상을 넘나들면서도 작품 전체에 안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이는 그리움, 기다림, 이별의 허전함, 그리고 새로운 만남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반영하여 주제를 선명하게하고 독자로 하여금 ‘곡우’라는 제목에 집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곡우’를 24절기 자체로만 보지 않고 인생, 혹은 생의 순환에 대비시킨 점이 이 작품의 미덕인데 이것 또한 ‘발’이라는 통일된 시어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가져온 ‘사과나무 두 그루’를 첫 수가 아닌 둘째 수에 둠으로써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 변화가 신선하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나 마른다’고 한다. 셋째 수 종장을 ‘곡우’의 특성에 잘 기대어 표현함으로써 난해함을 극복한 점 또한 돋보인다. 낮 시간이 1년 중 가장 길고, 일사량과 일사시간도 가장 많은 때가 하지이다. 여름을 알리는 절기라서 청개구리가 울고,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는 시기이다.
작달비 콩을 볶다 떠나간 밭머리에 나주볕 퍼질고 앉은 개미들의 붉은 결의 두렁에 스크럼 짜고 산그늘을 밀어낸다
길 밖의 길을 걷다 몸을 내 준 지렁이를 느꺼운 듯 끌고 가는 때 늦은 개선凱旋 앞에 늘쳐진 제 그림자도 낮게낮게 따라 간다 -최화수 「하짓날」 전문, 『개화』 (2016년 25집)
하지의 모습을 잘 그려낸 한 폭의 풍경화를 만난다. 여름철에 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내리는 비인 ‘작달비’가 지나간 후 ‘몸을 내 준 지렁이를’ 끌고 가는 ‘개미’의 모습이 ‘붉은 결의’와 ‘개선’이라는 시어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그 배경을 저녁 햇살인 ‘나주볕’으로 설정함으로써 ‘산그늘’ ‘그림자’와 조응하는 치밀함도 보여주고 있다. 고요하고 지루한 하지에 작달비를 등장시키고 커다란 지렁이를 물고 가는 개미떼의 끈질긴 투쟁과 결의를 그려냄으로써 일 년 중 해가 가장 긴 날의 모습을 잘 형상화하였다. 이 작품에는 단순한 풍경만이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라 ‘붉은 결의’ ‘개선’이라는 시어 속에 의지, 투지 같은 시어를 이면에 깔고 있어 읽을수록 그 맛이 살아난다. 긴 하루,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더위, 그리고 큰 시련을 헤쳐 나가야 함을 ‘하짓날’의 풍경 속에서 읽는다.
여섯 살 계집애가 그려놓은 수평선
높아진 하늘만큼
바다 빛 더 깊어졌다
새처럼
가벼이 앉은
아흔넷
내 어머니 -문순자 「상강 무렵」 전문, 『문학청춘』 (2016년 겨울호)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나, 밤 기온은 서리가 내릴 정도로 매우 낮아져서 추운 상강이다. 이 시기는 추수가 마무리 되고 겨우살이 채비를 서두를 때이다. 상강이면 가을이 깊을 대로 깊어진 시기이다. 「상강 무렵」은 ‘여섯 살 계집애’와 ‘아흔넷/내 어머니’가, ‘하늘’과 ‘바다’가 대구를 이루어 가을이 한층 깊다. ‘여섯 살’과 ‘아흔넷’을 합하면 백 살이다. 한 세기가 여기에 있다. 아이는 높아지고 어머니는 깊어지니 가히 가을이 무르익어 간다. 그리고 거기에 ‘아흔넷/내 어머니’는 ‘새처럼/가벼이 앉’아 있다. ‘아흔넷/내 어머니’도 가벼워지는 가을이니 얼마나 높고 청명한 가을이겠는가? 그리고 높아지고 깊어지는 수직의 중심에는 수평선이라는 수평이 자리하고 있다. 손녀와 할머니를 이어주는 화자가 수평선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몇 안 되는 시어로 무한한 가을의 깊이를 이렇게 선명하게 그리고 있으니 시조의 매력을 한껏 뽐낸 작품이다.
냇물은 배를 곯아 무명실처럼 틀어지고
볕살도 뼈만 남아 앙상한 소한 대낮
목울대 꼿꼿이 세운 고요 한 채 끓고 있다 -박명숙 「소한 대낮」 전문, 『정형시학』 (2017년 겨울호)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이 있듯 1년 중에 가장 추운 날이 소한이다. 시인은 ‘춥다’라는 의미를 어떻게 표현할까? ‘어떤 단어로 어떻게 그려야만 그 추위를 독자들이 실감할까’를 늘 고심하는 것이 시인이리라. 시인이 그린 ‘소한’은 단 수 한 편에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위가 뚝뚝 묻어 있다. 연속성을 유지해야하는 ‘냇물’과 ‘볕살’이 단절되고 결핍되어 ‘틀어지고’ ‘뼈만 남아 앙상’하다. 그 연속성을 자르는 것은 추위이다. 단절과 결핍의 의미가 추위에 잘 이입되어 있다. ‘배를 곯’은 ‘냇물’, ‘뼈만 남은’ ‘볕살’이라는 신선한 표현은 절창이다. 그리고 이 시어들은 ‘꼿꼿이’라는 시어와 함께 강직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추위와 잘 어울린다. ‘목울대 꼿꼿이 세운’ ‘고요 한 채’도 꺾어질 듯하다. ‘목울대’를 ‘꼿꼿이’ 세웠지만 소리 없는 ‘고요’만 끓고 있으니 추위는 소리조차도 삼켜버렸다, 그것도 대낮에. ‘고요 한 채’ 끓고 있는 소한 대낮이라니! ‘목울대’ ‘고요’ ‘끓고 있다’라는 다소 이질적인 시어의 나열은 단절과 결핍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킨다. 특히 ‘끓고 있다’라는 시어는 주목할 만하다. ‘끓다’의 사전적 의미는 ‘몹시 뜨거워져서 김이 나고 거품이 솟아오르다’ ‘화가 나서 타는 듯하다’ ‘불이나 열기로 지나치게 뜨거워지다’ ‘어떠한 감정이 강하게 솟아나다’이다. 어떤 의미로 읽어도 역설의 의미가 강하게 다가온다. 소한은 모든 사물을 고요로 바꾸어 고요를 끓게 하는 힘을 가졌음을 이 단수 한 편에서 강하게 읽는다. 화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어조를 유지하여 소한의 추위를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하여 독자들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24절기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한식, 단오, 삼복, 추석 등 오래전부터 사용해오던 절기가 있다. 시인들은 이러한 절기를 시조로 즐겨 노래한다. 특이한 점은 이 절기를 제목으로 앉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절기를 읊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인생을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담아낸다. 깊은 사유와 상상이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절기에 얹는 시인들의 시조는 더욱 곡진하고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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