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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아동문학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문홍
영화 에세이 (11) |
살아가면서 깨닫는 것은
오모리 다츠시의 <일일시호일>
김 문 홍
형태를 잡으면 마음이 깃든다
인디언들의 삶의 지혜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뒤에 처져 따라오는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숨을 멈추고 기다린다는 것이다. 현대는 속도전의 시대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남보다 앞서야 하고 하나라도 더 이룩해야 마음이 놓인다. 길을 걸을 때에도 처음에는 동행하는 이와 보조를 맞춘다. 그런데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자기 혼자서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앞만 보고 걷는다. 숲이 있어도 지나치고 하늘 아래 살면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드물다. 주위를 돌아보며 여유롭게 산책하듯이 걸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다 보면 신체의 운용이 좋지 않아 걸음이 느려진다. 만나던 사람들과의 교우 관계도 줄어들고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갑자기 자신의 곁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예전에 몰았던 것을 하나씩 깨달아 가며 늙는다.
<마호로 역전 광소곡>(2014), <빛>(2017)의 작품 들을 내놓은 오모리 다츠시가 감독한 <일일시호일>(2018, 100분)은 조용한 영화이다. 마치 한편의 담백한 수묵화 풍의 수필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이다. 원작이 원래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애독되어 온 모리시타 노리코의 <일일시호일> 원작 에세이를 영상으로 옮겨놓은 이 작품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며 화자인 노리코가 대학 1학년에 입학하던 스무 살부터 43살까지의 24 년간의 인생 여정을 통해 다도에 심취되어 가면서 우여곡절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 시퀀스가 서로 수미상응되어 앞에서 묻고 뒤에서 그 뜻을 알게 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노리코(쿠로키 하루 분)가 열 살 때 부모와 함께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어 재미가 없었다는 나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다음 장면은 그녀가 대학 1학년에 입학하던 봄으로 시간이 비약된다. 사촌인 동년배의 미치코(타베 미카코 분)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다도를 배울 것을 권유하자, 그들은 다도를 가르치는 타케다(키키 키린 분) 선생을 찾아가게 된다. 다다미방의 벽에 붙어 있는 <일일시호일>을 바라보는 가운데 오프닝 크레딧이 소개된다. 오프닝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의 풍경이 공감각적 이미지로 관객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다도를 가르치는 타케다 선생은 두 사람에게 찻 수건을 접고 두는 법, 차를 마시기 전의 다과인 ‘붓꽃 만주’ 먹기, 남기지 않고 소리 내어 말차 마시기 등의 기본 동작을 가르친다. 이 영화는 시퀀스와 장면의 변화에 따라 벽에 붙어 있는 글을 통해 상황과 주제를 은유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다케다 선생과 두 사람이 처음 만날 때는 ‘남쪽에서 훈풍이 불어온다’라는 글을 통해 그들의 만남을, 절기 대한 무렵에는 ‘매화 향이 온 천지에 퍼진다’로 겨울의 혹한을 극복하는 모습을, 그리고 다도를 통해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면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일일시호일)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기본 동작의 절차와 형식이 까다로워 두 사람이 각각의 동작에 대한 의미를 묻자 다케다 선생은 희미하게 웃으며 의미는 몰라도 되고 그냥 그렇게 한다고만 대답한다. 찻물을 다 붓고 나서 주걱을 탈탈 털자 털면 안 되고 물방울이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다구를 들고 일어설 때에도 무거운 것은 가볍게 가벼운 것은 무겁게 들라며 하나하나 지시한다. 머리로만 생각하니 까다롭고 복잡한 것으로 느낀다, 형태를 잡고 거기에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바르게 고쳐 앉고 한 호흡 쉬라 넌지시 이르기도 한다.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몸의 움직임을 따르라는 일종의 경구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곧 인생의 리듬이다
이 영화는 입춘, 하지, 대서, 입추, 입동, 대한 등 24절기의 변화를 통해 다도의 형식과 절차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을 통해 인생의 지혜와 삶의 형태를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입동이 되면 차를 끓이는 화로가 등장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식과 절차가 등장한다. 그런 변화를 혼란스러워 하는 두 사람을 향해 다케다 선생은 여름 방식은 다 잊어라, 익혀 두었던 그 이전의 감각을 잊어 버려라, 오직 눈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노리코와 그녀의 사촌인 미치코는 셩격이나 사고방식이 판이하다. 그래서 직업 선택이나 결혼관 등에서 차별을 보인다. 미치코는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반면에 노리코는 까탈스럽고 하고 싶은 일을 원하며 한곳에 집중한다. 어느 학자가 현대인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듯이, 미치코는 돈키호테 노리코는 햄릿 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미;치코는 한 발 앞서 난간다. 무역회사를 그만 두고 고향의 의사와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일찍 꾸미지만, 노리코는 출판사 입사 시험에 좌절하고 오랫동안 사귀었던 남자로부터 배신당하고 급작스럽게 아버지를 여위는 등 굴곡이 많은 인생 여정을 묵묵히 헤쳐 나간다.
결국 미치코는 안정적인 삶에 일찍 뿌리를 내리지만 노리코는 혼자서 극적인 굴곡을 감수하며 다도에 정진한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감각이 깨어나고 있음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여름 장맛비 소리를 들으면서 가을비 소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벽에 걸여 있는 폭포라는 글자를 보며 그것을 머리로 보지 않고 그림으로 읽으며, 물소리가 자신의 몸에 스며드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끝내는 미세한 소리의 차이까지 감각으로 깨닫는다. 찻물이 떨어질 때 더운 물은 뭉근한 소리를 내고, 찬 물소리는 가늘고 찌르는 듯한 미세한 차이까지 읽어낸다. 그녀가 다도에 정진하는 24년 동안 겪는 개인적인 삶의 굴곡과 주변의 변화는 곧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여정을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이 영화가 한 여성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머무르지 않고 한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다도의 형식과 절차, 그리고 그 속에 스며있는 오묘한 인생의 지혜를 은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예술적 성취를 이룩하고 있다.
이 영화는 다도의 절차와 형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장면이 다케다 선생의 다다미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인물들의 동작이나 모습에 클로즈업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가끔 삽입되는 정원의 풍경, 바닷가 모습, 정원의 수목들에 쏟아지는 소낙비 등의 풍경은 인물의 내면이나 심경, 그리고 장면의 상황을 은유하는 객관적 상관물로 작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노리코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이다. 다케다 선생과 노리코가 마루에 앉아 슬픔을 위무하고 있을 때 난분분 흩날리는 벚꽃잎, 노리코의 손등에 포개지는 다케다 선생의 손과 아릿한 목소리, 파도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아버지를 향해 ‘고맙습니다’하고 연신 울먹이며 외쳐대는 노리코의 슬픈 몸짓, 정원의 수목 위로 무너져 내리는 봅 햇살 등의 시청각적 이미지는 예술적 이미지로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인물들의 감정 표현 역시 동적이고 가시적인 움직임보다는 침묵의 눈빛, 떨리는 목소리, 뜬금없이 건네는 일상적 대화 등으로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깨달으면 될까?
노리코는 늘 지나간 후에 모든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죽음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집을 나와 혼자 살게 된다. 어머니는 가끔 집에 들르는 딸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아버지의 속마음을 알지만, 노리코는 그곳을 알면서도 사랑의 실천을 뒤로 미룬다. 아버지가 그녀가 사는 곳 가까이 와서 전화를 걸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갈증을 뿌리친다. 그녀는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신의 철없음과 무관심을 깨닫는다. 다케다 선생은 그녀의 슬픔을 위무하는데 아주 지혜롭다. 피어있는 매화꽃을 바라보며 제일 추울 때 피는 꽃도 있다고 말하며, 걱정이라 여기지 않는 자는 지혜롭다고 다독이고, 이제 곧 봄이 올 거라며 차 마시가 전에 내놓는 다과 역시 ‘움틈’이라는 이름의 과자를 슬며시 들이민다.
후반부에 가면 지금까지 농축해 두었던 주제를 봄꽃처럼 하나씩 터뜨리기 시작한다. 우수 무렵의 다도 장면에서 이 영화는 절정을 이룬다. 다케다 선생의 스승이었던 시노다 선생의 기일에 다도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날, 다케다 선생의 제자인 유미코는 그녀에게 다도의 참뜻을 이야기한다. 차 대접은 차의 완성이며, 그것은 곧 생애 한 번 뿐의 만남이기 때문에 지극한ㅌ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제 멀쩡했던 친구가 오늘 갑작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 마치 노리코의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뜨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만나면 내일 헤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만나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에 망연자실해 있는 그녀에게 다케다 선생은 슬픔을 위무하며 조목조목 인생의 지혜를 들려준다. 아버지는 벚꽃처럼 확 갔지만 자기를 탓하지는 마라, 인생의 길이란 언제나 갑작스러우니 우리는 슬픔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그녀오감을 동원해 빗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맛보는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다도의 어느 경지에 들어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장면에서 카메라는 나뭇잎의 잎맥을 미세하게 클로즈업하여 보여준다. 잎맥의 물관부로 물줄기들이 생명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다음 장면은 어느덧 2018년으로 비약하면서 마지막 시퀀스로 진입하게 된다.
노리코의 나레이션은 주제를 집약해서 들려준다.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일과 금방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일은 그냥 지나가게 두면 되지만, 금방 알 수 없는 일은 살아가면서 깨달으면 된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깨닫는 매일 매일은 좋은 날이 되는 것이다.
일일시호일.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 영화는 역설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일은 그냥 지나가게 두어야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것들은 그때 그때 생각하고 실천해야 알 것이다. 살아가면서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미루지 말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깨달고 나서 후회하는 삶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지금 당장 사랑하라!
첫댓글 제목의 감독 이름인 '오모 다츠시'를 '오모리 다츠시'로 바로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