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목장의 결투 최 건 차
2024년 호국보훈의 달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소련제 탱크로 기습해 온 북한군에게 남북한의 경계선 38선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의정부 방어선을 쉽게 뚫고 미아리고개를 넘은 저들에게 서울이 점령당했다. 북한군의 불법 남침과 맞물려 남부지역에서 준동하던 빨치산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동족상잔의 처참한 결투를 목격하며 겪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겪은 것과는 걸맞지 않은 양상이었지만 1957년 제작된 미국 서부영화의 걸작 ‘OK목장의 결투’가 묘하게 끼어들어 그때의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 북한의 침략으로 신생 대한민국이 위태로워졌다. 이를 방관할 수 없게 된 유엔이 안전보장 이사회를 소집하였고, 미국은 한발 앞서 빠른 대처에 나섰다.
트르만 대통령은 맥아더 원수를 유엔군 초대사령관에 임명하여 북한군을 물리치도록 했다. 적이 한강을 건너는 것을 저지하려고 철교를 폭파해야 했다. 다국적군으로 편성된 유엔군이 한국전선에 도착하기 전 적은 한강을 건너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급히 날아온 맥아더 장군이 수원비행장에 내려 한강을 시찰하고 돌아가 승전국 군대로 일본에 있던 미 24사단을 한국전선에 투입하려고 했다. 이때 적은 한강을 건너 수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미 24사단장은 첨병부대로 스미스대대를 선발하여 한국에 보냈다. 급하게 온 미군은 이미 수원을 점령하고 있는 적들이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도록 우선 오산 죽미령에다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태세를 취했다. 적 탱크 몇 대를 격파하였으나 중과부족으로 참패를 당하고 부대는 전멸 상태에 이르렀다.
북한군을 쉬운 상대로 여기다가 크게 당한 미군은 실패를 만회하려 했다. 미 24사단을 급파하고 미8군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어 정예부대인 미해병 제1사단과 육군 2사단 7사단 등으로 적의 남하를 저지하려고 했다. 미군과 우리 국군은 죽미령고개를 돌파한 북한군에게 밀리고 밀려 추풍령을 넘어 왜관 앞 낙동강을 최후의 보루로 삼고 혈전을 벌여야 했다. 북한군은 대전을 차지하고 영동, 김천, 구미까지 내려와 낙동강을 건너 왜관을 쉽게 제압하고 대구를 점령한 다음 부산까지 밀고 내려갈 참이었다.
1950년 한여름 낙동강 변의 다부동과 왜관 일대에는 긴박한 전운이 감돌았다. 장마철에 접어들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미군의 전투기 출격이 어려워진다. 이런 틈을 이용해 낙동강을 건너려는 계획으로 북한군의 전력이 강가에 집중되고 있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전국민을 향하여 특히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에게 금식하면서라도 낙동강 전투에서 우리 군이 승리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비가 곧 내리기 시작하여 북한군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도하작전을 감행하려 들었다.
오끼나와에 있는 미군 전투기들은 우중에도 낙동강을 향하여 출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가 내리자 북한군은 이때다 싶어 전병력이 낙동강을 건너려 들어서고 있고, 계속 줄을 잇고 있었다. 적군이 강에 가득 차 있는 상황인데 갑자기 구름이 사라지면서 비가 그치자, 미군 전투기들이 날아와 폭탄을 마구 투하하고 기총사격을 쏟아부었다. 다부동과 낙동강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아군들도 전투기와 합세하여 강을 건너려는 적군을 모조리 수장시켜 버리고, 미군의 폭격으로 붉은 강이 되었다.
아군의 대승리로 대패한 북한군 잔당들은 지리산 인근으로 숨어 빨치산에 합류했다가 결국에는 처참하게 괴멸당했다. 이때는 맥아더 사령관의 주도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서울을 다시 탈환하고 여세를 몰아 북진을 하고 있었다. 낙동강 전선에서 승기를 잡은 아군은 포항과 영천, 영주 지역 산간에 숨어든 북한군 잔당들을 소탕해야 했다. 이 무렵에도 고유한 문화와 전통에 집착해 있는 영천에서는 한가롭게도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1965년 봄, 봉화군 봉성에 사는 숙부님 맏딸 결혼식에 참석했다. 밤에 동네 청년들이 몰려와 신부의 오빠인 나를 안방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장작개비로 발바닥을 때리면서 술과 닭을 잡아내라는 통에 곤욕을 치렀었다.
전쟁이 한참인데도 영천의 어느 마을에서는 결혼식을 끝낸 밤을 맞고 있었다. 신부 집 동네 청년들이 장가온 신랑을 큰방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다루고 있던 참이었다. 신랑이 괴로워하며 비명을 지르는데 때마침 인근을 정찰하던 미군들이 불이 켜진 농가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을 듣고 가까이 접근해 살펴보았다. 웬 사람을 매달아 놓고 두들겨 패니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문을 박차고 들어가 총을 겨누었다. 모두가 무서움에 벌벌 떨고 있는데 미군이 영어로 저기 매달린 자가 적이냐고 물었다. 아무도 영어을 모르니 대답할 수 가 없었는데 그들 중 누군가가 OK라고 했다.
미군은 매달아 고문으로 죽이지 말고 총으로 쏴버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 아무 대답도 없다가 아까 말한 자가 알아듣지도 못한 채로 OK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미군은 M1소총으로 매달린 신랑을 쏴버리는 비극이 발생했다는 말이 있다. 항간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겪은 바로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2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