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낡고 관리가 잘 되어있지 않은 다소 난해한 건물진입을 통해, 맞이할 때 입구로 짐작되지만 영업여부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문 앞에서의 초조함과 불안함은 문을 연 순간 반전의 묘미와 비밀스러운 장소로의 속살을 드러낸다.
스페이스 무태(無怠)는 상업적으로 다소 불리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곧 매출과 수익구조를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식음공간구성과 결을 달리할 수 있는 비밀스럽지만, 사색에 적합한 스피이크이지(Spaekeasy)* 공간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바닥의 높이차와 각도를 통해 점차 내부로 진입을 유도하게 한다. 방향감을 갖는 사선과 철저히 계산되어진 축의 회전사이에서 만들어진 이탈적인 여백공간은 마치 근교의 금호강의 물을 옮겨 담은 듯 한 ‘수(水)공간’과 스페이스마크인 ‘새(Eames house bird)’의 지저귐 속에 비일상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동서로 이어진 긴 창을 통해 투사되는 빛을 통한 공간의 적나라함을 박재우 소장은 격자의 깊이와 브라인드를 통해 부드럽고 선택된 빛만 내부로 끌여들인 다음, 선과 매스의 분절로 작지만 큰 공간을 회화적으로 만들어내었다.
형태에 대해 디자이너가 고민할 때는 사조나 역사적인 맥락은 사라지고 그 순간의 직관적인 결정이 가장 우선되어 나타나기 마련이다. 박재우 소장은 이러한 제작 과정을 자신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한다. 공간 내의 요소들을 급전적으로 환원시켜 모든 요소가 작업의 단일한 형태와 자명하게 연결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선험적(先驗的)것의 또 다른 측면, 즉 작업이전에 존재하는 아이디어나 의도를 제거함으로써 공간의 의도가 보이게 했다.
작업이 자리할 최선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고자 한 것은 그에게 현실적인 고민이자 노력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수퍼파이디자인의 작업은 우리의 시간대에서도 과거의 박제된 기억이 아닌 현재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글_ 김규형
*스피이크이지(Spaekeasy)는 바깥 세계와 단절된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미국 금주령 시기인 1920~1930년대 초반까지 무허가 술집의 업주들과 손님들이 경찰 등 정부의 단속을 피하면서 “조용히 말해(Speak easy)”라고 하던 것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지역 실내디자이너에 대구에 위치한 공간으로 KOSID상을 수상한 사례는 1984년 1회 협회전에서 지방인이자 상업공간으로 유일하게 협회상을 수상한 박재봉디자이너의 '가전/79년작' 이후 38년만에
수퍼파이디자인이 2018년 '팔공산 복합문화공간(heima)', 2019년 '커피명가 어나더랩' 에 이어 2020년 '스페이스 무태' 로 3년연속 골든스케일상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어려운 지역 여건속에서도 묵묵히 기술력을 높이고 디자인의 질을 향상시켜 대구 실내디자인의 수준과 격을 높여준 수퍼파이디자인 박재우소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존경과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