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시인께서 낭송해주셨습니다
回甲
회갑 날 아침 서울의 빈 방에서 혼자 눈을 떴다
요즘 환갑이 어디 있냐고
가족에게 말은 했지만
묘하게도 마음이 조금은 허전한 듯도 했다
여느 날처럼 빈속으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근했다
딱 34년 전 늦가을 어느 날
甲子생 아버지의 회갑을 했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무뚝뚝하고 말이 없으시던 6남매 아버지
그해 타작을 막 끝낸 넓은 시골마당에는
인심 좋았던 아버지의 환한 마음처럼
이웃 동네 사람들까지 많은 축하객들로 꽉 찼다
최전방 GOP군대에서 철책을 지키던 막내아들은
부대에서 특별휴가를 허락하지 않아 빠졌다
미혼인 큰 아들과 네 명의 딸과 사위들만으로도
아버지 어머니는 벌써 흥에 겨우셨다
한 마을에 살던 종형과 재종형이 중심이 되어
중짜 돈과 새끼 돼지를 잡아 고기가 풍년이 되었다
이웃 일직면 서기인 고종 동생(권정생 선생에게 구호 식량을
규정보다 더 얹어주던 착한 청년이었다)은 형, 형 하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읍내에 나가 물건을 사 날랐다
첫 발령을 받은 아들의 동료 교사들이
낡은 스쿨버스를 타고 마흔 명이 넘게 들이 닥쳤다
아들의 귀한 손님이라고 종형수와 고모들이
상다리가 휠 정도로 음식을 차려내기도 했다
봉화 전우익 영감은 마당 한 귀퉁이에 쪼그려 앉고
농민회 권종대 회장, 안동 분도서점 이종원 선배, 가농 회원들과
안동대 운동권 후배들도 여럿 왔다
오신다던 조탑리 권정생 선생은
사람들을 실컷 기다리게만 하고선 몸이 아파 끝내 오지 않았다
대구에서도 잔칫상을 나르려고 文靑 친구들이 왔다
큰 누님과 둘째 누님은 가마꾼들에게 넉넉하게 돈을 걸고
셋째 누님 부부는 가마에서 그만 떨어져 울상이 되고
넷째 누님은 그 모습을 보고 깔깔거리다가
‘불효자는 웁니다’로 효도잔치 뽕짝 분위기가 무르익자
가농 후배와 운동권 대학생들이 갑자기
북과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농민가’로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늙은 군인의 노래’로
왜 찔렀지 왜 쏘았지 트럭에 실려 어디 갔지~ ‘5월가’로
잔치판의 분위기를 확 바꾸자
마당 가득 흥을 내던 동네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힐긋힐긋 보면서 하나둘 슬슬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사상가에게 시집가서 아이 둘 낳고
생이별해 혼자 살던 둘째 고모님이
내 손목을 끌고 후미진 변소 뒷간에 끌고 가더니
나는 이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 안다
니가 오늘 같이 좋은 날 와 이러노?
저 사람들과 학생들은 도대체 누구고?
빠르고 격앙된 목소리로 나를 나무랐다
사실 나도 상황이 어떻게 급변한 건지 잘 몰랐다
1984년이라는 신군부 독재시대가
아버지의 회갑잔치를 이상하게 끝내버렸다
잔치분위기가 차갑게 변하자
전 선생을 따르던 패거리와 문청들이
돼지 뒷다리와 먹다 남은 문어 안주를 싸서
밤을 새러 안동 가톨릭농민회관으로 가는 걸 배웅하고
돌아오는 골목길과 잎 진 감나무 가지를
가을 하현달이 훤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 사랑하던 그 아버지도 가시고
큰 누님과 매형 두 분과 총각이던 고종 동생도
암과 교통사고로 가시고
변소 뒷간에서 나를 나무라던 고모님도 가시고
봉화 전우익, 권정생 선생님도 가시고
야단맞던 나를 지켜보던 변소 앞
3년생 산수유는 어느덧 장목으로 자라
아름다운 꽃과 붉은 열매를 맺으며
자연의 순환을 생명의 순명으로 받아들이고
아버지 회갑 때 미혼이면서 철이 없었던 나도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여 어여쁜 아이를 낳아
조상대대로 이어온 경주 김 씨 문중의 가계를 잇고
드디어 오늘 회갑의 주인공이 되었다
과연 나는 죽지 않고 언제까지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아버지와 큰누님과 셋째 넷째 매형과
내게 큰 가르침을 주신 전우익, 권정생 선생이
갔던 길을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쏜살같이 빠르고 얼마나 깊은 것인가?
또 얼마나 기쁘고 가늠하기 어렵도록 뼈가 아리게 슬픈 것인가?
또 이 우주는 얼마나 크낙한 것인가?
(2018. 7. 5.)
이해리 시인 해금 연주입니다.
쇼스타코비치,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2번~
동백아가씨 연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