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
나는 이따금
비행기 타고 개미 보러 갑니다.
집으로 가던 길 툭, 끊어먹고 내 심장에
굴을 파고 들어앉아 상전이었던
그 개미 말입니다.
아직도 연인이라고 말하면 당신은 가만히
벌레 먹은 웃음이라도 꺼내
얼굴을 돌보겠지요.
그러게요. 나는 그 웃음 좀 보러
비행기를 탄 거고요.
기억
나에게 바친 이 이야기를
나는 또 애인에게
들려준다.
이마에 도깨비 뿔이 달린 아홉 살 아이가
데리고 사는, 나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이름은 고요.
나는, 나를 피해 혼자 집으로
가버린 사람.
조금만 더 멀리 가서 못다 한 사랑마저
잠잠해질 때까지
마음 근처에 죽지도 않고 썩은 사람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크리소카디움
가끔씩 빈 화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들어가 살만한 곳인가
꿈에
개가,
새가 되는 꿈을 꾸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공중에서 자랐다
누군가가 공기 중에 보석처럼 박아놓은 울음을*
볼펜처럼 입에 물고 똑딱거리다 보면
발등 근처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첫사랑과 친해져서는
세상을 빈 화분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화분 속에 새가 된 개를 키우며
나는 모르는 사람이 된 나를 펄펄 끓이며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비가 오는 날이면 온몸의 뼈만 남겨 걸어보기도 하면서
그러니까 그때
이미 심장을 개처럼 다 부려먹은 탓일 것이다
아마도 이젠 아무도
내게 이별을 가지러 오는 사람마저
없어서
*앤 카슨, 「많이 사랑받는 기쁨에 대한 짧은 이야기」 중에서
시인의 말
비문으로 서 있는 돌보다
머쓱한 돌은 없을 것이다
비는 내리고 나는 그 안에 있고
그 안에서 쌀을 씻고 달을 씻고 가만히 그 안으로
바깥을 가져와
내가 만든 세상을
비가 막 함부로 돌아다닌다고
울고,
2024 상상인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