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라 포구에서
팔월 첫째 월요일이다. 우리 지역은 장마전선에서 벗어났다만 중부권은 집중 호우가 심상찮다. 동지나 해역에서 중국 대륙으로 진입하는 태풍이 소멸하면 발생할 수증기가 한반도로 유입되면 강수량이 늘지도 모른다는 예상이다. 코로나로 고생이 심한데 생명과 재산을 잃는 수재까지 겹쳐 걱정이다. 민생은 도탄에 빠져 힘든데 여의도는 서민들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긴 하는지.
주말에서 다시 평일 일상으로 돌아왔다. 방학을 앞두고 학기를 마무리 하려니 여러 일들이 쌓였다. 내가 수업에 든 학급 백 오십여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능력 세부 특기사항을 한 명 한 명 빼곡하게 적어주어야 한다. 하루 열 명을 정리하기 버거울 정도다. 열 명씩 기록하면 보름이고 다섯 명이면 한 달 걸린다. 담당에선 수시 전형을 앞둔 고3은 팔월 중 끝내라고 재촉이다.
새벽 같이 출근했기에 일과를 마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정을 나섰다. 좁은 국토에서 중부권은 곳곳이 물난리가 심각하다는데 우리 지역은 괜찮음만도 감사했다. 여기도 지나간 장마 때 호우경보가 두 차례 발령될 만큼 강수량이 적지 않았더랬다. 섬이어서인지 다행이 산사태나 침수가 우려된 지역이 적었고 인명 피해가 없었을 따름이다. 와실로 들어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연사 정류소로 나가 바다가 보일만한 행선지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구조라로 가려면 23번을 타면 되고 장승포나 능포로 가려면 10번이나 11을 타면 되었다. 장목이나 칠천도로 가는 노선도 있다. 그곳보다 먼저 옥포 시내를 둘러 아주로 가는 16번이 먼저 닿았다. 아주는 대우조선소 배후 택지 지구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대우에서 운영하는 사립 초중고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옥포는 고현과 함께 거제를 대표하는 주거지다. 시청과 의회와 법원은 고현에 있어도 경찰서와 소방서는 옥포에 위치한다. 거제의 행정관서가 두 곳에 양분되어 있을 정도로 조선소 근로자들이 많이 사는 주거 밀집 지역이다. 그간 옥포 시내로는 둘러갈 일이 없어 16번 버스는 잘 타질 않았다. 연초삼거리를 지나 송정고개에서 옥포고등학교 앞에서 비탈을 내려서니 옥포 시가지였다.
비탈에 지어진 아파트 이면도로를 거쳐 재래시장과 초등학교를 거쳐 대우오션 앞에서 내렸다. 대우조선소의 거대한 도크를 마주한 자그마한 포구로 나갔다. 수변공원엔 임진왜란 최초 승전지라는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옥포대첩의 구체적인 승전지는 지금의 대우조선소 도크가 차지해 승전 기념비는 현장에서 비켜 서 있는 셈이다. 방파제에는 몇몇 낚시꾼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어선과 낚싯배가 정박된 작은 포구를 지나니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 안내판이 나왔다. 옥림 거제대학에서 대계마을 김영삼 대통령 생가까지를 이른 길 이름이었다. 옥포만을 끼고 옥포대첩 기념공원이 있기도 했다. 옥포동에서 가까운 해안선에 데크가 설치되어 산책객들이 다수 찾았다. 대우조선소 도크가 가까웠고 옥녀봉은 구름이 걸쳐져 있었다. 능포동 봉수대 능선이 드러났다.
낮에는 무더위 나오지 못해선지 해거름이 되자 산책을 나온 이들을 더러 보였다. 해안선 데크가 끝난 곳에서 비탈을 오르면 팔랑포를 거쳐 옥포대첩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해안선 데크에서 되돌아 아까 포구로 왔다. 옥포항 포구에 ‘조라활어시장’이 있었다. 노변 간이테이블엔 회를 안주 삼아 맑은 술을 드는 손님들이 더러 있었다. 나는 낄 자리가 아니라 주민센터 앞 수변공원으로 갔다.
공원 자투리 이은상이 남긴 옥포 승전을 기린 시를 빗돌에 새겨 놓았다. 옥포는 예전 장승포읍에서 장승포시에 속했다가 거제시의 행정동으로 바뀌었다. 그 이전 이운면으로 몇 개 자연마을이 있었다고 했다. 그 가운데 ‘조라’가 눈길을 끌었다. 지세포가 속한 일운면에는 구조라가 있었다. 옥포에 있는 조라는 ‘신조라’인 셈이다. 조라라는 지명이 일운면에도 있었고 이운면에도 있었다. 20.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