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언(諫言)을 따르라
“이른바 납간[納諫, 간언(諫言)을 따름]이란 뜻을 겸손히 한다는 말인데, 이윤(伊尹)은 ‘뜻에 맞는 말은 도리(道理)에 어그러지는지를 살피라.’하였고, 장손흘(臧孫紇)은 ‘계손(季孫)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질진(疾疢 겉보기와 맛은 좋으나 해가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임금이 옳다 하는 것을 따라서 옳다 하고 임금이 그르다 하는 것을 따라서 그르다 한다면,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은 기쁘더라도 일에 해롭지 않겠습니까. 약을 먹고 어지러운 것은 병에 이롭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일에 이로우니, 이것이 주사(周舍)가 입바른 말을 하던 일을 조앙(趙鞅)이 사모한 까닭입니다.”
위는 1653년 효종 4년 7월 2일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의 상차문(上箚文)에 나오는 대목이다.
《주역》<함괘(咸卦) 상사(象辭)>에 이르기를, “산 위에 못이 있는 것이 함괘(咸卦)이다.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자신을 비워 남을 받아들인다.” 하였다. 이에 대해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군자는 산과 못의 기운이 통하는 형상을 보고서 그 마음을 비워 남을 받아들인다. 마음을 비운다(虛中)는 것은 나의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다. 마음에 사사로운 주장이 없다면 무엇에서나 느껴서 통하지 않음이 없다.” 하였다.
말하는 것이 네 마음에 거슬리면 반드시 도(道)에서 찾아보고, 말하는 것이 네 뜻에 공손하면 반드시 도가 아닌 것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서경》〈상서(商書) 태갑(大甲)〉에 있는 이윤(伊尹)의 말이다.
부열(傅說)이 고종(高宗)에게 말하기를, “나무를 자를 때는 먹줄을 따르면 바르게 되고, 임금이 간언(諫言)을 좇으면 성군(聖君)이 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지극히 성스러우면 신하들은 명령하지 않아도 그 뜻을 받들 것이니, 누가 감히 왕의 아름다운 명령을 좇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공자가 말씀하기를, “잘못을 바로잡는 말[법어(法語)]을 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잘못을 고치는 것이 소중하다. 완곡하게 일러 주는 말[손언(巽言)]을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뜻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이 소중하다. 즐겨 하면서 실마리를 찾지 아니하고, 좇는 체하면서 고치지 않는다면 나도 어찌할 수 없을 따름이다(논어).” 하였다.
주자(朱子)가 설명하기를, “법어(法語)라고 한 것은 바로잡는 말이고, 손언(巽言)이라고 한 것은 완곡하게 지도하는 말이다. 바로잡는 말은 사람이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좇는다. 그러나 행동을 고치지 않는다면 겉으로만 좇는 척할 뿐이다. 완곡하게 일러 주는 말은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으므로 반드시 즐겨한다. 그러나 그 말뜻의 실마리를 찾지 않는다면 또 그 은미(隱微)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였다.
《좌전(左傳)》에, “은공(隱公) 5년 봄에 은공이 당(棠)에 가서 물고기를 구경하려고 하니, 장희백(臧僖伯)이 간하기를, ‘큰일을 강구(講求)할 만한 일이 못되고, 기용(器用)에 대비(對備)할 만한 재목이 못된다면 임금은 그것을 거론(擧論)하지 않는 법입니다.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은 하인[皂隷]들이 할 일이고, 관리들이 맡을 일이지, 임금이 관여하실 바가 아닙니다.’ 하였다. 은공이 말하기를, ‘내 장차 전국을 순시(巡視)하려 한다.’ 하고 드디어 순시길에 오르니, 희백(僖伯)은 병이 났다 핑계 대고 수행하지 않았다. 희백이 죽고 나서 공이 말하기를, ‘숙부(叔父)가 과인(寡人)에게 유감이 있었기에 과인이 감히 잊을 수가 없구나.’ 하고 관등(官等)을 한 계급 높여서 장사 지내었다.” 하였다. 호씨(胡氏)가 말하기를, “희백이 간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였으니, 병을 핑계 대고 수행하지 아니한 것은 충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은공이 희백의 관등을 한 계급 높여서 장사 지내 주었던 것도 걸맞은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은공은 감히 그의 충성을 잊지 못하면서 그의 간언은 들어주지 않았으니, 이는 곽공(郭公)이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면서 등용하지 못하여 끝내 나라가 멸망하는 데 이르게 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에게 화(禍)가 미친 것이 당연하다.” 하였다. 화가 미쳤다고 한 것은 종무(鍾巫)에서 시해(弑害)당한 것을 말한다. 은공의 아우 환공(桓公)이 공을 종무에서 시해하였다. 임씨(林氏)가 말하기를, “곽공(郭公)은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면서 등용하지 못하여 나라가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고, 은공은 충간(忠諫)을 착하게 여기면서도 쓰지 못하여 몸을 망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옛날부터 헛된 이름만 드러나고 실행함이 없어서 패망(敗亡)하기에 이른 자가 많으니, 살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위는 율곡 이이 선생의 ‘성학집요(聖學輯要)’에 기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