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길을 가는 이는 그 끝을 볼 수 있습니다. 길을 가는 이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길을 가는 이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길을 가는 이는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길을 가지 않는 이는 그 끝을 볼 수 없고, 집의 좋음을 알지 못합니다. 길을 가지 않는 이는 그 아름다움도 볼 수 없습니다. 길을 가지 않는 이는 늘 옛 것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길을 가십시오. 길을 떠나십시오. 길을 가는 이에게 길이 있고, 길을 가는 이에게 그 길의 도중이 있고, 그리고 그 끝이 있습니다. 길을 가는 이는 길을 말할 수 있고, 길을 가는 이는 길의 모든 바라봄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을 가는 이는 만남을 대화를 할 수 있고, 그리고 그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오늘 길을 나서십시오. 불편하고 버겁더라도, 힘이 들더라도, 일어서시가 부담스럽고 아니 어렵더라도 일어서서 길을 나서기 바랍니다. 길의 나섬의 길목은 희망과 즐거움과 감사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을 떠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고향 나자렛을 요르단 강으로 가셨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뒤에 또 광야로 가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시어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의 길은 늘 걸어가는 길. 걸어가는 그 자리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예수님은 온 갈릴래아의 길로 떠나셨습니다. 이곳 저곳 티로와 시돈으로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길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을 떠나가도록, 그 파견의 길을 마련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길을 떠날 때는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었습니다(마르 6,12).
예수님의 길은 '떠나감의 길' 떠남의 길은 '기쁜 소식의 길'이었습니다. 그분이 떠나감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이 떠남의 길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이 기쁜 소식을 위해서 떠나갔습니다.
왜 일어서기를 주저합니까? 왜 발걸음을 떼기를 어려워합니까? 우리는 주님의 힘 주심으로, 그분의 이름으로 일어납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시고, 그 구원을 알려 주셨습니다. 인간의 나태함과 게으름, 오락가락과 갈팡질팡을 벗어나십시오.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서 나아가기 바랍니다. 그분께서 서 계시고 그분께서 맞아주시고 함께 걸어가실 것입니다.
일어서서 걸어가십시오. 발걸음을 떼십시오. 믿음을 가지고 용기 있게 걸어가십시오. 주위를 돌아보고 만나는 이에게 인사하고 기도하십시오. 걸어감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사하십시오.
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참된 길을 걸어가는 이는 그 생명 길을 가게 됩니다. 그 길은 좋고 평화로우며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주님, 오늘도 걷게 하소서. 참 진리를 전하는 발걸음이 되게 하소서. 거룩한 걸음으로 모두가 생명을 얻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첫댓글 아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도 만약 산초와 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것입니다.
아무리 허황되 보이는 꿈을 지녔을지라도 길을 나섰기 때문에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겪고 문제를 해결해나갈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도전과 모험정신에는 늘 위험과 위기가 닥치기 마련이지만
우연찮게 알게되고 깨닫게 되는 것도 많은것 같습니다.
주님! 나아가게 하소서. 금방 한계에 부딪치고 기가 꺾이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또 부딪히고 새로운 기대감으로 그리고 주님에 대한 신뢰감으로 한발짝 앞으로 또 내딛어보는 용기를 잃지 않게 지켜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