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굶지 말아라 - 짜라로부터 / 이용한
너는 ㅈ일보 교열부에서 3년간 일했다
종종 시력을 망치며 번 돈을 잘라 서랍에 몰래 넣고 가던 너
네가 짤막한 편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밥 굶지 말아라 - 짜라로부터
詩보다는 학파에 심취했고 가슴보단 두뇌에 기울던 친구
술 먹는 날엔, '역사는 물 건너갔어'
너는 네 앞에 던져진 하이데거를 발로 차버렸다
언젠가 새로 사귄 간호사와 자고 가면서
아무래도 부모의 등 뒤로 돌아가 결혼할까봐
여자는 임신 5개월이 지나 있었다
그래도 너는 여전히 외롭다고
외로울 땐 야근 중에 키에르 케골을 읽어도 외롭더라
너는 줄곧 불면증과 지독한 거식증에 시달려 왔다
오래전 내가 청계천에서
먼지 묻은 고전의 삶을 베끼고 있는 동안에도
너는 사랑 깊은 니체를 원서에서 만나곤 했지
"Thus Spoke Zarathustra", --- 너는 때때로 이렇게 말했다
'활자는 인간의 감옥이야', 결국
네 손에 들려있던 無,
난 3년간이나 굽은 너의 어깨를 안아 주었다
그래 너는 단지 굽은 만큼 외도한 것이다
이후, 너는 6개월이나 군산에서 배를 탔다
등 푸른 새벽바다 소주 한 잔에 생선회 먹는 기분 너 아니?
그때 보내 온 편지에서 너의 혀를 내가 얼마나 그리워 했던지
며칠씩이나 비린내 때문에 헛구역질했다
어느 우기엔가 --
근해의 악천후 속을 헤엄쳐 고군분투 끝에 네가 해일로 떠밀려왔을 때,
너의 이마에서 나는 수십 마리의 갈매기떼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 네게 바다는 분명 멍들어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런 네가 정말로 멍든 바다를 목격하고 싶었다면
너는 채찍을 들고 파도를 후려치기 위해 스스럼없이 대양으로 나서야 했다
무릇 실존을 믿는 자는 강하게 절망하고 강하게 죽는 법이다
강하게 죽기 위해 강하게 사는 것
그것이 그들의 미덕이며 도덕율이다
그러나 너는 마지막으로 네 속에 뚫린 공허한 구멍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미친 놈, 내가 한 욕설이 너를 해변으로 밀어넣은 건 설마 아닐테지
더더욱 너의 배후엔 2세가 남아있지 않은가
배가 점점 불러와요, 어제는 그 여자가 다녀갔다.
- 이용한 시집 <정신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