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에 ‘차이나타운’이 있다면,
동구에는 ‘냉면거리’가 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친구들이 학교 앞 ‘왕냉면’ 집에 가자고 소매 끝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여고생 셋이 젓가락 싸움을 시작하면 세숫대야만 한 냉면 한 그릇이 순식간에 비워졌다.
그런데 이 ‘왕냉면’의 원조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인천 개항기부터 이어진 역사를 자랑하는 화평동의 ‘세숫대야 냉면’이다.
글·사진 최혜진 기자
살얼음이 동동 띄워진 말간 육수에 메밀향이 풍기는 쫄깃한 면발, 여기에 속속들이 간이 밴 아삭아삭한 열무김치를 얹어 먹는 여름철 냉면의 맛. 차가워서 ‘냉면(冷麵)’이니 더운 날 먹어야 제 맛이겠지만, 요즘엔 냉면을 즐기는 때가 꼭 여름 한철만은 아닌 것 같다. 입맛이 없어 혀가 까끌까끌하거나 끼니를 채우고도 속이 헛헛할 때, 심지어는 추운 겨울까지 사계절 때가 없다. ‘이냉치냉’이란 말처럼 차가운 냉면과 따끈한 육수를 함께 곁들이는 겨울냉면도 색다른 별미란다.
이처럼 두루 사랑받아온 냉면을 세숫대야만 한 그릇에, 그것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맛 골목’이 있다. 동인천역 중앙시장 출구에서 화평철교를 지나 왼쪽으로 돌아가면 냉면집이 빼곡한데, 여기가 바로 1997년 동구청이 지정한 특색 음식거리 ‘세숫대야 냉면거리’다.
“지금이야 많이 없어져서 열 집 정도이지, 한창 전성기일 때는 스무 집이 넘었다니까. 여기 지하철 지나는 자리도 예전에 다 가게였으니까. 주말에 이 거리가 꽉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었어.”
이곳에서 나고 자란 화평동 토박이 백화규 씨의 말처럼, 한때 ‘함흥냉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던 것이 바로 ‘인천냉면’이었다. 지금도 물론 양 많고 맛 좋은 냉면을 찾는 단골들의 발길은 꾸준하다. 인천 중구에 ‘차이나타운’이 있다면, 동구는 단연 ‘냉면거리’가 꼽힌다.
화평동에 냉면골목이 형성된 것은 약 25년 전의 일이다. 인근 화수시장에서 작은 냉면 가게를 하던 상인들이 이곳에 개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골목이 하나 둘 냉면집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천과 냉면’의 첫 인연은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83년 인천항 개항기에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렸는데, 이중에는 유난히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대표적인 음식이었던 냉면이 인천에 소개된 것. 첫 냉면집에 관한 기록은 1955년 발간된 고일의 <인천석금>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구 용동의 평양관이 1893년경에 문을 열었다.
직접 찾는 손님보다 주문이 많아서 서울 등 먼 거리까지 자전거 뒤에 냉면을 싣고 배달했다.
이 모습이 마치 자전거 경주대회를 보는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번성했던 냉면집의 역사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우리 냉면? 글쎄… 다들 양이 많고, 맛있다고 하대! 아이고, 근데 너무 바쁘다, 바빠. 이따가 얘기하자고.”
정말 ‘시도 때도 찾는 냉면 손님’이라는 말이 맞나보다. ‘MBC, KBS, SBS에 나온 맛집’이라는 간판이 큼지막한 ‘고향냉면’은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손님들로 북적인다. 둘러보니 테이블 위에 놓인 냉면 그릇이 정말 크긴 크다. ‘1.5ℓ 육수를 다 부어도 남는다’는 화평냉면 그릇은 과장이 아닌 듯하다. 창가 쪽 테이블에 할머니 두 분이 냉면 한 그릇을 시켜놓고 사이좋게 둘로 나누고 있다.
한차례 손님들이 다녀가고 가게가 좀 한산해지자 인심 좋은 사장님이 ‘세숫대야’ 그릇에 물냉면, 비빔냉면, 회냉면까지 꾹꾹 눌러 담아주신다. 냉면으로 언제 이렇게 호사를 누려볼까 싶을 만큼 넘치게 푸짐하다. 과연 그 맛은 어떨까.
물냉면 육수의 맛은 뒷맛이 거의 남지 않을 만큼 개운하고 깔끔하다. 그런데 새빨간 양념장을 살살 풀면, 화평동 냉면의 개성이 살아난다. 양념장 덕에 육수가 걸쭉해졌고, 매운맛도 강하다. 비빔냉면은 오이와 당근, 양배추의 씹히는 맛이 좋다. 그런데 물냉면보다 훨씬 더 매워 속이 얼얼할 정도. 회냉면은 비빔냉면과 같은데, 그날그날 들여오는 신선한 회가 올려진다는 점이 다르다. 종류에 관계없이 토마토를 얹어주니 냉면을 다 먹은 후에 디저트 삼아 먹으면 입 안이 깔끔해져 좋다.
김광범 사장님이 말하는 냉면 맛의 비결은 육수와 양념장에 배, 무 등 과일과 야채가 푸짐하게 들어간다는 것. 손이 큰 주방 아줌마들이 무슨 재료이든 ‘팍팍’ 넣는 것도 단골들이 고향냉면을 찾는 이유란다. 하긴 그릇이 세숫대야만 하니 양이 많아지는 것도 당연하겠지 싶다.
‘고향냉면’을 지나면 ‘삼미소문난냉면’ ‘냉면천국’ ‘아저씨냉면’ ‘일미냉면’ 등 냉면집이 죽 이어진다. ‘일미냉면’에 붙은 ‘수박냉면, 냉면수박 있습니다’라는 포스터가 눈에 띈다. 수박냉면은 또 뭐고 냉면수박은 뭘까.
“수박냉면은 수박 속을 파내고 냉면을 담은 것이고, 냉면수박은 냉면에 수박을 썰어서 같이 내가는 것이지. 맛 한 번 볼 테야?”
한 마디로 ‘수박 속에 빠진 냉면’이 수박냉면이고 ‘냉면 속에 빠진 수박’이 냉면수박이다. 큼지막한 고창수박 반 통을 그릇 삼아 속을 적당히 파내고 그 자리에 담은 냉면은 과연 눈으로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냉면을 싹 해치우고, 숟가락으로 수박을 박박 긁는 재미에 이곳을 찾는 단골들이 꽤 있다. 간혹 “이거 수박이 너무 달아서 냉면 맛이 덜해지는 것 같아” 하는 손님도 있지만, 대부분은 냉면을 먹고 곁들이는 수박을 디저트로 즐긴단다.
‘일미냉면’을 나서면 골목은 다시 ‘화평냉면’ ‘별미냉면’ ‘왔다냉면’ ‘할머니냉면’으로 이어진다. ‘화평냉면’과 ‘별미냉면’ 사잇길로 들어가는 ‘은하냉면’ 말고는 모두 큰 거리에 사이좋게 서 있다. 어느 가게에서 냉면을 맛볼지는 선택의 문제. 다만 화평동 냉면골목을 찾을 때에는 세숫대야만 한 냉면 한 그릇을 모두 해치워야 하니, 확실하게 속을 비워두고 가는 게 좋겠다.
Tip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거리
하절기에 수박냉면을 선보이는 일미 냉면을 제외하면 메뉴는 주로 물냉면, 비빔냉면, 회냉면이다. 물냉면, 비빔냉면 3500~4000원, 회냉면 5000~7000원, 수박냉면 7000원, 냉면수박 5000원.
Info 1호선 동인천역
1, 2번 출구 → 중앙시장에서 좌회전한 후
걸어서 5분 →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거리
문의 고향냉면 032-777-9393,
일미냉면 032-772-0040
여기에 맛다 모였다! 전국 대표 맛 골목
진주 장어거리
진주교에서 진주성으로 흐르는 남강변 길목에 장어구이집이 즐비하다. 강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제 남강에서 장어를 수렵하는 것은 힘들게 됐지만, 연탄불에 굽는 전통조리법은 여전하다. 장어거리의 30년 터줏대감 ‘유정장어’에서는 장어를 초벌구이한 뒤 주문이 들어오면 한 번 더 구워내 총 두 번을 굽는다. 이때 석쇠에 양파를 깔고 장어를 함께 굽는 것이 비법. 이렇게 하면 기름기가 쫙 빠져 느끼하지 않고, 한층 쫄깃쫄깃한 육질을 느낄 수 있다. 바닷장어는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굽고, 민물장어는 고추장과 간장양념 두 가지 방법으로 구워서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민물장어 1만6000원, 바다장어 1만4000원
문의 유정장어 055-746-9235
경주 쌈밥거리
대릉원 앞 쌈밥거리는 이제 경주에 오면 꼭 들러야 할 명소가 됐다. 이곳 쌈밥집이 특별한 것은 전라도에서나 볼 법한 반찬의 가짓수. 콩잎장아찌, 배추겉절이, 조기구이, 잡채, 된장찌개 등 푸짐한 반찬들이 놓인 상은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상의 끝에서부터 능숙하게 밥과 반찬을 늘어놓는 솜씨도 놀랍다. 치커리, 케일, 양배추, 깻잎 등의 신선한 야채에 멸치액젓으로 만든 독특한 소스를 얹어 먹는다. 운치 있는 한옥으로 꾸며진 이풍녀구로쌈밥집이 유명하다.
쌈밥 1인 9000원
문의 이풍녀구로쌈밥 054-749-0600
무안 낙지거리
밤 기온이 쌀쌀해지면 전국 각지에서 세발낙지를 먹기 위해 무안으로 몰려든다. 그중에서도 무안버스터미널 안쪽 골목에서 가장 저렴하게 낙지를 맛볼 수 있다. 낙지 점포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이곳은 특화거리로 조성된 무안 낙지거리. 갯벌에서 자라 발이 가늘고 긴 무안 낙지는 ‘기절낙지’로 맛볼 수 있어 더 특별하다. 낙지를 잡아 물에 벅벅 씻으면 낙지가 잠시 기절하는데, 이를 초장이나 기름장에 찍으면 꾸물꾸물 다시 움직여 신선함이 그대로 혀끝에 전해진다. 낙지는 머리는 따로 떼어내서 구워준다. 신안수산에서 낙지 1접(20마리)씩 판매한다. 낙지 1접(20마리) 시가
문의 신안수산 061-454-0833
진천 초평 붕어찜마을
낚시터로 유명한 초평저수지에는 붕어찜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약 20년 전에 중부고속국도 공사 현장 관계자들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붕어찜 요리를 선보인 것이 시초다. 그 후 맛을 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어 꾸준히 찾는 이들이 늘었고, 지금은 17개의 붕어찜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매콤하게 무친 빨간 양념과 부드러운 우거지, 초평에서 잡은 붕어의 하얀 속살의 맛이 어우러진다. 서울집은 붕어찜뿐만 아니라 바삭한 빙어튀김으로도 유명하다.
붕어찜 1만2000원, 빙어튀김 2만원
문의 서울집 043-532-6030
여수 봉산동 게장골목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멍게젓, 새우젓, 조기매운탕까지, 봉산동에서는 이 모든 것을 맛보는 가격이 단돈 5000원이다. 여수는 바다가 지척이라 신선한 게를 값싸게 들여올 수 있었기 때문에 봉산동 골목에서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게장 백반을 선보이게 된 것. 그 중에서도 ‘두꺼비식당’은 최근 가게를 확장해 깨끗하고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다. 달짝지근한 간장게장과 매콤한 양념게장이 모두 신선하고 푸짐하다. 비리지 않고 매콤한 국물이 일품인 조기매운탕도 별미. 게장과 멍게젓은 택배로도 받아볼 수 있다.
게장백반 1인 5000원
문의 두꺼비식당 061-643-1880
광주 송정떡갈비거리
황룡강과 극락강을 끼고 있는 광주 송정은 예부터 떡갈비가 유명했다. 특히 광주구청 주변에 떡갈비집이 즐비한데, 그중에서도 1979년부터 자리를 지킨 ‘화정식당’이 원조로 꼽힌다. 맛이 좋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8 대 2로 섞고 물엿, 생강, 마늘 등을 넣어 질감이 뻣뻣하지 않고 맛이 담백하다. 숯불에 떡갈비를 구울 때 다시마, 무, 대파 등을 넣어 만든 비법 소스를 발라 맛을 돋운다. 떡갈비와 함께 나오는 쇠고기 뼛국도 이 집의 자랑이다.
떡갈비 1인 9000원
문의 화정식당 062-944-1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