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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그 신비의 세계
그야말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신화 말이다. 신화를 설명하는 전문서적은 물론이거니와 최근에는 만화로 변신한 신화 관련 서적이 대박 행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와중에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로 유명한 이원복 교수의 책이 눈에 띈다. 신화는 그리스 로마에만 있는 줄 알았고 신의 이름이라고 해봐야 제우스 정도나 읊조릴 줄 알았던 나, 단숨에 이 책을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초중고 학창시절은 물론이거니와 대학 시절에도 항상 <권장도서 100선>에 이름을 걸었던 그리스신화 마저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다. 여기 저기서 엄청 많이 듣긴 했건만 막상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하는 에피소드 하나 변변치 않다.
왜일까, 라고 생각해 봤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너무 흔하다보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다보니 굳이 신화에 대한 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던 것이 아닐까, 라고 막연히 짐작해 본다.
어쨌건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가 실은 북유럽 신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관련 서적을 찾던 중 읽은 <신의 나라 인간 나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 신화에 대한 입문서로써 한 몫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여기에 짧게 소개해 볼까 한다.
세계의 신화
세계 신화가 가진 공통점은 태초의 사건과 자연, 사회 현상의 기원을 해명하고 신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한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각 나라의 신화에는 공통적인 요소가 많은데 이는 신화가 만들어지는 유형이 일정하기 때문이다. 그 유형을 살펴보면 신화는,
여러 가지 자연 현상에 대해 상상력과 경험을 동원하여 풀이하거나, 역사상의 영웅을 환상의 세계로 끌어내거나, 순수한 환상에서 이어지는 문학적 유형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인간에 의해 창조된 신화는
1. 창조 신화
2. 영웅 신화
3. 괴물 신화
4. 종말 신화
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창조신화
대부분의 신화들은 흔히 어두운 빈 공간 또는 무한한 바다로 묘사되는 ‘카오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빈 공간에서 최초의 창조신 또는 한 쌍의 최초 존재가 생겨나 우주의 삼라만상을 빚어내고 별과 달의 움직임을 정해주며 땅을 창조해 낸다.
예컨대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창조자 아툼(Atum)이 혼돈의 물에서 나와 마른 땅을 만듦으로써 세상이 생겨났다. 중국의 경우 혼돈은 큰 달걀(cosmic egg)에서 시작되며 그 속에서 창조주 ‘반고(盤古)’가 잉태되었다고 한다.
창조신은 다른 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창조의 과정을 이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이 등장한다. 인간의 창조는 신들이 심사숙고 끝에 행한 일로써 대부분 인간에게 친숙한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흙으로 빚은 인간 같은 형태 말이다.
때때로 인간의 창조는 신들이 다른 일을 하다가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보고 있다. 가령 이집트 신화를 보면 인간은 태양신이 그의 두 아이 슈, 테프누트와 재결합할 때 흘린 눈물에서 생긴다.
영웅신화
신화에는 많은 영웅이 등장한다. 이들은 도시를 창건하거나 괴물을 없애고 불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줌으로써 인간의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영웅으로 갈가메시가 있다.
*메소포타미아_길가메시 서사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인 이 서사시는 기원전 2000년경 또는 그 이전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메소포타미아의 우르크족이 폭군 길가메시를 바로잡아달라고 신들에게 요청하는 것이 주된 내용.
여신 닌순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길가메시. 그가 자신의 백성을 폭력적으로 다스리자 신들은 길가메시를 길들이려고 무사 엔키두를 보낸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레슬링 시합을 벌이지만 무승부로 끝을 맺고, 친구가 된다. 이후 여신 이슈타르는 천상의 황소를 보내 그를 죽이려 하나 엔키두의 도움으로 황소를 물리친다. 신들은 이에 대한 복수로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된다고 선언하자 길가메시의 팔에 안겨 엔키두는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 일을 겪은 후 깨달은 바가 있어, 길가메시는 최초의 위대한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다.
괴물신화?
위에 설명한 영웅들은 분명 위대하지만 비교대상이 없으면 그 위대함을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해 주는 것이 괴물이다. 신화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괴물들은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며 인간을 괴롭힌다. 괴물들의 캐릭터가 강하고 흥미롭지 않다면 신과 영웅의 이야기도 별 볼일 없었을 것이다.
반인반마 켄타로우스,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여자 꼬리는 뱀은 키메라, 여성의 머리와 새의 날개 사자의 몸을 가진 스핑크스 등 수많은 괴물 들 중에서 세계의 신화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뱀일 것이다. 이집트 신화의 거대한 뱀 아피페는 태양신 ‘레’를 괴롭히기 위해 생겨나며 스칸디나비아 신화에서 뱀은 우주를 상징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히드라가 유명하고 인도 신화에서 상당수의 악마는 뱀으로 등장한다.
한편 뱀과 비슷한 이미지의 용도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다. 다만 서양에서의 용은 사악하고 폭력적인데(대부분 공주나 미녀를 납치하여 끝내 영웅에게 죽음을 당한다.) 반해 동양의 용은 신비롭고 상서로운 존재(자연을 조절하여 인간을 돕기 때문에 대부분 왕을 상징한다)하는 사실이 흥미롭다.
종말신화
우리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사후의 세계에 대한 의문은 ‘신화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신화에서 영혼은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 후 대부분은 그곳에서 심판을 받는다. 그 심판에 의해 천당과 지옥으로 갈라지는데 특이하게도 북유럽의 경우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들은 죽은 뒤에 선행, 악행에 따른 심판이 없이 보상만 따르기 때문에 죽음 뒤의 세계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때문에 싸움터에서는 생명을 아끼지 않았고,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어쨌든 세계의 신화들은 영혼, 저승, 종말 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두려움에 대해 많은 대답을 들려준다. 대재앙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화재나 홍수 같은 자연 재해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 중 가장 빈번히 불려나오는 것이 홍수 신화이다.
지상 전체를 뒤덮는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대부분은 인간이 죄악을 저니르거나 신을 노하게 해서 일어난다.
수메르의 한 신화에는 폭풍의 신 ‘엔릴’이 인류의 타락에 격노하여 인간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무서운 비바람을 내려 대홍수를 일으킨다. 이에 물의 신 ‘엔키’는 정의로운 인간인 ‘지우수드라’ 왕에게 방주를 지어 목숨을 구하도록 권고한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웅 우트나피슈팀이나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 마누 역시 신에게 선택되어 배를 건조함으로써 살아남는다.
불, 홍수, 전쟁 같은 대재앙은 흔히 세계의 종말을 가져오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생명의 순환은 그것으로 중단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구세계가 불타고 남은 재 속에서 신세계가 다시 생겨나 새로운 생명의 순환이 시작된다.
이상의 공통점을 가지고 각각의 민족은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발휘해갔다. 수많은 민족의 수많은 신화가 있겠으나, 크게 일별해보면 대개,
1. 메소포타미아 신화
2. 이집트 신화
3. 인도 신화
4. 중국, 일본, 한국 신화
5. 그리스, 로마 신화
6. 북유럽 신화
7. 켈트 신화
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 중 흥미로운 대목만 서술해본다.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의 형성에 있어서 자연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혹독한 날씨, 험난한 지형 등은 이를 극복하고 살아 남아야 하는 북유럽 민족들에게 많은 시련을 주었다. 이와 같은 자연의 영향은 북유럽 신화에 크게 작용하여 그들의 신화는 장중하고 무한한 신비로움이 웅장한 스케일로 펼쳐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북유럽 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북쪽 얼음 지역과 남쪽 불타는 지역에 두 땅이 있었다. 이 둘이 만나면서 최초의 거인들이 생겨났고, 우주는 신들의 시배자 오딘, 베, 빌리가 만들었다. 오딘으로 대표되는 신과 유미르로 대표되는 거인족은 각각 선과 악을 상징하며 대립한다.
한편 북유럽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기독교화가 몇 세기나 늦은 만큼 신화 자체가 생생하고 풍부할 뿐더러 북방 민족의 특징이 고스한히 담겨있어서 그리스 신화와 쌍벽을 이룬다. 또 많은 문학 작품을 비롯한 예술 분야, 영화 등에 무한한 소재를 지원하는 창고로써 예컨대 최초의 판타지 소설이자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J.R.R.톨킨의 작품들은 바로 북유럽 신화를 소재로 한 것이다.
켈트 신화
켈트족은 영국과 서유럽에 퍼져 살던 민족이다. 이들은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와 로마 지역까지 진출한 정도로 호전적인 유목민족이었으나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에게 정복되어 대부분 로마 문명에 동화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정복한 로마인을 통해 그들의 신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켈트족의 천둥신 타라니스는 로마의 유피테르(주피터)와 동일시되었고 그 밖의 많은 지역 신도 마르스, 메르쿠리우스, 아폴로와 연결되었다.
고대 켈트족은 시적 상상력이 뛰어났으므로 어서왕 이야기나 랜슬롯의 전설 등 풍부한 신화와 전설을 지니고 있었다. 켈트 신화가 다른 신화와 크게 다른 점이라면 마법과 마술이 전체 신화를 꿰뚫고 있다는 것. 가령,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같은 유럽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마녀나 마술사는 켈트의 혼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도 신화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 산맥과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인더스 강 유역 등 신비한 자연과 유구한 역사를 가진 덕분에 인도는 ‘신들의 나라’ 또는 ‘신화의 나라’라고 불린다. 인더스, 갠지스 강가에 최초의 문명을 일으킨 인도인들, 남부 지방의 드라비다 인도인들, 북방에서 침략해 온 아리아인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인도인들이 만드는 복잡한 문화는 인도 신화에 복잡하게 얽혀 들어 인도는 무려 3억3000만의 신들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었다.
수많은 신 중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신은 창조자 브라마, 파괴자 시바, 그리고 이들 두 신을 중재하는 보존자 비슈누이다. 힌두교의 많은 여신은 대모신 마하데비의 화신으로 보인다. 이 모든 신 위에 군림하는 브라만은 영원한 통일의 힘을 대변한다.
인도 신화는 신을 향한 인간들의 열렬한 신앙심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감동의 드라마로 그리스 신화처럼 신들의 계보가 체계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신들이 펼치는 장대한 서사시는 인류의 문화에 샘솟는 창조력을 부여해 주는 깊이를 지니고 있다.
이집트 신화
이집트인은 인간에게 불리한 환경에서 살았다. 농사와 거주에 알맞은 지역은 나일강 연안의 좁고 긴 땅뿐이었고 그 바깥은 사막이었다. 유일한 젖줄인 나일강 역시 악어나 하마 같은 의험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자연과 동물, 심지어 여러 가지 관념까지 모두 신으로 보는 다신교 체제를 가지게 된다.
이집트의 신 중 가장 강력한 신은 태양신이다. 이 신은 먹이를 쫒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에서 허둥대는 풍뎅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집트인은 그들의 왕인 파라오가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믿었다.
이집트인은 인간이 죽으면 내세에서 신들과 만나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미이라를 만들어 내세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신체를 보존하였다. 이집트의 신화 체계는 그리스보다 1500년이나 먼저 만들어졌고 덕분에 기독교 등 서양의 정신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오늘날 이집트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더불어 세계에서도 가장 훌륭하게 보존, 전수된 신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