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1981년 7월 1일은 인천이 경기도에서 분리돼 직할시로 승격된 날이다. 인천은 경기도의 제1도시로 있으면서 경기도로부터 행정, 예산의 지도 감독을 받아왔다. 경기도로부터 분리·독립은 인천의 오랜 숙원이었다.
인천과 경기도는 도시의 걸어온 역사가 다르고, 인천시민이 낸 세금의 상당 부분이 경기도에 쓰이자 인천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행정과 예산의 독립이 절실하다는 지역의 요구가 오랫동안 있었다. 직할시 승격은 인천이 자치행정으로 독자적인 발전과 도약의 첫 발을 뗀 역사적 순간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인천에서는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는 다양한 축하 행사가 열렸다. 축하문구를 담은 97개 애드벌룬은 인천 하늘을 수놓았고, 2개 아치가 세워졌으며, 7개의 육교와 크고 작은 300곳의 빌딩엔 승격을 축하하는 플래카드, 현수막이 걸렸다. 자유공원, 수봉공원, 북구청(현 부평구청)앞에는 불꽃발사대를 마련하고 350발의 축포와 불꽃을 쏘아 경축분위기를 한껏 드높였다.
인천직할시 승격 개청을 겸한 기념식은 1981년 6월 30일에 있었다. 기념식에는 당시 서정화 내무부장관, 김찬회 초대 인천직할시장, 인천 출신 국회의원, 시민, 학생 등 1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인천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직할시 승격으로 인천 시내 87개 사회단체들도 바삐 움직였다. 그동안 이들 기관들은 경기도 지부 산하에 소속돼 있었기에 7월 1일부터는 독자적인 업무추진을 위한 직할시 지부 분리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간 경기도지부에 속했던 의사회, 체육회, 각급조합, 협회 등 87개 사회단체는 대부분 경기도지부 산하에서 인천직할시지부로 분리·독립됐다.
경기도립병원은 1981년 7월 인천직할시립병원으로 전환했고, 인천 중구에 있던 경기도 경찰국은 몇 년간 같은 체제를 유지하다 1987년 2월 인천직할시 경찰국이 개국하면서 분리됐고 경기도 경찰국은 경기도 수원으로 청사를 이전했다.
직할시 승격은 인천이라는 독립 브랜드의 첫 출발이었다. 인천은 1981년 직할시로 승격된 후 14년 후인 1995년 광역시로 도시의 타이틀을 바꿔 달았다. 눈부신 발전과 성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직할시 승격이 인천의 독자적인 발전을 위한 첫 단추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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