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이 찾아왔다
임명옥
겨울 정중앙부터 찾아오기 시작한 객客은 당당했다. 시린 발끝에서 오는 한기 탓인지 꼼짝 없이 널브러져 있는데 그런 사정은 아예 모른 척하고 훅 들어왔다. 움츠러드는 나를 더욱 왜소하고 나약하게 했다. 재작년 가을쯤 척추 골절로 한동안 깁스를 하고 생활한 끝에 꼬리뼈에 압박이 오고 다리까지 서서히 마비가 오더니 급기야는 무릎에 이상이 왔다. 객은 그렇게 찾아 왔다.
다리가 무감각이 되더니 일어서고 걷는 데 문제가 생겼다. 객은 혼자 오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한 걸음 내디디는 데도 부축을 받는 수고도 곁들여야 했다. 무릎을 굽히는 것도 불편해서 결국엔 나를 찾아온 객과 함께 병원에 갔다. 무릎 관절엔 물이 차서 주 2회씩 거의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스스로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관절 주변에 물을 차게 하는 거라고 했다. 물이 많이 찬 날에는 관절을 구부리기는커녕 내 딛는 것도 어렵다. 이러한 객은 조용히 다가왔으며 지금도 머물고 있다.
엎드려서 허리 부근의 척추에 초음파를 보면서 경막외주사 여섯 곳을 놓고, 오른쪽 골반 최근접에도 한 곳, 허벅지에도 네 곳 놓는다. 무릎관절은 초음파를 보면서 물이 찼는지를 보고 주사기로 물을 뺀 후 주사한다. 주 2회씩 또는 주 1회씩 물을 빼기도 했다. 물을 빼는 주삿바늘은 일반 주삿바늘보다 굵어서 비명이 절로 나온다. 보통 10CC 정도 나오기도 하고20CC 이상을 빼면서 꾹꾹 눌러 빼내는 것을 느낄 때도 있는데 이럴 땐 눈을 감는다. "따끔합니다. 죄송합니다." 의사의 말이 위로가 된다. 병행하여 통증치료로 도수치료, 체외총격파치료. 전자파치료 등을 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 간다. 시술을 받는 동안 의사는 회진하면서 "분명히 나아지실 겁니다."라고 격려의 말을 전한다.
장기간의 치료를 마치고 집에서만 쉬고 있는데, 호흡하기 힘든 천식喘息이라는 객이 찾아왔다. 쇳소리가 나면서 호흡이 힘들어 밤잠을 설치게 한다. 그 객은 머리통 전체를 압박하며 쥐어짜는 재주꾼과 함께였다. 내 머리 통보다 작은 가죽 공을 씌워놓은 것처럼. 고통은 도저히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신경과에서 처방받은 약도 소용이 없었다. 이 또한 지나간다며 참고 버티라 한다. 호흡곤란에 두통까지 듀엣으로 찾아드니 참 징한 객식구다. 스테로이드계 처방 약을 일주일 넘게 먹어서인지 그 객은 큰 소란 없이 머물다 갔다. 아니 그렇다고 믿는다.
겨울도 힘이 다했는지 봄이 훅 하고 들어왔다. 잡시 기분 전환한다고 새벽부터 서둘러 주말농장에 갔다. 겨우내 쌓여 있던 낙엽도 굵어내어 쏘옥 올라오는 수선화, 꽃무릇, 튤립의 숨통을 터준다 사과나무, 복숭아 , 자두나무, 매실나무 도장지徒長枝도 잘라주고 그늘이 돼 버린 소나무 한 그루도 베었다. 코코아 한 잔 마시며 새소리 음악 삼아 쉬고 왔다. 물론 걸음이 시원찮아서 남편 하는 일에 지휘 감독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저녁에 집에 와서 팔다리를 보니 또 다른 객을 모시고 왔다. 놀랐다. 어이쿠, 남편을 조용히 불러 몸을 살펴보라 했다. 온몸에 빨간 꽃들이 피어났다 같이 간 일행들은 멀쩡한데 왜 나만..., 허리도 안 좋은 양반이 허겁지접 약국에 가서 알레르기약을 사 왔다. 늦은 시각이라 여러 곳을 들러 겨우 사 왔다고 한다. 허리통증으로 남편도 병원 치료 중인데 마누라 어찌 될까봐 허리통증도 모르고 뛰었다니 고맙다. 하루 지나면 낫겠지 아니 하루 종일 무얼 먹었지? 처음으로 쐰 봄볕 때문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못 찾았다. 이틀째가 되어도 그 꽃들은 시들지 않아 병원으로 갔다. 역시 이러한 객들은 병원과 궁합이 맞다. 자가면역력이 높아서 생기는 자기방어란다. 내 스스로 만든 객이다. 나를 공격하는 또 다른 나다. 다중多衆이인가?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내가 나를 공격하는, 아니 나를 방어하려고... 그래서 무릎관절에 물이 계속 찼었나 보다.
혈액검사를 하고 일주일 처방 약을 받았다. 3, 4일이 지나니 온몸의 꽃은 붉은 점으로 변하더니 사라졌다. 나와 내가 만나 싸움질을 하다니, 마주 보고 있는 거울 속의 나와 손을 잡은 것처럼 나와 나의 조우遭遇다. 대화도 없었지만 묘했다. 두렵기도 했다.
오늘은 혈액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이다. 아파트 단지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무릎에 찾아온 객과 함께 걷는 것은 익숙하지도 않아 천천히 걷기로 한다. 그사이 훅 들어온 주변의 봄기운을 꼼꼼하게 느낄 수 있었다. 며칠 동안 집 안에서 객과 지내다 보니 바깥세상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통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꽃들은 동시에 만발해 있다. 1층 세대에서 가꾸는 꽃밭에는 진달래, 매화, 목련이 만개했고, 철 늦은 동백꽃도 검붉다. 보도 블록 틈새에는 민들레와 냉이가 뾰족하게 올라와 있다. 장하다. 담장에 둘러쳐 있는 쥐똥나무에는 유록幼錄의 색들이 입혀져 있고, 놀이터 옆의 산수유에도 노란 꽃이 솜털 같다. 참새며 직박구리까지 햇볕을 쬐며 한가롭다. 며칠 지나면 벚꽃도 벙글어진다. 심호흡을 크게 하며 봄님을 귀하게 맞이해 본다.
검사 결과 자가면역질환으로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내부적인 요인으로 나타났으며, 언제든지 또 찾아올 수 있다고 한다. 단백질 수치가 너무 낮아 보충해야 한다며, 오메가3를 처방받았다.
나와 나의 내가 불편한 발걸음으로 맞이한 봄이다. 색들이 알록달록 살아 난다. 기온도 올라간다. 하늘도 기지개 켜 더 높아진다. 소리도 활기차다. 꽃과 나무들도 짙푸르고, 새소리도 힘차고, 햇빛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렇게 어울려 사는 거라고, 그래서 새봄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나의 나는 내 몸에게까지 봄꽃 소식을 알리려고 소란을 피웠나 봄.
임명옥
rongok9070@daum.net
2019년 한국산문문학상 수상
어쩌면 더 건강한 글을 짓고 싶다는 것은, 또 다른 나의 나약함에 대한 반격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