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유명 부족 지도자이며 동부 자르칸드주의 수석 장관을 세 차례나 지낸 시부 소렌이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4일 보도했다.
그는 신장이 좋지 않아 델리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지난달 뇌졸중을 일으킨 뒤 생명유지장치에 의지하고 있었다.
40년 넘게 정치에 종사하며 소렌은 이 부족이 지배하는 동부 국가 창설의 최전선에 서는 영향력 있는 부족 정당인 자르칸드 묵티 모르차(the Jharkhand Mukti Morcha JMM)를 공동 창당했다. 그는 세 차례 주정부 수석 장관 임기를 한 번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이 주의 정치적 불안 때문이었다.
아들 헤만트 소렌이 현재 자르칸드주 수석 장관인데 이날 부친이 세상을 떠났음을 알렸다. 그는 엑스(X)에 글을 올려 "우리의 존경 받는 디숌 구루가 우리를 떠났다. 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부친 이름을 소렌이라고 언급했는데 이것은 인도 최대의 부족 공동체 중 하나인 산탈(Santhal) 부족의 언어인 산탈리(Santhali)어로 "위대한 지도자"란 뜻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추모를 이끌었는데 소렌을 가리켜 "국민에 대한 가없는 헌신으로 공공 생활의 계급을 뛰어 넘은 풀뿌리 지도자"라고 했다.
소넨은 1944년 당시만 해도 비하르주의 일부였던 현재 카르칸드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JMM을 창당한 것은 1973년이었는데 주된 목적이 비하르주의 남부 지구로부터 부족민들의 독립 국가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자르칸드가 2000년 주로 승인 받은 뒤 소렌은 그 지역 정치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성장했다. 2004년 그는 인도 의회당 내각의 연방 석탄 장관이 됐지만 몇 달 뒤 살인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뒤 물러났다. 그는 같은 해 보석으로 풀려나 내각에 돌아왔다. 2005년 그는 자르칸드주 수석 장관에 올랐다가 소속 당이 주의회 다수 당 지위를 잃자 열흘 만에 사임했다.
소렌은 같은 해 석탄 장관으로 연방정부에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다른 살인 사건에 연루돼 또 다시 사임해야 했다. 이번에는 1994년 자신의 개인 비서 샤시나스 자의 납치와 살인 혐의였다. 하지만 끝내 2018년 이들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명났다.
당연히 여러 정당의 지도자들이 고인을 추모했다. 자이람 라메시 의회당 지도자는 X에 고인이 자르칸드 독립 운동을 이끈 "중추 인물"이라면서 "그는 사회적, 경제적 정의에 대한 열정으로 영감을 선사한 진짜 레전드였다"고 안타까워했다. 마하라슈트라주에서 영향력 있는 시브 세나(Shiv Sena UBT)당의 산자이 라웃은 "자르칸드 사람들에게 그는 하느님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자르칸드주 창설에 반대했다가 나중에 소렌과 연대했던 전직 비하르주 수석 장관 라루 프라사드 야다브는 죽음 소식을 "깊은 슬픔"으로 받아들이며 "부족민들과 달리트(불가촉 천민)들의 권리를 위해 싸운 위대한 지도자"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