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단기(檀紀)로는 4348년이고 간지(干支)로는 을미(乙未)년이다. 양의 해다. 말의 해인 갑오(甲午)년 다음 해이다. 말의 해가 가고 양의 해가 왔다. 갑오와 을미. 우리 역사에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간지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렇다. 120년 전인 1894년과 1895년의 떠올리기 싫은 역사 때문이다. 백성들이 외세에 의해 직밟히고 국모가 시해되는 사건을 당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15년은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이 빼앗아간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10년이 되는 해다. 또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이 된 광복 70주년도 올해 맞는다. 동시에 남북분단도 올해 70년 째를 맞는다. 1965년 한일관계가 복원된 지 50주년도 된다.
좋든 싫든 유난히도 역사적으로 기념할 만한 일들이 많을 올해 2015년 을미년을 맞는 마음이 그래서 남다르다.
▷을미사변 120주년
1894년 갑오년. 한반도는 동학농민혁명의 기운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외세의 개입으로 농민들의 세상을 바꾸려는 기운은 외세와 무너져가는 기득권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1895년까지 이어진 청일전쟁의 승리로 주도권을 잡은 일본과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뛰어든 러시아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청나라와의 전쟁에 이기고도 유럽 열강들로부터 괄시를 당한 일본은 이듬해인 1895년 음력 8월 20일, 유례를 찾기 힘든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다.
일본은 당시 러시아에 기울고 있던 명성황후를 제거해 조선에서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그 결과 조선의 국모를 시해하고 시신을 능욕하고 불태우는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이를 역사는 '을미사변'이라고 부른다. 꼭 120년 전의 일이다. 단기로는 4228년. 조선 개국 504년 만의 일이다.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을 일으킨 지 28년 째였다.
▷을사늑약 110주년
한반도 주도권 빼앗기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일본과 러시아는 1904년 한반도와 만주의 패권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인다. 러일전쟁이다. 해를 넘긴 이 전쟁에서도 일본이 승리를 거둔다. 러시아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하였다. 일본은 일방적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한성에 한국통감부를 설치하였다. 을사늑약이다. 단기 4238년의 일이다. 조선은 대한제국(光武)을 선포한 지 9년째되던 해의 일이었다. 이 조약의 내용은 혀를 차게 만든다.
"한국정부는 일본국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성질을 가진 조약을 절대로 맺을 수 없다. 일본국정부는 한국 황제의 궐하에 1명의 통감을 두어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고 한국 황제를 친히 만날 권리를 갖는다."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
우리 힘으로 되찾은 독립이 아니라 강대국에 의해 주어진 독립이었던 탓에 나라의 운명은 강대국 손에 의해 결정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자주적인 독립 준비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계사의 거센 물줄기를 우리의 것으로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절정으로 치닫던 이데올로기 대립의 희생물이 된 탓도 있었다. 이 사건들이 모두 1945년에 벌어진 일이다. 지금부터 70년 전의 일이다. 그래서 광복과 분단 역시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제국주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독립국을 유지했다면 분단의 아픔도 전쟁의 참화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부질없는 가정도 할 수 있다. 단기로는 4278년의 일이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1960년대 경제개발 재원 부족에 어려움을 겪던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러나 한일회담은 소련과 중국의 세력 확대를 막아야 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에서도 절실한 일이었다.
국내에서는 굴욕외교라며 반대여론이 비등하였으나, 역사의 시계바늘은 1965년 6월 한일관계 정상화의 길로 달려갔다. 조약의 발효는 그해 12월이었다. 60년전 을사늑약의 내용과 비교하면 흥미롭다.
"대한민국과 일본국 양국간에 외교 및 영사관계를 수립하고, 1910년 8월 22일 또는 그 이전에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무효로 하며, 대한민국정부가 국제연합총회의 결의 제195조 3호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한반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확인한다"는 것이 주요골자였다.
▷한일관계의 복원 가능성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2015년 한일관계를 전망했다. 그는 월간 신동아에 기고한 글에서 한일 관계가 꼬이게 된 원인으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하는 역사문제와 독도를 둘러싼 영토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는 것과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이의 상호불신과 대립을 들었다. 또 중국의 대국화에 따른 전략재편. 즉 박 대통령의 외교 전략이 중국 중시로 돌아섰다는 점도 덧붙였다. 오코노기 교수는 다만 대립이 바닥을 치면, 한일간에 존재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호의존'이 보일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는 또 한일간의 역사마찰이 장기화하면 일본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동관기자 @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