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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각성하고 자복해야 하는 자들이 참회하며 돌이키는 대신 아무리 그럴싸해 보이고 성대하게 경배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가증스러움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심지어는 말라기 1장 10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라고 증거된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하나님의 열납은커녕 완전히 그 반대까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아래 본문에서의 에스라를 위시한 바벨론 포로 귀환 후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1~7절에서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라고 증거된 말씀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이듯이..
죄악들에 있어서 가장 먼저 어느 정도로까지 민감해 하고 각성하며, 심각하게 여기고 두려워 떨며, 처절하게 자복하며 참회한 것인지를 조금도 어렵지 않게 통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에 있어서는 느헤미야 1장 2~7절에서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이듯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핵심적으로 쓰였던 느헤미야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아래 본문 당시의 에스라를 위시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래 본문 뒤의 에스라 10장 2~3절에서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라고 증거되어 있고, 또한 10장 10~12절에서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라고 증거된 말씀 등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이미 이방인과 결혼했고 게다가 자녀들이 있음과 같이 결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다수는 다 내보냈을 만큼 죄악들에 있어서 생각 이상의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실상 그 정도로까지 심히 위급하고 극도로 지나쳐 보이게 자복하면서 돌이켰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까지의 결단은 인간적, 세상적, 현실적 측면에서는 이성적, 상식적, 합리적으로 맞지 않아 보이고 심각히 과해 보이며 납득이 힘들 정도로 극단적으로 보이고 이상해 보이기까지 할 수 있으며, 특히 오늘 이 시대의 관점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나..
신앙적, 성경적, 영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때 당시는 오늘날의 우리들과는 달리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이었고, 게다가 그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말씀을 맡은 자들이었으며 보이신 자들이었고 모델로 삼으신 자들이었으며, 무엇보다 그때 당시의 율법의 말씀들은 오실 메시야, 곧 구주 예수님을 위한 몽학 선생의 역할을 했고 그 속에서의 많은 요소들이 구주 예수님을 위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의 역할을 한 것이었으며, 사실상 그와 같이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러한 율법에 있어서의 절대성과 철저함들이 생각 이상으로 요구된 때였고, 그로 인한 결과들이 다 셀 수도 없을 정도의 흥망성쇠에 직결될 정도로 많은 시간과 사건들이 있었기도 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진정 그 시대의 율법의 관점에서는 오늘 이 시간 우리들도 이방인인 것이기에 일률적 비교가 힘든 면이 있고, 적용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여러 사정과 상황과 여건과 시대적 요건에 있어서, 특히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섭리와 계획과 시간에 따라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측면들이 많은 것인데 어쨌든 분명한 것은 같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신 죄악들에 있어서 얼마나 처절했고 철저했는지,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 어느 정도로까지 진정이었고 치열했는지, 참으로 어디까지 감수하고 결단한 것인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제대로 된 믿음과 건전한 영성과 올바른 접근과 성경적인 순서가 적지 않은 사함과 나음들이 되었고, 더 나아가 생각 이상의 회복과 역전들이 되었으며, 심지어는 흥왕과 부흥의 발판이 된 것이고, 더 나아가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오늘날의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예비와 영향과 열매들이 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그러한 사실과 이치와 원리에 있어서는 조금도 낯설거나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으로 조금만 따지고 봐도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게다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이 실제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이 아닌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도록 구주 예수님에 대해 미리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그 이름을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고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으며 바로 그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으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분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에스라9:1~1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17일(목)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