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의 신화
구약의 천지창조와 바빌론의 신화 비교
창세기의 태초 이야기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 여향을 받은 흔적이 있다.
바빌론의 창조신화 '에느마 엘리쉬'(Enuma elish)는 바빌론판 창조신화이다.
이 신화는 먼저 우주 창조 신화로 부터 시작된다.
태초에 티아맛(Tiamat)과 아프수(Apsu)라는 한 쌍의 우주신이 있었다.
티아맛은 여성신이며 바다의 짠물을, 아프수는 남성신으로서 강에서 흐르는 단물을 상징하는 신이었다. 두 신 사이에서 먼저 라흐무와 라하무의 한쌍이, 그 뒤에 안샬과 키샬이라는 다른 한 쌍의 신이 태어났다. 그리고, 수많은 신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모든 것의 시초인 신이 바다와 강물의 신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즉 천지창조 이전에도 물은 애초에 존재했다는 말이다.
창세기 1장 2절에서도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기전에 수면위에 운행했다는 구절로 볼 때, 창세기는 에누아 엘리쉬와 같은 관점에서 기록되어 졌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신들이 많아지자 신의 세계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중, 바다의 여신 타마앗 여신과 그의 내연의 남편 킨구(Kin-gu)가 마루둑을 죽이려 전쟁을 벌였으나, 마루둑의 승리로 끝을 맺었고 반역자 킨구는 처형을 당한다.
마루둑은 타아맛의 시체로 천지를 창조한다. 마루둑은 티아맛의 시체를 머리에서부터 쪼개어 두 동강을 낸후, 그 윗 몸체를 휘어 둥근 하늘을 밑에 있는 부분으로써 땅을 만들었다.
또 그는 하늘에 자신의 집을 짓고 나서 여러 별을 지었으며, 달력도 제정했고, 북극성을 제자리에 두었고, 달과 해가 운행할 길도 잡아 주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복할 점은 창공을 만든 뒤 그곳에 별, 태양, 달을 세우고 이를 절기와 날을 세는 징표로 삼았다는 것과 아래의 물을 모이게 하여 육지와 바다가 생기게 했다는 것 역시 구약과 똑같다는 점이다.
또, 구약의 창세기는 물을 혼돈, 흑암, 즉 테홈(Tehom)이라 하여 마루둑에게 전쟁을 걸어온 바다의 여신 티아맛과 그 어원을 같이하고 있다. 구약에서도 여호와가 혼동속에서 우주를 창조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마르둑은 자신과 함께 싸워준 여러 신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어 신을 섬기도록 작정했다. 지혜가 많은 에아(Ea)는 킨구의 몸에서 피를 뽑아 진흙을 개어 인간을 창조했다.
반역자로 낙인찍힌 킨구의 피와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본질의 일부는 반란을 일으키고 죽은 악한 신에게서 유래되었는 원죄론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것은 성악설의 시작이기도 하다.
죄를 지어 사형당한 신의 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점은 "살의 혼은 피에 있다"는 레위기 17장 11절의 피에 대한 관념과 일치한다. 이러한 피와 관련된 인간의 원죄론은 유대인들의 염소의 피를 제단에 뿌려서 하는 번제의식(또는 '속죄례')라는 종교적 관습에 영향을 끼친 듯하며, 이것은 나아가서 오늘날 기독교의 예수의 대속적 죽음에 대한 속죄 신학으로 발전했다.
구약의 번제의식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어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에 크나큰 영향을 준 것이다.
인간을 만든 뒤에 신들은 휴식을 취하고 법석대며 축하했다고 기록되어져있다.
이것은 창세기의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고 난후에 휴식을 취하고 안식일을 정해 거룩하게 했다는것과 일치한다.
즉, '안식일'의 발상도 바빌론과 수메르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의 유래를 창세기에서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한 후에 휴식한 것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로린슨이 판독한 수메르의 점토판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제7일은 마르둑과 자르파니트의 축제일이다. 그 날은 악한 날이다. 위대한 백성의 목자는 연기나는 숯불 위에 구운 고기를 먹지 말 것이니라. 그 몸에 겉옷을 갈아 입지 말 것이요 깨끗한 것을 입지 말지니라. 그는 희생 제물을 드리지 말지니라. 병거를 탄 왕은 달리지 말 것이요. 그는 승리를 말하지 말 것이라. 선견자는 거룩한 곳에서 신탁을 말하지 말라. 의사는 환자 위에 그 손을 얹지 말 것이요, 악담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느니라. 밤에 왕은 마르둑과 이슈타 앞에 그의 제물을 드릴 것이며 관제(灌際)를 부을지니라. 그의 손을 쳐드는 것은 그 때에 그 신들에게 기뻐함이 될 것이라." [Rawlinson's Cuneiform Inscription of Western Asia Ⅵ, 2nd ed., pl. 32, lines 28-38]
아카드어 '샤파투'는 바빌로니아에서 정결례를 행하는 종교일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안식일을 뜻하는 '샤바트'라는 단어와 유사성을 띄고 있다.
바빌로니아의 전승에 따르면 정결례를 행하는 '샤파투'는 "신의 심장이 쉬는날"이라고 해석했다.
즉 신이 쉬는 날이 안식일인 '샤파투'였고, 유대인들은 이를 히브리어로 음역하여 '샤바트'라고 부른 것이다.
또 다른 점토판인 지우쑤드라의 엔키와 닌후르사드의 신화에서도 창세기의 에덴동산과 유사한 신화가 발견된다.
태초에 낮과 밤이 생기고 해(年)가 결정된뒤 큰 신이 생겨나고, 그들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은 뒤 기본적인 세상의 질서가 정해졌다.
태초의 낙원인 딜문(Dilmun)은 순결하고 찬란하며 성스런 땅이었다. 엔키(Enki)에 의해 축복받아 달콤한 물이 넘쳐흘렀으며,풍성한 개펄과 야자나무로 채웠다. 동쪽에 자리잡은 에덴에는 물이 붇거나(riese) 범람하는 강이 하나 있었는데,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과 더불어 4대강을 형성했다. 그곳은 또한 푸르게 우거져 나무들에는 열매가 가득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강바닥을 파서 그 흙으로 강둑을 쌓는등의 고된 노역에 시달리던 작은 신(神)들이 불평 하기 시작했고, 지혜의 신인 엔키를 저주하며 급기야 연장을 파괴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잠에 빠져있는 엔키에게 어머니 남무(Nammu)가 아들을 깨운다.
"여전히 누워 있느냐? 이런데도 너는 잠자고 있느냐?....너의 재간으로 신들을 대신할 것을 만들어 그들의 노역을 풀어 주어라."
엔키는 그의 어머니인 남무의 조언으로 인해 신들의 노역을 대신할 존재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우선 점토를 빚어 출산의 모신들을 창조하고, 그녀들과 의논한 끝에 인간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진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의 능력이 서려있는 '이름있는 피' 가 필요했다. 엔키는 반란을 일으킨 작은 신들의 우두머리 웨일라(We-ila)를 잡아 죽인 후, 그 피를 점토와 섞어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awila : 아윌라)이라는 단어는 웨일라의 이름에서 나왔다고 한다. 엔키는 일곱 명의 출산 여신들의 도움을 받아 인간을 창조한 후, 인간들에게 대신 노역을 맡겼다.
지우쑤드라에서도 에누마 엘리쉬와 같이 반역한 신의 피로써 인간을 창조했다고 나온다.
또, 지우쑤드라에서는 그동안 신학적으로 의문점이었던 이브의 갈비뼈 탄생에 대해서 의문을 풀어줄만한 단서가 등장한다.
엔키와 닌후르사그(Ninhursag)의 사이에서 여덞종류의 식물들이 태어났는데 엔키가 자식들인 식물을 먹어버렸다. 결국 그녀에게 저주를 받은 엔키는 먹어 치운 각 식물에 대해 하나당 하나씩의 상처를 입었다.
엔릴과 여우는 엔키 대신에 그 저주를 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엔키와 다시 결합하여 새로운 자식들 여덟을 낳았고 그들이 각각의 상처를 치료했다.
그의 갈비뼈를 치료한 딸을 닌티(Ninti)라고 불렀는데 달(months)의 여왕이고, 갈비뼈의 부인, 또는 생명을 주는 여인이란 의미이다. 수메르어로 '티'란 말은 '갈비뼈'와 '생명을 주다'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연상은 이브에게로 이어진다. 창세기에서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지고 그녀의 이름인 하와 또는 생명(living)과 관련 있다.
흙으로 인간을 창조했으며, 인간 자체가 애초에 원죄(반역자 신의 피로써 창조되었다는)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와 수메르의 다양한 창조신화에서 발견된다.
또,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수메르어로 갈비뼈가 생명을 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일 것이다.
바빌론 유수당시 유대인들은 이러한 바빌론 사람들의 신화에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창세기의 에덴동산 역시 수메르신화의 태초의 낙원 딜문과 유사하고, 그 이름 또한 수메르어 명사인 '간즈 에덴'(ganz eden:들판의 일궈놓은 밭)에서 나왔다. 수메르어 보통명사가 창세기에서는 고유명사로 사용된 것이다.
창세기의 뱀이 사악한 동물이라는 관점도 유대인들이 바빌론 유수당시 그곳의 영향을 받은것이라 추측된다.
길가메쉬 신화(The Epic of Gilgamesh)에서의 뱀은 영생할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가 버린 악한 동물로 묘사 되어진다.
이 신화는 친구 엔키두(Enkidu)가 죽게 되자 우룩 나라의 왕 길가메쉬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
길가메쉬는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죽지않는법(不死永生)을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후, 만슈라는 산에 도착한 길가메시는 대홍수 때에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는 우트나피스팀이라는 전설적 인물을 찾아간다.
가까스로 우트나피스팀에게 영생할수 있는 비법을 듣게된 길가메쉬는 회춘하는 신통한 풀이 있는 곳으로 간다.
길가메쉬는 바닷속에 들어가 그 풀을 뜯어 가지고 물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는 몇날 동안 길을 가다 한 곳에 맑은 연못이 있는 것을 보았다. 길가메쉬는 그냥 지나갈 수 없어 연못에 몸을 씻기로 생각하고 그 약초를 연못가에 놓아 두었다.
그런데 그 연못에서 살던 한 뱀이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뭍으로 나와 순식간에 그 풀을 훔쳐 먹고는 껍질을 벗고 사라졌다. 그래서 길가메쉬는 영생의 기회를 뱀에게 빼앗겼다고 한다.
한편,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원주형 도장에 눌려 찍혀진 부각에는 거룩한 나무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앉아 있는 데, 왼편사람 뒤에는 뱀이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영박물관측에서는 이 유물에 '하와의 유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