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책이 귀했다.
동아전과, 동아수련장, 표준전과 등이 있었다.
부잣집 애들만 보는 책이어서 늘 부러웠다.
그보다 소설책은 구경도 못했다.
우리 동네 이장님 집에 조선실록과 왕비열전 전집이 빽빽이 꽂힌 걸 한참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 심부름으로 이장님 집을 갔던 건지
내가 먼저 당차게 책을 빌려 달라고 했던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마음 좋은 이장님이 책을 빌려 주셨다.
왕비열전을 한 권씩 빌려와 호야불 밑에서 읽었다.
1권을 읽으면 2권을 빌려 오고 후속이 궁금해서
꽤 먼거리의 이장님 집을 염치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갔다.
세찬 북풍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려도 추운 줄
모르고 설레며 즐거웠다.
까마득히 잊어버린 추억이 떠오른 것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를 보고 나서다.
세조가 피부병으로 고생을 했다는 희미한 기억이
떠올라 검색을 해봤다.
세조는 진물이 나고 피고름이 나는 악창으로 명의를 불러 치료도 해 보고 온갖 약제를 써 봤으나 낫지 않았다.
전국의 좋다는 온천물에 담그어도 효험이 없었다.
野史에는 꿈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의 얼굴에 침을 뱉아 그 이튿날부터 병을
앓았다는데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피고름으로
범벅된 저고리가 남아 있는 걸 보면 사실인 것 같다.
새로 알게 된 것은 세조가 두 아들을 일찍 잃었다
는 사실이다.
첫아들 의경세자는 아버지 세조와는 달리 성품이 바르고 온화하며 학문을 좋아하고 용모도 출증하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세종대왕이 품에 안고 다닐 정도로 아낀 손자였다니.
이 역시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어찌 네놈이 죄 없는 내 어린 자식을 죽이려 하느냐! 나 역시 네 자식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병약했다는 설도 있는 걸 보면 역사의
고증이 확실치 않은 점도 있다.
기록에는 '세자가 졸하니 아들의 시신을 붙잡고
울부짖었는데 그 울음소리가 창덕궁 전체에 울려
퍼졌다'고 한다.
자기 아들은 귀하고 조카는 죽이는 이율배반.
둘째 아들 예종도 고열과 기침으로 앓다가
피를 토하며 사망했다고 한다.
즉위한지 1년 2개월만이다.
큰 아들은 18세 나이에 둘째 아들은 20세의 나이
에 잃었으니 참척을 두 번이나 당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태양광을 활용한 우주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하고
AI가 시대를 리드해가는 요즘에 560년 전 조선시대 이야기는 아득히 머언 케케묵은 여우나는 산골이야기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다만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 는 말은
진리인 것 같다.
세조는 피비린내 나는 악행을 저지르고 권력을
잡았지만 죽을 때까지 죄책감과 불안에 떨었고
악병의 고통에 시달리며 두 아들을 일찍 잃고 말았다.
불교를 들이고 윈각사를 짓고 죄업을 뉘우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결론, 우리는 선하게 살다가 갑시다.
첫댓글 글쎄요
꿈얘기는 처음 들어 봅니다
세조가 피부병을 앓았던 건 사실인 거 같구요
예전에 종기나 피부병으로 고생한
왕들이 아주 많았다고 하지요
전에 왜 그런지 읽었던 거 같은데
까먹었습니다. 원인이 있었겠지요
악행에 대한 저주로
그런 병을 얻었다는 건 야사겠지요
어디선가 악인들이 더 잘 살더라는
그런 얘기도 읽은 거 같습니다
요즘 보면 그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선하게 살던 악하게 살던
생긴대로 타고난대로 살다 가는 거겠지요
타고나는 팔자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럼쵸.
팔자대로 살다 죽는 거죠.
세조가 두 아들을 일찍 잃었다는 사실은
인간적으로는 좀.....
다행히 의경세자가 낳은 아들이 있어
성종이 됩니다.
代를 잇기는 했네요.
그 성종이 가무음곡을 즐기고
술을 아주 좋아했다고 하지요
어려서부터 그걸 보고 자란 연산군은
희대의 난봉꾼이고 폭군이 되었지요
폭군연산이란 영화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역사를 보면 무궁무진 재미있는
내용도 많을 것 같습니다.
세조가 없앤 집현전을 다시 열었네요.
아이구~
블루 님 여태 침전에 들지 않으셨나이까?
저도 올빼미입니다만 님도.
행복한 날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