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종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여인천하'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br> 서슬 시퍼런 여인들의 암투에 왕과 대신들의 무능은 극에 달했으며, 중흥지주(中興之主)로 평가받던 중종도 왕위계승을 노리는 여인들의 등쌀에 수시로 소리만 버럭 지르는 우유부단한 군주로 내비치고 있다.<br> 이 드라마에서 여인들의 파워는 막강하다. '뭬야'라는 유행어와 질투의 화신처럼 보이는 표독한 눈매로 시청률 증가에 혁혁한 공을 세워 주연급으로 급부상한 경빈 박씨(도지원 분)를 비롯하여, 신분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권모술수로 최고의 파워집단에 줄을 댄 후 당대의 정객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정난정(강수연 분), 여기에 후궁, 상궁과 나인들까지 가세하여 툭하면 험한 말을 뱉고 머리 끄댕이를 잡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 처절한 모습들이다.<br> 그런데 이들과는 일정한 차별을 두면서 교양과 품위, 그리고 냉철함으로 무장한 여걸이 한 사람 등장한다.<br> 바로 문정왕후(전인화 분)이다. 학창시절 국사책에도 나오는 결코 낯설지 않는 인물 문정왕후, 그런데 기억력이 정확하다면 문정왕후는 그리 긍정적인 평가가 가해진 여인은 아니었다. <br>수렴청정, 외척정치, 요승 보우의 등용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문정왕후가 이 드라마에서는 암투의 주역이면서도 상당히 기품 있게 묘사되어 있다.<br> 역시 사극의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명성황후와 함께 이제 우리네 왕비들도 대단한 교양과 지성을 지닌 여인이었음을 부각시키려 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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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1501-1565) 윤씨는 중종의 계비이자 조선의 13대왕 명종의 생모이다.<br> 중종대 후반부터 왕위계승의 중심에 서서 그녀의 소생인 명종의 즉위를 결국 성공시켰다.<br> 1545년 보위에 오른 명종은 이제 겨우 12살이었고 실권은 당연히 문정왕후에게 돌아갔다. <br>그녀는 수렴청정의 방식으로 국정의 최고 위치에 서서 1565년 사망 때까지 윤원형 등 친인척을 적극 등용하여 국정을 좌지우지하였다.<br> 윤원형과 정난정의 가세로 명종대는 외척정치의 전성시대가 연출되었으며, 이들은 반대파에 대해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br> 외척정치에 반감을 갖고 있던 사림파 학자들은 1545년의 을사사화와 1547년의 정미사화로 대거 처형당하거나 귀양의 길에 나섰다.<br> 중앙에 비판세력이 없자 문정왕후는 더욱 날개를 달고 독재권력을 유감없이 휘둘렀다.<br> '윤원형의 재산이 나라의 재산보다 많다'는 말이 회자되었으며 왕후가 어린 왕을 꾸짖고 심지어 매를 들었다는 소문까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br> 문정왕후는 여론을 무시한 채 불교의 중흥을 위해서 파격적으로 보우를 등용하였고 이 또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br> 그녀의 전횡에 가장 강경하게 비판의 글을 올린 사람은 남명 조식이다. <br>조식은 '자전(문정왕후)은 과부 명종은 고아'라는 직설적 표현으로 문정왕후의 치맛바람을 비난하면서 당시를 '큰 나무에 백년동안 벌레가 속을 먹어 진액이 다 빠진 형국'에 비유했다. <br>보우를 중심으로 한 불교 정책에 대해서도 성균관 유생들을 비롯한 양심세력은 수업거부와 동맹휴학으로 집권층의 정책에 저항했다.<br> 1565년 그녀의 사망으로 외척정치가 종말을 고하자 이제 역사는 전 시대의 모순과 부패를 극복하는 대안 세력 사림파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br>몇 사람의 권력욕으로 정상적인 정치 질서가 자리잡지 못하고 민심이 이반하던 시대. 문정왕후는 바로 그 중심에 있던 여인이었다. <br>오죽하면 실록에서 그녀가 죽었을 때 史官이 『서경(書經)』을 인용하여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라고 했을까? <br>그녀 스스로는 교양과 정치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항변할 지도 모르지만 문정왕후는 분명 역사 발전의 대세를 거스르는 외척정치의 최정점에 서서 조선사회를 보수와 반동으로 몰고 간 주역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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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능 실록의 문정왕후 사망기사 <br><br>
다시 여인천하로 돌아와 보자.<br> 사극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적 흥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br> 그러나 여전히 시청률이 우선되어 사실(史實) 보다는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에 비중이 두어진다. <br>여인천하가 왕과 신하들의 국정운영을 제쳐두고 여인들의 궁중 암투에 초점을 맞춘 것도 시청률을 방송의 생명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br>그나마 부정적인 왕비상을 극복하기 위해 설정한 우아한(?) 문정왕후의 캐릭터 또한 역사적 인물 문정왕후의 실체를 상당히 왜곡시키고 있다.<br> 아마도 기존에 부정적으로 묘사되었으니까 이번에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풀어 본 것으로 여겨진다.<br> 그러나 드라마 여인천하에 나오는 문정왕후의 우아한 자태와 외척정치의 중심에 섰던 문정왕후의 역사적 실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br><br><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