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존의 틀을 짜라.

효종과 효종비 사후 조대비복상문제로 2차례에 걸친 치열한 예송 논쟁이 있었다. 목숨을 건 치열한 싸움와중에 당시 서인(西人)의 좌장격인 우암 송시열선생이 중병에 걸렸다. 용하다는 의원은 다 진맥해 보았지만 고치 지를 못했다. 우암선생은 마침내 의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남인(南人)의 좌장 허목선생에게 그의 아들을 보냈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인 정적 이 약을 지어줄까 의심했지만 아버님의 지엄한 분부인지라 마지못해 그 뜻을 따랐다. 아들이 지어 온 약방문에는 온갖 독약이 가득했다. 우암선 생 측근들은 거보란 듯 대노하며 처방전을 따르지 말라고 간언했다. 그러 나 선생은 처방전대로 약을 지을 것을 명하고 그 약을 드셨다. 예상과는 달리 병은 깨끗이 나았다. 원체 중병이라 극약처방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렇듯 예전에도 정책대결을 벌릴 적에는 생사를 걸고 싸웠지만 초고수 들 간에는 학문에 대한 실력이나 또 상대에 대한 존경, 신뢰는 늘 가지 고 있었던 것이다. 숙적에게 욕먹을 줄 알면서 극약처방을 해준 분이라 주위반대를 물리치고 그걸 덥석 믿은 분이나 정말 배포가 대단한 양반들 이다. 정적이더라도 상대에 대한 평가나 마음 깊이 통하는 따뜻한 배려는 요즈 음 진보나 보수를 자처하는 분들도 깊이 유념하여야 한다. 어떤 논쟁을 하거나 투쟁을 할 적에 우리도 이런 큰 마음, 열린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 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영국도 있었다. 의회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하 면 대부분 이의없이 영국을 꼽는다. 그러나 초기에는 어떠했는가. 휘그당 이니 토리당이니 하며 당명도 아예 폭도나 유적(流賊)이라는 뜻일 만큼 헐뜯기, 비방 등 개판이었지 않는가. 그것을 세계의 모범으로 만든 것이 바로 자유당을 이끈 글래드스턴(William E. Gladstone)과 보수당을 이끈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다. 추진하던 정책이 부결되면 기꺼이 수 상직을 물러나 상대방이 집권하여 새로운 구상을 펼칠 기회를 주고 또 비 록 정적이지만 그 능력은 늘 인정해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들이 싸우 고 양보하는 동안 영국의 의회민주주의는 한 달음에 그 격이 높아지게 되 었던 것이다. 선거법개정문제로 첨예하게 싸우고 있을 적에 한 양반이 디즈레일리에 게 "글래드스턴이 템즈강에 빠져 죽는다면 어떻겠느냐?"는 짖궂은 질문 을 했다고 한다. 디즈레일리는 "우리당의 경사요, 대영제국의 불행이 다."라고 답했다. 우리나라 지금의 정치판이나 인터넷 논객들을 생각해 보면 상대에 대한 당당한 평가, 당당한 대결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 "왜 여기 애들은 나를 안때려?" 어느 한국분이 프랑스에 간지 며칠 안되어 동네공원에서 놀고 온 다섯 살 배기가 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왕따, 거지밥 등 줄창 얻어 맞다가 프 랑스에서는 맞지 않으니 이상했다는 것이다. 말이 통하는 곳에서는 힘이 우선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오히려 대화로 해결되었다는 것 이다. 프랑스에서는 어릴 적부터 애들이 "왜?"라는 질문을 하면 순진한 것은 순 진하게, 엉뚱한 것은 엉뚱하게, 끊임없는 물음에도 참을성 있게 대답해 준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상대에 대한 인정이나 대화와 토론의 습속을 체 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끔찍이 생각하는 우리의 부모는 "넌 그런 거 몰라도 돼"나 "귀찮으니 엄마(아빠)한테 물어 봐라"나 "크면 알게 된다"는 류의 벽을 쌓는다. 어릴적부터 "왜?"라는 물음은 스스로 접게 되고, 대화나 토론보 다는"힘의 논리"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진실을 얘기하는 데에도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거는 용기가 필요 했고, 각종 정보는 권력과 언론에 의해 가공되고 왜곡된 형태로 제공되어 져 왔다.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속어처럼 진정한 대화와 타협, 토론은 실종되고 폭압, 제왕적 권위같은 것들이 기승을 부렸다. 부모의 권위, 정치판의 권위에 대항하면서 진보는 또다른 진보의 권위를 쌓아 왔는지 모른다. 조중동을 욕하며 조중동 못지않은 배척과 왜곡, 견 강부회를 자행하고 있다. 진보의 왕따, 약자에 대한 무시 또한 보수와 크 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건강한 진보는 없고 반독재, 민주화가 진보의 탈 을 쓰고 있다가 독재가 사라지자 방황하는 이리떼가 된 듯 하다. 진보도 이젠 과거의 탄압받던 진보가 아니다. 국정의 책임을 져야 할 위 치에 있고 각종 인터넷 매체와 방송을 장악할 만큼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상대를 인정하며 공존 의 틀을 짜가야 한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원칙과 상식은 지역민심보다 훨씬 중요하고 또 존중되어져야 한다. 나라 를 망친게 무엇인가? ‘우리가 남이가’나 ‘성님, 동상’식 지연, 학연 아닌가. 내고향 놈 출세했다고 내가 덕볼 생각해서야 되겠는가? 원칙에 어긋나는 이득이란 결국 누군가의 손해를 담보로 하는 것 아닌가? 노무현 과 그 추종자들의 논조에서 보듯 진보의 제식구 감싸기나 또 한나라당의 정치자금 은폐에서 보듯 보수의 부패구조도 모두 원칙과 상식으로 척결 해 나가야 한다. 원칙과 정도를 걷는 시람이 중용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영남놈이면 어떻고 호남놈이면 어떤가. 진보면 어떻고 보수 면 어떤가. 벌은 꽃에서 꿀을 따지만 꽃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꽃을 도와 준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며 상대의 성장밑 거름이 되는 것, 남으로부터 자기가 필요한 것을 취하면서 상처를 남기 지 않고 공존하는 것. 진보와 보수 모두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진보니 보수니 겉멋들어 설치지 말고 건강한 진보와 건강한 보수를 깊이 고민해 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존의 틀을 짜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