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분다리 같은 인간은 돼지다
한국인의 속성을 가장 비관적으로 표현한 것이 있다. 한국인의 더럽고 추악한 속성을 ‘가분다리 족속’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단일민족이라니 어려울 때 모두가 상부상조하는 등 단결하는 민족이라고 그럴싸한 미화를 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봐서 단일민족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고 어려울 때 단결심이 있는 민족이라고 하는 것에는 6.25 전쟁이나 극심한 지역적 갈등만 봐도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 민족을 극도로 비난하거나 비판할 생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라 인간다운 민족이 되자는 의도로 이 글을 쓴다.
‘가분다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국민이 대다수일 것이다. ‘가분다리’는 진드기의 지역 언어다. ‘가분다리’는 좁쌀보다도 작은 진드기인데 주로 소한테 달라붙어 소의 피를 빤다. 작은 진드기가 새끼손톱 크기로 자란다. 잡아서 발로 밟아보면 많은 제법 많은 피가 나온다. ‘가분다리’는 소한테 달라붙어 피를 빨아 먹고 더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스스로 땅바닥에 툭 떨어진다.
이처럼 ‘가분다리’는 소한테 달라붙어 마음껏 피를 빨게 되지만 피로 배가 가득 차면 치면 소한테 붙어있지 않고 스스로 땅바닥으로 떨어져서는 사람이나 짐승한테 밟혀서 죽거나 배에 가득찬 피는 소화가 되면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이런 속성의 가분다리와 우리 민족의 속성이 어떻게 닮았다는 것일까.
아마도 지위나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양을 떨고 양심마저 버리는 사람이 많아서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일본 강점기에는 조선의 독립에는 관심이 없고 일본의 지배를 받아 일본 신민으로 살게 될 거라 판단하고 자식들을 일본에 유학을 보내던 지식인이나 부자들이 있었다. 그러고서도 독립운동가 행세를 하고 부를 유지해왔던 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이 되자 갑자기 태극기를 들고나와 대한독립을 외치고는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설쳤던가.
지식인과 부자들이 그랬듯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북한 괴뢰가 침략하였을 때 붉은 완장을 차고서 같은 이런저런 이유로 마을 사람을 잡아서 인민재판에 끌어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던가. 북한 괴뢰가 물러나자 일부는 그들을 따라나섰고 남은 완장들은 태극기를 들고 군인들을 환영하면서도 자신들이 지은 잘못에 대해 얼마나 많은 변명을 하였던가.
지금은 어떤가. 대단한 애국자인 양 대한민국의 어떤 자들은 자유민주주의, 어떤 자들은 평화를 목이 쉬도록 외친다. 그들의 언행을 살펴보면 가분다리와 같은 존재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좌파보다는 자칭 보수우파라고 하는 자들에게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자칭 보수우파라고 하는 가분다리의 특징은 자유 정의 진실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수가 없는 좀비들처럼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거짓에 잘 속고 진실 정의는 거추장스러운 옷처럼 취급한다. 권력에 빌붙어 작은 권력이라도 얻으려고 하는 욕심 가득한 그런 굶주린 돼지다.
피를 먹을 만큼 다 빨아먹은 배부른 가분다리와 같은 자들에게 무슨 신념이 있고 자유의지가 있을까. 그런 가분다리 같은 족속들이 외치는 소리는 짐승이 내는 소리이고 훈장처럼 걸쳐 입은 옷은 사람을 현혹하는 속임 수단일 뿐이다. 인간의 흉내를 내지만 그들은 짐승일 뿐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한 구절을 옮긴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