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게 아주 가늘게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서점에 다녀오는 길에
노인네 네 명이서 걸어가며 하는 말을
뜻하지 않게 듣게 되어서 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노인네들은 손자 자랑을 하며
흐뭇한 얼굴로 걸어들 가는데,
한 노인이 손자는 외손자가 찐자배기라고
말하자, 다른 노인이 성손자가 진짜 손자지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퉁병스럽게 말하자
외손자가 찐자배기라던 노인은 아무 말을 못했다.
이 대목에서 내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뿐 두 분 노인이 모두 맞았다고,
오래 묵은 관습상으로
핏줄를 기준으로 하면 성손자가 진짜배기요,
문화를 기준으로 하면 외손자가 진짜배기다.
그러므로 모든 손자는 진짜배기이므로 차별할 이유가 없다.
나에겐,무남 독녀이신 어머님을 둔 덕분에 아주 가까운 외가는 없고
어머님의 사촌인 외가밖에 없다.
어렸을 적에도 아버지 형제분들보다 외가가 좋았고,
어른된 지금도 본가보다도 외가의 친척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절박한 사정에 처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피 섞인 형제간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고
성으러 맺어진 처가쪽의 힘을 받고 살아야하는 이유를 되찾았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고, 성은 피보다 진하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집 아이들도 피는 김해김씨 가문이지만 문화는 광산김씨 가문에 속한다.
그렇지만 나는 성가를 먼저 생각하라고 강요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자기를 좋아하고 알아주는 곳에 향하는 것이기 때문이요,
백부 숙부 고모보다 외숙 이모가 더 반갑고 귀하게 여겨주기 때문이요,
자식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사상과 언행에 강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육으로써 바뀔 가능성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못느껴서이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를 좋아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머님의 성을 갖고 싶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어머니였다.
나는 비교적 편애하지 않으며 살려고 애쓴다.
본가 외가 처가를 형평하게 대할려고 힘쓴다.
본가 외가 처가는 나의 삶의 든든한 기반이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차별하며 소홀히 할 수 없는 까닭에서이다.
나는 겉으로나 속으로나 딸 아들을 구별하지 않는다
다만 딸과 아들의 형편에 맞게 기르고 가르칠 뿐이다.
그러므로 성손자도 외손자도 모두 진짜배기다.[金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