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대화
저는 아주 어렸을때부터 해태를 응원했는데 야구 처음 봤을때 스타가 타자는 김성한, 투수는 선동열이었어요.
근데 저는 김성한은 폼이 이상해서 크게 좋아하지 않았구요.
대신 안경 썼는데 장타를 펑펑 날리는 한대화가 좋았어요.
검빨 유니폼이 가장 잘 어울렸던 선수 같아요.
2. 허재-강동희
엄마가 김현준하고 삼성을 엄청 좋아해서 농구를 자주 봤는데 저는 맨날 우승하는 기아가 훨씬 좋았어요.
허재와 강동희는 진짜 멋있었어요. 김유택도 좋아했는데 허-강만큼은 좋아하지 않았구요.
나중에는 완전 허재 극성팬이 됐는데 97-98시즌 챔프전 때 너무 멋있었어요.
지금도 가끔씩 그때 동영상 유투브로 찾아보는데 배경음악이 깔려서 좀 깨더라구요.
3. 이강철
동열이 형이 92시즌 4월에 비오는날 완투하다가 어깨를 다쳤어요.
그해는 정말 우울했는데 이강철 보는 맛으로 살았습니다.
야구 중계가 라디오밖에 없기 때문에 저녁 스포츠 뉴스를 놓치면 다음날 조간 스포츠 신문을 기다려야했어요.
이강철 이기는 뉴스 보려고 새벽에 일어나서 스포츠 신문 기다렸던 기억이 나네요.
시즌 막판까지 다승 선수를 달렸는데 송진우한테 졌어요.
당시 송진우가 다승, 세이브포인트 1위였던걸로 기억하네요.
4. 연세대학교 농구팀
농구는 기아를 계속 좋아했는데 93-94시즌에 연대팀이 너무 멋있었어요.
예선에서 기아를 이겼구요.
그 경기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연장에서 김훈이 3점슛 넣고 결승 레이업을 성공시킨 경기.
결승에서 상무에 한번 지기 전까지 전승이었어요.
연대 우승 이후 공중파에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했구요.
이때 이후로 이상민, 김훈을 계속 응원했습니다.
5. 이종범
말이 필요없는 선수죠.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선수 하나 뽑으면 바로 이종범이에요.
6. 고종수
이종범 다음으로 좋아하는 선수구요.
제 모든 아이디가 고종수 등번호와 관련되어 있을만큼 제 인생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 선수에요 ㅋㅋ
7. 정성훈
이종범이 일본에 갔고 다음해 임창용까지 떠나면서 다음해 야구볼때 우울이 파도를 쳤는데
당시 광주일고 출신 루키 정성훈이 유격수를 보면서 꽤나 고타율을 기록해서 허전함을 많이 채워줬습니다.
정성훈 다음 팬카페 이름이 '재간둥이 야구나라'였는데 저도 이 아이디를 한 몇년 썼어요.
다시 기아에 와서 너무 좋았습니다.
8. 김주성
제가 좋아하는 3명이 다 나와서 더 좋아하는 사진인데
전창진 감독이 KT에 간 이후 김주성을 너무 씹어서 지금은 전창진 감독이 예전만큼 좋지는 않아요.
김주성은 중앙대학교 시절부터 경기 모습을 많이 봤고 프로 진출 이후에는 거의 모든 경기를 봤어요.
직접 대화한 적은 한번밖에 없지만 친형같은 느낌입니다.
이후 윤석민, 강병현, 양현종, 안치홍, 윤호영, 두경민, 허웅 등이 좋았는데 더 쓰기가 피곤하네요.
첫댓글 야구선수는 다 해태를 좋아하셨군요
야구=해태에요. 지금도 야구 보는날 그러면 기아 경기니까요. 야구=타이거즈. 이게 고향때문에 이런데 평생가네요.
@女神 소이현 맞아요 저는 삼성을 좋아했었고 이만수 이승엽 이런 선수들을 좋아했었거등요
새삼 정성훈의 연차가 느껴지네요.
찾아보니까 정성훈이 나올때마다 프로 최다 경기 출전 기록 세우더라구요. 고졸 신인이 병역 공백 없이 20년 연속 뛰고 있으니까..연차가 대단하죠. 근데 그때 광주에서는 나름 새로운 희망이었어요.
@女神 소이현 이제보니 무려 프로 19년차더군요 ㄷㄷ
우타자 기준 역대 안타1위 기록도 갖고 있다는데 생각도 못했습니다.
당시 연세대-고려대는 드림팀 이었죠...한국 농구 역사상 이런 호화멤버가 또 있었을런지...
연세대는 정말 좋았는데..고려대 드림팀은....아...죄송합니다. 고려대는 약간 좀 약했던거 같아요.
@女神 소이현 현주엽 전희철 양희승 김병철 신기성 베스트5 진짜 강했는데... 우승을 못해서ㅠㅜ
@아나킨 멤버로는 고려대도 충분히 괜찮았다고.. 그시절 고대팬으로써 주장하는 바입니다. 다만 포지션의 색깔이 약하고(센터의 부재와 포인트가드의 선명성.. 전희철이나 현주엽은 베스트 포워드이지, 센터로 보기는 좀.. 그리고 신기성도 빠르고 슛이 비교적 좋은 선수지만, 이상민과 비교하기에는 좀..) 감독의 차이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박한 감독은 스카웃 능력은 좋았던 반면, 게임 운영이... 그 당시 최희암은, 지금의 빵감독 수준이었죠. 프로에서 안맞아 실패했지만, 막강 연대의 배경에는 최희암의 존재가 컸습니다.
저도 해태팬이라 어릴적 이강철 이대진 원투펀치가 기억나네요.이대진 10타자연속삼진도 기억나고 이강철 연속두자리승수 기록도 기억나고 정성훈 아기호랑이시절등등 추억돋네요
선동렬 가고 해태는 이제 저물어가겠구나.. 했는데 조계현, 이강철이 늙은 몸을 곧추세웠죠. 96년이었나요.. 하위권까지 떨어지다가 그해 우승했어요.. 그게 김응룡 감독 9연패째가 아니었나.. 기억이 헷갈리는군요.
3,4,5,6 공감합니다
저도 야구는 기아 농구는 동부네요(김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