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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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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토론 ●자유게시판 카페.광주사태(화려한 휴가)증언자료의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가 본 518무장단체와 실제 KBS스페셜;80년 5월, 푸른눈의 목격자
지바고 추천 0 조회 488 08.09.20 20:15 댓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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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9.20 20:24

    첫댓글 도대체 지바고님의 치매 증상의 끝은 어딘가요? 5월 19일 힌츠페터가 광주에 있었다고 우긴 쪽은 이준형님이었으며, 5월 19일 힌츠페터가 광주에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한 쪽은 저였습니다.

  • 작성자 08.09.20 20:36

    난 지금 5월 19일 무장싯점인지,5월 20일 무장 싯점인지 그게 중요하지 않는거다.왜 힌츠페터의 동영상중 도청발포 화면을 삭제 편집하였는가 묻고 싶다

  • 작성자 08.09.20 20:38

    도청발포 화면을 누락해버리니 힌츠페터가 21일 광주를 이탈했으니까 5월 20일날 시민무장 이루어진것처럼 보이잖아.역사왜곡자여~!!

  • 08.09.20 20:50

    이것 보세요. 힌츠페터는 공수부대원 그림자도 구경한 적이 없습니다. 힌츠페터는 도청광장 충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5월 21일 아침 무장시민군이 시민군 장갑차 등을 앞세우며 도청으로 진격하는 장면을 보고 촬영하였을 뿐입니다.

  • 08.09.20 20:53

    518단체들도 KBS도 저도 도청광장 충돌 장면을 삭제한 적이 없습니다. 힌츠페터는 그 사건을 보지도 찍지도 촬영하지도 않았습니다. 힌츠페터는 광주에서 공수부대원 그림자도 본 적이 없습니다.

  • 작성자 08.09.20 21:00

    학도 => 기자가 무슨 슈퍼맨이라고 동해번쩍 서해번쩍 타임머신타고 찍을수있다냐? 그걸 찍었으면 학도 당신의 도청집단발포 사기도 더이상 할수없는거 아니냐?

  • 08.09.20 21:04

    그러면 <왜 힌츠페터의 동영상중 도청발포 화면을 삭제 편집하였는가 묻고 싶다>는 누구에게 왜 던지시는 질문인가요?

  • 작성자 08.09.20 21:07

    [카페]광주사태(화려한 휴가)증언자료의 동영상엔 도청발포 화면이 없어서 하는 얘기이고,또한 그런 도청발포 장면을 님이 봤었으면 발포후에 시민군무장했었다는것은 당연히 알수있을거아닌가?

  • 작성자 08.09.20 21:05

    학도=>힌츠페터가 도청 집단발포 시간대에 점심먹고있었는지 똥누고있었는지 어찌 알거여? 도청앞 집단발포후에 시민들이 무장하자 그걸 화면에 담은거 아니겠는가?

  • 08.09.20 21:08

    눈과 귀가 어두우시면 힌츠페터의 영상물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무장시민군이 장갑차를 앞세우며 도청 방향으로 진격하는 것을 본 힌츠페터는 서둘러 광주를 빠져나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 작성자 08.09.20 21:09

    학도 => 다음에 힌츠페터를 언제 모셔다두고 님이 직접 대면해서 얘기해보세요..그촬영 5월 20일인지 21일 오후 촬영인지,, 그리고 계엄군 한명도 못봤는지

  • 08.09.20 21:13

    공수부대원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평상시에도 검문소 검문을 군인들이 했었는데, 힌츠페터는 광주향토사단 소속 검문소 군인들을 보았을 뿐 공수부대원 그림자도 본 적이 없습니다.

  • 작성자 08.09.20 21:21

    나도 군인은 딱 세번 봤다.. 5월 18일 금남로 대로변에서 시민들을 군인들이 구타하고 트럭에 싣는 광경, 전대후문에서 학생 구타 광경,도청 충장로 1가입구쪽 집단사격 할때 시민들과 군인 대치 광경..멀리 본것은 빌딩위 저격수.. 그외에는 나도 공수군인 만나질 못했슴.

  • 08.09.20 21:24

    님이 본 빌딩 위 저격수란 전남대 부속병원 옥상에서 기관총으로 정조준하던 시민군 저격수를 말하는 것이지요?

  • 작성자 08.09.20 23:56

    학도 핵심을 벗어나지 맙시다.도청발포와 함께,공수부대 저격수 배치는 이미 공수부대 대대장도 증언한것을 아실겁니다.여기서는 집단발포,저격수배치가 요지가 아니고 힌츠페터 촬영이 20일인지 ,21일 오후인지 그것만 얘기하시죠..

  • 작성자 08.09.20 21:22

    그리고 20일,21일에 계엄군 보고싶다면 광주시내 중앙인 도청앞 바짝 앞으로 와서보면 만날수있습니다..거기 사수할려고 진치고 있었거든..자꾸 외곽 주택가에서 빙빙 돌면 계엄군 만나기 어려울걸요..

  • 08.09.20 23:33

    저도 동영상을 계속 보았는데 군인 나오는장면은 5.18, 5.19 상황은 힌츠펜더의 동영상이아님. 검문하는 것빼고 말하는것임..

  • 08.09.20 23:34

    학도님 그때 왜계엄군을 못찍었을까요. 그분 광주시내에서촬영을 했을텐데.

  • 08.09.21 00:06

    광우사태 때 시위대와 수가 비슷해도 전경이 밀렸습니다. 광주사태 때는 공수부대 처음 2백명에서 나중에 천 명으로 증원되었어도 시민군 수의 300분의 일밖에 안되었습니다. 더구나 이틀 동안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한채 도청 앞으로 밀려 있었습니다. 즉, 시민군에게 완전 포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힌츠페터의 눈에 공수부대원이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 힌츠페터는 도청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으며, 설사 도청으로 갔다 해도 30만명의 시민군 인파를 뚫고 지나가기 전에는 공수부대원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 08.09.20 23:43

    학도님 뎃글을 읽다보니 궁금한점이 생기내요. 21일도청앞발포가있었죠.. 그당시 광주가 크다고 생각 않돼는데요 총성을 못들었을까요? 동영상에 보면 그전날밤 총성을 들었고 건물 안에서 총에맞은 시체를 촬영 했는데 왜도청앞 집단발포 때는 못들었을까요? 지비고님 이나 학도님 의문이않드나요?

  • 작성자 08.09.20 23:53

    힌츠페터가 도청 가까이에 있었으면 당연히 들릴수있었겠지요..실제 도청사격은 몇분정도 집단 발포였기에 ,다소 먼곳에서 숙소가 있었다면 그참상을 보기위해 달려왔을때는 이미 끝나버린 뒤입니다..그래서 집단발포이후 시민군 무장을 촬영했을겁니다.

  • 08.09.21 00:01

    그 전날밤 광주역에서의 총성은 총성이 아니라, 최류탄 발사 소리였습니다. 제가 정확한 최류탄 발사기 명칭을 잊었는데 E-6 비슷한 기종으로 어렴풋하게 기억합니다. 그 소리가 꼭 총성처럼 들려서 힌츠페터가 혼동했던 것이지, 실제로는 총성이 아니었습니다.

  • 08.09.21 00:14

    그리고 발포라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시민군 편에서 먼저 발포하였으며, 시민군 장갑차가 군인들을 깔아죽이자 장교들이 하늘을 향하여 공포탄 몇발 쏜 것 가지고 발포라고 할 수 없지요.

  • 작성자 08.09.20 23:48

    유재덕님 힌츠페터가 광주에 도착한것이 20일 오후입니다..외신기자 신분으로 절대 계엄군편에서 촬영한다는것은 엄두를 낼수가 없습니다.동영상에서 설명하듯이 계엄군을 가까이 촬영했다면 그즉시 필름을 압수당하게됩니다..당연히 시민편에서서 피해 상황을 촬영했던겁니다.

  • 08.09.20 23:58

    그럼 발포한사실을 알고 도청앞에서 시민군이무장하는겄을촬영 했다이말씀이내요.. 그럼 발포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아무런멘트가 없었을까요?

  • 작성자 08.09.21 00:16

    우리가 알고있는 동영상은 TV방송분입니다. 그화면에는 그분이 촬영한 화면뿐입니다.힌츠페터가 경험한 도청앞 발포 얘기는 그화면에서 직접 언급이 없었다해도,그가 여러경로를 통해 멘트를 안했을리가 없죠..어느 기사에서 그분이 책을 집필하고있는것으로 봤습니다.그의 자서전적인 책이 출간되면 소상히 아실겁니다,물론 그분을 언제든지 초청해서 당시얘기를 직접 들을수있는 기회도 있을거구요..

  • 08.09.21 00:20

    지바고님은 그분이 소상하게 남긴 수기조차 여태 안읽어 보신 모양이시군요. 힌츠페터는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한 후에 도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무장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하고 있는 모습이 518측에 불리하니깐 518단체들과 KBS가 삭제하여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이고, 그분의 영문 수기 원본에는 소상하게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지바고님은 힌츠페터의 수기조차 읽어보지 않고 픽션소설 쓰시는가요?

  • 08.09.21 00:25

    그리고 힌츠페터의 수기에 시민군 사망자 수 4명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지, 그는 4명 모두 시민군 총탄에 의한 사망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청광장 충돌사건으로 인한 시민군 사망자 수는 4명이었다는 것이 518단체들이 보여주지 않는 그분의 영문 수기 원본으로 명확하게 입증됩니다.

  • 08.09.21 00:02

    그리고 전날총성은 메트를했거든요...멀리서 할수도있었을 텐데요.지바고님 가령옥상에올라 가서 광주 시내를 촬영 했는데 그건 어쩔수없겠죠.

  • 작성자 08.09.21 00:07

    이미 도청주위 빌딩위에는 군인들이 저격수로 배치되어있어서 ,외국기자로서 접근하기도 어렵겠지요. 그이유보다는 오후한시경에 집단발포 촬영을 못한것은 힌츠페터가 바로 앞에 없었다는것 밖에 설명이 안됩니다..

  • 작성자 08.09.21 00:10

    전남도청앞 광장은 분수대가있는 로타리이고 그분수대를 중심으로 3거리 광장입니다..제가 집단발포할때 서있었던 위치는 충장로 1가쪽입니다..그곳은 금남로 방향이 아녔기에 당시에 저도 계속되는 총소리만 들었습니다..실제 사격방향이 금남로 정면을 향한 응사라서 저도 좌측도로인 충장로1가에서 소리만 들리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하고 도망가고..만약 힌츠페터가 저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도청 정면에서 금남로를 보고 발포하는 군인들을 촬영할수는 없었을겁니다..

  • 08.09.21 00:11

    지바고님의 본 저격수 위치가 어디었던가요? 전남대 부속병원 옥상이었지요? 기관총으로 무장한 시민군 저격수였습니다.

  • 08.09.21 00:45

    지바고님 총성을 들으셨다고요. 그럼 외국 특파원은 못들었을까요.광주가 지금은 크지만 그때당시에는 광주어느곳에있다해도 들을수있지않나요..

  • 작성자 08.09.21 02:16

    21일은 힌츠페터가 광주를 빠져나갈려했던 날입니다.당연히 도청집단발포을 가까이서 경험햇거나 그사실을 즉각적으로 들었기에 바로 시민군 무장 모습을 필름에 담을수있었습니다.

  • 작성자 08.09.21 02:01

    유재덕님; 58분 KBS 스페셜:5.18를 목격한 푸른눈 영상을 자세히 보다보면 21일 아침에 건물내 총상입은 청년 얘기를하는 힌츠페터 인터뷰 바로 이어서 해설가 나레이션이 나옵니다.10초정도의 문장에 " 이날 오후 힌츠피터가 광주를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도청앞에서 는 또 다른 커다란 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도청발포 나레이션이 계속 됩니다.그다음에 "시민들이 어디선가 총과 실탄을 가져왔다.. 나는 남은 필름을 모두 사용해 이 상황을 촬영했다."

  • 작성자 08.09.21 02:05

    이미 5월 20일 촬영으로 군인들에게 당한 시민들의 피해 참상을 담아서 21일 오후에 광주를 빠져나갈려고 이미 짐을 꾸리고있었다는 정황입니다.그러다가 생각치않는 도청발포가 생긴거죠..이를 힌츠페터는 촬영을 바드리게되는 이유를 암시하고있습니다.그래서 다시 남은 필름을 전부 사용해서 촬영을 시작한것이 시민군 무장 모습인것입니다..

  • 08.09.21 10:07

    현장에 계셨다니 시민군이 무장 과정도 지켜 보셨겠군요. 총과 실탄가 장갑치와 기관총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던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21일 오전의 장면입니까 오후의 장면입니까?

  • 08.09.21 10:09

    자고고님 억지가심하십니다.어떻게나레이션을 그렇게사용하심니까/? 커다란사건은 시민군무장을 말하는거지 시민군들 의;외침이우리는죽을려고한다 이걸로보는게타당하지않나요.나래이션을 발포로보는건무리가잇어보임니다.그사람들은 찰영을 하러밖에있는상황에서죽은시체가 어디서발견을 하였는지는 저는 모르겠지만 님의주장은너무무리가있내요.

  • 작성자 08.09.21 10:43

    억지가심-->억지다심이죠..

  • 작성자 08.09.21 10:46

    알기쉽게 풀어쓴 제글을 색안경을 쓰고보시면 아무리 옆에서 이것저것 조명을 비쳐줘도 어둡게만보는법이죠..충분히 님을 위해 설명했드만, 결국 님은 좁은 우리안에 갖혀서 한쪽으로만 계속 보고있군요..

  • 작성자 08.09.21 10:46

    유재덕님,그건 님이 무장싯점이 궁금해서 여기저기 카페에 왔다갔다 질문해서 제가 5월18일부터 5월 22일까지 광주도심을 지켜본사람으로서 제가 아는 범위와 귀하가 들먹인 힌츠페터 화면을 해석해줬드만 그런생각을 갖으니 할수없네요. 현장에있지도 않은 사람의 편집으로 왜곡된 영상화면을 유재덕님도 뭔가 의문을 갖었으면서도 결론은 그래도 학도의견을 존중한다는겁니다.

  • 08.09.21 10:56

    지바고님은 군복입은 시민군과 군인을 식별할 수 있는 거리대에서 보셨나요? 빌딩 위의 저격수들은 시민군이었습니다. 님이 멀리서 보실 수 있었던 것은 시민군이 건물 옥상 위에 기관총 두 대를 설치하여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08.09.21 11:21

    지바고님 저를위해 해주신점 은 고맙읍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밝혔드시 시민군의 무장은 않된다, 그것도 정규군인 을 상대로 총을 드는건 반란이다 라고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무장을 하였을 가하는 의문이 들어 카페가입을하고 묻는것입니다. 그리고색안경을 쓰고 본다는말씀은 그럴수도있겟다생각은 드내요. 그리고그건제 생각입니다. 외국 특파원이 집단 발포소리를 들었는데 거기에대한 멘트가없다.이건못들었을 가능성이 많지않나요.객관적으로볼때말입니다.커다란사건이란 멘트뒤에 시민군 무장이찰영 됨니다. 그럼 나레이션이뜻하는게 시민군 무장이라고보는게 타당한게아닌가요?

  • 작성자 08.09.21 11:51

    시민들이 총을 든것은 평시같으면 절대로 해서도안되고 생각할수도없는 당연한것입니다.그러나 군인들이 대낮 도심에서 시민들에게 사격을 해댄이상.그런군인은 정규군인이 아닌 반란 군으로 생각하게합니다.

  • 작성자 08.09.21 11:59

    외국특파원이 집단발포소리를 못들은게아니라..이건 힌츠페터가 사진기자 신분입니다..그는 리포터나 취재기자가 아니니 당연히 자기가 직접 필름에 남긴 영상만 독일로 송고한것입니다.. .무슨 얘기냐하면 그날 그날 실제상황을 긴급 송고해야하기때문에 필름에 자기 촬영순간의 영상과 녹음이외에는 필름에 담기지 못한 도청발포 설명은 당연히 그분의 입에서 해설이 나올수가 없습니다..

  • 작성자 08.09.21 12:02

    사진기자와 취재기자,리포터 이런 여러기자들이 합동으로 뉴스를 송고했다면 촬영및 녹음을 편집,녹음 ,해설을 곁들여 독일 본국으로 송고했을텐데, 급박한 광주상황을 시간지체없이 혼자서 화면에 담고해야하므로 촬영하지 못한 도청발포 애가는 당연히 볼수없을수밖에요

  • 08.09.21 12:56

    언제 어디서를 밝히는 것은 레포터의 기본 상식이며, 실제로 힌츠페터는 처음 도청에 도착한 시간을 수기로 남겼습니다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한 후였다고). 그럼에도 지바고님이 픽션소설을 계속 쓰시기에 묻습니다. 힌츠페터가 도청에 처음 도착한 때가 언제인가요?

  • 작성자 08.09.21 13:01

    이글은 당신 픽션소설을 내가 반박한것임, ...학도는 왜 58분 동영상에서 도청발포 이야기를 삭제 편집하여 이미 시민들이 무장한것처럼 오해하게했는지 밝혀보시지요?

  • 08.09.21 13:22

    제가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분명 힌츠페터의 영상물은 58분 혹은 그 이상 길이의 분량일 것입니다. 그러나 518단체들과 KBS가 보여주는 영상물에서 앞뒤 전부 잘라먹고, 힌츠페터가 찍지 않을 것들을 많이 섞어 놓았습니다. 삭제 편집한 쪽은 518단체들과 KBS였으며, 정말 순 힌츠페터의 58분 동영상이라는 것이 있다면 더 이상 감추지 말고 어서 공개해 달라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 08.09.22 23:32

    여기서 이러지말고 힌츠페터한테 모두 내놓으라 합시다. 간단하게 해결 될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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