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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 11:1-5
"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내용분해 : A. 다윗의 범죄 배경(1절)
1. 해가 바뀌어 전투가 개시된 시기가 이름(1a절)
2. 다윗이 요압으로 하여금 전군을 이끌고 출전하게 함(1b절)
3. 요압이 이끄는 이스라엘군이 암몬군을 무찌르고 암몬의 수도 랍바를 포위하며 승승장구함(1c절)
4. 그러나 다윗 자신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음(1d절)
B. 다윗의 밧세바와의 간음(2-4절)
1. 저녁 때에 다윗이 왕궁 지붕을 거닐다가 한 목욕하는 여인을 발견하였는데
매우 아름다워 보였음(2절)
2.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니 그녀는 햇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음(3절)
3.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밧세바를 데려와 동침한 후에 돌려보냄(4절)
C. 밧세바가 잉태하자 그 사실을 다윗에게 알림(5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연일 매서운 추위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강팍하게 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에게 따뜻하고 훈훈한 사랑이 식어지지 않는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 때문인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 다함께 오늘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며, 우리의 기도에 선히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십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사무엘하11:1-5절 말씀으로 다윗과 밧세바의 간음 사건과 밧세바의 잉태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무엘하는 제1부 1-10장, 제2부 11-20장, 제3부 21-24장등 전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제1부 1-10장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대신할 신정 왕국의 왕으로 예비하신, 신본주의 왕 다윗의 성공, 곧 사울 왕의 전사 이후 다윗이 간음 및 살인죄를 범하기 이전까지, 그의 전이스라엘의 왕으로의 즉위 과정과 연이어진 왕국의 기틀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 종교, 법적 개혁 및 성공적인 정복 전쟁의 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제2부 11-20장은 지금까지의 다윗의 성공 및 번영과 대조되는 다윗의 범죄와 그로 말미암아 다윗과 왕국에 밀어닥친 연속된 시련에 대하여 다룹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11,12장에서는 다윗 왕의 범죄와 이스라엘의 암몬 정복과 관련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또 13-18장에서는 다윗의 범죄의 결과로서 암논의 다말 추행 사건과 그와 결부되어 발생한 압살롬의 반란 사건에 대하여 다룹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19,20장에서는 다윗의 환궁과 세바의 반란 사건을 다루며, 이제 이러한 맥락하의 제11,12장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11:1-27의 세 문단에서는 다윗 왕의 범죄 곧, 다윗의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과 우리아 살해 사건에 대하여 다루는데, 먼저 1-5절에서는 다윗의 범죄의 시기와 배경, 그리고 다윗의 밧세바 간음과 밧세바의 잉태에 대하여 다룹니다. 다윗의 범죄의 시기와 배경은 암몬과의 전투가 다시 개시되어 이스라엘의 군대가 암몬의 수도 랍바를 함락하기 위해 포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즉 다윗은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압으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나가 암몬을 정벌하게 하고, 자신은 궁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우연히 목욕을 하는 밧세바를 발견하고 정욕ㅇ[ 이끌려 범죄에 빠진 것입니다. 이어 6-13절은 밧세바의 잉태 사실을 알게된 다윗의 일차 간음 은폐 시도와 실패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즉 다윗은 전장에 있던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을 손환하여 밧세바와 동침케 함으로써 자신의 간음을 은폐하려고 하였으나 왕과 나라에 충직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우애가 투철하였던 우리아가 집으로 가지 않음으로 인해,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입니다. 다음으로 14-27절은 밧세바 간음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다윗이 전투를 빙자하여 우리아을 살해하고 그의 장례 후에 밧세바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은 사실과 밧세바가 아들을 낳은 사실을 다룹니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 다윗은 이전의 의로웠던 모습과는 극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다윗의 범죄는 단순히 일개인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더합니다. 즉 다윗의 범죄는 신정 왕국의 대표자인 왕으로서 공의의 의무를 저버린 것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규례에 대한 불순종인 것입니다. 결국 다윗의 이러한 범죄는 이후에 찾아오는 다윗 자신과 자신의 가문, 그리고 이스라엘 왕국의 모든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새삼 각성하게 됩니다. 첫째, 인간 중에 완전한 의인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범죄하였고, 그로말미암아 뻐아픈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완전한 의인은 하나도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시14:1). 둘째, 죄에 대하여는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일시적인 방심으로 인하여 범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곧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아마저도 살해하는 악행을 행한 것입니다. 이렇게 죄는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그 기회를 틈타 우리로 범죄에 바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슴에 따라 늘 영적으로 깨어 죄를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마26:41). 셋째, 죄는 확장성과 심각한 파괴성을 지닌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간음은 우리아 살해는 물론, 암논의 다말 성추행과 압살롬의 암논 살해, 그리고 압살롬의 반역 및 그와 결부된 죄악 등, 계속해서 다른 범죄를 유발하며 가중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다윗의 가문은 물론 다윗 왕국까지도 해체될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죄의 확장성과 더불어 죄의 심각한 파괴성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는 모양이라도 취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살전5:22).
일생을 통해 하나님과 숨결을 같이하듯이 사랑으로 교제하던 기도의 사람 다윗, 하나님을 찬양하는 숱한 시를 쓴 위대한 시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공과 의로 다스리던 사랑과 평화의 왕 다윗, 그와 같은 믿음의 사람 다윗마저도 거친 정욕의 포로가 되어, 범죄의 시궁창에 빠졌던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실로 두려움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부르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다음으로 12:1-15a 문단에서는 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다윗 범죄 책망과 다윗의 회개 및 나단의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예언등을 다룹니다. 본문의 시대적 배경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우리아를 살해한 때로부터 약1년여가 경과한 때입니다. 왜냐하면, 이 때는 다윗과 밧세바의 간음으로 잉태한 아이가 태어난 후이기 때문입니다(11:27). 그러므로 다윗은 범죄 이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1년을 보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다윗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도록 1년을 참고 계셨으나, 다윗은 완전 범죄를 하였다는 생각에서 회개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그의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는 비유를 들려주게 하시고, 또 직접적으로 그의 죄를 지적하여 책망하게 하셨습니다(1-9절). 아울러 다윗에게 미칠 자신의 징계를 선포하게 하셨는데(10-12절), 이로 인해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13a절). 나단은 다윗의 이러한 회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죄는 옹서하셨으나 간음으로 낳은 아니는 죽을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13b-14절).
이어 12:15b-25의 문단에서는 나단의 예고대로 다윗의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죽은 사실과 솔로몬의 출생에 대하여 다룹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친히 솔로몬에게 '여호와께 사랑을 입은 자'라는 의미의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그 이름에는 솔로몬이 하나님의 언약의 후사임을 알리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용서하셨음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편 솔로몬은 본래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아들입니다(대상3:5). 따라서 솔로몬은 간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죽고 약 5년 정도의 기간이 흐른 뒤에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솔로몬의 출생을 여기에서 언급한 것은, 솔로몬이 장차 다윗의 후계자로 부상하게 될 것임을 시사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12:26-31의 문단에서는 이스라엘이 암몬 자손의 왕도인 랍바를 함락함으로써, 암몬을 완전히 정복한 사실을 다룹니다. 이 랍바성 함락 사건은 솔로몬의 출생 기사 이후에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 이 사건은 11:25에 연결되는 것으로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가 죽고, 다윗의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잉태된 아이가 아직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대상2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저자가 연대기적 순서를 무시하고, 이 사건을 솔로몬 출생 기사 이후에 기록한 것은, 다윗의 범죄와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 그리고 하나님께서 회개한 다윗에게 은총을 베풀어 솔로몬을 주신 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일목 요연하게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던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사죄(赦罪)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상 다윗의 범죄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였던 사울의 범죄보다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용서를 받은 반면 사울은 버림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윗의 번죄는 비록 심각한 것이기는 하였지만, 인간의 연약함에서 나온 것이지, 사울의 불순종처럼, 하나님 자체를 무시한 것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또 그가 나단 선지자로부터 죄를 지적받았을 때에,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겸비하여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울이 버림받은 것은, 그의 죄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사무엘로부터 죄를 지적받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인이든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하여 주십니다. 한편 다윗이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언약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다윗 언약을 통해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7:14,15)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에 따라 하나님은 다윗의 죄에 대해서는 징계하시되, 다윗 자체만은 용서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윗이 용서는 받았으되,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여, 엄청난 시련을 겪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즉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얻은 아들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단이 예고한 대로 모반이 거듭되었고, 그의 후궁들이 아들 압살롬에게 강간을 당하는 등, 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시련을 당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우리가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회개만 하면, 죄 범한 자신이 용서받는 것은 물론, 그 죄의 대가까지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면, 죄인 자체는 용서하여 구원하시되, 그가 지은 죄의 대가만큼은 반드시 물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때, 속히 회개하는 것 이상으로, 더 철저히 죄에 빠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고 조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싶시요! 우리 주님이 죄 범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셨는가를요? 주님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무죄한 자기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셔야 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죄로 인하여 겪어야 했던 시련, 주님이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치르신 엄청난 대가를 기억하여 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야 할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오늘 아침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주의해야 한다"는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왕들의 출전할 때'란 전쟁을 수행하기에 적절한 때를 가리키는 말로, 팔레스틴에서는 우기인 겨울이 지나고 건기가 시작되는 4월경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잠시 중단되었던 암몬 자손과의 전쟁을(10장) 재개하기 위해, 출전하는 때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윗이 이 전쟁을 위해 이스라엘의 전군을 출병시키면서도 자신은 출전하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의 왕궁에 그냥 남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은 이후에 전개될 다윗의 범죄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무엘상을 보면 사울 왕도 이방 나라와의 전쟁시에 늘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암몬과의 전쟁에서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지 아니하고 요압에게 군대를 지휘하게 한 채, 자신은 예루살렘 궁에 그냥 남아 있었을까요? 그것은 당시 다윗이 거듭된 정복 전쟁에서의 승리와 두번에 걸친 대 암몬. 아람 연합군과의 전쟁에서의 대승으로 말미암아 자만심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이 정복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퍠하였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전쟁을 치를 때마다 승승장구하며, 차례로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하여 갔습니다. 더구나 그의 생애에서 마지막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는 대 암몬. 아람 전투에서도 대승리를 거두어, 이제 정복 전쟁은 마무리 시점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사실 마지막 남은 암몬의 정복도 시간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중동 지역에서 다윗과 이스라엘을 대적할 세력은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다윗은 최고의 절정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쯤 되자, 다윗도 그 마음에 자만심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암몬의 정복은 자신이 굳이 출전하지 아니하고 요압에게만 맡겨도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암몬 정복을 요압에게 맡기고 자신은 궁에 남아 있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다윗의 판단이 무조건 그르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또 많은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으므로 다윗은 이제 쉴 만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문제는 다윗이 전쟁에 직접 출전하지 않았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출전하지 않게 된 동기에 있습니다. 즉 그는 자만심에 사로잡혀 출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간 겸손하기 그지없었던 그의 신앙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시사해 줍니다. 여러분, 바로 이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의 운명이 급전 직하로 곤두박질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외부의 도전이 아니라, 바로 다윗 내부의 적으로부터의 도전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2절을 보면 다윗은 군대를 모두 전쟁터에 보내놓고 자신은 저녁 때까지 침상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당시 최고의 권력자로서의 여유를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유와 교만이 주는 영적 나태함으로 인해, 그는 마음속의 정욕을 억제하지 못함으로써 그만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상에서 보듯, 우리 역시 '섰다'라고 생각될 때에, 더욱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날 모든 역사가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것입니다. 즉 절대 권력은 아무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기에 오히려 심하게 부패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연약한 인간들은 아무도 도전하지 못하고 아무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 섰을 때, 오히려 부패하고 타락하며 그럼으로써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은 성공했을 때, 번창할 때, 승리할 때, 더욱 조심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음으로써 다윗과 같은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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