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와 해설 (정지용의 '춘설')
춘설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힌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어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문장3호>(1939) -
해설
[개관 정리]
◆ 성격 : 서정적, 감각적
◆ 표현
* 봄에 대한 느낌을 시각, 촉각, 후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 돋보임.
* 봄에 대한 화자의 태도 - 신선함, 설렘, 신비로운 감정의 교차
* 세련되고 순수한 시어의 구사
* 역설적 표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선뜻! → 봄 날씨라고 생각하고 아침에 문을 열었을 때 의외의 추위를 느낀다.
그러한 추위가 의외임이 '선뜻'이라는 어휘 뒤의 느낌표를 통해 드러남.
* 먼 산이 이마에 차라
→ 먼 산은 시각적 심상이다. 이마에 차다는 것은 촉각적 심상이다. 뒤이어지는 내용을 고려해 볼 때,
먼 산꼭대기에 춘설이 내려 쌓여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화자의몸에서 산꼭대기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이마이다.
산꼭대기에 눈이 쌓인 모습을 보니 내 머리 꼭대기인 이마가 다 차가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 우수절 들어 / 바로 초하로 아츰
→ 우수는 2월 19일경으로, 봄이 시작된다는 뜻의 입춘과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
사이에 있는 절기다. 봄비가 내려 물기운이 가득찬다는 뜻으로, 이 부분은 작품의 시간적 배경에 해당한다.
*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산꼭대기) → 봄눈에 대한 새삼스러움, '철 아닌 눈'과 상통함.
*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 실제로는 멀리 있는 산과 이마받이를 한다고 하는 것은 곧 거리의 소멸을 의미한다.
산과 나의 거리를 과감히 생략시켜 버리고 차가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는 물리적으로 느끼는 차가움이라기보다 내적 감각으로 느낀 차가움이다.
이와 같은 차가움은 이후 봄의 생동감으로 연결된다.
*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 얼음에 금이 가는 것은 해빙기의 봄을 의미한다. 바람이 새로 따르는 것 역시 칼날 같이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이 아닌 봄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이다. 봄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 흰 옷고름 절로 / 향기롭어라
→ 봄바람에 산뜻하게 흩날리는 옷고름의 모양이 마치 고운 향기가 피어오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봄의 느낌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웅숭거리고 살아난 양이 /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 봄을 맞아 생명을 찾기 위해 지금껏 겨울을 보내며 살아온 고난의 과정이 서럽다는 뜻이다.
* 옴짓 아니기던 → '아니 기던'은 '아니 하던'의 의미로, '움직이지 않던'의 뜻이다.
* 철 아닌 눈 → 겨울의 마지막 기승이다. 제목인 춘설이 가리키는 마지막 추위이다.
*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 핫옷을 벗는 것은 덥기 때문에 벗는 것인데, 그 옷을 벗고 추워지겠다고 말하고 있다.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은 마지막 추위를 몸으로 맞으며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설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제재 : 이른 봄에 내린 눈(춘설)
◆ 화자 : 비록 꽃샘 추위가 남아 있더라도 핫옷을 벗어던지고 봄이 주는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음.
◆ 주제 : 이른 봄에 내린 '춘설'에 대한 감각적인 느낌
[시상의 흐름(짜임)]
◆ 1 ~ 3연 : 이른 봄(우수절 초하루 아침)에 바라보는 눈 덮인 세상과 서늘함
◆ 4 ~ 5연 : 다가오는 봄의 새로운 기운(자연 속에서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
◆ 6 ~ 7연 : 봄의 생동감과 봄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봄 추위를 한자말로는「춘한」(春寒)이라 하고 순수한 우리 토박이말로는「꽃샘」이라고 한다.
손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다.
詩的인 감각으로 볼 때「춘한」과「꽃샘」은 분명 한 자리에 놓일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꽃샘'은 어감도 예쁘지만 꽃피는 봄을 샘내는 겨울의 표정까지 읽을 수가 있어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계절까지도 이웃 친구처럼 의인화하며 살아왔던 한국인의 유별난 자연 감각이 이 한 마디 말 속에 축약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한 꽃샘 추위의 한국적 정서를 보다 시적인 세계로 끌어올린 것이 정지용의 '춘설'이다.
그리고 지용은 그 시에서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라는 불후의 명구를 남겼다.
'시는 놀라움이다.'라는 고전적인 그 정의가 이처럼 잘 들어맞는 시구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시간과 공간의 관습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굳은살이 박힌 일상적 삶의 벽이 무너질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그 놀라움이며 '시'이다.
<춘설>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침에 문을 여는 순간 속에서 출현된다.
밤 사이에 생각지도 않은 봄눈이 내린 것이다.
겨울에는 눈, 봄에는 꽃이라는 정해진 틀을 깨뜨리고 봄 속으로 겨울이 역류하는 그 놀라움이 <춘설>의 시적 출발점이다.
그것이 만약 겨울에 내린 눈이었다면 '선뜻'이라는 말에 느낌표가 붙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냥 차가움이 아니다. 당연히 아지랑이나 꽃이 피어날 줄 알았던 그런 철(시간), 그런 자리(공간)에 내린 눈이었기 때문에
그 '선뜻!'이란 감각어에는 '놀라움'의 부호가 요구된다.
그리고 그러한 '놀라움'은 손발의 시러움 같은 일상의 추위와는 전혀 다른 '이마' 위의 차가움이 된다.
'철 아닌 눈'에 덮인 그 산은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적인 산이 아니라, 이마에 와 닿는 촉각적인 산이며,
이미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이 아니라 '이마받이'를 하는 '서늘옵고 빛난' 거리가 소멸된 산이다.
그렇게 해서 '먼 산이 이마에 차라'의 그 절묘한 시구가 태어나게 된다.
'이마의 추위'는 단순한 눈내린 산정의 감각적 묘사에서 그치지 않고, '춘설'과 '꽃샘추위'에 새로운 시적 부가가치를 부여한다.
'춘설이 분분하니 필동말동하여라'의 옛시조나 '春來不似春' 같은 한시의 상투어들은 봄눈이나 꽃샘추위를 한결같이
봄의 방해자로서만 그려낸다.
그러한 외적인 '손발의 추위'를 내면적인 '이마의 추위'로 만들어 낸 이가 시인 지용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꽃 피기 전 철도 아닌 눈'은 어느 꽃보다도 더욱 봄을 봄답게 하고,
그 감각과 의미를 새롭게 그리고 진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봄눈이 내린 산과 이마받이를 한 지용은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어라'라고 노래한다.
꽃에서 봄향기를 맡는 사람은 시인이 아니다.
일상적 관습 속에서 기계적으로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용과 같은 시인은 오히려 봄눈과 같은 겨울의 흔적을 통해 겨울옷의 옷고름에서 봄향기를 감지한다.
'새삼스레'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듯이 지용에게는 시간을 되감아 그것을 새롭게 할 줄 아는 상상력이 있기 때문이다.
얼음이 금가고 파릇한 미나리의 새순이 돋고 물밑에서 꼼짝도 않던 고기입이 오물거리는 그 섬세한 봄의 생동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리고 겨울과 봄의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이마의 추위(꽃샘추위)'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활짝 열린 봄의 생명감은 '웅숭거리고 살아온 겨울의 서러운 삶'을 통해서만 서로 감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봄눈이야말로 겨울과 봄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체험할 수 있게 하고,
끝내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그 차이화를 보여주는 놀라움이 되는 것이다.
봄의 시는 꽃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용의 상상력에 의하면 그것은 봄눈에 덮인 서늘한 뫼뿌리에 혹은 얼음이 녹아 금이 간 그 좁은 틈 사이에 있다.
그래서 지용의 시 '춘설'은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로 끝나 있다.
달리는 자동차 속에 있을 때에는 우리가 달리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우리의 몸은 앞으로 쏠리게 되고 그 충격을 통해 비로소 달리는 속도를 느낀다.
봄눈이 바로 봄의 브레이크와도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봄눈은 밤낮 내리는 것이 아니잖는가.
그러므로 꽃샘이나 봄눈을 통하지 않고서도 스스로 겨울의 흔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꺼운 솜옷을 벗고 도로 추위를 불러들여야 한다.
'새삼스레', '철 아닌', '도로'와 같은 일련의 시어들이 환기시켜 주는 것은 시간의 되감기이다.
그래서 '핫옷 벗고 다시 칩고 싶다'라고 말하는 지용의 역설 속에서 우리는 스위스의 산 골짜구니 깊숙이 묻혀 살던 '
드퀸시'의 오두막집을 상상하면서 쓴 '보들레르'의 글 한 줄을 생각하게 한다.
<이어령 교수>
◆ 더 읽을거리
이 시는 정지용의 후기시 세계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초기의 모더니즘 계열에서 벗어나서,
가톨릭에 몸담은 종교시의 통과 의례를 거친 뒤, 동양적 세계에서 노니는 관조적 서정을 절제된 이미지로 잘 표현하고 있다.
여전히 정지용다운 시어의 세련된 구사가 두드러지는데,
첫 연에서부터 ‘먼 산이 이마에 차라’와 같은 감각적 표현은 그의 장기(長技)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는 부분이다.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와 같은 부분들도
그 세련된 언어의 맛을 잘 살리고 있는 표현이다.
밤새 춘설이 내려 서정적 자아는 문을 연다.
선뜻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 절기는 이미 우수를 지났건만 추위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봄기운이 자연 속에 피어나서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이러한 봄향기가 옷 속에까지 스며온다.
겨우내 웅크렸던 생명들이 ‘옹송그리고 살어난 양이’ 서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이러한 봄기운을 느끼기 위해서는 비록 추위가 남아 있더라도 핫옷을 벗어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시인은 역설적으로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직설법이 아닌 시적 표현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맛보게 된다.
신비로움과 설렘의 감정이 교차된 시선에서 일상적 삶에서조차 경이로움을 발견해 내는
시인의 따스함을 엿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중견 시인의 작품이라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풋풋함과 신선함이 배어 있지만,
작품의 의미가 자연에 대한 경탄에서 그치고 만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작가소개]
정지용[ 鄭芝溶 ]
<요약>
1920년대~1940년대에 활동했던 시인으로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출생-사망 : 1902.6.20 ~ 1950.9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충북 옥천(沃川)
주요저서 : ≪정지용 시집≫, ≪백록담≫, ≪문학독본≫
<정지용의 삶과 활동>
1902년 6월 20일(음력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沃川) 하계리(下桂里)에서
약상(藥商)을 경영하던 정태국(鄭泰國)과 정미하(鄭美河)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연못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꾸었다고 해서 아명(兒名)을 지룡(池龍)이라고 하였고,
이름도 지용(芝溶)이라고 하였다.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프란시스코(方濟角)이다.
9세 때인 1910년 옥천공립보통학교(지금의 죽향초등학교)에 입학하였고, 12세 때인 1913년 동갑인 송재숙과 결혼했다.
17세 때인 1918년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였다.
휘문고보에 재학하면서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搖籃)≫을 발간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교내 시위를 주동하다가 무기정학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1919년에 창간된 월간종합지 ≪서광(瑞光)≫에 ‘3인’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였다.
1922년 휘문고보를 졸업한 뒤에 시작(詩作) 활동을 하였고,
휘문고보 출신의 문우회에서 발간한 ≪휘문(徽文)≫의 편집위원을 지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23년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에 다니던 1926년 유학생 잡지인 ≪학조(學潮)≫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그해에 ≪신민≫, ≪어린이≫, ≪문예시대≫ 등에 ‘다알리아(Dahlia)’, ‘홍춘(紅椿)’, ‘산에서 온 새’ 등의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29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뒤에는 휘문고보 영어과 교사로 부임하여 해방이 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1930년에는 박용철(朴龍喆), 김영랑(金永郞), 이하윤(異河潤) 등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을 발간하고,
1933년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김기림(金起林)·이효석(李孝石)·이종명(李鐘鳴)·김유영(金幽影)·유치진(柳致眞)·
조용만(趙容萬)·이태준(李泰俊)·이무영(李無影) 등과 함께 9인회를 결성하며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또한 그해에 새로 창간된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아 그곳에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시인 이상(李箱)의 시를 소개하여 그를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34세 때인 1935년 그 동안 발표했던 시들을 묶어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부터는 ≪문장(文章)≫의 시 부문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趙芝薰),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 이한직(李漢稷),
박남수(朴南秀) 등을 등단시켰다.
이 시기에는 시뿐 아니라 평론과 기행문 등의 산문도 활발히 발표했으며, 1941년에는 두 번째 시집인 ≪백록담≫을 발간했다.
이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그로 인해 사회 상황이 악화되면서 일제에 협력하는 내용의 시인 <이토>를 ≪국민문학≫ 4호에
발표하였지만, 이후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은거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한국어와 라틴어를 강의하였고, ≪경향신문(京鄕新聞)≫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했다.
1946년 2월에 사회주의 계열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문학가동맹(朝鮮文學家同盟)의 아동분과 위원장으로 추대되었고,
그해에 시집 ≪지용시선(芝溶詩選)≫을 발간했다.
1947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시경(詩經)≫을 강의하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화여대 교수를 사임하고,
지금의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며 ≪문학독본(文學讀本)≫을 출간했다.
이듬해인 1949년 2월 ≪산문(散文)≫을 출간했으며, 6월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이 결성된 뒤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했던 다른 문인들과 함께 강제로 가입되어 강연 등에 동원되기도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김기림(金起林). 박영희(朴英熙) 등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
이후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사망하였다.
사망 장소와 시기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데, 1953년 평양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발행하는 ≪통일신보≫는 1993년 4월에 정지용이 1950년 9월 납북 과정에서 경기도 동두천 인근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정지용의 문학세계>
정지용은 1930년대에 이미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당시의 시단(詩壇)을 대표했던 시인이었다.
김기림과 같은 사람은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크게 세 시기로 특징이 구분되어 나타난다.
첫 번째 시기는 1926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으로,
이 시기에 그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형상화한 순수 서정시의 가능성을 개척하였다.
특히 그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다듬은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여 다른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향수’(조선지광, 1927)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두 번째 시기는 그가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으로 활동했던 1933년부터 1935년까지이다.
이 시기에 그는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여러 편의 종교적인 시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반’, ‘불사조’, ‘다른 하늘’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세 번째 시기는 1936년 이후로, 이 시기에 그는 전통적인 미학에 바탕을 둔 자연시들을 발표하였다.
‘장수산’, ‘백록담’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자연을 정교한 언어로 표현하여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해서 산수시(山水詩)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지용은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분단 이후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시들은 다른 납북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다 수많은 문인들의 청원으로 1988년 3월 해금(解禁)되어 대중에게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9년에는 ‘지용 시문학상’이 제정되어 박두진이 1회 수상자로 선정된 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5년에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향수’가 가요로 만들어져 발표되기도 했으며,
2003년 5월에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시집으로
≪정지용 시집(鄭芝溶詩集)≫(시문학사, 1935),
≪백록담(白鹿潭)≫(문장사, 1941),
≪지용시선(芝溶詩選)≫(을유문화사, 1946)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문학독본(文學讀本)≫(박문서관, 1948)과
≪산문(散文)≫(동지사, 1949)이 전해진다.
그리고 이들 단행본에 실리지 않은 시와 산문들도 모아서 1988년 민음사에서
≪정지용 전집(鄭芝溶全集)≫이 시와 산문으로 나뉘어 2권으로 발간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지용 [鄭芝溶]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