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아직 방학에 들지 않은 팔월 첫째 금요일이다. 내가 수업에 든 학생들의 학기말 결과 처리로 분주하게 보낸다. 학교생활기록부에 학생 개개인 교과 능력 특기사항을 적어주느라 여념 없다. 주말을 앞두고 창원으로 복귀 않고 통영으로 갈 일이 생겼다.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대학 동기들이 1박2일로 만나는 모임이 있어서였다. 오후에 수업만 끝내고 고현으로 나가 통영으로 향했다.
비가 후줄근히 내리는 저물녘이었다. 강구안으로 가니 해안 산책로는 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예전 연안에 떠 있던 거북선은 도남동 해상 관관 레저타운 앞으로 옮겨가 없었다. 통영에 사는 회원이 예약한 중앙시장 횟집 골목 식사자리로 갔다. 울산에서 세 동기, 창원에서 한 동기, 통영과 나까지 포함해 여섯 가족이 모였다. 네 집에서 부부가 함께 참석했고 특별 회원이 한 명 있었다.
특별 회원은 간호대학을 마치고 통영 곤리도 보건진료소 소장으로 근무하는 창원 동기 딸이 나타났다. 어릴 적 보고는 세월이 흘러 얼굴을 몰아볼 숙녀가 되어 있었다. 횟집 주인은 통영 동기와 면이 두터워서인지 풍미가 맛깔스러운 해산물 요리를 연이어 보내왔다. 운전에 자유로운 회원들과 맑은 술을 함께 비웠다. 저녁자리에서 일어날 때 충무김밥을 배달 주문해 숙소로 이동했다.
통영에 사는 동기는 우리들에게 통영 밤 풍경을 보여줄 이벤트를 기획했는데 비가 와 차질이 생겼다고 했다. 저녁 식후 유람선을 타고 통영 운하와 해상에서 아름다운 통영의 밤 풍경을 보여줄 표를 예매해두었는데 비가 와 운항이 취소되었었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정한 펜션에서 하룻밤 지내고 이튿날은 배를 타고 낚시를 나가기로 일정을 잡아놓았다. 나는 낚시엔 관심이 없다.
일행들은 통영대교 건너 산양읍으로 나갔다. 해질 무렵이면 저넉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쪽빛 바다를 볼 수 있는 올망졸망한 해안도로다. 비가 내리는 어둔 밤 산양읍소재지 못 미친 풍화리로 갔다. 분교장으로 격하된 초등학교를 지나 바닷가 산언덕 우리가 묵게 될 ‘풍화수월’ 펜션이 나왔다. 밤바다에 작은 섬이 그림 같이 뜬 포구가 바라보인 펜션 3층이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여장을 풀고 통영 동기는 일행들이 밤에 들 야참을 준비했다. 통영 동기는 회원 가운데 요리를 잘 하기로 알려졌다. 이미 집에서부터 마련해 온 바닷말 몰에다 홍합을 넣어 끓인 국을 꺼냈다. 풍미가 좋은 몰국을 얼려와 아주 시원했다. 고성 자란만이 주산지인 가리비를 삶아 술안주로 준비했다. 부부로 함께 참석한 회원 아내는 잔을 들지 않아도 동기 딸은 잔을 넙죽넙죽 받았다.
날이 밝아오는 아침에는 장어국을 끓여 속을 풀고 낚시를 나갈 계획이었다. 밤이 이슥해져 배반이 낭자한 자리를 수습하고 잠에 들었다. 새벽녘 창원 동기에 급한 연락이 왔다. 요양병원에 모신 모친께서 노환으로 운명했다는 부음이었다. 4형제 맏이인 동기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새벽에 창원으로 복귀하는 동기 내외를 배웅하면서 빗길 운전에 조심하라고 했다.
아침을 맞아 잠을 깬 회원에게 새벽녘 상황을 전했다. 총무를 맡은 동기는 간밤 얘기대로 장어국을 맛나게 끓여 아침 식사를 잘 들었다. 동기의 모친상 조문은 오후에 가도 되어 아침나절 낚시는 예정대로 진행해도 되겠으나 비가 그쳐주지 않아 떠날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을 켜니 간밤 전국 곳곳은 물난리가 나 야단이었다. 펜션에서 머물다 뒷정리를 하고 풍하 해안을 일주했다.
통영대교 건너 구도심을 벗어나 죽림 신도시로 갔다. 활어시장에서 살아 퍼덕이는 병어와 농어를 짚었다. 전어도 보였다. 생선회를 주문 2층 초장집으로 오르니 잠시 뒤 싱싱한 회 접시가 나왔다. 운전대를 잡을 일 없는 나는 맑은 술을 곁들였다. 거제로 돌아가 옷차림을 바꾸어 조문 가려 했으나 동기들이 간편복 그대로 가자고 졸라 동기들과 같이 상주를 만나 모친상을 위로했다. 20.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