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가장 못 믿을 물건이 배트다. 안타를 때려낼 땐 요술 방망이 같은데, 허공만 가를 땐 팬들의 안줏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오늘, 내일이 다르다는 것이 타격 감각이라지만 박용택(LG)과 김현수(두산)의 방망이는 무더위를 무색하게 할 만큼 뜨겁다. 팀 연고지(서울)와 타격 방향(왼쪽), 수비 위치(외야수)까지 같은 두 선수는 3할7푼 안팎의 맹타로 타격왕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역대 타율 0.370 이상으로 수위 타자에 올랐던 선수는 네명(백인천·장효조 2번·마해영·이종범)뿐이다.
박용택과 김현수의 성공 비결을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만의 스트라이크 존, 안정적 타격 자세, 철저한 투수분석과 뛰어난 순간 대처 능력….
■'쿨 가이' 박용택
박용택은 2002년 입단하면서부터 세련된 외모와 타격 잠재력으로 일찌감치 '쿨 가이(Cool guy)'로 불리며 스타대접을 받았다. 정작 성적은 매년 기대에 못 미쳤다. 2004년에 딱 한 번 3할(0.300)을 쳤을 뿐이다. 특히 작년(타율 0.257)의 부진은 심각했다. 올해 정규 시즌을 앞두곤 시범 경기에서 갈비뼈에 금이 가는 바람에 개막 명단에서 빠지는 불운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4월 25일 1군에 복귀하자마자 고감도 타격으로 데뷔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박용택은 "그동안 타격 자세 변화가 많았다. 이제 나만의 폼으로 기술적인 안정감을 찾았다"고 말했다. 사령탑이 바뀔 때마다 타격 자세를 조금씩 다듬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이번 시즌을 앞두고 '가장 잘되던 때'를 연구하면서 돌파구를 찾았다고 한다. 김용달 타격 코치는 "박용택은 타격 스타일이 크고 거칠었는데 올해 들어선 간결해졌다. 작년 같으면 헛스윙했을 확률이 높은, 떨어지는 변화구에도 속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용택은 "자기가 원하는 공을 치는 (팀 동료) 페타지니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의 타격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된다"고 했다.
■'사못쓰' 김현수
얼마나 잘 치면 '사할도 못 치는 쓰레기'의 줄임말이 반어적인 애칭으로 붙었을까. 지난 시즌 타격 3관왕(타격·안타·출루율)을 향한 팬들의 믿음은 열광적이다. 김현수는 신일고를 졸업하고 프로팀의 지명을 받지 못해 두산에 신고선수(일종의 연습생)로 입단했다. 2군 시절 하루 1000번 이상의 스윙을 하며 노력한 끝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안타기계라는 별명답게 작년 베이징올림픽과 지난 3월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당시 한국 대표팀의 간판 타자로 활약했다. 특유의 배트 컨트롤 능력에 올해엔 장타력까지 갖추면서 전천후 타자로 거듭났다.
김광림 타격 코치는 "김현수는 투수에 대한 패턴 분석과 대처능력을 크게 발전시켰다. 악력과 손목 힘을 길러 공을 맞히는 순간 방망이 헤드를 앞으로 뿌리는 기술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몸이 단단하면서도 피로 회복이 빠르고, 기술 습득 속도가 탁월하다고 한다.
김현수 자신은 마음을 비운다는 뜻인 '무심(無心) 타법'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면 치겠다는 생각이다. 이번 시즌 가장 애착이 가는 타이틀은 최다안타"라며 "작년엔 한국시리즈에서 울었는데, 올해는 우승하고 웃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