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은 강원도 였다
박정희가 영남 비대화,개인적인 정치적 야욕을 위해 경상북도로 편입시켰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346117
울진현(고려 태조 이래) 및 평해군(고려 충렬왕 이래)이었다.
1895년 음력 윤5월 1일 강릉부 울진군·평해군으로 개편되었다.[1]
1896년 8월 4일 강원도 울진군·평해군으로 개편되었다.[2]
1914년 4월 1일 평해군을 병합하여 8면으로 개편하였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vmfltjql&logNo=90094787708
1914년 9월 1일 평해면을 기성면으로, 월송면을 평해면으로 개칭하였다.[9]
1917년 11월 1일 삼화면을 울진면으로 개칭하였다.
1953년 1월 19일 평해면에 후포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53년 2월 13일 울진면에 죽변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63년 1월 1일 경상북도로 편입되고, 온정면 본신리는 영양군 수비면에 편입되었다.[10]
1967년 5월 28일 북면에 하당출장소를 설치하였다.[11]
1979년 5월 1일 울진면이 울진읍으로 승격하였다.[12] 1읍 7면
1980년 12월 1일 평해면이 평해읍으로 승격하였다.[13] 2읍 6면
1983년 2월 15일 서면 전곡리 일부가 봉화군 석포면(신설)에 편입되었다.[14]
1986년 4월 1일 죽변출장소가 죽변면으로, 후포출장소가 후포면으로 승격하였다.[15] 2읍 8면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35009
박정희가 호남땅을 줄렸다
호남땅을 어거지로 충남땅으로 가져가서 호남 지역을 줄여 투표수를 줄이고
금산,논산,강경을 충남으로 편입했고
강원도의 울진군를 경북으로 편입했다
영남에는 기업유치로 공업단지들을 만들어 인구를 유입시켜
인구를 불려 놓았지 일본장교 박정희가
그래서 강경분들이 충청도 사투리+전라도 사투리 같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죠
금산군의 전격 충남 편입
5 · 15 군사전권의 폭거 도민들 큰 충격
소위 혁명주체라는 길재호 주동
전북 금산(錦山)군의 충남 편입은 지금으로부터 46년전인 1963년 11월 21일자로 이뤄졌다. 이날 금산군과 익산군 황화(皇華)면이 충남으로 감쪽같이 넘어갔다. 1개 군과 1개면이 충남으로 넘어간 대신 전북에는 전남의 위도(蝟島)란 1개 섬이 부안군으로 편입됐다. 우리로서는〃되로 받고 말로 퍼 준〃그따위 어처구니없는 행정구역의 개편이었다.
금산군의 충남편입은 5 · 16 군사정권 아래서 감쪽같이 이루어진 하나의 폭거였다. 당시 군사정부의 실력자인 공화당 사무총장 길재호(吉在號)라는 사람이 그 주역이었다. 평북 영변출신인 그는 육군 중령으로서 5 · 16 군사혁명의 주체세력의 한 사람이었다. 그 힘으로 민정이양 때 자신의 정치적 고향으로‘금산’을 택했다. 전국에서 길씨가 가장 많이 집성을 이룬곳이‘금산’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 사람에게 맨 먼저 이 같은 센스를 넣어 준게 전주에서 약국을 경영한 길모씨였다. 그는 일제 때 오늘의 전주고와 경성약학전문 출신으로 길재호를 조종한 사람이다. 그 후 그는 공화당 전북도당 사무국장, 그리고 공화당 공천으로 무진장(茂鎭長)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10월 유신으로 임기 중에 국회가 해산됨에 따라 정치생명은 그것으로 끝났다.
이 같이 금산군을 권력으로 충남에 뺏어간 길재호는 당시‘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큼 권력을 휘두른 사람이 되어 금산에서 6대부터 8대까지 국회의원으로 내리 3선을 했다.
그는 마치 금산이 있는 한 정치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든든한 입장에 서 있는 듯 보였다. 국회의원이 튼튼한 지역구를 갖었다는 것은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그는 5 · 16 혁명주체인데다가 선거구의 걱정 없이 중앙 정치무대에서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정치는 길재호라는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의 속담에‘권불 십년’이란 말이 적중했다. 그는 공화당 사무총장으로 백남억, 김성곤, 김진만 등과 4인체제를 이루며 권력의 핵심부에 서 있었다. 이러한 그에게도 마침내 큰 불행이 닥쳐왔다.
그것은 내무장관 오치성(吳致成)씨에 대한 국회 불신임안에 길씨를 포함한 소위 공화당 4인방이 동조했기 때문이다. 절대 다수의 의석을 가진 집권당 공화당이 현직 장관 불신임안에 동조했으니 이는 해당 행위임은 틀림없다. 이 항명 파동으로 그들은 박대통령의 진노를 자초한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끝장을 본 것은 말할 것 없고 심지어 모 기관으로 끌려가 모진 신체적 고통까지 당하기도 했다.
그는 1985년 9월 2일 63세란 나이에 비교적 일찍 죽었다. 그가 죽은 뒤 주변에서는 항명파동에 따른 고문 후유증으로 단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가 죽은지 얼마 안가서 국사학자들, 심지어 금산 사람들도 금산의 충남 편입을 옳지 않은 일로 평가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행정구역 개편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사안의 하나인 역사성과 주민 이해도가 무시된 때문이다.
금산이 실 생활면에서 대전방면에 다소 가깝다고는 하지만 하루아침에 전주를 뒤로하고 충남으로 편입하는데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금산은 조선조 5백년 동안 그 뿌리를 전라도 즉 전주에 둬왔던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인물들이 전북을 기반으로 하여 중앙에 진출하는 등 역사를 통해 부침을 같이 해 왔다. 8 ·15 조국광복 이후 정계에 두각을 나타낸 금산의 전북인은 임영신(任永信), 류진산(柳珍山)씨였다. 이 정치인이 한국 정계에서 거목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전북이 밑거름이었던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어떻던 금산군이 충남으로 편입함에 따라 전북도에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먼저 중위권의 전북의 도세를 하위권으로 떨어뜨렸다. 먼저 인삼의 고장 금산의 충남편입은 전북도의 재정적 면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타격은 정신적인 면에서 더욱 컸던 것이다. 날벼락처럼 하루아침에 감쪽같이 금산군이 충남에 넘어 가다니 이는 전북인들에게 무력감과 허탈감을 주었다. 또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전북인은‘힘없는 전북’을 실감했다.
당시 전북인으로서 실력자라면 집권당인 공화당의 장경순(張坰淳) · 김제), 최영두(崔永斗 · 완주),씨 정도였다. 장씨는 육군중장 예편에 공화당 사무총장, 최씨는 예비역 준장으로 중앙정보부 기획실장을 지낸 사람이었는데 이에는 무력(?)했던 모양이다. 야당계에는 기라성 같은 정객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실력이 있었던 이철승(李哲承), 양일동(梁一東)씨 같은 분은 소위 정치정화법에 묶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외는 여 · 야간에 기개 있는 정치인이나 활동가는 별로 없었다. 도민들도 입으로는 불평을 퍼붓지만 실제로 움직여야할 단계에 가서는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 몸조심 하는 경향이 짙고 보니 꼼짝 못하고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 이와 더불어 행정구역 개편에서 또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것은 비록 하찮은 1개면이라고는 하지만 익산군의 황화(皇華)면의 충남 논산군의 편입이다. 이것은 모 육군 장군의 생가가 본채는 충남 논산군 구자곡(九子谷)면인데 뒤안의 장독대는 전북 익산군 황화면이었다. 그래서 구자곡과 황화면을 통폐합해서 논산군 연무읍으로 개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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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군이란 박병권(朴炳權) 중장이다. 그는 일제 때 연희전문(현 연세대)을 졸업. 광복 후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나온 후 5사단장, 육사 교장, 논산 육군훈련소장을 지냈다. 이어 군단장, 육본 인사참모부장, 전투병과기지사령관을 지낸 후 1961년 중장으로 예편했지만 군사정권에서는 국방부장관(1961~1963)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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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헐....
삭제된 댓글 입니다.
독재자는 군사 반란도 일르켰는데 못 할게 있어나요 언론장악해서 국민의 알권리 차단은 이거 한가지는 똑소리
금산 충남된지 얼마 안됌 이 글 며칠째 올라오는데 수상하네
뭐가 수상해요 역사 왜곡하는 언론 쓰레기가 수상 하지요
나 강경사는데 진짜 충청도랑 전라도 사투리 섞어서 쓰는 사람들 많음 나도 그럼. 진짜 걸어서 가면 바로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
예전에 지리 선생님이 이 강경 지역도 전라도 였다고 말해주셨음 계속 전라도였다면 지금의 강경보다 컸을거라 말씀 하셨는데
어 나 금산살았었는뎅..ㅎ
ㅋㅋㅋㅋ헐 저도금산사람이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