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문의 혀
문병란
태양이 머리 위에 머물던 정오, 수양대군의 칼은
성삼문의 혀를 잘랐다.
나리의 마음을 거슬리던
그 가시 돋친 성삼문의 혀,
비수와 같이
대수장의 심장 깊이 박히던 화살
그 세치의 혀 끝에서 무지개를 갈랐다.
그날 나리의 마음을 진노케 한 것은 무엇인가,
신숙주의 부드러운 혓바닥이
나리의 발바닥을 핥으며
강아지처럼 킹킹거리고,
늙은 정인지의 대자 수염이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을 때,
미친 개 밥이 된 성삼문의 혀,
그날의 수양산에 가 보아도
백이 숙제는 말이 없고
그날의 노량진에 가 보아도
잘리운 세치의 혀는 말이 없다.
뭇 나리들이
대수양의 발 아래 엎드려
강아지처럼 킹킹거리고 있을 때
모든 혓바닥이 먹이를 핥으며
보드럽고 미끈한 꽃을 피울 때
그 어는 흙 속에 묻혀
아직도 썩지 못한 세치의 혀,
그 소리없는 울음을 듣고 있는가.
※ 일본어 수업이 끝나고
김정훈 대표님께서 심금을 울린 시라고, 소개해주셨습니다.
늦가을이라 그런지 시가 가슴을 울리네요.
첫댓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