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용어 중 득점권(得點圈) 또는 스코어링 포지션(scoring position)은 주자가 후속 타자의 단타만으로도 득점에 가능한 베이스에 나가 있는 것을 뜻한다. 주로 주자가 2루 또는 3루에 있는 상황을 득점권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자가 1루에 있는 경우는 득점권으로 보지 않는다. 1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일 장타가 나올 확률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10년 전 야구중계를 살펴보면 한 점 차이로 뒤진 팀이 무사 1루의 기회를 잡아도 "동점 주자가 나갔다"는 멘트를 하지 않았다. 후속 타자의 보내기 번트 또는 진루타에 의해 1루 주자가 2루에 도달해야 "동점 주자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1루에 있는 주자는 득점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캐스터 선배들은 득점권의 정의에 부합해야 그 용어를 비로소 언급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한 점 차이로 뒤진 상황에서 타자가 출루에 성공하면, "동점 주자가 나갔습니다"라는 중계 캐스터의 멘트를 쉽게 들을 수 있다. 10년 사이에 한 베이스가 줄어들어 든 셈이다. 한 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1·2루에 주자가 있으면 "동점 그리고 역전 주자까지 있습니다"라고 한다. 타자의 안타와 주변 변수로 인해 주자 2명 모두 득점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계 멘트가 달라진 가장 큰 요인은 타자들의 '힘'이다. 이순철 위원은 밀어치는 홈런을 그 증거로 본다. 이 위원은 "타자들의 밀어친 홈런이 많이 나오는 건 그만큼 타자들의 힘이 과거와 달리 세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모 팀의 타격 코치는 "과거 홈런은 대학교에 진학해서 치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리틀 야구에서도 홈런을 치는 학생들이 있다"고 했다.
필자는 올 시즌 스프링캠프를 찾아다니면서 국내 타자들의 힘이 일본 선수들과 비교해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박병호와 최정·최형우 등 각 팀의 4번 타자들은 앞서면 앞섰지,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국내 타자들의 성향이 일본식 스몰볼과 미국식 롱볼의 중간 위치에 있다고 본다. 때문에 이제는 타자까지 잠재적인 동점 주자로 봐도 무관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마무리 투수의 세이브 요건을 살펴보면 '자기 팀이 3점 이하의 점수 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1회 이상을 던지거나, 점수 차에 상관없이 3회 이상을 던지면서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승리를 지켜낼 경우. 혹은 루상에 나가 있는 주자와 상대하는 타자, 그리고 그 다음 타자까지 득점하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등판해 승리를 지켜낼 경우'로 정의돼 있다.
세이브 상황은 대기 타석까지 감안해서 기록을 주는데, 득점권에서 타자와 주자의 요건은 상대적으로 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득점권의 정의가 무조건 바뀌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야구 캐스터로서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바꿔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우리는 지난해 준플레이오프에서 9회말 2사 후 기적 같은 동점 3점 홈런을 보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