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8:26
알베르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의 첫 부분에서 “반항하는 인간은 NO 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거부는 해도 포기는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철학이나 과학, 예술을 포함한 인류의 역사가 발전한 것은 의심과 반항 덕분
이었습니다. 그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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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지 못해요.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지 말고 항상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이기도
해요. 잘못된 것이 있다면 순응하지 않고 반항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반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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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것에 대한 반발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이 되어야
하겠지요. 역사의 발전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김 헌, 천년의 수업).
요새 제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이 반항, 의문, 부정성의 사유 같은 것들입니다.
그것이 무심한 질문이든 후회의 질문이든 반성하고 사고하는 그 삶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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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1세기에 로마제국을 지탱하는 후원자 제도가
있었다고 해요. 상위 계층이 후원자가 되어 하위 계층을 돌보고,
돌봄을 받은 하층민은 후원자에게 충성을 바치는 구조가 얼핏 보면 약자를
보호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제도는 노예근성 내지는 이 질서에 갇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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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듭니다. 결론을 말하면 제국에 눌린 거라사 청년을 살리려면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항하는 인간’이 나타나야 합니다. 물론 그 반항하는 인간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거라사의 광인의 처참한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을 한 줌
이라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귀신에게 사로잡혀 유린당하는 저 모습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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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구원이 필요한지, 구원자 예수님이 필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가 회복된 모습이 바로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기대하는 구원입니다. 귀신은
어떤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그의 정체와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 그에게 순종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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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은 거부하셨습니다. 놀랍게도 거라사 인 지방의 사람들은 군대 귀신이
예수님 앞에 쩔쩔 매는 것을 보고도 경배하지 않고 예수님이 자기 고장에
떠나도록 요청을 합니다. 또 무슨 경제적 손해를 볼지 몰라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귀신이 떠난 후 온전해진 사람은 예수님이 발치에 앉아 조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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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되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는데 자꾸만 ‘검은 사제들(The Priests, 2015)'
이란 영화가 떠오릅니다. 김 윤석이 가톨릭 신부로, 강 동원이 신학생으로,
열연한 작품인데 뜨기는 박소담양이 떴을 것입니다. 본문 묵상이 먼저이기
때문에 축귀를 자세히 언급하지 않을 것이나, 해석학의 기본만 알면 "구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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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의식이 얼마나 황당하고 미신적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니들 원숭이들이 3,254,630마리가 되었을 때 내가 건너왔다 이 쓸모없는
원숭이들!" "성부? 성자? 이제 그런 것들은 유행이 지났잖아. 지혜 있는 자여 들어라
그냥 밖에 있는 자들처럼 못 본 척하고 살란 말이야! 경제 발전 해야지 서로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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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고 피를 빨고 호모 사피엔스 개미들아!" "우리는 니들이 원숭이라는 것을 증명하러
왔다 그리고 너희 재판관에게 보여줄 것이다 머리를 굴려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너희 미물들은 떨어진 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하나 둘 셋 넷 백 천만 십억 따위는
없다 우리는 종(種)이자 속(屬)이고 영(靈)이자 힘이며 이성, 중심, 논리, 과학,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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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다!" "기도하며 중간다리나 세우는 미물들 주제에. 내가 반드시 증명 하겠어
니들은 그냥 원숭이일 뿐이라고!" "342일 뒤 무너지는 다리 78명 사망,7803일 뒤
무너지는 빌딩 5개,5680명 사망 6682일 뒤 니들이 네 스스로 인간을 만들고"
"너희들이 미웠다 50255일 마실 물이 없고 85938일 검은 풍선이 터져 6930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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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오존 층 소멸 93025일 니들 반은 타 죽을 것이고. 세상에 빛을 끄려고 왔다"
내용이 뭔지 알 것도 없습니다. 귀신 쉰 나락 까먹는 소리이지요. 본문에서 축귀를
행하신 이유는 사단의 세력을 누가 쫓아냈는가? 그가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축귀를 통해 회복된 인간의 모습은 악의 세력에 매인 인류를 온전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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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이것을 보고
아, 예수님이 메시아이시고 ,그분이 몰고 온 나라는 귀신도 꼼짝 못하고 귀신들린
자가 회복되는 그런 나라구나, 라고 이해하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축귀나 신비주의에 꽂혀서 자기가 꼭 주인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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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부분의 책임은 잘못된 지도자들에게 있습니다.
해석학의 기본인 두 지평을 무시하고 거라사 광인을 돼지 떼 속으로 넣고 물에
수장시킨 것을 21세기에 그대로 하는 것은 구속사를 무시한 처사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약속은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시가 완성되었습니다. 오직 재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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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시제로 남아 있을 뿐. 거라사 광인은 자유롭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났지만,
자유는커녕 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인류의 모습입니다. 귀신에게 유린당하여 짐승
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자유로운 인간 창조입니다.
잃었던 찬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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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다_
귀신을 내쫓으시고, 마을에서 쫓겨나고_
광인을 온전하게 하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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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을 불쌍히 여기시어 고쳐주신 주님,
광인 같은 저를 구원하여 새롭고 온전하게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인간은 자유를 찾아 하나님을 떠났지만 결국 사탄에 더 예속된 존재가 되었나이다.
어둠에 지배되어 정체성과 주체성을 잃어버린 채, 돈과 욕망과 정욕에 사로잡혀
이성 잃은 짐승처럼 살았던 지난날을 용서하옵소서. 성령께서 주시는 자유 안에서
해방된 영혼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겠습니다.
2021.1.23.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