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처럼 자란 사람이 더 단단하다
정원사가 정원의 잡초를 뽑으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다.
“잡초는 심지도 않고 돌보지도 않는데 저토록 잘 자라는데, 왜 정성껏 심은 화초는 조금만 물이 부족해도 시들어 버립니까?”
정원사가 대답했다.
“잡초는 신의 섭리가 돌보지만, 화초는 인간의 손으로 돌보기 때문이지요.”
참 의미 있는 말이다.
인간은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끊임없이 보호해야 잘 자란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은 때로 지나친 보호보다 스스로 견디게 하는 것이 더 큰 교육임을 보여준다.
잡초는 강한 식물이 아니다. 다른 식물과 경쟁하면 오히려 약하다.
그래서 강한 식물이 들어오기 어려운 척박한 곳을 찾아 뿌리를 내린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길가에서도, 돌틈에서도, 비가 오지 않는 땅에서도 살아남는다.
뽑히면 다시 자라고, 짓밟히면 옆으로 누워서라도 살아간다.
잡초의 진정한 힘은 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적응하는 생명력에 있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좋은 것만 주고 싶어 한다. 부족함 없이 키우고, 힘든 일은 대신해주고, 넘어질까 봐 앞길의 돌멩이까지 치워주려 한다.
그러나 지나친 보호가 반드시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흔히 하는 말처럼 “자식을 너무 곱게 키우기보다 막 키운 자식이 인성도 좋고 몸도 건강하다”는 데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여기서 ‘막 키운다’는 것은 방치한다는 뜻이 아니다.
작은 어려움은 스스로 겪게 하고, 자신의 몫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게 한다는 뜻이다.
온실 속의 화초는 아름답지만 온실 밖의 추위에는 약할 수 있다.
반면 들판의 잡초는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면서 뿌리를 깊이 내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사람보다 적당한 결핍과 좌절을 경험하며 자란 사람이 세상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다른 사람의 아픔도 헤아릴 줄 아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꽃이 나쁘고 잡초가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꽃은 꽃대로 아름답고, 잡초는 잡초대로 위대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가 아니라 그 환경을 어떻게 이겨냈느냐이다.
인생을 살아보면 누구에게나 한때 잡초 같은 시절이 찾아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내 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시간이 우리의 뿌리를 깊게 내리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삶이 조금 척박하다고 낙심하지 말자. 잡초도 꽃이다. 다만 이름 없이 피어나는 꽃일 뿐이다.
신의 섭리는 어쩌면 우리를 늘 편안하게 보살피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거친 들판에 홀로 세워두고, 스스로 견디고 일어서며 살아가는 힘을 가르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생명력의 관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