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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부러진 숲에서 되새가 절명한 음표를 물어다 어제 짓던 집을 짓고 깃털이 부산한 둥지 아래 눈먼 처녀 두부가 실린 수레를 밀고 숲으로 들어갔다 꽃장수 아주머니 이고 가는 대나무 광주리에서 노란색 꽃가루 아가미에 묻힌 만물 잉어가 길바닥으로 뛰어내려 퍼덕였다 귀가 먼 바다 반 조각이 올라와 골목의 새벽을 배회하다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졌다 납작한 바다를 밟고 인도계 속눈썹이 비정하게 굴러가는 새벽 뒤통수가 반듯하게 잘린 사람들은 들고나온 그릇이 작아서 발칙한 새벽을 고스란히 담지 못했다
수척한 얼굴로 좌판에 내려앉은 시간이
날카로운 부리로 손바닥에 굳은 살을 쪼았다
풍경에 스미지 못하는 이방인 새벽은
길거리 좌판 짠맛이 도는 모닝커피 속에서
껍질을 제 부리로 쪼아 부화했다
미얀마의 새벽은 한 편의 시를 닮았다.
싱그럽다.
퐁지는 미얀마의 남자 스님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서는 퐁지가 엄청난 존대를 받는 불교 나라다. 아침이면 탁발을 나서는 퐁지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새벽에 오토바이로 나가면 퐁지의 행렬을 쉽게 만난다.
그런 장엄한 행렬을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한다.
긴 행렬은 칠팔십 명 정도가 이어지는데 그럴 땐 오토바이 시동을 끄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마땅하다.
퐁지 행렬은 기차나 다름없다. 절대 중간에 파고들면 안 된다.
그 긴 행렬이 줄지어 지나가면 길을 건너던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오토바이 차량, 모두가 서서 기다린다. 그 행렬 앞에는 놋쇠로 만든 편경을 치며 퐁지의 탁발을 알린다. 그러면 먹을 음식을 접시에 담아 들고나오는데, 밥이나 반찬을 든 아낙네들이 줄지어 서서 퐁지의 바루에 정성스레 담아준다.
그렇게 시주를 할 적에는 반드시 맨발이다.
집에서 나온 아낙네들은 파낫을 벗고 파낫 위에 맨발로 서서 기다린다.
퐁지 행렬 뒤에는 손수레가 두 대 따라붙는다. 드럼통보다 큰 대형 그릇이 서너 게 실려있다. 퐁지들의 바루에 먹을 게 가득 차면 그 큰 그릇에 담는다. 파고다에서 탁발을 나오지 못하는 스님들의 먹을거리다.
일을 시작하고부터 새벽에 시장에 나가서 차 한잔 마시는 게 사치로 여겨졌다.
매일 아침에 시장통에 나가 좌판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를 내려놓고 느긋하게 라팔예라는 미얀마 전통차를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좋았는데 지금은 그럴 짬이 없다.
자고 일어나면 바로 현장으로 나가 종일 현장에 붙어 있어야 한다.
잠시도 눈을 돌릴 짬이 없다.
매오클라의 새벽은 유난히 싱그러웠다. 언제나 그렇지만, 반바지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으로 나가는 길, 싱그러움을 만끽하며 낮은 집들이 줄지어 선 골목을 달리면, 나도 모르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나를 호명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어이! 꼬리아 떵애징!
떵애징은 친구라는 말, 친구라는 말에는 메이쒜도 있는데 그건 좀 거리가 있는 말이고 떵애징은 어릴 적부터 친구, 일테면 동무라는 말에 가까워 친근감이 있다.
떵애징?
오토바이를 급하게 세우고 돌아보면 판자로 세운 낮은 담 너머에서 얼굴이 새까만 곱슬머리가 부르거나, 아니면 맞은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놈이 부르는 소리다.
아, 저놈이었구나.
야! 이 되바라진 자식아! 친구라니? 너 몇 살이나 처먹었어?
그렇게 소리치고 달리지만, 무척이나 반가운 놈들이다.
그렇게 마주치는 녀석들은 꼭 내게 밥을 먹었느냐고 묻는다.
오토바이 중고 시장에서 얼굴을 익힌 놈들이 대부분인데 이 매오클라 내가 모르는 골목에 산재해 있다.
중고 오토바이 시장.
그곳에서는 크고 작은 일이 날마다 무수하게 일어난다.
그곳에서 한 놈을 잡고 내일은 어디를 가자, 뭘 하자, 약속하고 다음 날 데리고 논다. 나이야 많든, 적든 상관없다.
잘 놀아주면 그보다 고마운 일이 없다.
중고 오토바이 시장에 죽치며 커피를 마시다가 내가 땀이라도 흘리면 어느 놈인지 부채를 부쳐주는 놈도 더러 있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안된다.
가끔 집에서 가구를 재배열한다거나 냉장고를 옮길 일이 있으면, 오토바이 시장에서 죽치던 놈 일고여덟이 나타난다. 한둘이 해도 충분할 일인데 그렇게 나타난다. 그 일은 끝내면 부근의 좋은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푸짐하게 산다.
젊은 녀석들이라 먹성이 좋다.
먹는 게 보기 좋아, 필요하지도 않은 일에 녀석들을 동원하곤 한다.
마당에 부서진 타일도 깨서 없애고, 다시 깔고, 페인트도 다시 하고. 녀석들은 새벽에 나오라고 해도 순순히 나온다.
어떤 녀석은 내가 나타나니, 오토바이 시장에 생기가 돈다는 놈도 있다.
흥정
매오클라 동네 골목에는 매일 새벽 장이 섰다 길거리 카페 앉은뱅이 플라스틱 의자에 무거운 엉덩이 내려놓고 사백 짯하는 모닝커피 매일 새벽 마셨다 커피에는 바로 옆 좌판에 늘어놓은 꽃가루 진하게 내려앉았다 새벽에 서는 장은 흥정으로 분주했다 배부른 여자 지난밤에 떨어진 달을 안고 지나갔다 그 반대편으로 인도계 하나 자전거를 타고 지느러미 흔들며 물을 차고 올라왔다 이 동네 놈이 아니었다 커피 눈길이 인도계 검둥이에게 쏠렸다 옆에 앉은 꼬아웅 눈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 마 버마족은 은연중에 인도계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경향 있다 하지말라니깐 옆구리를 찔렀다 버마족이 지닌 아가미가 인도계는 없었다 뭐든지 꿀꺽 삼켰다 인심 지독한 그들은 다 부자였다 인도계가 퍼지는 햇살 속으로 사라지고 커피 마시던 꼬아웅 커피잔 옆에 놓인 내 지갑에 눈길 주더니 빠이산에잇 바꾸자고 제의했다 그럴까 흥정에 들어갔다 디자인 예쁘고 손때 적당히 묻은 내 장지갑은 커서 돈을 많이 넣을 수가 있었다 미얀마 직원 서너 명 월급을 담아도 지갑에 스마트폰 들어갔다 그게 마음에 들었던 모양 바꾸자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꼬아웅 지갑 살펴보니 어디서 구했는지 놀랍게도 미제인데 통가죽이었다 투박해 보이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소장 가치로 따져도 손해날 게 없었다
얼마 줄래
선수를 쳤다 흥정의 물살로 슬쩍 밀어 넣으며 녀석의 가장자리를 조금 뜯어먹었다 이만 짯 고개를 젓고 바짝 달구며 또 가장자리를 살짝 베물어 먹었다 맛있었다 사만 짯으로 올려서 돈부터 받고 서로 행운의 지갑이라며 내용물 바꿔 담았다 내용물 꺼내 보니 내 지갑 완전히 국제시장 미얀마 짯 중국 위엔화 일본 엔화 몽골 투거럭 베트남 동 태국 바트 달러 조금 유로화 조금 거기에 꼬아웅이 내민 사만 짯을 보태서 챙겨 넣었다
미얀마에서는 한 번 거래하면 물어주는 법이 없다 어떤 경우라도 물리지 못한다 사 보고 제품에 하자가 발생해도 마찬가지 제품에 하자가 발생하면 실랑이 벌이지 않는다 그냥 버리고 새로 사는 족속이다 갑자기 그런 버릇이 마음에 쏙 들었다 둘이서 마신 커피값 팔백 짯 내가 내야지 꼬아웅에게 웃돈 받고 바꾼 지갑은 사실 삼 년 전 골목 저쪽 도로 건너 난전에서 만 짯을 주고 산 물건 지금 그 사실 말할까 아니 내일 말해 줘야지 가자 생선을 파는 좌판대를 사이에 두고 인도계 여자 하나와 버마족 아주머니가 생선 한 도막을 놓고 흥정하고 있었다 이 나라는 모든 게 흥정이다 심지어 택시도 아직 흥정이다 미터기가 없다 잘못 흥정하면 바가지 쓰야만 했다 흥정은 인간들만이 지닌 지극히 인간다운 거래에 묻은 정 골목의 물이 깊겠다 지갑 챙겨 물살을 갈라 지느러미 힘차게 꿈틀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꼬아웅 그 지갑 메이드 인 코리아로 짐작했겠다
나는 그 지갑 한국산이라고 말한 적 없다 절대로
내 놀이터, 중고 오토바이 시장에 나오는 놈은 전부가 친구들이다.
수직적 관계를 형성한 게 아니라 수평적 관계다.
나이는 상관없다.
친구라고 해도 나이로 또래는 없다. 그런 할아버지들은 오토바이를 탈 줄도 모르거니와 중고 오토바이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내 또래를 찾으려면 경로당에 가야 만날 수 있을 터. 어쩌다 오토바이 시장에 죽치는 놈 중에서 쉰이 넘은 놈도 있지만, 그들은 내 친구가 되기에는 유효기한이 지난 퇴물이다.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생각이 굳었다. 하여, 나는 어린 녀석들 무리에 끼인다. 사십 대이거나, 그 녀석이 거느린 똘마니들.
아니나. 쉰이 넘은 놈 중에서 한 놈은 줄기차게 나온다.
내가 가면 무슨 말이라도 걸고 싶어 하는 눈치인데 영어를 한마디도 모르니 그냥 손짓만 하는 작자. 나이가 쉰다섯이라고 했다. 이 작자는 제 아들 둘과 같이 논다. 오토바이 거간꾼도 아닌데 매일 그곳에 나오는 삼부자를 보면 참 재미가 있다.
아들 중에 큰놈은 서른셋인데 아직 결혼 전이고, 작은놈은 작년에 결혼식을 올린 모양인데 삼부자 다 직업이 없다.
그냥 오토바이 시장에 와서 마냥 논다.
노는 게 일이다. 커피를 한 잔 사무며,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집세가 좀 나온다고 했다. 그 집세가 나온다는 집에 언젠가 지나가다가, 불러서 들여다보았더니, 방을 세주기 위해 그 많은 식구가 거실에 해당하는 봉당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자식하고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삼부자가 앉으면 다른 사람들은 끼어들 틈이 없다.
이 작자는 담배 하나가 생기면 삼부자가 같이 피운다.
저 아버지 입술에 꽂힌 담배를 아들 녀석이 빼서 두 모금 빨고 입술에 꽂아주면, 또 다른 아들이 빼서 두 모금 빨고, 제 아버지 입술에 꽂아준다. 여기 사람들은 담배는 부자간에 피워도 술은 부자간에 먹지 않는다. 한국과는 좀 다르다.
다른 놈들은 덤덤하지만 나는 그게 하도 이상해서 그 삼부자를 보면 담배를 하나 권한다.
한 개비 이상은 절대 주지 않는다.
그러면 반드시 셋이서 핀다. 그 삼부자 중에서 아비가 되는 작자는 내 친구이기에는 늙었고 나는 막내 놈에게 심부름도 시키고 데리고 논다. 내가 막내를 데리고 놀면 아비라는 작자는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그 아비라는 작자는 오토바이에 대해 전혀 모른다. 반면 나는 오토바이를 조금 안다. 관심도 있고.
그러니 아이들과 말이 통한다.
대형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을 소유했던 적이 있다. 물론 한국에서다. 그 오토바이는 매오클라 중고 시장에서 전설이다. 이곳에서 그런 오토바이를 찾기는 힘들다. 미얀마 전역을 뒤지면 있긴 하겠지만, 잘 꾸민 그 오토바이 사진 하나만으로도 오토바이 시장에서 녀석들을 군림할 수가 있었다.
여기서는 할리데이비슨은 찾지 못했고, 보기 드문 일본 야마하에서 건너온 드랙스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것도 오토바이 시장에서 인기였다.
타고 나가면 서로 닦으려고 쟁탈전이 일어날 정도였다.
코로나가 터져 쫓기듯 들어갈 때까지, 천이백 시시의 대형 오토바이가 이 땅에 있었다. 멋지게 꾸며놓은, 그 오토바이가 이곳 중고 시장을 평정했는데, 그게 없어졌다. 내가 못 나오는 사이 아웅 살린이라는 녀석이 허락도 없이 팔아먹었다.
단지 생활비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35개월, 생활비를 주지 못한 내 탓이었다. 팔아먹었다는 녀석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렇게 좋은 오토바이를 너무 싸게 받아서 서운하다고 했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그런 오토바이에 관심이 없다.
대형 오토바이만 만졌으니, 오토바이 중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오토바이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한마디 거들면 의견은 존중된다. 그 존중된 한마디로 거래되는 오토바이 값에서 커피나 천 원이 내 몫으로 떨어질 때도 있다.
천 원, 아니, 천 짯.
그게 재미있지만, 오토바이 시장에서 녀석들에게 민폐만 끼치는 게 아니다.
가끔은 도와주기도 한다.
가령 비가 오는데 이 녀석들 넷이서 인근 타욱재나 모비에 갈 일이 생긴다면 가차 없이 차량을 지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녀석들은 그 비를 다 맞고 그 위험한 길을 기어이 갔다가 온다. 가는데 한 시간, 오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빗길을 오토바이로 기어이 나선다.
그럴 때 차는 요긴하게 쓰인다.
녀석들 서너 놈을 태우고 다녀오는데, 갔다가 오는 과정에서 돈독한 정을 나누기도 한다. 그렇게 가는 외곽 도시엔 볼거리가 있다. 하다못해 그 외곽의 뒷골목이라도 보고, 그 동네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게 큰 즐거움이다.
내가 기름값 만 원을 들여서 가면 녀석들 네 놈이 팔천 원의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갔다는 사실이 포착될 때도 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내색하면 안 된다.
녀석들의 사업이고 자존심이다.
기름값 만 원은 바탕으로 깔고 녀석들의 팔천 원을 존중해야 한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그렇게 만 원을 들여서 가더라도, 팔천 원의 수익이 보장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허탕을 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돌아오다가 차를 세우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하나씩 돌리든지, 아니면 그 도로변 난전에 파는 수박이라도 한 덩이 사 가로수 그늘에서 먹고 돌아온다. 녀석들의 사업이라는 게 그렇다. 전화를 받고 그 먼 곳으로 가더라도 공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 있었구나 이 녀석들
오토바이 수리공 검둥이 멧소도 털복숭이 하체 깔고 볼트 야물게 죄고 있었고 부자간에 마주 앉아 담배를 번갈아 한 모금씩 빨던 위차싱 부자도 커피잔 앞에서 내 무릎을 쓰다듬으며 좋아했고 옆집 철공소 윈자모 내가 왔다고 땅콩 조림 한 접시 보내왔고 골목 야자수 그늘에 앉아 고무줄 만들며 맛있게 생긴 코리아 오빠라고 부르며 지나가면 어눌한 발음으로 옵빠 안냐세요 외치던 퓨퓨 긁은 허리와 미쑤의 펑퍼짐한 엉덩이 여전히 안녕했고 스마트폰 번역 프로그램으로 건강교통을 돌보십시오라는 한글을 만들어 보여주던 꾸뗀은 오토바이 안전 운행 당부하는 얘기였고 머리빗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미용실로 데려가던 칠린의 이빨 무사했고 오토바이 세차장 꼬아웅이라는 녀석 비누 거품 잔뜩 묻은 손으로 대뜸 악수 청했고 심한 당뇨로 발등이 헐어 늘 붕대를 감고 다니던 론차잉 영감 손을 꼽았는지 딱 삼 년 만에 동네 유지 돌아왔다고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손뼉 치며 활짝 웃었다
그렇다 나는 매오클라 동네 유지였다 나만 몰랐다
지난번에 들어왔을 적에 반가움을 넘어서 뜨겁게 맞이한 놈들.
불쑥 나오는 말로, 친구라고 해도 싫지는 않다. 이 나라에서 내 존재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니, 싫을 수가 없는 문제다.
꼬리아 떵애징!
오토바이를 타고 처음 가는 골목을 지나가면 흔히 들려오는 소리다. 돌아보면 얼굴만 아는 녀석들. 오토바이, 싸잉께 시장에서 알게 된 놈들이다. 그런 놈을 만날 때마다 이름과 나이를 묻지만 그걸 다 기억하기에 내 암기력은 늙었다.
아주 반갑다는 목소리.
가령 어젯밤에 저쪽 골목에서 생맥주를 마셨는데 그 가게에서, 안면이 있는 놈을 만나 인사를 하면 그 자식들이 마신 테이블의 술값은 내가 계산한다. 이 동네에서 나는 발이 넓다. 내가, 어느 집이나 생맥주 가게에 발을 들여놓으면 분명히 아는 놈을 마주치게 되어 있다. 하여, 항상 주머니를 열어놓고 산다. 그걸 각오하고 집을 나선다.
많아 봐야, 만 원 남짓이 고작.
달러로 계산하면 4불 정도, 한화로 계산해도 오천 원 안팎, 그걸 모른 척하면 여기서 발붙이기 힘이 든다. 일단 계산을 먼저 해주든가, 그것이 여의치 않는 분위기라면 맥주라도 두어 병 녀석들의 테이블에 올려준다. 이곳의 맥주는 상당히 맛있다. 미얀마 비어, 라는 상표인데 일본의 식도락가들이 추천하는 맥주다. 그렇게 하면, 듣기 좋은 소문이 매오클라 바닥에서 풍성하게 돋는다.
더운 나라라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게 녀석들에게는 자랑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인심을 뿌리면 효과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지나가다가 아는 놈을 마주치면, 그놈이 지난밤에 맥주를 얻어먹은 놈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집으로 끌어들여서 쌀국수라도 한 그릇 먹이고 싶어 한다. 그런 눈빛이 간절하다.
골목에서 만나는 놈들의 이름과 나이를 일일이 다 기억하기에 내 머리는 늙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름을 아는 놈은 오토바이 시장에서 그래도 입김을 행사하는 놈, 서너 놈뿐이다. 그러나 그놈을 수하로 만들어 놓으니, 그 밑에 있는 놈들은 전부가 알아서 군다. 수하?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그놈들은 내가 오토바이 시장에 나타나면 냉큼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주는 놈들이다.
별일이 없으면 오토바이 시장에 나가서 시간을 죽이는데 지금은 바쁘다.
오토바이 시장, 시간이 가장 잘 가는 곳이다.
중고 오토바이 시장이라 하니. 옛날 우리나라의 우시장처럼 넓은 공터에 오토바이가 빼곡하게 서 있을 거라고 연상되겠지만, 아니다.
재래시장 뒤편, 하찮은 찻집, 그렇다. 하찮다. 그 찻집은.
그 집 추녀 밑에 대나무 의자를 놓고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논다.
오토바이는 찻집 앞 도로에 서 있다.
많게는 서른 대 남짓, 적으면 열댓 대가 찻집보다 높은 도로에 서 있다.
이 도시의 오래된 집들은 전부가 도로보다 낮다.
그 집도 마찬가지다. 추녀 밑에 앉아있으면 도로에 선 오토바이 바퀴가 머리보다 높다. 늘 오토바이를 쳐다보고 거래한다. 그렇게 작고 후미진 곳이지만, 소문이 났는지 꽤 멀리서 팔거나 사러 모여든다.
그 무리에 끼어 죽치다가, 거래되는 가격을 보고 한 대가 팔리면 커피를 한 잔 얻어먹고 두 대가 팔리면 구전이라며, 천 원짜리 한 장을 기어이 얻기도 한다.
며칠째 바빠서 오토바이 시장에 가지 못했으니, 개똥이는 내가 왜 며칠째 보이지 않는지 궁금해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개똥이, 원래 이름이 게톤인데 나는 개똥이라고 부르는 녀석인데 오토바이 시장에서 거간꾼 중에는 큰손이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화물차를 가지고 나가야 하나, 짐을 실을 게 있는가. 아니면 오토바이로 나가야 하나 속셈을 하고 오토바이로 나가면 골목에서나 오토바이를 불러 세운 녀석들, 알아주는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요즘은 그런 녀석들을 뒤로하고 골목과 시장을 빠져나가 철길 부근에 닿으면 겁이 덜컥, 난다. 철길 부근이 바로 아웅 살린의 집이다.
집이 아니라 현장이다. 집이 이젠 내 입에서 현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오토바이가 현장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닿으면 겁이 난다.
이 자식이 밤새 또 무슨 짓을 해놓았을까?
여기서 말하는 이 자식은 바로 아웅 살린이다.
어제 하던 작업을 그대로 두면 좋은데, 도와주려는 마음이야 좋다만, 쓸데없는 일을 해서 되려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차 이야기를 했지만 되지 않는다.
*
헌 목재가 없어 집을 못 짓는다?
그까짓 중고 목재가 사라졌다고 집을 못 짓는다?
그건 이 시대의 진정한 건축업자가 아니다.
계약을 파기한 집에서 나올 중고 목재, 그건 물 건너갔다.
야! 이 인간아!
집은 목재로 짓는 게 아니야. 마음으로 짓는 것이지.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 모르겠다.
6. 세 번째 집
삼십이!
나는 삼십이라는 숫자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서른둘이라는 서수에는 무덤덤한데 32라는 숫자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32라는 숫자 앞에서 내가 자유롭기에는 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1932년생, 주민등록번호가 32로 시작되었기에 나는 그 숫자 앞에서 늘 죄인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삼십오 년이 되었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 한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냐만 나는 그 정도가 심했다. 나는 지금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나이를 훌쩍 넘어섰다. 그래도 늘 아버지께 묻고 배운다. 항상 배울 게 있고, 어려우면 아버지를 찾는다. 32 숫자 속의 아버지는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왔고 어려운 나를 응원했다.
32의 위력은 대단했다.
아웅 살린의 장인어른이 아흔둘이라는 말을 듣고 출생 연도를 파악하니 1932년생이었다. 그 숫자에 나는 주눅이 들었다.
아웅 살린의 장인어른!
그 어른을 두 번째 만나고 32년생이라는 걸 알았다.
그걸 알고 건축 자재 가격 조사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의 조립식 패널은 이 땅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게 있으면 쉬울 텐데, 지으려면 철골을 사다가 지어야 했다. 그게 가장 싸고 빠르게 짓는 방법.
조사하니,
제철소나 철강회사가 없는 나라라 그런지, 쇠 값이 상당히 비싼 나라다.
쇠로 만든 사각 파이프 하나가 인부 네 명의 일당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자잿값이 얼마나 드는지 확인하고 집을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게는 세 번째 짓는 집인데 내가 살아갈 집이 아니다.
32
32라는 숫자에 지어서 바치는 집.
기어이 시작했다.
이 시대의 진정한 건축업자가 되기 위해서, 줄자를 사서 허리춤에 찼다.
단위는 미터가 아니라 피트라는 사실, 익숙하지 않거나, 바뀐 건 그 단위뿐이다.
세 번째 집
집을 짓고 있네
짓는 집은 평면이었네
내 생의 세 번째 집을
입체적으로 짓지 못하네
몸이 살 곳이 아니라
마음이 머물 곳이라네
집이 아니라 다시 나를 지어보는 일이라네
땅 위에 짓는 이게 마지막일 거라는 기분이네
다음 집은 땅 안에 짓는 집이 분명할 터
지붕이야 봉분이라는 이름으로
지면 위로 약간 보일 것이네
마음을 세우며
몸이 주저앉지 말아야 했네
집은 자고로 지어서 들어앉으면
아담한 생각을 매만지며
쉴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네
마음을 지으며
몸이 주저앉지 말아야 했네
이제 윤곽이 잡히는 집에
늙은 거미
외줄을 매달아 제집을 짓네
석양 한 조각 외줄에 매달리네
이 땅에 와서 집 장사를 했으니 집을 수십 채 지었다, 단독도 있고 연립도 있다.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이 땅에 지어서 분양했거나, 지금 짓다가 중단된 집을 합치면 가구, 세대수로 칠팔십이 될 것이다. 연립을 하나로 셈하지 않고 여섯 세대로 친다면, 그 많은 집 중에서,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수익을 배제하고 오로지 사람이 살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짓는 집으로는 세 번째 집이다.
고래 잡는 칼을 새우 잡는데 들이대서 그런가?
뭔가가 맞지 않았다. 허물어지는 건 옛집이 아니라 혹시 내가 아닌가? 그런 의심이 들었다.
도망간 뱀도 잡아야 하고, 집도 지어야 하고,
일하는 내내 내가 잡아야 할 자식! 어떤 방법으로 잡을까?
경찰이냐, 아니면 조직 폭력이냐?
그걸 가늠하고 있었다. 덤덤하다고 했지만, 그 생각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펄럭이는 정신을 한 곳에 붙들어 두기 위해 집짓기를 시작한 게 아니냐고 직설적으로 물어도 변명할 여지는 없다.
집을 허물기 전,
자잿값을 파악하고 애초에 생각했던 비싼 자재는 몇 개는 다른 자재로 바꾸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정도면 가격이면 자투리 돈으로 만만하다 싶어 아웅 살린의 장인어른을 찾아갔다.
그때 내 머리에는 집을 어떤 식으로 짓겠다는 사진이 박혀있었다.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 시작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된 모습은 어떻겠다. 공사의 순서에 따른 몇 장의 사진이 이미 머릿속 앨범에 박혀있었다.
그 사진을 꺼내 보며 집을 지으면 된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땅은 좀 이상하게 생겼지만, 집은 이상하게 짓지 않겠다. 한국에서는 그런 땅에 집을 짓는다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땅이다.
십에 육십!
이 나라에서 통용되는 땅 크기를 일러주는 말. 세로 10피트에 가로 60피트라는 말이다. 보통, 이 나라의 땅은 20에 60인데 이 땅은 그 반이다, 이런 땅이 이 나라에는 수없이 많다. 가로 10 피트면, 1피트가 30.5 센티미터니까, 정확히 계산하면 3 미터 5센티. 거기에서 옆집과 간격으로 한 뼘을 띄우면 3 미터가 못 된다.
십에 육십! 좁고 긴 땅,
한국에서는 텃밭이나 주차장으로 이용하지, 이 땅에 집을 짓는다고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땅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그런 땅이 버젓이 사고 팔린다. 한국 평수로 계산하면 열일곱 평 남짓한 땅, 그것도 반듯한 게 아니라 길쭉한 땅. 이 도시는 자연부락으로 형성된 게 아니다. 예전에 반듯하게 구획정리로 땅을 나누어 도로도 반듯하고 집터도 전부 반듯한데. 왜 하필 이렇게 잘랐을까? 그게 의문이다. 이렇게 생긴 땅은 이 도시에 부지수로 늘려있다.
어쨌거나, 담판을 지으려 32라는 숫자를 찾아갔다.
내가 찾은 것은 그 어른이 아니라 숫자 32였다.
오토바이가 집 앞에 서자 그 어른은 내가 왔음을 감지했던 모양,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일어서시는 게 밖에서 보였다. 그 어른은 연세는 있지만, 훤칠한 키에 꼿꼿한 허리, 연세보다 상당히 젊게 보였다.
갈 적마다 얼마간의 용돈을 드렸으므로 그 어른은 내가 가면 지난번에 받은 돈으로 뭘 했다, 어디에 썼다는 말을 들려주곤 했다.
노인께서 그 돈으로 일군 물건을 보여주며, 참 좋다는 말을 들어보니 그게 싫지는 않았다. 돈은 분명히 그런 곳에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날은, 지난번에 받은 돈으로 안경을 새로 샀는데 너무 밝아 좋다는 그 어른의 말씀을 들으며 안경을 닦아드리고는 이 안경보다 더 큰 선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큰 선물? 집 이야기를 꺼내니 그 어른은 손사래를 쳤다.
그럴 돈도 자신에겐 없고, 내게 신세를 지기에 너무 큰 돈이라 그 어른의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은 그 어른의 진심이었다.
그런 마음은 말씀하시는 표정만으로 단박에 읽을 수가 있었다.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빨리, 가장 튼튼한, 집을 짓는 방법을 나만 알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그건 장담이라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단호하게 전해드린 말이었다.
집이란 구체적으로 뭔가?
얼른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다. 집을 지어서 살기에 편하고, 거기다가 집안이나 밖에서 봐서 예쁘게 나오면 좋고, 튼튼하면 더 좋고, 이 세 가지 목적에 충실하며 집을 짓는데 싸게 먹히면 더 좋고.
이게 금상첨화가 아닌가?
그 조건에 근접하게 다가설 자신이 있었다.
집 얘기를 꺼내자 손사래를 치는 그 어른께 돈이 많이 들지 않는 방법을 나만 알고 있다며 그날 바로 이웃으로 피하고 집을 뜯겠다고 노인을 설득했다. 거기에 덧붙인 말은 오늘이 날이 참 좋은 날이라 했다. 좋은 날? 그날이 입춘이었다. 입춘이면 좋은 날이지. 한국의 입춘이라고 해도 노인은 알아듣지 못했을 터이다.
집을 철거하는데, 인부 둘을 사서 그날 오후 두어 시간에 걸쳐 뜯으니 맨땅이 되었다. 뜯어버린 집 아래 오물이 고여 썩은 걸 보니, 정말 잘한 일이라 싶었다.
32 저 노인이 저 오물 위에 살고 있었다?
들어가는 돈은 뒤에 생각할 문제다.
뜯은 목재는 하나도 쓸 만한 게 없었다. 하다못해 집을 지으면서, 그 공사 현장에 버팀목이나 허드레로 쓸 각목도 건질 수가 없었다.
썩은 목재는 다 버리고 0으로 만들었다.
맨바닥! 그렇다.
맨바닥에서, 0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집을 짓는데, 집이 제시하거나 요구하는 금액은 없다.
0이다.
0에서 시작한다. 돈대로 지으면 된다. 이백이 있으면 이백짜리 집을 짓고 오백이 있으면 오백짜리 집을 만들면 된다. 물 위에 원두막처럼 세우고 비만 막으면 된다. 창이나 문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런 집에도 사람이 산다. 내 머릿속 도면에 그린 집은 수준으로 따지면, 그런 집보다 약간 상위에 있는 집이 사진으로 박혀 있었다.
어쨌든 시작했다.
시작했기에 마무리를 향해 달린다.
완성된 집의 사진은 오직 머릿속에 들어있다. 집을 짓는다는 건, 소설을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제목을 붙이고 시작하면 어떤 형태로든, 소설이 완성된다. 소설을 쓰는 중간에 그 정리되지 않은 글을, 누구에게 보여주고 문학적 공감을 구할 수는 없다. 집도 마찬가지다. 짓는 중간에 아늑한 집이라는 사실을 알리기는 어렵다. 소설은 제목을 붙였기에 끝을 보는 것이고, 집은 옛집을 허물었다는 사실 하나로 탄생하는 창조물이다.
나는 집을 짓고 있다.
일이 늘어져서 내가 처지고 있지만, 분명히 완성될 집이다.
소설은 잃어버릴 수가 있어도 짓던 집은 잃어버릴 수가 없다. 소설은 가끔 0으로 돌아가지만, 집은 0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감미로웠다.
소설을 0으로 만든 적이 있다. 완전히 0이었다.
0이라는 숫자는 당시에 극심한 상실감과 더불어 공포를 가져왔다.
다시 없어지면 어쩌나?
그 공포에서 한동안 몸을 움츠리고 글을 쓰지 못했다.
노트북을 잃어버린 것이다. 외장하드인 USB를 옆구리에 꽂은 채 노트북이 사라졌다. 그런 일은 예고나 전조증도 없이 단 하룻밤 만에 일어났다.
그날도 새벽에 글을 쓰기 위해 사무실에 내려갔다.
삼 층 집에서 이 층 사무실로 내려가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사무실에 내려갈 적에, 반드시 씻고 출근 복장을 갖추고 내려간다.
밤에 자다가 사무실에 뭘 잠깐 가지러 가는 경우를 제외하곤, 단정하게 복장을 갖추어 사무실이 집이 아니라는 걸 자신에게 인식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반바지나 잠옷 차림으로 사무실에 죽치게 된다.
그날 씻고 사무실에 내려갔는데 0이었다.
노트북이 사라진 것이다.
집 뒤에 고등학교가 있어 뒤란의 화장실 부근에 학생들이 숨어들어 피운 담배꽁초를 청소하며 욕을 한 일은 더러 있었으나, 창문이 열려있고 노트북이 사라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뒷집 담 위에 올라서면 바로 사무실 창에 손이 닿는 구조였다.
그런 구조의 불찰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광분했다. 실의에 젖었다.
소설 80여 편이 0으로 둔갑했다.
다른 곳에 이미 발표해서 활자가 된 일고여덟을 제외하곤 몽땅 날아갔다.
며칠간 글의 맥을 잡지 못했고, 발표한 매체를 뒤적여 그걸 보고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은 참혹했다.
0으로 돌아간 건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두 해쯤 지나서 똑같은 사태가 발생했다.
그때 40 정도의 숫자를 올리고 또 0으로 만들었다. 외장하드인 USB를 늘 빼서 가지고 다녔으나, 똑같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지던 날은 하필이면 노트북 옆구리에 꽂아둔 상태였다.
광분했다. 사무실 집기가 온전한 게 없을 정도로 광분했다. 열흘쯤 지나서 사무실 창문마다 방범창을 설치했고, 노트북을 다시 구했으며, 겨우 자판의 자모 배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블로그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여,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이름을 걸고 카페를 만들어 글을 쓰면, 그 글의 마침표를 찍으면, 카페에 올린다.
그 카페에도 함정은 도사리고 있었다.
비번을 걸어놓은 카페에 함정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핸드폰이 먹통이 되어 바꾸러 갔다. 최근에 나온 싱싱한 놈으로 골라서 기기는 할부로 처리하고 쓰던 핸드폰의 저장된 내용을 새 걸로 옮기는 과정.
카카오 계정으로 통합할까요?
핸드폰 가게의 점원이 대수롭잖게 던졌다.
편한 대로 하세요.
진열대의 다른 핸드폰을 구경하며 했던 말이 함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게 불과 사오 년 전쯤이었다. 핸드폰을 바꾸고 그날 밤 비행기로 이 미얀마에 날아왔다. 사오 년?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이었으니, 삼 년은 좀 넘었을 것이다. 여기서 인터넷 사정이 열악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기서는 전화기를 두 대 가지고 다닌다. 현지 번호의 전화와 로밍된 한국 전화.
현지 전화로 유료 인터넷을 연결하여 모바일 하스팟으로 한국 전화에서 인터넷을 쓰는데 내 카페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계속 아이디 오류가 계속 발생했다.
당시에 내 카페는 이름을 앞에 넣고 소설 세계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였는데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게 왜 이러나?
도대체 왜 이러나?
원인을 몰랐으니 밤새 새로운 아이디와 비번을 만들어 진입을 시도했다. 새벽녘이 되어 카페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내 카페의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게 아닌데? 왜 이러지?
나와서 또 비밀번호를 바꾸고 아이디를 바꾸어 주인장으로서 진입을 끝없이 시도했다.
아침을 먹으며 생각하니 핸드폰 가게에 의심이 갔다.
원인은 거기에 있을 거다.
급했다.
국제전화를 걸어 파악하니, 카카오 계정으로 통합하며 핸드폰 가게 점원이, 저 늙은이에게 아이디가 있을까? 넘겨짚고 제 가게 이름, 한글을 영문으로 입력한 아이디로 바꾼 것이었다. 천지통신이라는 가게 이름 중에서, 천지라는 그 한글을 영문으로 치고 내 전화번호를 치면 들어갈 수가 있는데, 그 점원은 내 아이디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미 밤새도록 주물럭거려 아이디를 변경했으니 주인장으로서 들어갈 길이 없었다.
이건 보통의 사건이 아니었다.
그 점원에겐 대수롭잖은 일인지 모르지만, 내겐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그 카페가 아니더라도 내 문서에 그 글들이 있지만, 이미 그 창고나 서랍의 용도로 만든 카페에는 160명의 회원이 있었다. 소설을 한 편 써서 카페에 보관하면 조회가 많으면 120회 정도, 적으면 70회 정도가 나온다.
내 소설은 오로지 그 카페에만 읽히고 있었다.
그 조회를 다 믿으면 안 된다. 한 사람이 카페에 들어와 한 번에 소설 한 편을 다 읽지는 않는다. 서너 번 들락거리며 읽는다고 생각하면 소설은 약 스무 명이 읽는다고 보면 된다.
어쨌거나 창고나 서랍의 용도로 만든 카페지만, 여기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예정보다 일정을 앞당겨 한국으로 들어갔다.
집에 도착해서 가방도 풀지 않고 바로 핸드폰 가게로 달려갔다.
급하게 달려갔지만, 명쾌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사라진 그 가게 이름으로 만든 아이디를 치고 아이디 찾기를 시도했으나 야속한 사이버 공간은 문이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하나 알아낸 것은 다음이나 카카오라는 포털사이트는 고객을 위한 일반 전화가 없다는 사실, 문의 사항이 있으면 메일로 문의하고 답을 기다려야 한다는 답답한 사실,
구구절절 쓴 메일을 보내고 아이디를 알려줄 답을 기다렸지만, 사이버는 온정이 없었고 인정이 없는 사이버일 뿐이었다.
카페를 살릴 방법을 시도하다가 이미 주인 노릇을 할 수 없는 그 카페의 글들은 드래그 금지를 걸어놓지 않았다는 사실,
드래그 금지?
그걸 어떻게 하는지, 할 줄을 몰라서 그런 걸 설정하지 않았는데, 정말 그게, 구명줄이 되었다. 사무실 일을 보는 여동생과 둘이서 그 죽은 카페에 손님으로 들어가 소설을 비롯한 모든 글을 드래그해서 새로 만든 소설 마당이라는 카페로 옮기는 데 나흘이 걸렸다. 그래서 지금은 이름 뒤에 소설 마당이라는 카페를 창고로 쓰고 있는데 글은 다 옮겨올 수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옮기지 못한 한 가지가 있었다.
회원은 옮겨올 수가 없었다. 죽어버린 카페에 손님으로 들어가 코너마다 방을 붙였다. 이 카페가 이러이러해서 죽었으니 소설 마당으로 오라고.
옮겨온 회원이 40여 명, 그나마 0으로 만들지 않고 함정에서 구한 게 다행이다.
이렇듯,
소설은 0으로 돌아갈 수가 있지만, 집은 지으면 어떤 경우에도 0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만 아웅 살린이라는 녀석이 밤마다 조금씩 올라가는 숫자를 뒤로 되돌리는 일이 있긴 하지만 그건 큰일이 아니다.
집은 지으면 0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0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시실, 얼마나 흥미롭고 감미로운 사실인가?
건물을 짓다 보면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한 대로 집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일, 내가 말한 대로 움직여 내 머릿속에 그린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면, 쭉 빨려온다는 느낌, 그럴 땐 희열로 다가온다.
아마도 설치 예술가가 완성되고 있는 제 작품을 보는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
글을 쓰다가 예기치 않은 참신한 문장을 건졌었을 때의 기분, 찌릿하게 전율이 이는 아포리즘을 만들었을 때의 희열, 그런 게 집을 짓자 보면 다가올 때가 있다.
6. 차욱새똥
그런데 지금 짓고 있는 이 집에서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가 없다.
이미 내 생각과는 동떨어진 집이 되고 있다. 이웃의 참견과 공무원들의 간섭이 머릿속의 도면을 여러 번 수정하게 했다. 집을 지으면서도, 종일 현장에 붙어 구워지거나 삶기면서도 나는 나를 존중해야 했다. 나이가 있다.
나를 내가 존중할 나이.
나는 나를
친구가 저물었다
숭악한 놈
그렇게 욕을 먹더니 기어이 먼저 숟가락을 놓았다
추잡한 욕심 자린고비 제 것만 챙기는 죽음에는
조문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해외 출장 중에 접한 부음이었다
빈소를 찾을 다른 친구들에게 핑계로 충분했다
찢어질 듯 부푼 욕심보는
어디 두고 갔을까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 친구를 보내고 덤덤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를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내 중심에
들어앉은 나를 발견했다
갑자기 내 중심에 앉은 내가 귀하게 여겨졌다
나는 나에게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누구에게 느끼하지는 않았나
조심스럽게 내가 내 눈치를 보는 날이
날카로워졌다
쌍둥이는 나를 보고 느끼아저씨라고 불렀다
느끼하다는 말인데
그 애들도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되었겠다
나를 돌아보는 날이 잦아졌다
적어놓은 나를 퇴고하는데
자꾸만 기웃거리는 나
호명하니 답이 없는 나
나는 나를 다독이지 못해 내 앞에 서면
나는 벙어리가 되곤 했다
차욱새똥!
내가 나를 존중해야 마땅할 나이.
이 나이에 여기에 와서 이런 일로 자존심을 구기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자꾸 구겨진다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집짓기를 시작하니 이웃의 참견이, 이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심했다. 그런 건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은 문제였다. 원래 집터가 푹 꺼져서 물이 고였으니 터를 돋우는 거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옆집에서 걸고넘어졌다.
기존에 있는 제집보다 높으면 물이 제집으로 쏠린다는 이유에서다. 지붕을 다 씌울 것이라 물이 고일 빈 땅도 없을뿐더러, 경계에 담을 쌓을 것이라 물이 그대의 집으로 넘어갈 일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짓는 집을 돋우면 상대적으로 제집이 낮아 보이기에 잡는 트집이었다,
그 문제로 일은 한나절 중단되었다.
골목 안에 사는 통장이라는 작자를 불러다 중재를 하고 다시 시작했는데, 다음날 또 공사가 중단되었다. 희한한 일은 옆집 아저씨가 나와서 일을 중단하라고 하면 인부들은 가차 없이 손을 놓았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다음 날은 이렇게 붙여서 지으면 자기 집의 밖으로 열게 되어 있는 여닫이 창문이 완전히 열리지 않으니, 창문이 완전히 열리게 띄워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또 공사를 중단시켰다.
왜 남의 땅으로 창문을 열어?
당신 집 창문을 위해 내 땅을 이만큼 양보해야 하나?
정말 화가 나는 것은 그렇게 트집을 잡는 옆집 노인이 아니었다.
이 자식은 도대체 뭐 하는 자식이야?
그렇게 터무니없는 과정에서 아웅 살린이라는 녀석은 항변 한마디 못 하고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으면 그런 부당한 일에 제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데 무슨 잘못이나 한 것처럼 옆집 노인의 트집을 그냥 지켜보는 것이었다.
이게 이 자식의 능력인가?
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놈에게 저렇게 큰 내 재산을 맡겼었나?
뭔가 기분이 고약했다.
이 자식의 능력이 얼마나 되나?
그런 의심이 들면서도 나는 내 생각대로 터를 돋우고, 옆집 창문과 관계없이 벽을 쌓았다. 옆집의 그 고약한 노인을 친구로 만들어 입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집을 지으면서 제집에 피해를 준 게 아니다. 그냥 옆집에 거창하게 시작하니 시샘이 작용했다. 그렇게 트집을 부리던 중늙은이가 골목에 팔짱을 끼고 서성일 때, 기회를 포착하여 접근했다. 이 작자를 형님으로 만들어서, 형님이라 부르며 수하에 넣어야지, 그런 속셈으로 나이를 물었더니, 어이없게 차욱새똥이라 했다.
차욱새똥!
이건 너무 싱거운 거 아닌가?
차욱새똥을 뱉는 노인, 아니 녀석의 어깨를 치며, 다짜고짜, 친구! 라고 소리쳤다. 아주 반갑다는 투로.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둘이서 운전 면허증과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동갑임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친구로 만들어버렸다.
차욱새똥이면 63을 얘기하는 말인데 이 노인, 아니 자식은 나보다 열댓 살은 많아 보였다. 나보다 열댓 살은 많아 보였는데 노인이 아니었다. 신분증을 보니 생일이 겨우 보름 남짓 빠른 동갑이었다. 친구로 운을 띄우고 옆집에 들어가 차를 얻어 마시고 노닥거리다 나왔다.
친구니까, 뭐든지, 돕겠다는 약속을 기어이 받아냈다.
제 늙은 장모를 모시고 사는데, 가족이 둘러앉은 밥상머리에 끼어서, 녀석의 마누라에게 예쁘다는 말, 너는 행운아라 저리 예쁜 마누라를 얻었다는 말 등, 영양가도 없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냈다.
그런 지경에 이르자, 아웅 사린이라는 녀석은 어떻게 저런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보는 듯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야! 이 자식아! 사람은 이렇게 관계를 만들어가는 거야!
다음 날 아침, 현장으로 나가며 새벽에 열리는 골목시장을 지나가다가 생닭을 한 마리 반 샀다. 여기는 닭은 한 마리씩 팔지 않고 반 마리씩 나누어 파는데 떨이로 세 조각을 헐값에 샀으니 한 마리 반이다.
그걸 친구 마누라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건넸다.
건네면서 예쁘다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그다음 날은 지나가다가 제과점에 들러 케이크를 세 조각 샀다. 그걸 장모님에게 드리라고 했다. 보기 드문 코카콜라도 덧붙였다.
어이! 차욱새똥! 떵애징!
아침에 현장에 나가 이렇게 부르면 녀석은 금세 나온다. 잘 잤느냐고 묻고 녀석에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오늘은 무슨 일을 할 거니 도와달라고 한다. 그러면 늙은 녀석은 제집을 막고라도 모래를 부을 수 있도록 터를 마련해 주고 그곳을 빗자루로 말끔하게 청소까지 해준다.
사귀고 보니 아웅 살린에게 시키는 것보다 친구에게 시키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이제는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지만, 아침마다 옆집에 들러 가족끼리 먹는 밥상머리에 끼어 쌀국수를 한 그릇 비우고, 느긋하게 미얀마 전통차를 마시고 나가 일을 시작한다. 아침은 먹었지만, 같이 앉아 쌀국수라도 먹어 줘야 그 가족들의 마음이 편한 모양이다.
짓는 집, 외벽 마무리를 할 때는 제집의 거실로 건축 자재를 가지고 들어가 거실에서 창문을 통해 공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래! 이웃 간에 돕고 살아야지.
차욱새똥의 마누라는 아침이면 대나무로 엮은 모자를 가지고 나온다. 옛날 삿갓보다는 좀 작고 밀짚모자보다는 조금 크다. 계속 땡볕에 서 있었더니, 그게 보기에 딱했는지 매일 아침 가지고 나와 쓰고 일을 하다가 저녁이면 차욱새똥의 대문에 걸어둔다.
일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자 그 골목 안 사람들은 이미 내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었다. 나는 누군지 다 모르지만, 그 골목 사람들은 한국의 아웅 살린 사장이 그냥 지어주는 집이고, 직접 공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 집은 어떻게 지을 거라는 사정까지 다 아는 듯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들어서면, 누군가 인사를 한다.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오빠, 안냐세요? 그런 말은 전부가 한류 드라마를 보고 익힌 말이다. 미얀마의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안다. 오빠와 안냐세요를.
안냐세요, 그 말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 가끔, 김치를 들먹이는 작자도 있다.
김치?
자세히 들어보면 김치를 먹어보았다는 말이다.
김치를 얘기하다 보면 김머시기를 들먹인다.
김치와 김머시기가 동성동본이라는 말이야?
뭔가 문장이 맞지 않는다.
김머시기? 어눌한 발음을 해독하면 김정은을 얘기하고 있다.
그 정도면 김정은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설명을 장황하게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한다.
한국 남자들 군에 갔다가 와야 한다? 미얀마 남자들 머리를 깎고 스님 생활을 단 일주일이라도 해야 한다? 한국 군대는 왜 삼 년인데? 일주일 하다가 싫증이 나면 나오면 되지.
그게 그거다. 피차, 설명으로 이해는 불가능한 일.
동네 사람들이 신식 집짓기라 구경삼아 기웃거리고, 또 한 마디씩 참견하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이웃에서 지나다니다, 참견하며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뭔가를 한마디 들으면, 또 일이 벌어진다.
아웅 살린이라는 녀석은 밤에 그 일을 하고야 만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모른다.
왜 이 녀석에게 알아듣지도 못하는, 설명을 되풀이해야 하나?
왜요? 라고 되묻는 놈에게.
가슴을 두드리고 싶을 정도로 속이 터지고 있었다. 가장 힘든 일이 녀석을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 녀석이 알아들어야 인부들에게 통역할 게 아닌가?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일꾼들을 이해시켜?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이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건물을 수도 없이 지었는데, 생각하니 그때는 다 공정별로 도급으로 맡겼다. 인부를 사서 직접 지은 건 없었다. 공정별로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업자에게 주고 며칠 만에 차를 타고 나가, 뭐가 잘못되었나? 둘러보는 게 고작이었고 분양할 궁리만 했었다.
일 층과 이 층이 분리되는 곳에 기초로 벽돌을 쌓을 필요가 없는데, 누구에겐가 이곳에 기초가 있으면 집이 튼튼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 일은 내가 모르게 그날 밤에 다 해놓는다. 그런 쓸데없는 조언은 옆집 차욱새똥이 가끔 하는 모양이다.
차욱새똥!
이 자식도 도와주는 게 아니다.
힘을 받는 곳도 아니고, 내력벽도 아니고, 그 기초는 아무 작용을 하지 못하는데 벽돌쌓기를 밤새 해놓는다. 다음날 기어이 뜯어야만 다른 작업이 진행된다.
집이 좁아 부엌과 할아버지 방 위에 다락방처럼 넣기로 했다.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넣는 다락방. 아우 살린이 제 마누라를 데리고 잘 방이었다. 애초에 그렇게 짓겠다고 설명을 했는데 못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그게 이제 이 층 기초가 되는 부엌 천정을 완성하고 철근을 넣으니, 알게 된 모양이다.
어? 이 층이네요!
녀석은 놀라워했다. 그게 이 층으로 통용되는 모양이다. 여태 녀석은 노인들이 자는 판잣집 한쪽에 칸막이를 쳐서 분리된 공간에서 생활했었다.
다락방을 넣으면 너희 부부가 밤에 성생활을 즐기더라도 일 층에 자는 노인들 잠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만들게.
이 층?
이 층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 층 건물! 듣기는 좋지만, 다락방에 불과하다.
바루의 열쇠
아침을 건지러 가네
철로를 건너는 퐁지 행렬
건널목을 발명한 창세기 맨발
철로를 건너네
퐁지가 건너면 바로 길이 되는 나라
한쪽 어깨에 걸치고 감싸 안은
바루에는 자물쇠가 없었네
꽃도 없었네
오늘 전할 설법도 바루엔 없다네
건널목 새들이
물고 오던 햇살을 흩뿌린 바루
바루에 가득한 미얀마 햇살이 부서졌네
삭발한 뒤통수 하나 돌아서서
뒤처지는 아침을 불렀네
건널목이 다가섰네
맨발 발자국을 따라 바퀴가 굴렀네
새벽 파고다에 들어선 바퀴
부처님 말씀 기웃거리네
들고 온 열쇠 쓸데가 없었네
쥐고 있는 꽃을 던질
바루가 없었네
아침을 담을 그릇을 찾고 있었네
바루에는 없는 열쇠 구멍을 찾고 있네
아침이면, 철로 건너에 있는 파고다를 가끔 둘러본다.
현장에 나가면 아웅 살린이 아직 나오지 않았거나, 자고 있으면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오토바이를 타고 철로 건너 파고다로 가서 마음을 씻는다. 어떤 날은 화물차를 끌고 출근하는데, 그런 날은 화물차는 현장에 세워두고 걸어서라도 철로를 건너간다.
아침에 나갈 적에,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나? 화물차를 쓸 일이 있나? 짚어보고 어느 것이든 선택한다.
화물차가 아주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지난번 들어왔을 적, 한 다리 건너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이 팔겠다고 하기에,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 산 화물차다. 한국제 봉고 신형. 이 차가 이 나라에서 화물차 중에서는 인기라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 화물차에 미치는 녀석이 있다. 케이아웅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나이는 마흔이 넘었는데 아이들처럼, 화물차를, 아주 물고 빤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케이아웅은 처음 용접사가 조수로 데려온 인부다.
용접사 일이 끝나고 아웅 살린을 통하지 않고, 내게 직접 더 일할 수 없느냐고, 소통이 안 되는 언어로 억지로 물어서 나오라고 했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렇게 부탁하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공사판 인부로도 나갈 수가 없다. 집이 바로 부근이라 아침 일찍 나오는 녀석이다.
현장에 차를 잠시 세워두면 케에이웅이 닦는다. 짬만 나면 적재함까지 말끔하게 닦는다. 닦는 걸 참 좋아한다. 화물차 옆 좌석에 타는 건 더 좋아하고, 그래서 벽돌을 싣거나, 모래, 등 자재를 실으러 가는 길이면 늘 케이아웅을 데리고 나간다. 녀석은 늘 웃는 얼굴이라 데리고 다닐 만하다.
아침마다 현장에 화물차를 세워두고 철로 건너 파고다를 다녀오면, 케이아웅이 물을 떠다가 차를 얼마나 닦았는지, 먼지 있는 곳에 끌고 가기 미안할 지경이다.
이 녀석은 내게 핸드폰이 없다고 말한다.
핸드폰은 한국에 있으니 다음에 들어올 적에 꼭 하나를 주겠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다음날 또 묻는다.
핸드폰이 언제 오느냐고,
중고 핸드폰이 한국의 책상 서랍에 있는데 저 혼자 오지는 못하고 내가 가서 가져와야 한다.
그런 소리를 하는데 알아듣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아웅 살린이 뭐라고 했는지, 나를 통하면 모든 게 이루어지는 줄 아는 놈이다. 가끔 노임 외로 조금 더 얹어주며, 이건 네가 쓰지 말고 마누라에게 주라고 하면, 그날은 여러 사람이 즐겁다.
항상 웃는 게 참해서 기술은 없지만, 인건비를 기술자와 같이 올려서 준다. 그래봐야 고작 달러 계산하면 2불 정도다. 그게 고마웠든지, 아침나절이면 제 마누라가 커피를 가지고 현장으로 찾아온다. 인스턴트커피를 집에서 타서 가지고 오니 식어서 텁텁했고, 그 커피는 우윳가루나 설탕이 없는지 지독히 쓰다. 그렇지만 맛있게 마신다.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정성을 마신다.
아침나절에 봉고를 좋아하는 케이아웅을 데리고 조금 모자라는 모래를 싣고 현장에 들어갔더니, 또 공사가 중단되었다.
왜?
공무원이 나와서 일을 중단하라고 했단다.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인부들은 공무원이 중단하라고 하면, 재깍 손을 떼고 퍼질러 앉는다. 그 공무원이 다시 와서 일해도 좋다고 해야만 일어난다. 정말 희한하다. 동 사무소에 가서 공무원과 얘기가 다 되었다고 해도 일어나지 않는다.
인마! 노임은 내가 주는 거야!
참 졸렬하고 치졸한 말까지 동원한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렇게 치졸한 말이 나올까.
일하다가 잡혀가면 어쩔 거냐?
그런 말을 하며 죽친다. 할 수 없이 다시 그 공무원을 데려와서 확인시켜 줘야만 일어나 연장을 잡는다. 그런 자식들이 공무원을 운운하며 또 퍼질러 앉은 것이다.
어쩌면 공무원을 기다린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아버지, 저 잘하고 있죠? 응원해 주세요.
내 편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속으로 이런 기도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약해졌다. 원래 내가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었던가?
이번 일을 하며 아버지를 얼마나 불렀나? 얼마나 도와달라고 했나?
아버지 이 점도 용서해 주세요. 이게 이 나라 공무원입니다.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그렇게 아버지를 불렀다.
이렇게 작은, 집은 동네 통장과 이장을 통해 이웃과 상의하고 그냥 지으면 되는 건물이다. 신고고 허가고 필요 없다. 그러나, 공무원들 때문에 도통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벌써 네 번째였다.
공무원들에게 들어간 돈이 장난이 아니다. 자투리 돈으로, 자투리 시간에, 짓는 집에 공무원이 뜯어간 돈이 그 정도가 넘는다면, 이걸 누구에게 설명하고 듣는 누가 이해할 것인가?
동사무소에서 나오고, 그다음에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하면 구청 정도 되는 상급 기관에서 나오고, 그다음은 소방서였다. 벌써 왔다가 갔고, 얘기가 다 되었다고 하니 서로 다른 분야의 허가라고 하며 수시로 나타난다. 나타나면 둘러보고 가면 되지 왜 인부들에게 공사를 중단시키는지 모르겠다.
그런 특이사항은 시작하기 전에 내가 뽑은 견적이나 시방서에는 수록되지 않은 사항이었다.
한국 기준으로 열댓 평 남짓한 길쭉한 땅에 쇠 파이프로 기둥을 세워 지붕을 얹고 부엌과 방을 나누어 겨우 둥지를 만드는 일에, 공무원이 들고 오는 제약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아웅 실린에 조금 쥐어서 보내면 또 종일이 걸린다.
통역이 없이 인부들을 시키자니 죽을 지경. 그래서 다음에 나왔을 적에는 할아버지를 보냈다. 92세가 된 할아버지께 돈을 쥐어서 보냈는데, 그 돈은 받지 않았던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되가져온 돈을 받으면서 이젠 끝이겠구나 넘겨짚었는데 웬걸, 그게 아니었다.
인부들은 주저앉았고, 아웅 살린을 데리고 직접 나섰다.
이 멍청한 녀석을 보내면 또 하루가 간다는 생각에 직접 나섰다.
가웅까익때!
정말 머리 아프다. 이 일을 시작하고 케이아웅에게 주워들은 미얀마 말인데 머리가 아프다는 말이다. 어순이 한국어와 같아, 가웅은 머리고, 까익때는 아프다는 말이다.
미얀마 말을 익히지 못했다.
그동안 뭐 했어?
여기 있는 친구들에게 미얀마말을 어렵다고 하면 그렇게 퉁을 먹인다.
이곳에 투자를 마음먹었던 초창기는 몽골에서 하던 일을 완전히 매듭지은 게 아니었다. 당시에는 몽골, 한국, 미얀마, 세 나라를 돌며 일을 했다. 한 달은 한국, 한 달은 몽골, 또 한 달은 미얀마. 이런 식으로 돌았는데, 주기적이 아니었다.
몽골에 갔다가 한국에서 받은 전화에 몽골에 급한 일이 생기면 다시 그쪽으로 날아갔다. 꼭, 한 달이라는 기간도 정해진 게 아니다. 급하면 사흘 머물고 날아간 적도 있다.
그런 형편이었으니 미얀마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얀마에서 급하면 몽골 언어가 튀어나왔다. 미얀마에 발을 들여놓고 삼 년이 넘어서야 몽골의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미얀마 말은 좀체 기억에 내려앉지 않았다. 영어도 젬병이다.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 미얀마에서 소통할 방법이 없는데, 이곳의 언어를 내 귀를 관통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매니저 때쑤가, 한국어를 조금 했으니, 영어와 한국어로 소통했다. 때쑤의 한국어 실력은 내 영어 실력과 비슷한 수준.
그래도 함께 오래 있으니 눈빛이라는 희한한 소통 수단이 자생해서 발달했다. 밀림, 밀림에서 소통이 되었다. 미얀마는 내 언어의 밀림이었다.
밀림과 소통
우리는 개보다 낫네
한국어를 단 한 마디도
모르는 놈
아는 영어라고는 딱 두 마디
오로지 예스, 노!
이놈과 이틀간 밀림을 쏘다녔네
물론, 통역은 없었다네
이상한 일이었네
소통되고 있었네
역시
우리는 개보다 낫네
이놈은 미얀마 말만 하고
나는 모국어로 소리치는데
희한하네
밀림이 소통되고 있었네
정글이 길을 열었네
불편함이 없었네
말은 거추장스러운 도구였네
잠깐,
뱉어 놓고 보니 거짓말을 했네
이놈이 아는 영어, 한 마디가 더 있었네
오케이였다네
밀림에서 소통이 되었다.
이렇게 소통이 되는데 때쑤와의 소통은 아주 쉬웠다. 소통으로 불편함을 몰랐다. 미얀마에 있었던 시간은 많지 않았다.
쉬웠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소통되었는지 지금 생각하니 궁금하다.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때쑤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그냥 소 등에 고삐를 얹어두고 소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지켜만 보았다. 단물이 빠졌는지, 때쑤는 놀면서 월급 받기가 미안하다고 했다. 신규프로젝트가 없어, 일이 없으니 이달부터는 월급을 주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다른 데 취직을 했니?
그 질문에 네피도에 있는 사립학교 교사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일은 다 해주겠노라는 말을 덧붙였다.
네피도는 미얀마 중부에 있는 행정수도다. 양곤에서 밤에 고속버스로 출발하면 새벽에 닿는 곳이다.
그렇게 떨어진 곳에서 내 일을 어떻게 다 보지?
그 해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코로나가 터졌다. 급한 김에, 주운 놈, 아웅 살린에게 부탁하고 들어갔다.
이 나라에 와서 현지어가 절실했던 적이 없다.
이제는 배워야 하겠지만, 망망쪼를 만나 영어, 미얀마어, 현지인이 드라마를 보고 주워들은 한국어, 그리고 눈빛, 이런 소통 수단을 끌어다가 집을 하나 지었다.
망망쪼!
이 친구의 소개로 땅을 사서 그 자리에 연립을 하나 지었는데, 그렇게 집을 지어보니 망망쪼와 어지간한 건 다 소통이 되었다. 친구라고 하지만, 같이 골프를 친 건 서너 번이 고작. 이 친구는 술을 마시지 않는 까닭으로 술자리도 없었지만, 집을 하나 짓고 친구의 관계에 뼈대를 세웠다.
망망쪼는 골프를 상당히 좋아한다.
전화해서 무슨 말로 소통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골프를 누구와 쳤고 점수가 어땠다는 것까지 알 수가 있다. 어떻게? 무슨 언어로 소통했는지 전화를 끊으면 모른다,
그런데 소통이 되었다. 희한하다.
망망쪼 소개로 지은 건물은 연립으로 열다섯 세대였는데 다 분양하고 일 층에 두 개가 남아 지금 현지인에게 세를 주고 있다.
거기에서 나온 집세로 내가 들어오지 못하는 동안, 아웅 살린과 에모가 생활비로 충당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세를 받으면 에모와 반반씩 나누어 쓰라고 누차 얘기를 했거늘, 아웅 살린이라는 자식이 받아서 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쓰고, 에모에게 오만 원을 준 달도 있고 삼만 원을 준 달도 있었다.
에모는 그걸 다 적어두었다가 길이 열려 내가 들어오니 보고를 하고 밀린 월급을 요구했다.
아무튼, 그렇게 세 나라를 돌다가 미얀마 말을 익히지 못하고 코로나로 한국에 머물렀다. 햇수로 십 년, 이 땅에 머문 기간이 얼마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말을 너무 늦게 익히는 감이 든다.
하여, 요즘은 현장이나 오토바이 시장에 가서 듣는 현지어 몇 마디를 바로 수첩에 적는데, 성조가 있어 발음이 시원찮을 뿐 아니라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차욱새똥!
나이를 생각해야지. 욕심을 부릴 일이 아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공사를 제 마음대로 중단시킨 공무원을 찾아가는데 아웅 살린이 앞세워야 했다.
함석지붕으로 되어 천정이 낮은 동사무소에는 정식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인지, 놀러 온 이웃 아줌만지 아기를 업고 온 사람들이 많아 동사무소가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공사를 중단시킨 놈을 찾았다. 놈이 아니라 년이었다.
몸피가 뚱뚱한, 인도계의 피부가 검은 중년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앉아 있고 우리는 죄인처럼 그녀의 책상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구조였다.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마주 앉을 소파는 없었다.
어떤 게 잘못되었냐고 물었더니, 이 층으로 하면 지난번과 신고하는 양식이 다르다고 했다. 그걸 가지고 왜 공사를 중단시켜?
이 층? 다락방인데?
도와주려고, 한국에서 왔다. 형편이 이래서 도와주고 싶어 짓는 집이니 좀 도와달라, 또 인부들이 일을 안 하고 퍼질러 앉았다, 인간적으로 부탁을 했다. 모든 말은 내가 하고 아웅 살린이 통역했다.
그래? 몰랐던 사실이네! 외국인이면 당연히 더 내야지.
앉아서 힐끔 올려다보는 공무원 아줌마 표정에서 그걸 읽었던가.
아, 잘못 찾아왔구나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며 한숨이 나왔다. 이런 생각을 가진 공무원이 일하는 나라, 여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무슨 부탁을 더 하랴.
새로 작성해야 할 양식, 종잇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이 나라는 관공서에 제출하는 서류의 양식도 사야 한다. 고작 몇백 원이지만 무료로 사용하는 게 아니다. 한 장을 잘못 쓰면 돈이 더 들어간다.
얼마라고 하는데, 그 금액에는 관심이 없고 들고 간 손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집히는 대로 두툼한 지폐를 책상 위에 올렸다. 손에 집히는 감으로 미루어 케이아웅의 일주일 노임은 넘어설 돈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데, 이래도 받겠느냐? 뭐 그런 투로 올렸다.
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런 말을 하며 돈을 밀 줄 알았는데, 정말 그랬는데, 이럴 수가?
뚱뚱한 배 앞에 책상 서랍이 열려있었고, 아줌마 손이 서슴없이 빗자루가 되어 돈을 책상 서랍으로 쓸어 넣었다. 순간적으로 눈을 의심했지만, 현실이었다.
정말 신기하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서랍을 닫은 공무원, 아니 뚱뚱한 아줌마, 일어나며, 양식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갈 터이니, 먼저 가라는 말을 했다.
도장값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공무원이 받는 월급 수준을 아는데 집에 가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의 고급스러운 승용차가 있다.
과연 이 공무원의 월급으로 이 차를 굴리는데 기름값이나 될까 싶어서, 다른 수입원이 있나, 찾아보면 아내는 집에서 주방일이나 하는 가정주부고, 어디에 세를 받는 임대 소득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전혀 없는 실정, 오로지 수입이라곤 받은 공무원 월급뿐인데 그 차를 용하게 굴리는 것이다.
한국이면 남의 눈총이 무서워 그런 차를 굴릴 수가 없지만, 눈치? 그런 건 그릇이 작은 사람들이 보는 것이야. 대인은 달라! 뭐 이런 식으로 당당하게 보인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공무원의 삼무.
이건 미얀마에 오기 전 책에서 읽은 건데,
이 나라 공무원에겐 입버릇처럼 따라다니는 무가 있다. 처음으로 미얀마에 오기 전에 여행안내 책자에서 본 잠시 눈을 잡은 얘기인데, 그런 사실이 가이드북에 실으면 이 나라의 국제적인 체면이 얼마나 구겨지겠는가.
가이드북의 저자가 그런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그걸 생각하면서 실을 정도라면 사실이 얼마나 팽배했으면 글로 만들겠는가?
이제야 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삼무란, 세 가지의 무를 말하는데, 미얀마에서 무란 우리나라의 없을 무 無, 이 글자를 생각하면 상당히 수월할 터이다. 미얀마 언어에서 부정을 뜻하는 말이 무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발음이 무자와 머자의 중간 발음인데 잘못 들으면 머로 들릴 수도 있다. 부정의 끝은 부로 끝이 나니, 우리나라의 부정은 뜻하는 부와 상당히 닮아있다.
무시부 (없어)
무야부 (안돼)
무띠부 (몰라).
없어, 안돼, 몰라. 이 세 가지가 공무원 입에 달린 삼무인데 이 나라에 오기 전에 이런 게 있다는 사실을 읽고 왔지만, 가끔은 잊고 있다가 갑자기 이런 경우를 만나면 당황하게 되고 잊었던 사실을 새삼 기억하고 상기해야 한다고 나를 다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집을 여기까지 짓는 과정에서 공무원이 가장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내가 직접 나서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외국인이라 같은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비싸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노인들에게 얼마간의 현금을 쥐어 관공서로 보내는 마음은 편치 않았고, 그런 일은 내가 작성한 도면에는 없었던 일인데 복병을 만난 것이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일하는 사람들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처음에 그걸 염두에 두고 시작했으나, 정작 일을 시켜보니 그 실망은 내 예상을 상당히 웃돌았다. 그건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 문제로 케이아웅과 매일 설전을 벌였다.
단적인 예로, 모래에 시멘트를 배합하는 일에, 시멘트를 너무 많이 넣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벽돌 대략 삼사백 장 쌓는 일에 한국이면 시멘트가 겨우 두 포대나, 많으면 두 포대 반 정도 들 터인데, 시멘트가 열한 포대가 들어갔다면 누가 믿겠는가?
미얀마는 모래가 좀 나쁘다. 모래에는 풀이 돋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여기 모래는 강가에서 바로 파 온 것인지. 토분이 너무 많다. 한국에는 모래가 두 종류로 팔린다. 콘크리트 모래와 미장용 친모래, 이렇게 구분되어 있는데 여기는 그게 없다. 그냥 모래다. 토분이 많고 모래 입자가 적어 시멘트가 조금 더 들어간다. 그건 염두에 두었던 사항이다.
벽돌쌓기를 시작했는데, 금세 시멘트가 없다는 소리가 나왔다.
무슨 소리야? 불과 이틀 전에 시멘트를 왕창 사 두었는데?
확인하니, 정말 시멘트가 떨어졌다. 시멘트는 밤에 습기를 맞을까 봐 현장의 맞은편 집,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 오토바이를 세우는 곳에 두었는데 그걸 미처 감독하지 못했다.
시멘트로 한 일이 뭔가?
파악하니 벽돌 겨우 삼사백 장 싼 게 고작/
그래서 지금은 시멘트를 배합할 적에 아웅 살린이 옆에 서서 모래 한 삽에 시멘트 한 줌을 넣어라고 시키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리를 치는 형편이다. 참 치졸한 작업 방법이지만 할 수 없다.
시멘트가 비싼 나라다. 케이아웅 하루 일당을 받아도 시멘트 두 포대 값이 안 된다. 그렇게 따지면 얼마나 비싼가? 그런 돈을 아껴서 인부들 새참으로 콜라나 더 사주지.
시멘트가 많이 들어가서 집이 더 튼튼하거나 예뻐지면 상관이 없는데 그렇지 않다. 그걸 누차 설명해도 못 알아듣고 고쳐지지 않는다. 그걸 못 알아듣는다면 시멘트를 한 줌씩 손으로 집어넣어야지.
거수경례 이야기
두 시간 반 시차
이십오 년 빨랐다는
예비역 삼성 장군
왼쪽 무릎이 날아간 당신
기어이 혓바닥에 올라선
사십 년 한국
예전 버마 아웅산 사태
단상을 지휘했던 소령
당시 53사단 말년 병장이었던
새파란 늙은이 귀를 씻은 말
그때 한국은 저력이 없었고
미얀마 식량 원조를 겨우 사양하던 중진국
영양가 없는 나라 애국가
무릎을 관통했던 노쇠한 기억
귀를 세운 고막 뚫고 지나가는
현장감 지닌 폭발음, 오래된
벼랑의 바람에 펄럭였던
마르지 않는 군복,
헐거운 무릎에 매달린
한국 애국가 전주곡
의족이 한국제라
만족하는 늙은 장군
허공을 지탱하지 못한 많은 나라 의족
허술했던 의족
푸념과 함께 뱉어내는 초코파이 비닐 조각
쌀로 까우네
먹어보니 좋았다
처음 맛보는 초코파이
늙은 엄지를 세웠네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삼십이 개월, 초코파이 되었네
헤어지며 마주했던
늙은 거수경례, 둘
가뿐하게 뛰어넘은 언어의 벽
눈썹에 척 붙은 손가락
별이 되었네
아, 잠시 잊고 있었는데. 미처 찾아뵙지 못했다.
핸드폰에 날아온 메시지는 영문이었다. 단순한 안부다.
연세는 일흔하나!
그 나이에 잠시 경배를 보내야 했다.
의족을 하나 해드리고 싶은데 그게 여의치 못했다. 무릎 아래 어느 부분이 절단되었는지, 키가 정확히 얼마인지, 절단된 부위에서 발바닥까지의 길이는 얼마인가? 그걸 모르고서야 의족을 제작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물론 한국의 의족을 만드는 회사였다.
사진만으로는 절대 제작할 수가 없는 물건이라는 말을 누차 들었다.
의족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서 맞추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단 일이라도 어긋난 의족을 하면 절룩거리게 된다는 말.
찾아뵙는다는 것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얘기.
얼른 마쳐야 하는데 공사는 늘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내서 빨리 찾아뵙는 게 도리인데, 발목이 잡혔다. 일이 족쇄가 되었다.
이 늙은 장군은 참 깨끗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다리가 잘렸지만, 의족을 하고 삼십일 년을 더 근무하고 전역했는데, 이권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고 책을 읽으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 늙은 장군이 나를 총애하는 이유는 싸예쎄애, 작가라는 사실 때문이다.
미얀마 언어로 번역된 책도 없는데, 이 늙은 장군이 어떻게 알까?
옛날 매니저, 때쑤의 친구가 이 장군의 질녀인데, 그녀는 한국어를 전공했다. 양곤 외국어 대학에서 전공한 한국어. 그렇다면, 여기서는 알아주는 엘리트다.
당시에는 내가 쓴 책이 미얀마 사무실에도 늘려있었다.
친구를 찾아 사무실에 놀러 왔다가 내 소설을 접한 그 처녀가 참 재미있다면서 책을 빌려 가서 집에서 읽고 가져오곤 했는데, 그녀가 이 늙은 장군이 잠시 병원에 입원했을 침대 옆에서 내 소설을 읽어가며 나름대로 해석해주었던 모양이다. 물론 전기수 역할을 했던 질녀가 재미있으라고 말을 더 감칠맛 나게 붙이기도 했겠지.
그 장군이, 이 꼬리아 싸예세야의 다른 책은 없나?
그런 물음이 오갔던 모양, 그 질녀라는 때쑤 친구의 부탁으로 나는 한국에서 책을 더 가져온 일도 있다.
예전에 나왔던 것부터 콩트집까지,
장군이 기함한 것은 콩트였다.
문학에 그런 장르가 있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다. 그렇게 침대 머리에서 읽어준다는, 콩트는 전기수 노릇하기도 좋고 듣는 사람은 재미가 극에 달하는 장르다.
내 독자가 되어버린 장군, 그 늙은 장군이 불러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저택으로 찾아가서 만났는데 후한 대접을 받았다. 후한 대접이란 먹을게, 산해진미로 넘쳐나서가 아니다, 극도로 반가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장군과의 만남은 참으로 깔끔했다.
이번에 와서 왔다고 전화만 하고 뵙지 못했다.
이 장군과의 소통을 위해서라도 미얀마 말을 어서 익혀야 하는데, 내 언어를 터득하는 감각도 늙고 있다.
미얀마 말로 발가락을 뭐라고 하는지 모른다.
왜 하필 발가락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손가락이 뭔지도 모르는 마당에. 오늘은 발가락이 미얀마 말로 뭔지 찾아봐야 하겠다.
내 앞에서 누군가 발가락이라는 말을 했겠지만, 그게 고막 속에 터를 잡지 못했다. 이젠 발가락이라는 말은 한 번 들었다고 기억할 자신이 없다. 누가 테스트하듯이 후딱 물으면 분명히 몽골 언어가 튀어나올 것이다. 이제는 몽골 언어를 잊어도 좋은데 그 언어가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는데 가끔은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 앞으로 내가 몽골에 갈 일이 있을까?
차욱새똥인데.
이 늙은 나라에 첫발을 들여놓은 지 딱 십 년째가 되는 해다. 햇수로는 구 년, 코로나와 쿠데타로 못 들어온 기간 삼 년을 빼더라도 육 년을 넘게 머문 땅이다.
햇수로 구 년!
이 늙은 나라에 와서 참신하게 늙고 있는데 아직 현지어가 귀나 혀에는 없다. 나의 내부에 뭐가 막고 있는가, 무엇이 내 귀를 막고 혀에 재갈을 물리고 있는가.
내부의 껍질
예닐곱 살이면 예사롭게 구사하는 현지어
이 땅에서 구 년이나 늙은 이방인이 모르는 까닭
말이 스미지 않을 만큼, 물이 스미지 않을 만큼
딱딱한 내부의 껍질이 있었기 때문
얼마나 더 단단한 내부를 만들어야 하는가
오로지 깨지지 않기 위해 또
오늘을 굽고 있네
내일 다가올 몸통의 초벌구이
오늘 하고 있네
촘촘하게 굽네, 오늘을 굽네
외부에 널브러진 어둠을 걷어다 태우며
내부를 굽고 있네
아직 유약을 바를 때가 아니라네
내부의 껍질에
말은 끝까지 스미지 못할 터이네
말을 익히기로 마음먹고 보니 현지어가 더 어렵게 들렸다.
일단 내부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언어를 구사하지 못해, 현지어를 제대로 듣지 못해 입은 손해는 얼마인가. 이제 나를 더 구울 필요가 없는 나이다. 더 단단해질 나이가 아니다. 지금 더 굽겠다는 건 사악한 노인의 아집에 불과하다. 남들은 분명 그렇게 해석할 것이다. 나는 원로다. 이걸 생각하고 받아들여야지. 위대한 언어는 벽을 허물었을 때 귀가 열린다고 했다.
차욱새똥.
경칩이 다가오고 있다.
입춘에서 경칩까지 며칠인지 여태 알지 못했고, 그 절기에서 그 절기까지 관심이 없었다. 경칩이 언제인가? 입춘에 시작한 일인데. 달력을 찾아본 것은 일이 너무 늘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입춘에서 경칩까지.
처음부터 이런 제목을 붙여놓고 일을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경칩까지는 마쳐야지. 마치고 밀린 내 일을 해야지.
껌을 씹으며 계단을 내려가지 못한다?
누구의 말인지 모르지만, 정답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지 못한다. 그런 효율적인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고 학습한 바가 없다. 학습한 바가 없으니 지금 그렇게 시켜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시키면 두 가지 일을 다 그르친다.
저쪽에서 쌓은 벽돌에 미장하는데 이쪽에서 대문을 만들고 있으면, 전혀, 방해가 되지 않고, 아무 상관이 없는 공정인데 희한하게도 두 가지 일이 다 안된다.
그걸 터득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돌이키니, 이 일은 정말 잘 시작했다. 매니저의 능력, 이 자식의 실력을 검증하는데 이 정도의 시간과 돈이라면 상당히 싼 거다. 일을 진행하면서 아웅 살린의 한계와 생각, 지향하는 바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어떻게 자투리 돈으로, 자투리 시간에 녀석을 이렇게 정확히 읽을 수가 있겠는가.
결론은 아웅 살린은 내 매니저로서 내 큰 살림과 지금 봉착한 문제를 맡길 수 없는, 맡겨서는 안 되는 수준이라는데 생각이 머물고 있다.
화물차를 끌고 모래를 실으러 갔다가 화를 못 이겨 중도에서 돌아왔다. 모래도 싣지 않고 중간에서 불법 유턴으로 차를 돌린 것이다.
여기서는 운전을 시킬 사람이 없다. 운전하는 사람 구하기가 힘든 나라다. 아직 차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탓이겠지만, 운전을 좋은 기술쯤으로 여기는 나라. 작은 일지만, 화물차를 움직일 일이 있으면 내가 직접 가야 한다.
모래를 실으러 가는 중인데 앞에 차가 조금 밀리니 감당하기 힘든 짜증이 일었다. 내가 나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마구 밀려드는 잡스러운 생각들. 뒤죽박죽 엉킨다.
나는 지금 돌고 있음이 분명해! 사람은 이렇게 미치는 거야.
한 손으로 운전대를 내리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웅 살린이 내 매니저가 아니고 내가 아웅 살린 노예가 되었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에 치솟아 화로 연결되었다. 오후부터 통역 없이 혼자서 일을 시켰다. 아웅 살린은 지금 현장에 없다. 사라졌다. 미친 자식!
그 순간, 아침에 부러진 빗이 떠올랐다.
새벽에 씻고 나서 머리를 빗는데, 빗이 부러졌다. 힘을 주었던 것도 아닌데, 손잡이가 뭉텅, 부러졌으니 기분이 묘했다. 묘했다기보다는 덜컥, 겁이 났다.
이게 무슨 징조야?
이런 불길한 징조가 생기다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해졌나? 이따위 빗 하나 부러졌는데? 거기에 무슨 의미나 징조를 부여해?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오는 심리 현상인가?
심리적 긴장과 부담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순간마다 이게 아닌데, 라는 말을 되풀이했었다.
빗이 부러진 건 아마도 이런 일이 생기려는 징조였던가?
생각하니 속이 터지고 약이 올랐다.
아, 이 자식이 결국은 나를 쓰러뜨리지?
나는 이 자식으로 인해 쓰러질 거야.
아 나는 지금 돌고 있는 거야, 분명히 정신에 에러가 나고 있는 거야.
그럴 땐 반드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를 부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나의 인내력, 내가 지닌 인내의 한계를 점검하는 시간, 견딜 수 없을 적에는 아버지를 불러야 내가 살 수 있었다.
아버지, 저 잘하고 있죠? 응원해 주셔요.
잠깐 그런 말을 하고 기운을 차리니 흐릿했던 길이 제대로 보였다.
아웅 살린이 없는 현장에, 개가 일을 하고 있다.
쪼민이라는 녀석.
분명히 개, 개로 만들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쪼민. 인도계와 버마족의 혼혈로 얼굴이 검고 곱슬머리에 코는 매부리코인 녀석이 지금 일을 하고 있다. 그 생각을 하자 조금 위안이 되는 기분이었다.
현장에는 쪼민은 길을 들이고 있는데 정작, 매니저인 아웅 살린을 길들이지 못하고 있다. 매니저란, 내 입이 되고 귀가 되는 그림자여야 한다. 그러나 이 녀석은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
어떻게 길을 들일까?
그림자 길들이기
실체가 사뭇 심각한 이 순간
그림자는 유쾌했소
이건 실로 못마땅하오
그림자 길들이는 데는
어떤 권법이 요긴하리까
귀가 제 노릇을 하지 못할 땐 입을 꾸짖소
입이 딴눈을 팔면 귀를 때려야 하오
물 건너에서 데리고 다니는 현지 그림자
바로 유창한 입으로 찢어지고
예리한 귀로 매달려야 하오
그림자가 실체보다 앞에 가면
항상 걸음이 부실해지는 법
실체의 생각까지 주물러
제 작품으로 만들려는 그림자는
용서할 수가 없소
귀를 때렸는데
입으로 낙엽을 꾸역꾸역 뱉어내는
그림자를 보았소
그림자 사용 수칙에 수록되지 않은
권법도 가끔은 요긴하게 쓰이는
전략이라오
뱉어낸 낙엽을 기어이 쑤셔넣고
삼키게 했소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실체와 동급일 수 없다는 생각을
그림자에 그려 넣었소
이 자식을 고쳐야 한다.
어떤 권법이 동원되더라도 반드시 고쳐야 한다.
하던 일을 팽개치고 현장에서 사라진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일을 시작한 게 겨우 이십여 일,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 몇 번째 사라진 건지 모르겠다.
물론 일이 힘들게 가고 있으니, 저도 힘이야 들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현장에서 일어난 문제도 아니고, 제 마누라와 점심을 먹다가 싸워 사라진 것이다. 부부싸움을 했다고, 현장에서 나가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부싸움을 했다는 말은 점심을 먹고, 케이아웅에게 들었다.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케이아웅이 하는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아웅 살린이 제 마누라의 얼굴을 때리고 나갔다는 말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점심을 먹는데 아웅 살린이 보이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고부터, 현장의 인부들은 점심을 사준다. 한국과는 달리 미얀마에서 인부들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현장은 없다. 도시락을 싸서 나오거나, 집에 가까우면 가서 먹는다, 그러나 집에 점심을 먹으러 가면 언제 나올지, 세월이 없다. 그래서 밥을 사주며 나도 끼어 앉아서 같이 먹는데 아웅 살린이 보이지 않았다.
케이아웅의 말을 듣고 녀석에게 전화했더니, 받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빨리 현장으로 와라!
좋게 말을 했더니, 제 마누라와 싸웠고, 마누라를 많이 때렸으며, 지금 기분이 풀리지 않아 일을 못 하겠다. 내일 들어가겠다. 그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디냐고 물으려는 순간 끊어 버린 것이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어딘지 모르겠으나 빨리 오라고 해야 하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현기증이 일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일을 하다가 제 마음에 틀어지는 일이 있으면 사라진다. 그럴 때마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근처 생맥주, 카페로 불러내 이 일은 이렇고, 이 일은 이러니, 네 덕이 없다. 앞으로 그러지 마라, 마치 초등학생을 타이르듯 했다. 심지어 오늘은 너를 때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는 말까지 했다.
때리고 싶으면 때리셔요. 상관없습니다. 아버지 같은 분인데.
이놈아!! 내가 너를 왜 때리나? 맘에 안 들면 월급을 주지 않고 자르면 되지.
이렇게 치졸한 말까지 하며 녀석을 학습시켰는데, 그때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은 더 이상 교육으로 고쳐질 인간이 아니다.
벽돌을 쌓지 않아도 좋은 자리에 아침에 나가니 벽돌을 잔뜩 쌓아서 싫은 소리를 했더니, 스트레스를 운운하며 녀석은 벽돌을 걷어차고 나갔다. 그날도 종일 부근의 제 이모 집에 누워 있다가 저녁 무렵에 나타났다.
녀석에겐 스트레스가 있고 나에겐 스트레스가 없다?
그리고 다락방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락방 콘크리트를 치기 전이었다.
콘크리트를 치기 위해 합판을 깔면, 밑에 버팀을 줄 목재나 파이프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그걸 빌리는데 임차료가 장난이 아니다. 할 수 없이 사각 파이프를 소비할 생각을 하고,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합판을 깔아놓으니, 이 공정을 모르는 녀석은 그게 끝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합판 위에 올라서니 흔들리고 불안했겠지.
그렇다면, 사장님! 이거 불안해서 잠이 안 오겠는데요. 이렇게 물으면 설명을 해주었을 것인데. 이 녀석은 잠시 어딜 갔다가 오더니, 입에 거품을 물고 이상한 방법으로 협박했다. 분명히 협박이었다.
이렇게 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YCDC에 고발한다고 해요. 이제 일을 못 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할 거예요?
뭐가 잘못되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얼굴이 벌겋게 달아버린 녀석이 따라오라고 해서 갔더니 바로 옆의 제 이모 집으로 가서 거실 천정에 쳐놓은 비닐을 난폭하게 걷어내고, 이렇게 해야 하며 보여 준 게, 각목으로 가로, 세로 이중으로 걸쳐놓은 다락방 바침이었다. 기가 막혔다.
나는 녀석의 이모 집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엉겁결에 따라갔더니 보여 준 게 그거였다. 미친 자식,
그 집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녀석은 그걸 안다. 그 이모 집 때문에, 짓는 집에 화장실을 집보다 먼저 완공시킨 이상한 공정으로 집을 짓고 있다. 녀석도 그걸 알고 있다.
녀석의 이모 집,
집짓기를 시작하기 전에 몇 번 들러 커피를 얻어 마시고, 안면이 있는 집이다. 녀석의 이모 둘이 살고 있는데, 내가 한국에서 뭘 하는 사람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넉넉히 알고 있다.
집을 짓기 시작하고 집을 다 허물어버리니, 현장에 화장실이 없다. 이 나라는 화장실이 유료인 곳이 많고 화장실 인심이 고약한 나라다.
집짓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옆집 차욱새똥을 알기 전이었다. 차욱새똥을 일찍 알았더라면 그 집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현장에서 화장실이 급해서 만만하다고 생각한 녀석의 이모 집으로 갔다. 그 집 화장실은 뒤란에 붙어 있어서 거실을 통해서 가야 한다. 그 집 거실에는 녀석의 이모들이 재봉틀로 옷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게 수입원인 모양인데, 늘 거실에서 그 작업을 하기에 거실을 통과하며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뒤란으로 가서 일을 보고 나왔다.
그랬는데, 두 번째인가 갔을 적에, 화장실에서 나오니 머리를 빡빡 깎은, 나이가 좀 있는 녀석이 거실에서 밥을 먹다가, 미얀마 사람들은 밥을 먹으면 밥상에 차려서 가족끼리 둘러앉아 먹는 법이 없다, 그릇에 비비든지, 반찬을 올리든지, 밥이 담긴 그릇 하나를 달랑 들고, 거실 구석이나 계단, 현관에서 혼자 먹는데, 그렇게 초라한 밥을 먹던 녀석이 나를 불러세웠다. 처음 보는데, 한국에 근로자로 갔다 왔는지 좀 어눌하게 한국말을 했다.
아저씨, 누군지 알겠는데, 여기는 여자들만 사는 집인데, 그렇게 들락거리다가 이웃에서 오해하면 어떻게 할 거요?
상당히 무안했다.
아, 그래요? 미안하네요.
그 길로 돌아와서 기초공사를 중지시키고, 화장실부터 먼저 만들었다. 화장실을 다 만들고 철로 건너 쇼핑센터에 가서 생크림이 듬뿍 얹어진 케이크와 음료수를 사 들고 가서 화장실을 함부로 써서 미안했다고 하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머리를 빡빡 깎은 그 녀석은 아웅 살린의 이종사촌이 동생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로 이모라는 그 집에는 가고 싶지 않았는데, 이 자식이 이상한 방법으로 거짓말을 넘어서 협박하는 통에 그 집에 가게 되었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아웅 살린이 부부싸움을 빙자해서 사라진 그날은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에 성질이 좀 풀렸으면 돌아오라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역시 받지 않았다.
일보다 내 속을 달래는 데 엄청 애를 먹었다.
그날 오후에는, 얼굴을 심하게 맞았다는 제 마누라가 멀쩡한 얼굴로 커피를 내와서 현장에 얼쩡거렸는데, 이게 뭐가 잘못된 건가, 한참 짚어보았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아웅 살린이 무슨 사고를 치고 사라지면, 꼭 나타나는 숫자가 있다.
32.
나는 이 숫자 앞에서 괴로움을 표할 수가 없었다.
92세의 노인이 나타나, 속도 모르고, 잘 되어가고 있느냐고 물으면, 잘 되어가고 있다고 대답을 하며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노인이 다녀가면 희한하게 차분해졌다. 쌕차레! 마음을 내려놓아! 쌕은 마음이고, 차레는 내려놓는다는 말인데, 합쳐서 진정하라는 미얀마 말이다. 노인은 이틀이나 사흘에 걸쳐 집이 어떻게 되는지 둘러보는 정도인데 그날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웅 살린이 사라짐.
이제 마흔이 갓 넘은 녀석이니, 철이 없어 그르려니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인데, 나는 마음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계속되는 화를 삼켜서 그런지 몸이 내려앉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어깨가 심하게 결리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오십견은 벌써 넘어섰는데 꼭 통증이 오십견처럼 나타난다.
역시 몸은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모양이다. 바로 앞 공터에 대나무 평상을 펼쳐놓았다. 야자수 그늘이었다. 차욱새똥이 땡볕에 서 있지 말고 그늘에 앉아서 감독하라며 제집 오토바이 차고에 있던 것을 가져다 놓았다. 녀석이 사라졌으니 현장을 비우지는 못하고 오후를 거기서 보냈다.
꼭지
꼭지를 보았네
미얀마 새카만 꼭지에는 하늘이
열려있다네 현장 귀퉁이
야자수 그늘에 평상을 설치하는
호사를 부렸네 신식 집짓기 구경삼아
마실 나온 이웃의 두 새댁
똘망똘망한 도마뱀을 업고 나왔네
적으면 열일고여덟
많으면 스물한둘
눈 시린 나이가 평상 귀퉁이를
점령했네 평상에 풀어놓은 도마뱀
삐걱거리자 냉큼
걷어 올린 윗도리
브래지어가 없는 하늘에
잠깐의 꼭지가 열렸네
꼭지에 가격당한 뒤통수
새댁 둘 젖꼭지에 초연한 국화
꼭지에 열리는 하늘, 포유동물의
먹이가 나오는
꼭지는 위대했네 성감대는
저기에 어울리는 말이 아니라네
저기, 벽돌 기초가 잘못되었는데
다시 수정시켜야 하는데
일어서지 못하네 새카만
하늘 꼭지 한 톨
족쇄가 되었네
평상이 출렁했네
평상심이 기울었네
한국에서 여자 나이를 물으면 실례란다.
여기는 한국과는 다르다. 여자에게 나이를 물으면 주저하는 법이 없이 바로 가르쳐 준다. 그 나이를 어떤 궁금증을 풀기 위해 묻는지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여자 나이를 물으면, 제 딸이 아닌 이상 가르쳐주지 않는다. 두 번 물으면 실례라고 일축하는데 여기는 다르다. 언젠가,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에게 대학생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대학생? 고개를 갸웃하며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제 나이를 일러주었다.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어떤 여자를 잡고 물어도 바로 나이를 가르쳐준다. 처음 보는 남자? 상관없다. 물으면 바로 가르쳐 준다.
하긴, 그걸 알아서 무엇하랴?
그걸 생각하니, 나이를 묻는 게 왜 실례가 되나?
평상에 앉아 보고 있으니 쪼민이 인부들을 움직이고 있다. 처음 나온 녀석인데, 예전에 목수를 했다던 말은 틀린 말이 아닌 모양이다.
몸이 내려앉는 듯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하루도 쉬지 못했다. 중간에 비라도 왔으면 쉬었을 터인데, 이 나라에 이 시기는 비가 없다. 오월이 될 때까지 단 한 방울의 비도 오지 않을 거다. 이 나라는 춘하추동으로 나누기보다 크게 건기, 우기로 나뉜다.
설을 쇠고 바로 들어왔을 적에는 겨울이라 선선했는데, 그사이 봄이 된 모양이다. 지금은 이 나라의 공사 기간이다.
이 시기는 모래값도 벽돌값도 비싸단다.
우기가 되면 자잿값이 내려가는 이상한 나라다. 오월 말이 되면 우기가 시작된다. 그러면 시월 말까지 매일 비가 온다. 실내에서 하는 공사가 아닌 이상 그 기간이면 모든 공사는 중단된다.
지금은 나의 세력을 모아야 한다.
잠시 짬이 났는지 또 그 생각으로 머리가 기울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할 일이 많다. 모든 일을 망망쪼가 책임지겠다고 해서 믿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불안하다.
세력!
망망쪼도 모르는 내 세력을 키워야 한다.
아웅 살림은 아무 힘이 되지 못한다.
거듭되는 말이지만, 이 일은 정말 잘 시작했다. 처음에는 녀석을 30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수치가 점점 내려가고 있다. 0이 되면 버려야 할 녀석에 불과하다.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아웅 살린을 더 후한 점수로 여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쪼민, 저 자식은 곧잘 사람을 부린다. 평상에 앉아서 보니 케이아웅은 쪼민의 말에 꼬리를 내리고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있다. 나머지 두 명의 일꾼도 마찬가지다.
세력?
이 땅에서 내 편이 없다. 오토바이 시장의 피라미들은 세력을 형성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세력이라는 말에 구성원이 될 수가 없다.
뱀을 잡아야 한다.
이 나라에 땅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깡패는 돈으로 살 수가 있다.
확실하지 않지만, 이 땅에서는 경찰력도 살 수 있을 거다.
지금 상황에서, 망망쪼만 믿고 막연히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찬윈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
찬윈은 육군 소장 출신이다.
나보다 한참 어린데 그 나이에 어떻게 그 위치까지 올랐는지, 또 왜 그렇게 일찍 예편했는지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양곤에서 조금 떨어진 모비에 군 사령부가 있다, 예전에 그곳 군부대에서 매각하는 땅을 조금 사두었다. 당시에 때쑤의 이름으로 샀는데, 그 땅을 살 당시 친윈은 그 부대의 사령관이었다. 그가 군복을 벗고, 예비역으로 돌아와 그 부근의 제 이름으로 만든 땅에, 미얀마식 별장을 짓고 주말에는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한다. 물론 그의 집과 가족들은 시내에 있는데, 찬윈은 그곳에 생을 즐긴다. 그걸 알고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그렇게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 찬윈에게 어제도 연락이 왔었다. 언제 놀러 오겠느냐는 요지였다,
처음에는 아웅 살린을 데리고 갔고, 그다음에는 하루 빌린 후배의 통역을 데리고 갔었다. 갈 적마다, 한국에서 공수된 소주를 준비하고, 생닭을 사서 마늘을 듬뿍 넣고 백숙을 직접 했다. 지금까지 대여섯 번을 갔는데, 갈 적마다 동행하는 사람을 바꾸거나 혼자 갔었다. 순전히 나만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찬윈을 통해서 연결된 현역 군인이 서너 명이 된다.
눈치가 빠른 찬윈은 뭐가 필요한지 당장 도와주겠다고 만날 적마다 성급하게 말했지만, 그런 게 필요 없다. 사령관께서 같이 놀아주면 된다.
생각하니, 찬윈과 같이 해먹은 백숙은 완전히 엉터리였다.
다음에는 한국에서 인삼을 가져와 삼계탕을 해 먹자고 했지만, 나는 삼계탕도 백숙도 해본 적이 없는 엉터리다.
백숙이라고는 딱, 한번 해봤는데, 좌충우돌이었다.
그날, 백숙을 먹겠다고 마음먹었던 게 아니었다.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데 상당히 어지럽고, 속이 빈 것 같은 공복감, 생각하니 그게 저혈당인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나타나기는 처음이었다,
땀을 너무 흘려 나타난 증세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오는데, 시장 난전, 좌판에 있는 생닭을 보았는데 군침이 돌았다는 거. 생닭을 보고 어떻게 군침이 도는지 모르겠지만 백숙을 떠올렸고 오토바이를 세우고 닭을 사서 들어왔다.
내 입에 넣으려고 닭을 사기도 역시 처음이다.
이 나라에는 한 마리를 파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정하자. 한 마리를 살 수도 있지만 그렇게 사는 고객은 없다. 잘라서 무게를 달아서 팔고 있다. 닭을 젯따라고 하는데 다리와 몸통을 분리해서 판다. 닭 다리 큼직한 걸로 서너 개를 저울대에 얹었는데, 한국에서 내가 애용하는 담배 한 갑 가격이다.
7. 모또삐끼
닭은 들고 와서 에모를 제쳐두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에모는 이걸 할 줄 모른다. 옆에서 가르치면 되겠지만, 보고 배우라는 심산으로 냄비에 물을 잡았다. 부엌에서 찾으니 에모가 까두었던 마늘이 플라스틱 반찬통에 가득 있었다. 족히 두 줌은 넘을 그 마늘을 다 넣었다. 이 나라에서 찹쌀을 찾는 것은 무리다. 쌀을 반 공기 정도 넣고 불을 붙였다. 닭이 채 익기도 전에 나는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닭이 어지간히 익었을 때 쌀을 넣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걸.
처음부터 쌀을 먼저 넣었으니 눌어붙을까 에모가 조리가 끝날 때까지 나무 주걱으로 저어야 했다. 나중에는 쌀이 너무 많아 다른 접시에 걷어내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백숙이, 백숙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에모가 미얀마에도 이런 음식이 있노라고 했다. 그래?
체따샨뽁! 듣고 가만히 생각하니, 제따는 닭을 말하는 것이고 샨은 쌀을 말한다. 뽁은 끓이는 것을 뜻하는데, 미얀마 음식은 조리하는 방법에서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쪼, 낑, 뽁, 현지어로 이렇게 나뉘는데 쪼는 튀기는 음식에 붙는 이름이다.
그럼 왜 내가 직접 했나? 널 시키면 되는데?
에모는 이렇게 만드는데 제똥퓨라고 불리는 마늘을 넣는 게 한국과 다르다는 점을 일러주었다.
백숙이라고는 그렇게 한 게 처음이었다.
그날 그걸 먹고 정신을 차렸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익힌 방법으로 모비에 처음 가서 찬윈과 백숙을 시도했는데 의외로 성공이었다.
희한하게도 맛있게 되었다.
백숙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이 났고, 마당에 천막을 깔고 그곳에 놀러 온 이웃, 그들은 아마 찬윈이 가끔 불러 소소한 일을 시키는 모양인데, 같이 둘러앉아 한국에서 공수된 소주로 파티를 열었다. 그걸 먹으며 한국에서 소풍 가면 이런 식으로 소주 파티를 한다고 했다. 그게 찬윈과 두 번째 만남이었을 거다.
그다음부터 찬윈이 백숙을 들먹여 늘 그곳으로 가며 백숙을 할 장을 봐서 들어가는 형편이다.
찬윈!
세력을 만드는 과정인데 순순히 끌려오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군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른 건 살 수가 있는데 군은 어떻게 사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시도하는 것이 군부나 총을 사는 방법일까?
내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세력을 형성하는데, 쪼민 저 자식도 어쩌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저 자식이 일을 치고 나가는 걸 보니 나름대로 통솔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개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데?
모또삐끼
모또삐끼 일본말처럼 들리지만 아니다 미얀마 알인데 교통경찰을 지칭하는 공식 명칭이다 경찰을 예라고 부르는데 교통경찰만 왜 모또삐끼라고 다소 저속한 뉘앙스가 풍기는 명칭을 채택했는지 예전부터 존재하던 말이 아니라 최근에 차가 보편화되고 생긴 신생어인 모양 아마 모터 MOTER 차에서 파생된 명칭인 모양 아무튼 이 모또삐기 횡포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소형 화물차를 샀다 일을 위해서 화물차가 절실했다 모또삐끼에게 만만한 게 화물차다 고급 승용차는 눈에 띄는 위반을 해도 단속은커녕 모또삐끼가 고개를 돌린다는 현지인의 설명 차에 어느 위인이 타고 있는지 모르기에 화물차를 사서 끌고 나가면 모또삐끼가 이빨 들어냈다 그걸 진즉에 알았으면서도 이제는 달라졌겠지 그건 순전히 이방인의 가냘픈 희망 사항 교통경찰이 단속하면서 담배를 삐딱하게 물고 단속하는 경찰은 처음 봤다 엊그제 오만 짯을 냈고 오늘 또 사만 짯을 뜯겼다 특별히 위반사항이 없었다 무조건 붙들어 놓고 면허증을 받아들고 차를 살피며 트집 잡았다 심지어 타이어에 바람이 적은 것까지 단속의 대상 그러면 뭐가 걸려도 걸리게 마련 외국인은 현지인 보다 더 부른다 부자 나라에서 왔으니 현지인의 곱절을 내야 마땅했다 딱지나 영수증이 없다 사만 짯 뜯기고 생각하니 적은 돈이 아니다 사무실 경리 월급이 고작 십칠만 짯인데 모또삐끼의 월급이 얼마나 될까 아무래도 화물차는 불러서 쓰고 승용차로 바꾸는 게 싸게 먹히겠다 큰돈은 모또삐게에게 뜯기고 잔돈은 신호대마다 포진해 있는 할머니나 맨발의 아이들에게 뜯기고 있는데 만만하게 보였던지 미얀마 개가 다가와 뒷다리를 쳐들고 앞바퀴에 오줌을 싸고 지나갔다
케이아웅을 거느리고 벽돌쌓기를 감독하는, 쪼민! 저 자식을 개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이 바뀌고 있다. 저걸, 내 세력을 엮는데, 어떻게 이용할 수가 없을까? 덩치는 작아도 나름대로 고집을 지닌 놈인데,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그날, 쪼민이 눈엣가시로 박히던 날도 나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쪼민, 저 자식을 개로 만들려고 했다.
나의 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상당히 지쳐있었다. 지쳐서 화물차를 끌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우리 집 차고에 화물차를 뒤로 넣으려면, 골목이 넓지 않은 까닭에 쪼민의 집 앞에 선, 야자수까지 차를 바짝 당겼다가 후진을 해야 하는데, 쪼민 저 자식도 그걸 알고 있는데, 그날은 쪼민 저 자식이 야자수 그늘에 앉아 눈도 깜짝하지 않고 다리를 꼬고 앉아 버티는 것이었다.
허? 이 새끼 봐라? 이 새끼가 텃세를 해?
그런 말을 씹으며 차를 녀석이 앉은 곳까지 바짝 밀어 넣었다. 차 범퍼는 녀석의 무릎과 불과 한 뼘도 떨어지지 않았겠지만, 녀석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차를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두 번이나 수정해서 차고에 넣었다.
그날은 쪼민이 아니더라도 엄청 기분이 구겨져서 들어온 날이었다. 화물차 때문이었고 모또삐끼 때문이었다.
교통경찰은 이 나라에서 공식 명칭이 모또삐끼다. 모터에서 유래된 신생어인데 차라는 것을 알지만 그다음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명칭도 고약해서 모또삐끼,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삐끼라는 속어가 있었던 것 같다. 길거리에서 손님들을 호객하는 아줌마들을 두고 삐끼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대구의 자갈마당에서 삐끼를 피해 다녔다?
그런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모또삐끼에게 이만 원이 뜯기면 내 정서는 사만 원어치 훼손된다. 도대체 이 나라 경찰은 어떤 구조인지 모르겠다. 저 자식들이 이렇게 뜯어서 높은 놈에게 상납이라도 하는 것일까? 그게 먹이사슬의 구조인까?
이 나라에선 주머니가 빈약하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돈이 많으면 화물차를 타라는 말이 교민들 사이에 떠돈다. 화물차를 끌고 다니면 늘 모또삐끼의 표적이 된다는 말이다. 모또삐끼가 고급 승용차는 단속, 단속이 아니라 함부로 잡지 못한다. 고급 승용차가 뭐라도 위반하면 단속을 하기는커녕, 고개를 돌린단다. 실제로 그렇다.
교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가지가지다. 어떤 이는 지갑을 두 개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지갑 하나에는 운전 면허증과 돈 만 원! 모또삐끼에게 걸리면 그 지갑을 열고 면허증을 주고 돈은 만 원밖에 없다. 배 째라! 버티면 면허증을 돌려주며 보내준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아예 미얀마 말을 하지 않고, 영어도 한 마디, 하지 않으며 오로지 한국말로 죽치면 만 원에 해결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얼마나 많이 걸렸으면 저런 말이 오갈까?
아무튼 그 말은 가는 곳마다 걸렸다. 모래를 실으러 가다가 빼앗기고, 싣고 나오다가 또 잡혀서 빼앗기고, 죽을 맛이었다.
야 인마! 뭘 잘못했는지 딱지를 끊어라.
그렇게 하면, 손해다. 벌금은 벌금대로 내고 경찰서에 면허증을 찾으러 가야 한다. 그리고 멋대로 하라고 버티면 견인차가 와서 끌고 간다. 그렇게 가면 견인비와 그쪽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주차료까지 왕창 나온다.
짜증이야 나지만 걸리면 그 자리에서 해결하고 면허증을 받아오는 게 가장 싸고 편한 방법이다.
화물차를 끌고 다니다 보니, 아무리 봐도 교통질서 확립을 위해 단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갈취! 분명히 갈취를 위해 나온다. 어떤 때는 잡혀서 보면 전부가 화물차다. 화물차만 대여섯 대를 잡아 놓고 단속하는 일도 있다. 잡히긴 했는데 모또삐끼가 오지 않는 것이다. 먼저 잡힌 화물차를 단속하느라, 차례를 기다리는데 이십 분이 넘게 걸리는 일도 있다. 그날은 네 번이나 걸렸다. 이쪽 도로에서 모퉁이를 돌아가면 또 있고, 다음 길에서 또 잡히고,
늦게는, 도저히 화물차로는 안 되겠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당장 차를 바꾸어야 하겠다. 그렇게 다짐을 했었다. 하루에 그렇게 걸리니, 아니 잡히니. 사람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는 것 같았다. 모또삐끼가 차창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면, 때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솔직히 그렇게 했다가는 이 나라에서 큰일 나지.
그렇지만 때리고 싶었다.
이러다가 성질 버리겠다. 차를 바꾸어야지. 그날은 지쳤다.
네 번 걸리고 십일만 원이 뜯긴 날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내가 혼자 가다가 잡히면 이만 원이면 해결이 되는데, 아웅 살린이라는 녀석을 태워서 가다가 잡히면 차에서 내린 녀석이 어떻게 해결하는지 꼭 삼사만 원이 든다. 그것도 이상하다. 십일만 원! 아니, 십일만 짯! 속이 쓰렸다. 케이아웅의 일주일 노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아무튼, 그날 잔뜩 신경이 날카로워 들어오는데 쪼민이라는 자식까지 다리를 꼬고 앉아 신경을 더 거슬리게 했다.
쪼민!
저 자식은 내가 사는 골목의 통장이다. 이쪽 골목과 도로 건너 골목까지 담당하는 모양인데, 동네에 무슨 행사가 있어, 기부금이 필요하면 찾아오는 녀석이다. 그렇게 찾아오면 나는 후하게 기부한다. 그래야 표시가 나는 법. 골목 안 사람들이 다 동참하는데, 고작해서 삼천 원이거나 오천 원이다. 그런데 나는 거의 열 배를 기부한다. 그런 일이 있으면 골목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큼직한 칠판을 세워놓고 이름과 기부액을 적어서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데, 항상 내 이름이 맨 위에 있고 미얀마어가 아닌, 내 이름만 영어로 적기에 단박에 표시가 난다.
저 새끼,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내 반드시 너를 개로 만들어주리라.
모또삐끼에게 약이 올랐는데 엉뚱한 곳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은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하니, 그런 생각도 들지만. 그날은 내가 분개해 있었다.
언젠가 노천카페에서 본 개, 그 개의 눈빛으로 만들어주리라.
거듭 다짐하고. 다음날, 아침에 현장에 일을 시켜놓고 잠시, 개똥이에게 전화했다. 말이 서툴러 원만한 통화는 되지 않지만, 개똥이가 그 시간에 오토바이 시장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 정도는 통한다.
집으로 들어오니, 마침 쪼민이가 어디를 나가려고, 좁은 마당에서 오토바이를 꺼내고 있었다. 쪼민의 오토바이를 나는 안다. 형편없는 오토바이다. 오토바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 바퀴가 달리고 작은 엔진이 붙었다는 것, 그것으로 오토바이라는 이름을 겨우 지탱하는 탈 것이었다. 쪼민이 꺼내는 오토바이를 채 돌리기도 전에 뒤에 올라앉았다.
가자!
어딜?
좌우간 가!
고개를 갸웃하는 녀석의 오토바이를 둘이 타고 오토바이 시장까지 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개똥이에게 얼마를 주겠느냐고 물었다.
뭘 얼마 줘?
이 오토바이 말이야.
그때까지 쪼민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개똥이에게 이 사람은 좋은데 오토바이가 형편없다는 말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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