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척도 최 건 차
‘문화의 척도’를 가늠하는 공중화장실은 그 나라의 수준이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나라는 한동안 후진국 타이틀에 묶여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어 경기장의 제반 시설을 IOC가 정한 데로 갖추어야 했다. 뜯어고치고 또 없애야 하는 것들과 개혁을 하는 일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 중에 하나는 영국이 우리의 음식문화를 걸고 드는 ‘보신탕’ 같은 게 큰 골칫거리였다.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경기장과 선수들 숙소와 공공시설의 화장실을 모두 푸세식에서 수세식으로 고쳐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 경기도 수원은 역사와 문화시설에 있어서 서울에 버금가는 축소판이었다. 이에 당시 심재덕 시장께서 우리가 앞장서서 화장실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팔을 걷고 나섰다. 서울올림픽은 시설과 모든 면에서 호평을 받으며 잘 치렀고, 수원시는 화장실 개선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심 시장은 세계화장실협의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직을 수행했다. 그로인해 지금 ‘수원특례시’는 우리나라 위상을 한껏 높이는 데 일조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화장실 문화를 선도하는 성지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하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부터는 선진국들과 견줄만한 행사들이 계속 이어졌다. 세계육상대회를 대구에서 개최하고, 한.일 월드컵에서는 4강에까지 올랐다. 몇몇 선진국 전유물처럼이었던 동계올림픽을 평창에서 화려하게 치러내므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류열풍이 전세계를 향하여 도도히 흐르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은 K팝, K드라마, K푸드, K콘텐츠 등 다양한 것을 섭렵하고 있다. 그들 일부는 눈에 불을 켜고 우리도 잘 모르는 지방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니면서 한국을 느끼고 배우며 원활한 교통과 깨끗하고 편리한 화장실에 감탄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교통, 먹거리, 치안이며 공공시설 무료화장실에 감동이다. 고속버스 휴게소의 다양한 먹거리와 일용품, 엄청나게 깨끗하고 친환경 문화적인 무료화장실에 넋을 잃는다. 우리가 봐도 이렇게까지 발전되었을까!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문화의 척도가 이 정도이니, 세계 각국에서는 한국의 화장실 문화를 배우고 벤치마킹하려고 줄을 서고 있다. 콧대 높았던 프랑스가 20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교통과 화장실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파리시 당국자들과 주요 언론사들이 수원을 찾아 화장실 인프라를 배워가면서도 잘되어야 하는데라는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뒷간이며, 측간이며, 변소라는 데를 드나들며 살았던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나는 화장실을 대할 때마다 트라우마의 그림자가 아른거려서 남다른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1943년 일본에서 살던 두 살 때 어머니를 따라 교토 작은외갓집에 가서 놀다가 변을 보려고 할 때였다. 어머니가 안방 옆 광에 붙어있는 실내변소에 데려가 변기 뚜껑을 열고 쪼그려 앉아서 변을 보도록 해주고 안방으로 가셨다. 나는 변을 보면서 깊숙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려다가 균형을 잃고 거꾸로 쳐박혀 버렸다. 풍덩하는 소리에 놀라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금방 와서 거꾸로 빠져 있는 나를 건져 냈기에 살아있다.
해방을 맞아 시모세끼에서 배를 타고 귀국 후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에 사는 큰외가집을 찾아갔을 때였다. 캄캄한 밤에 변을 보려는 나를 이모가 호롱불을 켜들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헛간이라는 데로 데려갔다. 이상하고 무섭게 보이는 곳인데 측간이라며 높은 데서 변을 보게 해주었다. 시키는 대로 자리를 잡고 일을 보려는데 캄캄한 아래쪽에서 뭔가들이 부시럭거리며 기어 나와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서로 먹겠다고 꿀꿀대며 밀쳐대는 소리에 기겁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1960년 군에 입대하여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며 복무하다가 미8군 카투사가 됐다. 당시로서는 미군들의 의식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최상위였지 않나 싶다. 특히 냉온수의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장은 그야말로 미국이 최선진 최강국임을 보여주는 문화의 척도였다. 2년 간의 카투사 생활을 마치고 광주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하여 강도 높은 간부교육을 받았던 어느 한겨울을 잊을 수 없다. 미군들과 생활했던 의식주가 확 바뀌어 순국산 재래식으로 하는 군생활도 상상을 초월한 환경의 변화였다.
버터 살이 빠지면서 허기가 느껴져 빵을 무더기로 사서 재래식 변소에 들어가 먹곤 했다. 유격 훈련 중의 도피 및 탈출이라는 과정에서는 잠을 제대로 못자게 하고 밥을 굶기면서 적진을 탈출하여 아군 진지를 찾아가야 하는 극한훈련을 받는 중이었다. 5명의 조장이 된 나는 조원을 이끌고 한밤중에 가상 적군인 체력 좋은 조교들에게 붙잡히면 얻어맞고 낭패를 당하고 임관에도 지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일부러 길이 없는 험한 산계곡을 타고 넘어 개활지를 통과하였는데 외따로 농가 한 채가 있어 찾아 들어가 허리춤에 감추어 온 돈을 주고 찐고구마를 목에 차도록 실컷 먹었다.
잠이 쏟아지는 것을 억지로 참고 일단 밖으로 나와 사방을 살펴봤다. 바로 앞에 있는 밭을 지나가야 하는데 버쩍 선 채로 걷다가는 발견되어 잡힐 것 같아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자고 했다. 한참을 올챙이처럼 포복으로 가는데 뭔가 이상한 것이 찐득거리며 냄새를 풍겼다. 밭에 인분이 뿌려진 것을 모르고 신발은 물론 배와 가슴을 바닥에 대고 움직였던 결과는 흉측한 몰골이었다. 밭 너머에 개울 물이 있어 얼음을 깨고 인분을 다 씻어내고서 죽을 각오로 달려 아군 진지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202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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