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을 대략 200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과 공간들,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서 접하고 있는 오늘 이 시대의 우리들에 있어 기본적으로 분별하고 통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안들이 있습니다..
우선은 그때 당시의 바울과 실라가 믿고 의지했던 하나님 아버지, 또한 구주로 믿고 간구했던 예수님, 게다가 갈망하면서 생생하게 누렸던 성령님은 오늘 이 시대 우리들이 믿고 있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 조금도 다르실 수 없다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가 날마다 순간마다 사모하고 묵상하며 붙잡고 증거하며 힘썼을 말씀들도 오늘날의 우리들이 가까이하고 있는 영원한 말씀과 결코 다를 수 없는 수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들이 당한 고초와 위기들 또한 비록 모양과 정도는 다를 수 있는 것이겠지만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다할 때까지 믿음으로 몸부림치면서 감당하고 있는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의 크고 작은 문제와 심각들과도 근본적으로는 다를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당연히 그들이 믿고 간구하며 누리고 고백하며 증거하는 등의 역사들에 있어서도, 곧 사람이 할 수 없고 세상에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응답들, 이적과 역전들 등도 원론적으로는 마찬가지로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들은 그때 당시 합당한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잡히고 매를 많이 맞으며 깊은 감옥에까지 갇히게 된 바울과 실라가 했던 기도와 찬송에 있어 그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실 수 없고, 또한 표면 그대로의 단순한 간구와 찬송이었다기보다는 다른 그 누구보다 구약의 말씀들, 사건들에 정통했던 바울인 것임을 감안할 때 무에서 유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필요하면 10가지 이적들을 일으키시며 더 나아가 홍해 바다를 가르시는 기적까지도 행하시는 등의 하나님 아버지를 말씀 그대로 믿고 의지하며 간구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특히 그 기도라는 것 자체부터가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말씀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과 함께 약속된 것을 말씀대로 믿고 말씀에 계시되고 약속된 방법으로 간구하면서 말씀 그대로 행하고 누리며 성취되고 증거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말씀을 벗어난 기도, 정욕과 소견대로 하는 기도는 응답이 불가한 것일 뿐 아니라 아예 기도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이며, 찬송 또한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역사하신 일들을 말씀 그대로, 또는 말씀과 함께 하는 믿음으로 높이고 고백하며 증거하고 의지하며 선포하는 것으로 어떤 식으로든 말씀을 벗어난 찬송은 찬송일 수가 없는 것이고, 더군다나 그러한 찬송 아닌 찬송에서는 찬송으로 인한 그 어떤 하늘의 힘이나 감동이나 능력도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실상 그와 같은 바울과 실라의 기도에 있어서도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실제적인 응답과 이적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 및 그 이름으로의 간구와 별개일 수 없는 것이고,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이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생생하게 나타나고 강렬하게 누릴 수 있게 하신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 곧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 게다가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 그와 같은 모든 사실과 이치와 원리들이 아래 본문에서나 오늘날의 우리들 뿐 아니라 구약 시대에서도 결코 다를 수 없는 것으로 특히 다니엘 6장 10절에서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라고 증거된 말씀과 그 전후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바벨론 땅에서의 다니엘의 기도에 있어서도, 진정 그와 같은 기도와 함께 굶주린 사자 굴에서도 조금도 상하지 않게 된 이적 등과 같은 모든 역사들에 있어서도 모두 다 마찬가지였던 것인데..
실제로 그때 당시의 다니엘도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 어떻게든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간구한 것이고, 또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및 그 이름의 간구와 별개일 수 없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창세기 3장에서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를 위시해서 구약 성경 곳곳에서의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 깨어진 반석,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회막, 지성소, 제사장, 선지자,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면서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었던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이 아닌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도 될 수 있었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고 응답 받는 등도 가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비록 다니엘의 바벨론 땅 포로 시기 중 불타 버리게 되기는 했어도 어쨌든 다니엘이 바벨론 땅에서 향해 기도했던 예루살렘에 있어서의 중심이었던 성전이야 말로 그러한 예표와 모형과 계시와 상징들 등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때 당시에도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모든 현실적, 실질적인 실제와 누림과 성취들에 있어 그 어떤 방법과 도구들, 형식과 통로들을 통해서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와 진정 별개일 수 없는 것이고, 사실은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어 있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말 그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사도행전16:25~26)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18일(금)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