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은 심 봉사의 공양미 시주 약속을 발단으로 심청의 인당수 투신과
용궁 생활, 연꽃 속의 재생(부활), 그리고 심청과 심 봉사의 재회에 따른 심 봉사의
눈뜸으로 끝맺는다.
홀아바지의 눈을 뜨게 해 주려고 열다섯 살 소녀가 선원들의 희생 제물이 되는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 슬프며,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도 없다.
이 이야기는 15세는 여성으로서 기능이 시작되는 나이이다. 심청은 그 청춘이
꽃피려는 나이에 자신의 삶을 끝내는 것으로 완성한다.
그것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심청은 양녀로 삼겠다는 이웃 마을 장승상
부인의 제안을 뿌리치고, 스스로의 길을 간다. 심청의 결단은 자식으로서 세상
에서 으룰 수 있는 효덕의 완성, 곧 공완(功完:공의 완성)에 해당한다.
「심청전」에서는 덕을 제대로 닦지 못한 이를 '뺑덕어미'라 부르고, 덕이
있는 이를 '귀덕어미'라 이름 지었다. 의도적으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덕을
강조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효덕을 완성하는 최종 장소의 이름을 '인당수(印堂水,印塘水)'라고
지었다. 이것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인당수란 지명이 실제 있을 수도 있겠
지만, 인체에 있는 인당혈(印堂穴)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는 인식은 지난친
것이 아니다.
인당혈은 양미간의 한가운데 있는 혈로서 제3의 눈으로 통하는 곳이다.
제3의 눈은 고대이집트에서 중시되었으며, 이후 불교문화권에서도 통용
되었다.
인당수를 인당혈과 연관해 보게 되면, 나머지 지명이나 인명의 작명
의도도 엿볼 수 있다. 심청의 아버지 심 봉사는 눈이 감긴 의식의 낮은
상태를 뜻한다. 그에 반해 아버지의 개안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심청은
마음이 맑은(心淸), 즉 의식이 고양된 상태를 상징한다.
심청의 고향 '도화리'와 옆 동네 '무릉촌'도 벽사와 장수의 상징인 봉숭아
꽃이 피는 선경인 '무릉도원'에서 왔다. 무릉촌의 아낙 이름도 '장승상 댁'
인데, 이 이름 안에는 마을의 수호신 '장승'이 들어 있다. 그리고 심 봉사가
공양미 300석을 약속한 '몽은사(夢恩寺)', '화주승(化主僧)'에는 '꿈속의
은혜' 와 '주인으로 화하다'는 뜻이 강조되어 있다.
심청을 낳고 7일 만에 승천한 곽씨 부인, 나이 20이 되어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심봉사, 나이 15세가 되어 살신성인하는 심청.
이러한 숫자들도 의미 없이 지은 것은 아니다. 모두 우주변화의 원리인
상수학과 관련된 것이다.
심청이 인당수로 들어가는 것은 심청의 정신적 개안을 뜻한다. 그러나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한 심 봉사는 심청의 희생으로 받은 돈을 뺑덕어미와
함께 세상의 재미를 맛보며 모두 탕진한다. 그리고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채 거지 신세로 살아간다.
아버지가 세상의 어둠 속에서 헤매는 동안, 결연히 이승을 정리한 심청은
인당수에 뛰어내린 뒤 용궁으로 들어간다. 용궁은 수궁, 수정궁(水精宮)이다.
인체의 하단전을 용궁이라고 한다.
"하단전은 진호(真虎)이며 감지(坎地)이고, 도태(道胎, 성태라고도 한다)
이며, 아득한 부상(扶桑)이요, 기의 바다(氣海)이며, 수정궁(龍宮)이고
빈호(牝戶)이다.
선인이 되는 수행의 출발점이 바로 이 용궁이자 하단전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대웅전은 이 용궁을 나타내고자 기둥이나 천장,
서까래가 모두 용무늬로 이루어져 있다.
심청은 이 용궁에서 온갖 신선들을 본다. 학을 탄 태을진인(노자),
구름탄 적송자, 사자 탄 갈선홍(갈홍), 고래를 탄 이적선(이백),
백로 탄 여동빈, 청학 탄 장녀, 월궁항하, 서왕모, 마고 선녀 등등…….
용궁에 들어가서 보니 심지어 심청의 어머니 곽씨 부인의 전생도 출가하여
여도사가 된 당나라 옥진공주(玉眞公主)이다.
우리는 「심청만」제대로 읽어도 도교 신선들의 이름을 배울 수 있다.
비록 우리 겨레 선인들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은 것이 아쉽긴 하지만, 용궁
장면에 신선을 모아 둔 것은 선각 수행의 지식을 대중화하기 위한 설정이다.
용궁이 단전의 비유임을 모른다면, 왜 용궁 장면에 신선들 이름을 배치
했는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도 이 나라 대부분 식자들이 이러한 비유와 상징이나
판소리 구성 체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심청이 용궁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올 때는 연꽃 속에 있는데, 그것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수옶이 수놓아진 깨달음의 상징이다.
단전을 닦아 수행을 완성하면 새로운 선경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것을
나타내는 그림이 연꽃 속의 인물이다. '연화화생(蓮花化生)'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불교보다 까마득한 이전부터 내려오는 인류의 문화 도상이다.
심청은 임금이 사는 궁궐로 옮겨진다. 여기서 임금이란 선경의 옥황상제
하나님이다. 궁궐이란 천궁이다. 왕후가 되는 것은 천궁의 임금인 하나님의
짝이 되는 것이다. 심청은 작은 자아를 버리고 큰 자아를 얻었기 때문에
천궁에 들어간 것이며,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이다.
심청의 눈은 밝아질 대로 밝아져 있다. 누군가의 눈이 열리면 그것은 세상에
알려진다. 그리고 그 순간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덩달아 눈이 뜨인다.
황후께서 들으시고 눈물을 흘리며, 그 말씀을 자세히 들으니 분명히
아버지인 줄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천륜에 어찌 그 말씀이
긑나기를 기다렸겠가마는 자연 이야기를 만들자 하니 그렇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말씀을 마치자 황후께서 버선발로 뛰어 내려와서 아버지를 안고,
"아버지, 제가 정녕 인당수에 빠져 죽었던 심청이어요."
심 봉사가 깜짝노라,
"이게 웬 말이냐?"
하더니 어찌 반갑던지 뜻밖에 두 눈에서 딱지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두 눈이 활딱 밝았다. 그 자리에 가득 모여 있던 맹인들이 심 봉사
눈뜨는 소리에 일시에 눈들이 뜨이는데, '희버덕, 짝짝' 까치 새끼
밥 먹이는 소리 같았다.
뭇 소경이 밝은 세상을 보게 되고, 집 안에 있는 소경, 계집 소경도
눈이 다 밝고, 배 안의 소경 배 밖의 맹인, 반소경 청맹과니까지
모조리 다 눈이 밝았으니, 맹인에게는 천지개벽이나 다름없었다.
--- 천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